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인 나, 군말 없이 빨래 개는 이유

빨래 개는 건 가족과 또 다른 만남... 닳아 해진 아내 속옷 보니 너무 안쓰러워

등록 2009.10.13 20:58수정 2009.10.14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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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 후 마른 옷가지를 누군가 개야 합니다. ⓒ 임현철


남녀의 경계가 무너진 지 오래 되었습니다. 이런 세태 때문인지 힘든 일을 마다 않는 여성, 꺼리던 가사 일을 함께하는 남성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저희 집도 예외는 아니지요.


때로 야근하고 늦게 들어온 아내는 "걷어놓은 채 널브러진 빨래를 보면 '내가 개야지' 이런 생각 안 들었어요?"라고 잔소리 할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땐 꿈쩍하기 싫을 때지요. 그렇지만 대개 스스로 하는 편입니다.

혹, 빨래 개는 남편에 대해 '남자 망신 다 시킨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 군말 없이 빨래를 개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건 가족과 또 다른 만남이기 때문입니다. 너무 거창한가요?

닳아 해진 아내 속옷 보니 너무 안쓰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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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를 개면서 종류별로 나눠야 농에 넣기 편합니다. ⓒ 임현철


지난 일요일, 빨래를 갰습니다. 빨래도 개는 요령이 필요하더군요. 취향에 따라 다릅니다. 제 경우, 바지는 크기에 따라 한 번이나 두 번 접고, 상의는 양 어깨선을 잡고 반으로 접은 다음 한 번을 더 접습니다.

양말은 목을 서로 끼웁니다. 그래야 따로 돌아다니지 않더군요. 팬티는 그냥 넓게 펼치고, 러닝은 반으로 두 번 접습니다. 수건은 반으로 2회 접은 다음 3등분으로 접습니다. 이깟 빨래 개는 것과 가족과의 만남이 무슨 상관이냐고요?


다름 아닌 옷을 보고 가족의 애로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내 속옷은 닮아 해지고 고무줄이 늘어진 경우가 많습니다. 이걸 보면 안쓰러워 "속옷 좀 사다 줘야겠구나"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역시나 한 번도 사다 준 적이 없습니다. 대신 "속옷 좀 사소"란 말을 건넵니다. 물론 아내도 자신에게 하는 투자를 미룹니다. 하지만 부부지간 이런 말 자체가 서로에 대한 관심 표현이지 않을까요?

"이거 누구 양말? 누가 뒤집어 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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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말을 보면 생활습관이나 노는 상태를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지요. ⓒ 임현철


아이들은 양말 상태를 보고 생활습관이라든지 노는 상태 파악이 가능합니다. 양말은 뒤집어져 있기 일쑤입니다. 한 마디 해야지, 가만있을 수 있나요.

"이거 누구 양말? 누가 뒤집어 놨을까? 뒤집어진 채로 개서 넣을까?"
"아빠 제가 개서 넣을 게요."

그러다 함께 빨래를 개게 됩니다. 자연스레 대화가 가능합니다. 딸과는 달리 아들 녀석 양말은 바닥이 더럽습니다. 열심히 뛰어 놀았던 흔적입니다. 그걸 보면 '별 탈 없이 건강하게 크고 있군!' 생각합니다. 아이들 양말이 구멍 났을 경우와 속옷이 닳아 해졌을 때는 새로 살 계획을 세웁니다.

늘 접하는 일상이지만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일이 많습니다. 남자인 제가 빨래를 개는 이유는 가족 구성원에 대해 또 다른 측면에서 이해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이야기가 너무 싱거웠나요?

덧붙이는 글 | 제 블러그와 U포터에도 올립니다.


덧붙이는 글 제 블러그와 U포터에도 올립니다.
#빨래 개기 #양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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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힐 수 있는 우리네 세상살이의 소소한 이야기와 목소리를 통해 삶의 향기와 방향을 찾았으면... 현재 소셜 디자이너 대표 및 프리랜서로 자유롭고 아름다운 '삶 여행'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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