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누구나 상원의원이 될 수 있다면...

권력중심사회에서 역할중심사회로 가는 첫 걸음, 시민의원제

등록 2009.10.14 15:21수정 2009.10.14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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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얼마 전 초등학교 6학년인 막내 딸아이와 나누었던 이야기를 먼저 하고자 합니다. 딸 아이는 외계인이 지구를 침략하는 영화를 보고 있었습니다. 케이블 TV에서 방영하는 <인디펜던스 데이>를 보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외계인들은 실제 인류를 멸망시키려 할까?

"아빠, 영화에서 보면 외계인들은 왜 지구를 침략해서 인류를 멸망시키려고 해요?"
"그것은 아마도 인류가 다른 외계를 발견한다면 그렇게 할 것이기 때문이지. 300년 전쯤에 유럽 사람들이 신대륙 아메리카를 발견하고 거기 사는 사람들을 거의 다 멸종시켰걸랑."

"아빠, 그러면 정말로 외계인들이 지구로 오면 인류를 멸망시키려 전쟁을 할까요?"
"아빠 생각에는 그렇지는 않을 것 같은데…."

"왜요?"
"음… 왜냐하면 외계인이 지구를 방문할 정도라면, 지금의 인류로서는 도저히 상상하지 못하는 과학기술문명을 가졌다는 이야기이고, 그것은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사용한다는 이야기이기도 하지. 그런데 그런 엄청난 에너지를 가지고도 멸망하지 않고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은 역으로 말하면 에너지를 싸움에 쓰지는 않았다는 방증이기도 하지. 그 에너지를 싸움에 썼다면 그들 스스로 벌써 멸망했을 테니까."

"이해가 잘 안 가요?"
"우리 인류가 가지고 있는 에너지 중에서 가장 큰 힘을 발휘하는 에너지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니?"

"원자력 에너지요."
"그래, 맞아. 그 원자력 에너지로 원자력 발전소를 만들기도 하지만, 원자폭탄이나, 수소폭탄을 만들기도 하지. 북한이 얼마 전 핵실험을 했다고 미국을 비롯해서 세계가 마구 비난을 하고 제재를 하고 있잖아. 이미 수천 기의 핵폭탄을 가지고 있는 미국이 이제 겨우 핵실험을 하고 있는 나라에 엄청난 신경을 쓰는 것은, 핵폭탄은 개수가 문제가 아니라 그것이 단 한 기라도 터져서는 안 되기 때문이야. 그것이 꼭 미국에서가 아니라 설령 북한 땅에서 터진다 해도, 최소한 우리 한반도는 적어도 수십 년간은 죽음의 땅으로 돌변하고 말게 되지. 그런데 그런 핵폭탄이 지금의 과학 수준으로 본다면 그리 만들기 어려운 것이 아니야. 그러면 과연 인류는 이미 만들어 놓은 핵폭탄을 쓰지 않고 파기할 수 있게 될까? 아니면 결국 사용하게 되어서 그것이 인류의 멸망으로 이어지게 될까?"


"글쎄요."
"아빠 생각에는 인류는 지금 갈림길에 서 있다고 생각해. 지금까지 인류의 문명을 발전시켰던 원동력은 전쟁이었걸랑. 인류는 자신과 집단의 생존이 걸려 있는 전쟁을 통하여 인류의 문명을 초고속으로 발전시키게 되지. 역사책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지. 전쟁이 일어나면 일단은 그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하여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선택할 수밖에 없게 되지. 그런데 이제 인류의 힘이 너무 커진 거야.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과 같은 후진국과의 전쟁이 아니라 핵폭탄을 가진 나라끼리 전면전에 일어나게 되면 아무도 인류의 미래를 장담할 수 없게 되는 것이지."

"자 이제 처음에 질문했던 답을 추측해 볼까? 외계인이 지구에 왔다는 것은 그들이 싸움의 문명을 벗어나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어울려 사는 어울림의 문명을 가지고 있다는 뜻도 되는 것이지. 우리 인류는 아직도 싸움의 문명에서 벗어나지 못해서 다른 생명을 보면 싸워서 정복하고 싶은 욕심부터 생기는 것이지. 그것이 외계인이 지구를 쳐들어온다면, 인류를 멸망시키고 지구를 정복할 것이라는 상상으로 발전한 것이고, 그것이 우주 공상 영화로 만들어지는 것이야."


