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K연쇄살인] 햇볕연쇄살인사건과 북풍의 관계는?

김갑수 통일추리소설 BK연쇄살인사건 (29회) 야합형

등록 2009.10.07 08:57수정 2009.10.11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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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햇볕연쇄살인사건 범죄 추정서

1. 최근 발생한 일련의 사건은 연쇄살인이라기보다는 정치적 성격을 띠는 연쇄테러임이 확실시된다.
2. 정치적 테러임을 감안한다면 범인이 범행 대상의 몸에 써 놓은 메시지를 단순히 해석해서는 안 된다. 표면상 의미와 함께 숨겨진 의도도 계산해야 한다. 요컨대 범인은 고도의 심리적 선동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3. 따라서 표면상 의미에 집착함으로써 범인의 의도에 부화뇌동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일이 없도록 경계해야 한다.
4. 그러므로 범행의 배후를 북한이나 친북 세력으로 못 박는 것은 범인의 의도에 휘말리는 결과를 자초할 수도 있다. 현 시점에서 북한이나 친북 세력이 이런 종류의 범행을 저지를 만한 이유나 동기를 합리적으로 추론하기 어렵다.

5. 일련의 사건들은 실력을 갖춘 배후자의 조종에 따라 행동대원이 저지르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매 사건 살인이나 납치를 행한 사람이 다를 가능성이 크다.
6. 범인은 오래 전부터 범행을 준비해 왔으며 여기에는 행동대원의 선정, 교육과 세뇌, 훈련 등의 과정이 있었을 터인데, 이를 위한 규격 시설이 은밀한 장소에 갖추어져 있다고 보아야 한다.
7. 행동대원들은 납치 후 세뇌되었을 것이며 여기에는 세로토닌을 조정하는 방식의 약물 투여가 병행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8. 사건은 굴절된 한국 현대사의 어느 것과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크다.

9. 범인은 역사와 어학과 심리학 등 다양하고 해박한 지식을 갖추고 있는 주도면밀하고 실천력이 높은 인물이다.
10. 예고된 범행 일자인 6월 15일은 6·15 남북정상회담의 날짜를 의식한 것이다.
11. 이 날을 특정하여 범행을 저지르겠다는 것은 6·15 정신을 훼손하겠다는 의미로 파악하는 것이 순리적이다. 그러므로 범인은 오히려 북한이나 친북 세력과 반대되는 성격을 띠는 집단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12. 예고된 범행은 만반의 경계 조치에도 불구하고 성공할 확률이 높다.

용 부장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보고서를 읽었다. 그는 조수경의 프로파일링에 전적인 동감을 표시했다.

"합리적이면서도 확신에 찬 프로파일링이야. 얼핏 보아 유별난 게 없어 보여도 이 정도 프로파일링이 나오기까지 수사관이 들인 노고를 사람들은 잘 모를 거야. 그리고 노력한다고 아무나 되는 것도 아니고. 아무튼 특히 윗선에서 좋아하겠는데."

용 부장은 기분이 좋다는 뜻으로 서류 파일을 한 번 들었다가 소리 나게 놓았다. 그는 7번 항에 있는 세로토닌에 대해 물었다. 알기는 하는데 기억이 가물가물하다고 말했다. 용 부장이 세로토닌을 모를 리가 없었다. 그는 의도적으로 모르는 체하고 있었다. 집무실로 돌아온 조수경은 세로토닌에 대해 설명하는 내용을 첨부했다.


#세로토닌에 대하여

DNA 구조를 분석하고 활용하는 유전자학과 뇌 구조의 기능을 연구하는 정신의학, 신경 전달 물질과 체계를 연구하는 신경학 등은 현대 범죄학에 유용하게 적용된다. 사람은 모두 뇌 구조와 기능, 특정 신경 전달 물질의 생성 체계 그리고 성호르몬의 분비량이 다르다. 이것을 비정상적으로 만드는 가장 큰 요인은 스트레스, 약물 과다 흡입, 임신 중 산모의 음주·흡연 등이다.


최근 가장 크게 부각되고 있는 것은 세로토닌(serotonin)이라는 뇌신경 전달 물질이다. 이 물질은 분노 감정을 약화시켜 정서적 안정감을 갖게 하는 역할을 한다. 폭력적인 범죄자는 이 물질이 보통 사람보다 덜 생성되는데 이는 유전자에 이상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유전자는 약물 투여로 조작이 가능해졌다. 유전자 조작으로 세로토닌이 잘 분비되지 않게 된 쥐는 다른 쥐들을 마구 물어뜯고 죽여 버리는 사례가 존스 홉킨스 대학 연구진에 의해 보고되었다.

