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성산 백두산과 조선족 자치주를 가다

백두산 종주 산행기

등록 2009.10.08 09:18수정 2009.10.08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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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27일부터 6월 30일까지 3박 4일간 나를 포함한 산악회원 일행 18명과 함께 백두산 종주여행을 다녀 왔습니다.

여정은 다음과 같은 일정으로 진행했습니다.


우리 민족의 성산이자 유구한 역사의 자취와 그 역사 속에서 생겨난 신비의 영산을 가는데 어찌하여 우리땅인 북한을 경유해 가지 못하고 먼길을 돌아 그곳으로 가야만 했는지 또 그곳 백두산 절반을 중국이 차지하고서는 장백산이라고 부르고 있는지 통한의 아픔과 아쉬움을 느꼈었습니다.

언젠가 통일이 되어 북한을 통해 백두산에 다시 가 볼 수 있을는지요.

천지에 오르기 위한 1236 계단 저 위까지 계단을 걸어 올라야 천지를 만날 수 있다.
천지에 오르기 위한 1236 계단저 위까지 계단을 걸어 올라야 천지를 만날 수 있다.이광희

첫날 6월 27일 

분당을 출발하여 인천공항에서 아시아나 OZ 303편으로 장춘으로 향했고, 두 시간여 비행 한 끝에 길림성 장춘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입국시 신종 플루로 인해 입국 검역 절차가 무척이나 까다로왔습니다.


장춘공항 내에서 북한식 한국말을 하는 28세의 젊은 조선족 3세 현지 가이드 박경파씨를 만나 조우한 후 그의 안내로 일정을 시작해 버스편으로 5시간여에 걸쳐 백두산 서파 산문 인근 송강하로 이동했지요.

박경파씨의 조부는 고향이 경기도 용인이라 하더군요.


그를 통해서 우리민족이 간도 땅으로 이주해간 이민사의 한 단면을 느끼게 했습니다.

버스가 옥수수 밭이 드넓게 펼쳐진 길을 달려 송강하로 이동하는 도중에 송강하에 이르러 우리 일행은 송화강을 만나기도 했고.

송강하에서는 저녁 식사를 한 후 장백산 휴일 호텔에서 하루 밤을 머물렀지요.

계단을 걸어 올라 드디어 만난 천지의 장엄한 모습 난생 처음 만난 천지의 모습은 장엄 그대로였다.
계단을 걸어 올라 드디어 만난 천지의 장엄한 모습난생 처음 만난 천지의 모습은 장엄 그대로였다.이광희


트래킹 도중 천지를 배경으로 한 필자의 모습 트래킹 도중 천지를 배경으로 기념을 남겼다.
트래킹 도중 천지를 배경으로 한 필자의 모습트래킹 도중 천지를 배경으로 기념을 남겼다.이광희

둘째날 6월 28일 

아침 식사를 한 후 장백산 보호소의 중국인 산행 가이드 그리고 박경파 씨와 함께 금강 대협곡의 서파 산문으로 이동했지요.

버스가 이동하는 동안 자작나무 숲을 지나며 우리는 점점 백두산 고원으로 들어감을 실감했지요.

서파산문을 통과해 산문내 셔틀 버스를 타고 점점 고도를 높이며 이동하여 해발 2470 미터 주차장에 이르러 1236개 계단을 걸어 올라가 드디어 중국-북한과의 경계 표시인 5호경계비에 이르러 천지와 조우했었지요.

천지는 구름이 약간 낀 맑은 날씨 속에서 마치 우리를 반기는 듯 고요한 가운데 우리를 향해 활짝 그 모습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천지를 만난 것은 내게는 난생 처음이었지요.

천지와 조우한 순간 그 기막힌 모습에 말문이 턱 막히고 숙연한 마음이 절로 들었지요.

천지 앞에서 난 무릇 창조주의 위대함과 신비감에 흠뻑 젖었었습니다.

우리 일행은 이곳 5호경계비를 출발해 산안개, 구름, 바람과 비등 변화무쌍한 날씨를 뚫고 산을 오르락 내리락하며 천지를 오른쪽으로 바라다보며 청석봉-백운봉-녹명봉-차일봉-용운봉-옥벽폭포-장백폭포를 내려다 보며 지나는 트래킹을 무려 7시간 30분간을 숨 가쁘고도 힘겹게 또 즐겁게 때론 탄성을 발하며 했었습니다.