현정부의 개헌 움직임을 걱정하는 까닭

a  지난 9월 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정기국회 개회식에서 민주당 의원들이 한나라당의 미디어법 강행 처리에 항의하는 피켓 시위를 벌인 뒤 일제히 본회의장을 퇴장하여 민주당 의원들의 자리가 텅 비어 있다.

지난 9월 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정기국회 개회식에서 민주당 의원들이 한나라당의 미디어법 강행 처리에 항의하는 피켓 시위를 벌인 뒤 일제히 본회의장을 퇴장하여 민주당 의원들의 자리가 텅 비어 있다. ⓒ 유성호


이미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개헌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번 10월 보선이 끝나고 미디어법이 어떻게든 마무리가 되면 정부는 개헌을 본격화할 것으로 보입니다. 전두환 군사 독재 정권의 종식을 알리고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했던 6월 항쟁의 결과물이 지금의 대통령 5년 단임을 중심으로 한 대통령 직선제 헌법입니다. 20년이 훨씬 지났으니 시대정신에 비추어 개헌을 논의하고 헌법을 바꾸는 일은 당연한 수순으로 보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문제는 방향입니다. 이미 논의가 되고 있거나 앞으로 논의될, 행정구역 개편, 국회의원 중선거구제, 대통령과 총리의 이원집정부제, 부통령제, 내각제, 양원제 등 어떠한 제도도 그 권력을 실행하는 집권세력이 어떤 마음을 가지고 실행하느냐에 따라 서로 다른 결과를 낳게 됩니다. 즉, 가장 중요한 것은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의 문제입니다. 권력을 가진 사람이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그 권력의 지배를 받은 수많은 백성들의 삶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민주주의(民主主義)는 무엇일까요?  한자 뜻 그대로 백성이 나라의 주인, 주체가 되는 사상이라고 표현하면 그리 틀린 답은 아닐 듯합니다. 우리나라 민주주의는 흔히 대의(代議) 민주주의라 합니다. 즉, 국민을 대신할 정치인을 선거를 통하여 선출하고, 그들이 그 지역주민을 대표해서 국민의 뜻을 반영한다는 뜻입니다. 다른 모든 직책이 그렇지만 특히 국회의원이 그렇습니다.

제 생각엔 우리나라 국회의원만큼 국민에게 존경은 고사하고, 인정도 받지 못하고, 욕은 한없이 먹은 국회의원들도 드물 것입니다. 자기 의견 하나 제대로 피력하지 못하고 거수기 역할이나 하고, 파당 싸움이나 하고, 말로는 국민을 위한다고 입에 달고 살지만 온갖 비열하고 나쁜 짓은 다하고 다니는 것 같고, 그러면서도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자기들의 이익, 예를 들어 세비 올리는 일에는 참으로 잘 단합 단결하고, 선거만 끝나면 국민은 어디 있냐는 듯 자기들 욕심 채우기에 들떠 있는 듯 보입니다.

오죽하면 우스개 소리로 '국개의원'이라는 말이 돌겠습니까? 그러면서도 말로는 '국민을 위하여'를 입에 달고 사니 참으로 부끄러운 인사들이라 아니할 수 없을 것입니다. 물론 다 그렇다는 뜻은 아닙니다. 일부 극소수(?) 의원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국회의원이 한 300명쯤 되니까, 한 250명쯤, 아니면 280명쯤.  5천만 국민 중에 이 정도 인구이면 극소수로 표현하는 것이 그리 틀리지는 않겠지요.

한국의 국회의원들이 국민을 대표한다고 인정하기는 좀 어려울 듯싶습니다. 저의 작은 생각으로는 이 이유는 첫째는 '파당' 때문이고, 둘째는 '귀족 의식' 때문입니다.

저도 사회생활을 하면서 절실하게 느끼는 것이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파당'을 짓는 것을 너무 좋아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내 편과 네 편을 가르고 싶어 하는 습성이지요. 그래서 유난히 '연'을 많이 따지는 국민이기도 합니다. 지역, 학교, 가문, 종교 등등등.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같은 편으로 만들려 합니다. 그래서 같은 편이 아니면 적이 되는 것이지요. 솔직히 우리나라 국회의원들, 국민을 대변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자기 당을 대변하는 것이  맞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조선시대 때에도 결국 파당으로 나라 다 말아먹었는데 그 습성은 지금도 많이 남아 있는 듯합니다.

