ㄱ. 치우는 걸 도와주기도
.. 데니스가 떼를 쓰지 않아 정말 다행이었다. 데니스는 치우는 걸 도와주기까지 했다 .. 《안케 드브리스/박정화 옮김-두 친구 이야기》(양철북,2005) 11쪽
"정말(正-) 다행(多幸)이었다"는 그대로 두어도 나쁘지 않으나, "얼마나 한숨 돌렸는지"로 다듬을 수 있어요. '정(正-)말'만 '참말'이나 '참으로'로 다듬어 주어도 됩니다. "더없이 마음을 놓았다"라든지 "겨우 마음을 놓았다"로 다듬을 수도 있습니다.
┌ 치우는 걸 도와주기까지 했다
│
│→ 치울 때 도와주기까지 했다
│→ 치우기를 도와주기까지 했다
│→ 치우는 일을 도와주기까지 했다
│→ 함께 치워 주기까지 했다
└ …
"설거지를 도와주기까지"나 "설거지할 때 도와주기까지"라 말하지 않고 "설거지하는 걸 도와주기까지"라 말하는 분이 있으리라 봅니다. "짐 나르기를 도와주기까지"나 "짐 나를 때 도와주기까지"라 말하지 않고 "짐 나르는 걸 도와주기까지"라 말하는 분도 있을 테고요.
사람들 말씀씀이는 차츰차츰 '것'을 말끝에 붙이는 쪽으로 달라지는구나 싶습니다. 아직까지는 저으기 어색하게 느끼는 사람도 있겠지만, 앞으로 몇 해 지나지 않아 어색하거나 얄궂다고 느끼는 사람은 거의 사라질 수 있겠지요. 토씨 '-의'를 아무 자리에도 버젓이 붙이면서 스스로 느끼지 못하고, '-化'나 '-的' 또한 안 붙이면 어딘가 어설프거나 어울리지 않는다고 느끼는 우리들이니까요. 멋을 부리는 자리뿐 아니라 멋을 안 부리는 자리에까지 영어를 함부로 쓰는 우리들이요, 일제강점기에 스며든 찌꺼기 말마디를 앞으로도 털어낼 마음이 없는 우리들이니까요.
ㄴ. 시장에 가는 거
.. 엄마 따라 시장에 가는 거 정말 좋아하는데, 오늘은 내키지 않아요 .. 《쓰치다 노부코/김정화 옮김-마빡이면 어때》(청어람미디어,2007) 7쪽
'정말(正-)'은 '참말'로 다듬거나 '참'이나 '아주'로 고쳐쓰면 한결 낫습니다. '더없이'나 '몹시'나 '매우'나 '무척'을 넣을 수도 있는데, 우리들은 이런 어찌씨를 어찌어찌 잊거나 잃어만 가고 있습니다.
┌ 시장에 가는 거 정말 좋아하는데
│
│→ 시장에 가기 참말 좋아하는데
│→ 시장 나들이 참 좋아하는데
│→ 시장 마실 더없이 좋아하는데
│→ 시장 구경 아주 좋아하는데
└ …
우리 어른들이 하도 '것'을 말끝에 붙이니까 아이들마저 이 말투를 따라합니다. 어른들이 '것'을 말끝에 붙이지 않는다면 아이들도 이런 말투를 안 쓰겠지요.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을 생각해서라도 당신들 말씨를 차분히 가다듬거나 추슬러 주어야 할 텐데, 말이고 글이고 다른 지식이고 책이고 아이들한테만 가르치려고 합니다. 어른들부터 스스로 배우려 하지 않습니다. 어른들부터 좋은 책을 즐겁게 읽는 가운데 아이들한테 좋은 책을 읽혀야 하는데, 어른들부터 좋은 책을 찾아 읽지 않습니다. 어른들부터 몸을 살리고 땅을 살리는 마땅하고 슬기롭고 아름다운 밥을 먹으면서 아이들한테도 아이들 몸을 살리고 땅을 살리는 밥을 먹여야 할 텐데, 우리 어른들은 자꾸자꾸 엉뚱한 밥을 먹으며 아이들한테만 이렇게 하라느니 저렇게 하라느니 시키기만 합니다. 우리 어른들 스스로 하는 일이 몹시 드뭅니다.
겉으로 내세우기만 하고, 앞에서 으스대기만 하며, 껍데기를 부풀리기만 합니다. 입으로 떠들기만 하고, 손가락으로 가리키기만 하며, 팔짱을 낀 채 멀거니 구경하기만 합니다.
땀을 흘리고, 땀을 바치며, 땀을 들일 줄 모르는 우리 어른들입니다. 땀을 쏟고, 땀을 모두며, 땀을 사랑할 줄 모르는 우리 어른들입니다. 착하게 살지 않는 가운데 착하게 나눌 말을 잃고, 아름다이 살지 않는 가운데 아름다이 주고받을 글을 놓칩니다. 싱그럽게 살지 않는 가운데 싱그럽게 펼칠 말을 잊고, 맑고 따숩게 살지 않는 가운데 맑고 따숩게 적바림할 글을 내버립니다.
ㄷ. 냄새 같은 것도 나는 것이었다
.. 조금 눅진해졌을 때 가서 만져 보면, 얼어 있긴 얼어 있어도 느낌이 부드럽고 콤콤한 냄새 같은 것도 나는 것이었다 .. 《박희병-거기, 내 마음의 산골마을》(그물코,2007) 87쪽
'향기(香氣)'라 하지 않고 '냄새'로 적은 대목이 반갑습니다. '내음'이나 '내'로 적어도 잘 들어맞습니다.
┌ 콤콤한 냄새 같은 것도 나는 것이었다
│
│→ 콤콤한 냄새도 났다
│→ 콤콤한 듯한 냄새도 났다
│→ 콤콤한 냄새가 나는 듯했다
│→ 콤콤하다 싶은 냄새도 났다
└ …
냄새가 나는 듯하다가도 안 나는 듯하기에 '것'을 붙여서 이야기했군요. 그러면 앞뒤에 잇달아 '것'을 적기보다는 "냄새가 나는 듯"이나 "냄새가 나는 양"처럼 적으면 한결 어울립니다. "냄새가 있는 듯"이나 "냄새가 느껴지는 양"처럼 적어도 되고요. "냄새가 나는 듯도 마는 듯도 했다"라 해도 괜찮고, "콤콤한 냄새가 살며시 났다"라 해도 괜찮습니다.
느낌을 살리면서 알맞게 쓰면 되고, 느낌을 여러모로 북돋우며 조곤조곤 밝혀 주면 됩니다. 느낌을 생각하며 저마다 깜냥껏 말길을 틀 수 있고, 느낌을 곱씹으며 누구나 다 다른 마음과 매무새로 솜씨껏 글길을 열 수 있습니다.
┌ 콤콤한 냄새가 살짝 났다
├ 콤콤한 냄새가 조금 났다
├ 콤콤한 냄새가 옅게 났다
└ …
꾸준하게 쓰면서 차근차근 익숙해지는 말이요, 날마다 조금씩 가꾸면서 알차게 영글어 놓는 글입니다. 한결같이 애틋하게 보듬어 주는 말이요, 언제나 한 가지씩 고이 보듬으면서 새롭게 일으켜세우는 글입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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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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