천지를 바라보며 걷는 트래킹을 시작하는 모습 맨 앞에 가는 이가 조선족 젊은 가이드인 박경파 씨이다.
천지를 바라보며 걷는 트래킹을 시작하는 모습맨 앞에 가는 이가 조선족 젊은 가이드인 박경파 씨이다.이광희

변화 무쌍한 백두산의 모습 트래킹을 하는 동안 백두산은 돌연 구름에 휩싸이는 등 변화 무쌍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었다.
변화 무쌍한 백두산의 모습트래킹을 하는 동안 백두산은 돌연 구름에 휩싸이는 등 변화 무쌍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었다.이광희

천지는 고요한 채 그대로인데 천지를 둘러싸고는 날씨는 안개와 구름을 번갈아가며 천지를 가렸다 열었다를 반복하며 조화를 부리는 것이었습니다.

장백폭포를 지나 소천지로 내려 오는 경사진 하산길에서 우리는 갑작스레 쏟아지는 장대비를 만나 흠뻑 젖기도 했지요.

비를 맞으며 하산하여 장백폭포 아래에 위치한 노천의 유황 온천탕에 들려 더운 온천물에 몸을 담그니 등반의 피로와 비를 맞은 한기가 싸악 가시는 것이었습니다.

목욕을 마친 후 몇 일행과 더불어 맥주로 갈증을 푼 후 인근 장백폭포 아래 해발 1950미터에 위치한 대종 대우호텔에서 저녁을 먹고는 하루의 피로를 쉬었지요.

그곳에서 들은 안타까운 소식은 중국 측 정책에 따라 그곳 장백산 아래 조선족이 운영하는 모든 숙박 업소는 곧 철수를 할 예정이라 하더군요.

이미 일부 업소는 문을 닫은 상태이고.

위에서 내려다본 장백폭포 북파산문 방향으로 내려오다 만난 장백폭포의 모습
위에서 내려다본 장백폭포북파산문 방향으로 내려오다 만난 장백폭포의 모습이광희

세쨋 날 6월 29일 

호텔에서 아침 일찍 식사를 마친 후 맑은 날씨하에 우리는 코란도와 거의 같은 모습의 6인승 지프에 나눠 타고 꾸불꾸불 갈지자로 이어진 산길을 20분 정도 힘겹게 달려 올라 해발 2692미터의 천문봉 주차장에 올랐습니다.

주차장에 오르니 맑던 날씨는 어느새 사라지고 산안개 구름이 짙게 끼여 있었습니다. 주차장에서 약 10분 동안 정상으로 걸어 올라가니 천지는 구름에 모습을 가리우고 있었습니다.

허나 짧은 순간인 불과 1분여간 돌연히 구름이 걷히더니 천지가 모습을 보이다가 다시 구름으로 가리우며 사라지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그 순간 절로 탄성을 발했었습니다.

그곳 천문봉에서 기념 사진을 찍은 후 내려온 우리 일행은 북파 산문을 향해 산문 내 셔틀 버스로 이동해 가 북파 산문에서 기념 사진을 찍은 후 우리의 다음 목적지인 연변 조선족 자치주의 용정으로 향했습니다.

백두산 산행의 관문인 북파산문 전경 서파산문으로 올라 트래킹을 마친 후 북파산문으로 해서 백두산 종주를 마쳤다.
백두산 산행의 관문인 북파산문 전경서파산문으로 올라 트래킹을 마친 후 북파산문으로 해서 백두산 종주를 마쳤다.이광희

용정으로 향하던 도중 가이드의 안내로 조선족이 운영하는 양봉 판매장과 기념품을 파는 휴게소 및 휴게소 뒷산의 장뇌삼 재배 기지에 들른 후 북한이 운영하는 북한 물품 전시 판매장에 들리기도 했습니다.

버스가 용정에 가까워 지는 동안 차창 밖으로 내다 보니 반갑게도 한글과 한자가 함께 표기된 거리의 간판들이 그 모습을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해서 아 이곳이 과연 조선족 자치주인 연변이구나 하고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용정에서는 해란강을 건너 용정 시내에 있는 민족시인 윤동주 시인과 문익환 목사의 모교인 대성중학에 들러 학교에 대한 설명을 듣고 교정을 거닐어 보기도 했고 또 기념 사진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용정 대성중학교 교정의 윤동주 시비 민족 시인 윤동주 시인의 시비를 접하는 순간 숙연한 생각이 들었다.
용정 대성중학교 교정의 윤동주 시비민족 시인 윤동주 시인의 시비를 접하는 순간 숙연한 생각이 들었다.이광희

대성중학은 윤동주 시인, 문익환 목사를 위시해 수많은 애국 지사를 배출한 그야말로 연변 명문 민족 학교였습니다.

우리 일행은 용정을 출발해 그곳을 뒤로하고 두만강 변 도문으로 버스를 달렸습니다.

버스가 두만강가에 이르러 좁은 강폭의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바로 눈 앞으로 건너다  보이는 강건너 북한땅을 바라다보며 안타까움에 젖기도 했습니다.

어찌하여 내나라 내 영토를 남의 나라 중국 변방에서 바라다 봐야만 하는지.