둘째로 우리나라 국회의원들이 그 선출 과정을 보면 국민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서민'을 대표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지금 국회의원 선출방식으로는 도저히 서민이 국회의원이 될 수는 없는 까닭입니다. 국민을 대표한다는 뜻만 가지고 국회의원이 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국회의원에 나가려면 대체적으로 특정당의 공천을 받아야 되는 것은 기본이고, 특정 지역에서 특정 정당의 공천이 곧 당선이라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또한 상당한 재력과 세력이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전제 조건 자체가 이미 국회의원은 예전이라면 '귀족'이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의원제를 처음 시작한 영국에서는 왕과 귀족의 권력에 대항하기 위하여 시민의 대표인 '의원'이 필요하였습니다. 그러나 왕과 귀족이 없어진 지금, 그 자리를 '의원'들이 대신하고 있는 꼴이 되었습니다.

여기 두 방향이 있습니다. 하나는 권력을 집중시키려는 방향이고, 다른 하나는 권력을 분산시키려는 방향입니다. 권력을 집중시키면 높은 효율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조금 다른 문제이기 하지만 자본 권력이 집중되고 있는 이유도 큰 자본이 적은 자본에 비하여 효율성이 높은 까닭입니다. 이것을 그림으로 표현하자면 동그란 풍선을 위아래로 잡아당기는 것과 같습니다. 길쭉해진 풍선의 길이만큼 수많은 높낮이기 형성됩니다. '권력중심사회'의 그림 모델입니다. 이것은 피권력자들의 소외를 뜻하게 됨과 동시에 높은 권력으로 올라가기 위한 피나는 내부 경쟁을 의미합니다. 외부적으로는 국가, 민족, 종교 간의 피할 수 없는 전쟁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효율성은 이 제도의 큰 장점이고 지금까지 인류는 이것에 의하여 발전하여 왔습니다.

이제 동그란 풍선을 옆으로 당겨보겠습니다. 위와 아래의 폭이 상당이 줄어들었고, 대신 옆으로 넓어졌습니다. 이것은 우리 인류가 지향하여야 할 '역할 중심 사회'의 그림 모델입니다. 이 모델에서는 내가 우리 사회에서 어떠한 역할을 맡고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지, 내가 얼마나 높이 있느냐는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 사회에선 높다는 것이 그리 큰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더 유리한 것도 없습니다. 그러하기 때문에 굳이 위로 올라가려 하지 않습니다. 특히, 지도자의 그릇이 아닌 사람이 그 자리를 탐낼 필요도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지도자의 그릇이 되는 사람이 자연스럽게 우리 사회를 이끌어가게 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리더'를 잘 만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가정에서 가장의 위치, 회사에서 사장의 위치, 모임에서 회장의 위치, 나라에서 최고 지도자의 위치는 그 조직의 흥망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리더의 그릇이 되지 않는 사람이 온갖 편법과 파당과 권모술수를 이용하여 리더가 된다면 참으로 그 사회와 그 구성원은 불행해질 것입니다. 역할중심사회의 장점은 다양성입니다. 다양성은 창의를 낳습니다. 이 사회에서는 서로 싸워서 남의 것을 빼앗는 것보다, 서로 협력해서 보다 많은 부가가치를 창조하는 것이 더 유리해집니다. 이것이 21세기 미래 사회의 기본 모델입니다.

21세기 인류에게 놓여진 세 가지 숙제가 '가족', '환경', '지구 공동체'라고 합니다.

국민 직접 참여 가능한 '시민의원제' 도입해야

이 숙제를 풀기 위하여 우리는 역할 중심 사회로 전환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경쟁을 통하여 위로 오르려고 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역할을 통하여 행복을 추구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그것이 이번 개헌 논의에 포함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것은 권력 구조 개편의 방향입니다.

