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고사 해직교사들, 거리에서 배웁니다

[일제고사 폐지 해직교사 복직 전국대장정] 둘째날을 마치며..

등록 2009.10.07 09:58수정 2009.10.07 09:59
0
원고료로 응원
전국 대장정 이틀째(6일), 열네 명의 일제고사 관련 해직교사들은 목포에서 출발해서 한국 민주주의의 성지 빛고을 광주에 와 있습니다. 새벽부터 저녁 늦게까지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저녁에 숙소에 들어와서는 정리모임 갖고 각자 숙소 컴퓨터 앞에 앉아 오늘 소식 여기저기에 알리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이 사흘째 밤인데 오늘을 넘겨야 잠자리에 들 수 있지않을까 싶습니다.

 

a  일제고사 폐지 해직교사 복직 전국대장정- 울산

일제고사 폐지 해직교사 복직 전국대장정- 울산 ⓒ 정상용

일제고사 폐지 해직교사 복직 전국대장정- 울산 ⓒ 정상용

잠시 전 전교조 게시판에 들어갔다가 곁눈질한 글이 한동안 눈앞에 아른거려 일이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 우리 해직교사들이야 거리에서 국민들을 상대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맘대로 할 수 있지만 일제고사 때문에 제자들 가슴에 피멍이 드는 걸 곁에서 지켜봐야 하는 학교현장에 계시는 선생님들의 심경은 어떨까? 어쩌면 교단을 떠나 거리에 나앉아 있는 우리들이 행복한지도 모르겠습니다. 

 

거리에서 시민들을 만나면서 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할 때 듣지 못했던 생생한 학교현장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습니다. 공부 못하는 것이 무슨 큰 잘못이라고 학교에서 내동댕이쳐지고 갈 곳이 없어 빙빙 떠돌다 망가진 아이들, 자신의 미래에 대한 꿈을 꾸어보기도 전에 절망부터 배워서는 부모와 학교의 관심에서 사라진 이 아이들, 특목고와 자사고, 거기에 더해 기숙형 학교. 하루 종일도 모자라 밤잠 재우지 않고 철창 속에 가두어 우리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a  일제고사 폐지 해직교사 복직 전국대장정- 부산

일제고사 폐지 해직교사 복직 전국대장정- 부산 ⓒ 정상용

일제고사 폐지 해직교사 복직 전국대장정- 부산 ⓒ 정상용

울산에서 기숙형 중학교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울산지역에 기숙형 중학교가 내년에 개교하는데 100명 모집 예정인데 입학설명회에 학부모 1000명이 몰렸다는 소식입니다.

 

저도 중학교 1학년인 딸아이를 키우고 있습니다. 옛날에는 먹고 살 길이 막막해서 입 하나 덜고자 딸자식을 일찍 시집보냈다고 하더군요. 차마 굶겨 죽일 수 없어 금쪽같은 자식을 떠나보내는 모습이야 아름다울 수는 없지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무엇이 그리 절실하길래 아직 독립시키기에는 미숙하기만 한 자식을 내치는 것일까요?

  

어제 동해에서 오신 선생님의 아이가 추석연휴 앞두고 숙제로 시험지 스무 장을 받아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참 희한한 일도 다 있다 싶어 그 이야기를 카페에 올렸더니 놀랍게도 댓글이 열 댓 개나 달렸더군요. 그 학교만의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그런 어처구니없는 숙제를 내 준 선생님은 추석연휴에 부모님도 찾아 뵙고 친척들도 만나겠지요?  같이 어울려 술도 한잔 하고 분위기 무르익으면 어울려서 노래방도 갈 것입니다.

 

또 다른 학교에서는 10월 일제고사를 앞두고 점심시간에 아이들이 운동장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했답니다. 점심시간에 아이들을 교실에 붙잡아두고 시험문제를 풀도록 하려는 조치이지요. 참 피눈물 나는 노력입니다. 그러나 과연 학생들의 성장을 위한 교육적인 배려일까 생각해보면 씁쓸한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일제고사 결과로 학교장과 교사를 평가하겠다는 교육부의 의지가 100% 반영된 현상입니다.

 

이것뿐만 아닙니다. 어떤 학교에서는  10월 일제고사를 보는 과목에 해당되지 않는 예체능과목은 일제고사 시험을 치른 다음에 가르치라고 했답니다. 이쯤 되면 교육과정을 완전히 무시하는 거의 학생의 교육권을 박탈하는 범죄 행위 수준입니다.  

 

제가 학교를 떠나있던 지난 1년 동안 많은 것이 변했습니다. 따뜻한 보살핌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학교에서는 교사가 가정에서는 부모가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아이들을 학대하고 벼랑끝으로 내몰았습니다.  이게 다 이명박 정부 들어 일방적으로 시행되고 있는 일제고사 때문에 벌어지고 있는 일들입니다.

 

이 늦은 시간까지 잠 못들게 한 문제의 선생님 글입니다.

 

저는 **지부  **지회  아무개입니다.

오늘에야 10/10교사대회 일정을 보았습니다.

언제나처럼  지방에서 이른 아침,  버스타고 서울가서  집회장에 앉아, 구호 외치고

결의문 낭독하고 밤늦게 내려오면 저녁 뉴스에 우리 소식이 한 컷이라도  나왔는지

가족에게 물어보고 잠자리에 듭니다.

제발 본대회 짧게 하고 경쟁교육의 산실인 청와대로 행진합시다.

가다가 막히면 연좌하고 연행당하면 끌려가고.....

우리 학교 학생들이  일제고사 준비 땜에 추석연휴에도 강제로 나와서 저에게 그럽디다.

샘...학교가 왜 이래요? 모두 미친 것 같아요.

우리 학교 교감이 저에게 그래요.

청와대 앞에 가서 따지라고.....

(이하생략) 

 

일제고사의 문제점을 알리러 전국대장정을 나선 지 사흘째입니다. 내일도 오전에 전라북도 교육청에서 기자회견이 있고 오후에는 동서로 가로질러 대구로 가서 대구시민들을 만납니다. 백번을 생각해봐도 일제고사는 절대 안됩니다. 우리 열네 명의 해직교사가 집 떠나서 전국을 돌며 시민들을 만나는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2009.10.07 09:58ⓒ 2009 OhmyNews
#일제고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일제고사 학부모학생의 자기결정권을 주었다는 이유로 해직된 해직교사입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하루가 지옥" 주차장에 갇힌 주택 2채, 아직도 '우째 이런일이' "하루가 지옥" 주차장에 갇힌 주택 2채, 아직도 '우째 이런일이'
  2. 2 체코 대통령, 윤 대통령 앞에서 "최종계약서 체결 전엔 확실한 게 없다" 체코 대통령, 윤 대통령 앞에서 "최종계약서 체결 전엔 확실한 게 없다"
  3. 3 억대 연봉이지만 번아웃 "죽을 것 같았다"... 그가 선택한 길 억대 연봉이지만 번아웃 "죽을 것 같았다"... 그가 선택한 길
  4. 4 알고도 대책 없는 윤 정부... 한국에 유례 없는 위기 온다 알고도 대책 없는 윤 정부... 한국에 유례 없는 위기 온다
  5. 5 맥주는 왜 유리잔에 마실까? 놀라운 이유 맥주는 왜 유리잔에 마실까? 놀라운 이유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