도문에 도착하여 두만강 변 조-중 국경에 이르러 북한 땅을 바라보며 내내 같은 생각이었습니다.

도문의 두만강 변 중국과 북한의 변경비 앞 모습 두만강 건너 북한이 지척에 있었다.
도문의 두만강 변 중국과 북한의 변경비 앞 모습두만강 건너 북한이 지척에 있었다.이광희

두만강을 연결한 다리 위로는 간간이 물자를 실은 트럭들이 오가고 있었습니다.

통일은 언제 될는지.

과연 우리 생전에 통일은 될 수 있을는지.

왜 서로 오가지 못 한 채 이 먼 중국을 돌아 이곳에 와 저곳 우리땅을 바라다 봐야만 하는지.

안타깝고 안타깝도다.

잠시나마 회한에 젖었었습니다.

버스는 다시 연변 조선족 자치주의 연길을 향해 달립니다.

지난 역사가 생각 납니다.

일제치하에서 강제로 이곳으로 이주해 와 갖은 역경을 견디며 자치주를 일궈낸 우리 민족의 슬프고도 끈질긴 이민사가 이곳에 오롯이 남아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슬픔의 역사가 어린 연길에 도착해 저녁 식사를 한 후 우리는 연길역 바로 인근에 위치한 대주 호텔에서 하루 밤을 머물렀습니다.

연길에서의 마지막 밤은 그렇게 깊어 갔고.

마지막 날 6월 30일

아침 일찍 연길을 출발해 원래는 우리의 영토였을 소위 북만주 벌판 혹은 북간도 땅을 버스로 달려 달려 다시 장춘 공항으로 5시간을 이동해 가 공항에 도착 한 우리는 우리와 3박 4일 내내 함께한 박경파씨와 아쉬운 이별을 하고는 출국 수속을 마친 후 공항 내 탑승구 앞에서 출발을 기다렸습니다.

출발을 기다리는 동안 우리를 태우고 갈 아시아나 OZ 304가 도착하여 신종 플루 검역과정을 거치는 동안 의심 환자가 발생해 의심환자는 앰뷸런스에 다른 탑승객은 공항 내 셔틀 버스에 태우고 정밀 검사를 위해 떠나는 모습을 탑승구 앞 창유리를 통해 바라보기도 했습니다.

때문에 비행기는 1시간 정도 지연하다가 공항을 이륙하여 중국을 떠나 인천 공항으로 향했습니다.

비행기는 흰 뭉게 구름 위를  날아 1시간 45분간 비행 후 무사히 흐려 있는 인천 공항에 도착, 귀국 할 수 있었지요.

이번 여정은 민족의 영산 백두산을 비록 중국 쪽으로나마 가서는 백두산 천지 주변를 바라보며 무려 7시간 30분 가량을 내발로 직접 걸으며 조국과 역사와 삶을 또 자연의 위대함을 생각 해 볼 수 있었슴에 그의미가 있었던 좋은 여행이라 느껴졌으며 아울러 함께한 일행들과 더불어 즐거운 가운데 끈끈 함을 느낄 수 있어 좋은 여행이었다고 생각 됩니다.

여정을 함께했던 일행 여러분께 감사를 드립니다.

(2009년 7월 3일 씀)

- 백두산에 올라서 - 

과연

이 곳에 오기를 잘했다

언제 어느때 이토록 절절히

우리 민족의 시원을

그려 볼 수 있겠는가

천지는 고요한 가운데

말이 없다

다만 천지를 둘러싸고

하늘과 구름이

바람과 비가

조화를 부리고 있을 뿐

백두를 걷는다

구름속을 걷는다

구름 위를 걷는다

그리고

천지를 바라다 본다

백두를 바라다 본다

역사여

유구한 세월이 이루어낸

천지의 조화여

그리고 자연의 신비여

겨우 그정도 만이

내 뇌리를 맴돌 뿐

자연은 자연이고

세월은 세월이고

역사는 역사 이련가

돌연

바람이 분다

구름이 산정을 휩싸 안는다

그리고

그 속을 또 걷는다

천지를 바라다 보며

- 도문의 두만강변에 서서- 

그래

저 곳이 정녕 갈 수 없는

우리의 땅이련가

어찌하여

내나라 내 강토라 하면서도

먼 곳을 돌아돌아

이곳 중국의 변방에 서서

저 곳 우리땅을

바라 봐야만 하는가

바로 지척인데

북한이라 부르며

갈 수 없는 곳이라니

누구를 탓하랴

누구를 원망하랴

결국은 우리 모두의

책임인 것을

목청껏 외치고 싶다

그대들이여

우리의 형제들이여

만나고 싶다고

힘껏 얼싸안고 싶다고

그래도 여전히

다리 아래로

강물은 흐른다

하늘에는


흰 구름이 떠 가고
#지구촌 나그네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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