국민이 직접 정치에 참여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앞에서 말했지만 지금의 국회의원 제도는 국민 대중인 서민을 대표할 수 없습니다. 양원제의 이야기가 들리는 듯합니다. 상원은 원래 귀족의 대표입니다. 지금 지역구를 몇 개 묶어서 소수의 큰 의원을 만드는 것은 사실상 의미가 없습니다. 귀족 국회의원에 다음 대권 후보자인 특수 귀족을 만드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닐 듯싶습니다. 어차피 그들 또한 파당을 가질 것인데 그것이 우리나라 정치 발전에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리하여 저는 생각을 달리하고자 합니다. 상원을 만들되 '선거'의 방식이 아니라,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추첨'의 방식을 선택하였으면 합니다.

당에 의한 정치집단도 분명히 필요한 것이고, 그 또 당이 국민을 위해 법을 만들고, 행정부를 견제해야 할 필요도 있는 것이니까, 지금의 선거에 의한 국회의원을 하원으로 하고, 하원에서 통과된 법을 재심의 의결하는 상원을 선거가 아니라 추첨에 의해서 성별, 지역별, 연령별로 나누어 뽑자는 것입니다. 임기를 6개월이나 1년 정도로 한다면 4년 국회의원 임기 동안에 4번 내지 8번 상원의원이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6개월 임기로 해서 8번이 바뀌게 된다면 한 지역구에서 남, 여로 나누고 연령은 인구 비례에 맞추어 4등급으로 나누면, 8명의 상원의원이 골고루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지역별로 서로 다르게 분포시키면 새로운 국민의 대표집단이 형성이 되는 것이지요. 우리나라 국민은 굉장히 높은 정치의 관심과 교육 수준을 갖추고 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 국회의원 수가 300명이니까, 대략 300명 정도의 시민 의원이 있다면 국민의 대표성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될 것입니다.

'헌법연구 자문위원회'라는 곳에서는 이원집정부제를 추천하고 있지만, 이것은 개헌 논의를 공론화하려는 미끼처럼 느껴집니다. 이원집정부제는 대통령과 총리가 국가의 주요 권력을 나누어 가지는 것인데, 그것이 가지는 많은 장점들에도 불구하고 저는 아직 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최고 권력을 나누어 가지고도 균형과 조화를 이룰 만큼 충분히 발전하였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를 굳이 비하할 필요는 없겠지만, 우리 스스로를 잘 알아야 실수와 실패를 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나라 국민은 참으로 파당(派黨)을 좋아하는 국민입니다.  조선시대부터 우리 정치는 파당의 정치였습니다. 그래서 '능력'보다는 '줄'이 더 중요한 나라이기도 합니다. 혈연, 지연, 학연은 내가 잡고 있는 '줄'의 다른 말입니다. 제 경험으로 보면 비단 정치뿐만 아니라 우리 서민들의 사소한 모임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정이 이런데 대통령과 총리가 서로 의견이 맞지 않아 반목한다면 그 혼란을 국민들이 어떻게 다 감당해야 하겠습니까? 대통령과 총리가 서로 다른 당이라면 참으로 볼만할 것 같습니다. 같은 당이라 하더라도 또 그 안에서 파가 갈립니다. 지금 집권당이나 야당 또한 마찬가지 아닙니까?  '친박', '친이'에 중도가 있고, '주류'와 '비주류'가 있습니다.