네덜란드에 3대에 걸쳐 폭력 범죄를 저지른 가문이 있어 조사해 본 결과 할아버지, 아버지, 손자 모두 세토토닌 관련 유전자가 손상되어 있음이 확인된 사례도 있다. 미국 법정에서는 피고의 세로토닌 수치가 낮다는 것을 제시하면 감형을 받을 만큼 세로토닌 효과는 공인성을 갖게 되었다.

어느덧 총선일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조수경은 한국에서 테러가 선거에 미친 영향을 알아보았다. 한국의 역대 선거에서 북한이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은 예는 한 번도 없었다. 언제나 독재 세력은 북한의 남침 위협을 내세워 표를 얻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었다. 북한과 테러가 결합하여 선거에 영향을 미친 가장 극명한 사례는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이 삼파전을 벌인 1987년의 대통령 선거였다.

선거 2주 전인 1987년 11월 29일, 북한에 대해 호의적인 김대중 후보와 독재정권의 후계자 노태우 후보는 같은 시간대에 매우 중요한 유세를 하고 있었다. 김대중은 서울 여의도에서 대규모 유세 중이었고 노태우는 김대중의 텃밭인 광주에서 집회를 가지고 있었다.

그 날 오후 2시 5분 한국의 신문들은 일제히 호외를 발행했다. 그것은 선거와 관련된 기사가 아니었다.

- 115명 탄 KAL기 폭파 추락 -

이 비극적 사건으로 국민들은 충격과 슬픔에 휩싸였고 달아오르던 선거 열기는 싸늘히 식어버렸다. 이어서 신문들은 민간 항공기에 대한 테러가 북한에 의해 저질러졌다는 수사 결과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12월 16일 치러진 선거에서 노태우는 36%, 김영삼은 28%, 김대중은 27%의 득표를 기록했다. 그리고 여론조사에서 3~5%의 지지를 보이던 김종필에게 8%의 유권자가 표를 주었다.

정부의 수사 결과 발표에도 불구하고 사건에 대해 대립되는 주장이 여전히 맞서고 있었다. 이른바 북풍(선거에서의 북한 변수)을 일으켜 선거에서 이기기 위한 안기부의 조작이었다는 설과 당국의 발표대로 대통령 선거 기간이라는 예민한 시기에 남한 사회를 혼란에 빠뜨려 88올림픽을 무산시키려는 북한의 만행이었다는 두 가지 설이었다.

조수경은 김인철에게 전화했다.

"네, 선배님. 커피 빼 가지고 갈까요?"
"그럴 필요는 없고 오늘은 잠깐만 보았으면 하는데."

불과 1분도 안 되어 김인철의 노크 소리가 들렸다.

"어서 와 김 경위."
"선배님을 뵈면 나는 기분이 좋아집니다. 제 여자 친구와 반대입니다."

조수경은 김인철에게 연구거리를 맡길 생각이었다. 김인철은 현실 생활이나 여자문제 등은 무지하다고 할 정도로 순진했다. 그러나 역사나 정치에서는 조수경을 압도했다. 조수경은 그런 점이 하나의 미스터리처럼 여겨질 때가 있었다. 미시적인 세계에는 어린아이보다 미숙하면서 거시적인 세계에는 날카로운 안목을 가지고 있는 김인철의 불균형을 조수경은 쉽사리 납득할 수 없었다.

"선배님, 프로파일 완성을 축하드립니다."
"김 경위, 혹시 '북풍'이라는 말 들어 봤어?"
"배운 사람이 그걸 모를 리가 있겠습니까?"
"그렇게 되는 거야?"

"바람은 바람인데 반공 냉전 바람이지요."
"잘 아는군,"
"선배님은 모르셨다는 것처럼 말씀하시네요?"
"응, 사실은 잘 몰랐어."

조수경은 후배에게 조금 부끄러웠다. 김인철은 조수경의 책상에 놓인 자료를 힐끗 보았다.

"선배님, 지금 읽고 있는 자료가 북풍과 관련되는 것이네요?"
"사실은 그것 때문에 보자고 했어. 북풍이라는 것에 대해 연구를 더 해 줘. 내일 내가 저녁 살게."
#프로파일링 #북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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