헌법 연구 자문 위원회에서 물론 충분히 연구도 하고 토론도 하여 결론을 내린 것이겠지만, 제가 조금 불순한 생각으로 이 의미를 풀어보자면, 현 집권당이 만약에 대통령에 실패하더라도 지역감정을 이용한 의회의 확보는 충분하니 총리 권력이라도 움켜쥐어 집권을 영구화 혹은 장기화하겠다는 생각으로 느껴집니다. 그렇지 않다면 북한과 '휴전' 상태에 있는 우리나라의 우두머리를 둘로 쪼개려는 발칙한 상상을 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장면내각이 박정희 군부에 의해 불과 1년만에 무너졌다는 것을 이 자리에서 상기시킬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당시 박정희가 이끄는 반란세력은 그리 많은 수가 아니었습니다. 미국 정보국도 쿠데타가 실패할 것이라고 예상했다고 합니다. 대부분의 군인들은 반란에 동의하지 않는 상태였습니다. 그럼에도 박정희 반란군을 진압하지 못했던 이유는 윤보선 대통령과 장면 내각으로 갈라진 우두머리의 지도력 부재이었습니다. 관망하던 다른 군인들에게 반란군을 토벌하라는 강력한 명령을 내린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참으로 부끄럽게도 장면 총리는 수도원에 숨어 기도나 하고 있었던 것으로 역사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지금의 집권 여당은 이번 개헌에서 양원제를 주장할 것 같습니다. 만약에 이것이 관철되어 우리나라에 서양식이나 일본식의 귀족 상원이 생기게 된다면 그것은 앞에 제시한 풍선 모델을 위아래로 늘리는 결과가 될 것입니다. 대권에 욕심이 있는 소수의 사람들이 상원에 도전할 것이고, 상원의원이 된 사람은 다음 대권을 꿈꾸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끊임없는 권력 싸움의 시작이 될 것입니다. 제가 조심스럽게 판단하거니와 우리나라 사람들은 편을 갈라 싸우는 것에는 아주 능숙한데, 양보하고 타협하고 화합하는 것이 참으로 어려운 민족성을 지니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의 기억으로 몇 번의 여소야대 정국이 형성되었습니다. 그 형국이 되었을 때, 정부와 국회는 끊임없이 반목하고 국정을 원만하게 이끌어 나갈 수 없는 지경이 되었습니다. 노태우 집권 때의 여소야대는 소위 삼당야합으로 결말이 났고, 노무현 대통령 초기의 여소야대의 정국은 국민의 의중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대통령 탄핵과 역풍이라는 혼란을 겪고 말았습니다. 또한 여당이 다수당이 되었을 때는 자기들의 주장을 무리해서라도 꼭 관철하려 합니다. 지금 집권당이 주도하고 있는 미디어법이 그 좋은 예가 될 것입니다. 국민의 절반 이상이 반대를 하는데도 온갖 무리수를 두어가며 기어이 관철시키려 합니다. 그것이 다음번의 싸움에서 절대 유리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정치현실에 '귀족 상원'은 맞지 않다

이런 상태에서 귀족 상원이 생기다면 지금보다 좀 더 나아질 것 같지는 않습니다. 집권당이 상하양원을 다 장악하고 있다면 집권 세력은 국민의 생각은 아랑곳없이 보다 쉽게 그들이 원하는 대로 법을 뜯어고치게 될 것이고, 상하 양원이 갈라지게 된다면 반대로 정부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저의 주장대로 상원이 '시민의원제' 형태로 된다면 하원은 상원의 눈치를 보아가며 법을 만들고, 정부 또한 상원의 감시를 받아야 할 것입니다.

'시민의원제'는 법원의 '배심원'과 같은 역할을 하게 될 것입니다. 미디어법이나 대운하(4대강 정비사업)처럼 국민의 의견에 반하는 법이나 정책을 무리해서 진행할 수가 없게 됩니다. 만약에 그것이 꼭 필요하다면 국민을 충분히 설득시켜야 가능할 것입니다. 상황이 이리 되면 지금의 국회에 해당하는 하원은 자연스럽게 협의하고 화합하는 형태의 국회로 바뀌게 될 것입니다. 싸우는 것이 유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되면 여야가 싸워서 억지로 하원을 통과된 법이 상원을 통과하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야가 토의하고 절충해서 합의된 안이라면 상원을 통과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게 됩니다. 이것은 정말 중요합니다. 이것이 제가 말씀드리려 하는 우리 사회의 방향성입니다. 싸워서 이기는 것보다, 타협하고 합의하는 것이 더 유리한 시스템으로 만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시민의원제의 가장 중요한 역할입니다.

다음 개헌에서 시민의원제가 채택된다면 국민이 정치에 대한 관심은 지대하게 높아질 것입니다. 특별한 문제가 없고 운이 좋다면 일반 서민도 언제든지 국회의원 그것도 상원의원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비록 6개월이나 1년의 짧은 임기이겠지만, 한 사람의 인생에 있어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기회이고 의미가 있는 일입니다. 시민의원으로 뽑힌 사람은 아마도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하여 자기의 짧은 임기 중에 자기 역할에 충실하고자 노력할 것입니다. 그리고 국회의 효율성이 굉장히 높아지게 됩니다. 지금처럼 등원거부를 할 필요도 없고, 몸싸움을 할 필요도 없습니다. 365일 상시 국회를 열어도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법률의 처리 속도가 굉장히 빠르게 진행될 것입니다. 국회에 계류 중인 수백 건 수천 건의 법률이 그냥 사장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시대는 비행기처럼 빨리 변해 가는데, 현재 우리 국회는 거북이처럼 느리게 기어갑니다. 

a  지난 7월 22일 국회 본회의에 상정된 미디어 관련법 개정안 표결 과정에서 여야 의원들과 국회 경위들이 충돌하고 있다.

지난 7월 22일 국회 본회의에 상정된 미디어 관련법 개정안 표결 과정에서 여야 의원들과 국회 경위들이 충돌하고 있다. ⓒ 남소연


그리고 이름뿐인 국회 윤리위를 시민의원들이 맡게 되면, 국회의원의 청렴도 또한 급신장될 것입니다. 인사 청문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의 인사 청문회는 '쇼'에 다름 아닙니다. 국무의원이나 고위 공직자로서 자격이 있는지는 밝힐 수는 있지만 거부할 수는 없습니다. 국민이 보기에 정말로 말도 안 되는 자들이 장관이며, 총리며, 대법관을 하고 있습니다. 청문회는 지금처럼 진행하되, 그것을 보고 시민의원들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게 한다면 보다 청렴하고 국민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사람이 국가 지도자로 선택될 것입니다.

탄핵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이름을 말하기도 싫지만 어떤 대법관은 참으로 뻔뻔스럽게 자기자리를 보전합니다. 이렇게 나라 지도자에 대한 탄핵권도 시민의원이 가지게 된다면, 지도자들이 국민을 살피는 일에 좀 더 매진하지 않을까 판단해 봅니다. 또한 이것은 권력의 높이를 낮추는 역할을 하게 될 것입니다. 풍선 모델에서 풍선을 옆으로 잡아 늘이는 효과가 나타날 것입니다. 역할중심사회로 가는 시작을 알리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저는 이 글의 시작에서 우리 사회가 어떤 방향성을 가지느냐가 대단히 중요하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높낮이의 권력중심사회를 공고히 할 것인지, 너비의 역할중심사회의 다양성으로 갈 것인지는 우리 미래 사회의 결정에 대단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싸움을 통한 발전을 계속 선택할 것인지, 어울리고 화합하는 방법을 통하여 새로운 문명으로 진화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전쟁과 공멸, 공존과 공영의 차이로 나타 날 것입니다.

이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대부분의 우주 과학 공상 영화에서 외계인이 지구를 정복하려고 하는 것은, 지금 인류가 외계를 발견하게 된다면 당연히 그렇게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류의 문명은 싸움을 통하여 발전하여 왔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달에 물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하여 미국의 나사(NASA)는 로켓(폭탄)을 달 표면에 충돌시킨 것은 인류가 얼마나 파괴적인지를 나타내는 좋은 예입니다. 그것은 같은 인류에게서도 그렇게 나타납니다.  그리고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서 또한 그렇습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자연을 정복하는 일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환경 문제가 심각하여 인류가 공멸할지도 모른다는 수많은 과학자들과 현인들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몇몇 나라에서 노력을 하는 척은 하고 있지만 지구 환경을 급속도로 허물어져 가는 방향을 바꾸기에는 너무 터무니없이 부족합니다. 아마도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된 후에 깨닫게 될지도 모르지만 그 때는 너무 늦게 될 것입니다. 이제는 사고의 방향을 바꾸어야 합니다. 그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가 될 것입니다.

우리가 싸움의 기조, 즉, 경쟁, 투쟁, 전쟁의 기조를 유지한다면, 시간의 문제이겠지만 인류는 결국 인류가 가지고 있는 막대한 에너지를 싸움을 하는 것에 사용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결국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올 것입니다. 우리가 나무 한 그루 더 벤다고 해서 지구 환경이 당장 어떻게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싸움의 기조를 유지하여 다음 개헌 때 특권계급의 상원의원을 만든다고 해서 당장에 큰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방향으로 계속 간다면 앞에 천 길 낭떠러지의 폭포가 있는 줄도 모르고, 배 위에서 신나게 유희를 즐기는 관광객에 다름 아닙니다.

싸움의 정신을 버리고 어울림의 정신을 가지는 것, 그것은 우리 인류에게 주어진 세 가지 숙제 가족, 환경, 지구공동체의 문제를 해결하는 시작점입니다.
#개헌 #상하양원제 #시민의원제 #선거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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