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버린 우리 말투 찾기 (30) 얄궂은 말투 9

[우리 말에 마음쓰기 777] '풍성한 대화', '차 만들기 작업에 들어간다' 다듬기

등록 2009.10.16 11:20수정 2009.10.16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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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풍성한 대화

 

.. 몸과 마음이 커 가는 아이와 풍성한 대화를 할 수 있으려면, 그 대화 방식과 내용을 아이에 맞춰야겠지요 ..  《열린어린이》 58호(2007년 9월) 머리말

 

 '대화(對話)'는 '이야기'로 고치고, '대화 방식(方式)'은 '이야기 매무새'로 고치며, '내용(內容)'은 '줄거리'로 고쳐 줍니다. "아이에 맞춰야겠지요"는 "아이한테 맞춰야겠지요"로 손질합니다.

 

 ┌ 풍성(豊盛) : 넉넉하고 많다

 │   - 풍성한 결실 / 가지마다 풍성하게 맺은 열매 / 햇곡식이 풍성하다

 │

 ├ 풍성한 대화 (?)

 ├ 푸짐한 이야기 (?)

 └ 넉넉한 이야기 (?)

 

 "풍성하게 하는 대화"란 무엇일까 궁금합니다. 이와 비슷한 꼴로 "풍성한 사고"나 "풍성한 상상"이나 "풍성한 결과"라고도 하겠구나 싶고, 이와 같은 말투는 하루하루 우리한테 익숙해지고 길들겠구나 싶습니다.

 

 지난날에는 쓰지 않던 말투가 어느 때부터인가 하나둘 나타나더니, 이제는 이러한 말투가 자연스럽고 마땅한 우리 말투인 듯 여기고 있습니다. 우리는 틀림없이 지난날과 견주어 영어도 잘하고 무슨무슨 지식도 많고 책도 꽤나 읽고 졸업장도 두둑하게 갖추는 사람으로 탈바꿈했을 텐데, 이렇게 숱한 지식을 머리통에 잔뜩 끼워넣고 있는 가운데, 말다운 말을 잃거나 잊고 있지 않느냐 싶습니다. 새로운 정보와 지식을 채워 넣는 데에 너무 바쁘고 고단해, 살갑고 손쉽게 나눌 말과 글은 그예 놓거나 놓치거나 내버리고 있지 않느냐 싶습니다.

 

 ┌ 아이와 즐겁게 이야기 나누기

 ├ 아이와 오붓하게 이야기 나누기

 ├ 아이와 오래도록 이야기 나누기

 ├ 아이와 차분히 이야기 나누기

 ├ 아이와 조촐히 이야기 나누기

 └ …

 

 보기글에서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를 곰곰이 따지 봅니다. 가만가만 살피면, 글쓴이는 아이하고 '좀더 많이' 이야기를 나누어 보자는 말을 하려고 했구나 싶습니다. '좀더 많이' 나누는 이야기라. 그래, 이런 마음에서 한자말 '풍성'을 넣었다면, 겉치레로 하는 말이 아니요 그냥 지나치듯 하는 말도 아니며 아이 마음을 다치게 하지 않는 가운데 아이가 지루하게 듣지 않는 이야기가 되면서 피와 살이 될 수 있도록 하는 이야기를 나누고프다는 뜻이 아니었겠느냐 싶습니다.

 

 그런데, 이 글월에서 한자말 '풍성한'을 토박이말 '푸짐한'이나 '넉넉한'으로 바꾸어 볼 때에도 썩 어울리지 않습니다. 쓰려고 한다면 쓸 수야 있으나 그리 달갑지 않습니다. 다만, "그 일은 좀더 넉넉히 이야기해 봅시다"처럼 말할 때에는 매끄럽습니다. 이 뜻을 살리며 "즐겁게 이야기해" 본다고 하거나 "차근차근 이야기해" 본다거나 "알차게 이야기해" 본다거나 "오순도순 이야기해" 본다고 해 보아도 잘 어울립니다.

 

 이야기를 '좀더 많이' 나눈다고 한다면, '오래도록' 이야기를 나눈다는 뜻이거나, 좀더 '속깊은 데까지 꺼내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셈입니다. 크고작은 모든 이야기를 남김없이 나누는 셈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들은 어떻게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하는가를 밝혀 주면 됩니다. 이렇게 적어 놓으면 넉넉합니다. '즐겁게'나 '오붓이' 같은 말을 넣어 주어도 되고, '기쁘게'나 '알뜰히'를 넣어 보아도 되며, '스스럼없이'나 '허물없이'를 넣어도 됩니다. 우리가 아이들하고 마음 가벼이, 홀가분하게, 기쁘게, 반갑게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은 어떠한가 하고 곰곰이 헤아려 봅니다. 우리가 아이하고 마주하는 모습을 떠올리면서 이러한 생각과 마음과 뜻 그대로 적바림합니다. 괜히 말치레를 하려고 살살 비틀지 않습니다. 어설피 겉멋을 부풀리려고 덕지덕지 누더기를 만들지 않습니다. 처음에 드러내려고 했던 생각을 차곡차곡 담아내고, 아이하고 나누고자 하는 사랑과 믿음을 말과 글에 따뜻하게 실어냅니다.

 

 

ㄴ. 만들기 작업에 들어간다

 

.. 이렇게 쓸 수 있는 찻잎만 골라지면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차 만들기 작업에 들어간다 ..  《남난희-낮은 산이 낫다》(학고재,2004) 23쪽

 

 '본격적(本格的)으로'는 '바야흐로'나 '비로소'로 다듬어 줍니다. '착수(着手)한다'라 하지 않고 '들어간다'라 적은 대목이 반갑기는 하지만, 이 자리에서는 앞말과 이어 "작업한다"라고만 해도 넉넉합니다.

 

 ┌ 작업(作業)

 │  (1) 일을 함

 │   - 작업 시간 / 준비 작업 / 그들의 작업은 오후 늦게까지 계속되었다

 │  (2) 일정한 목적과 계획 아래 하는 일

 │   - 교량 복구 작업 / 규범의 수정ㆍ보완 작업을 벌이다

 │  (3) [군사] 근무나 훈련 이외에 진지 구축, 막사나 도로 보수 따위의 임시로 하는 일

 │

 ├ 차 만들기 작업에 들어간다

 │→ 차 만들기를 한다

 │→ 차 만들기 일을 한다

 │→ 차 만들기에 소매를 걷어붙인다

 │→ 차 만들기를 할 차례이다

 └ …

 

 아직 우리 국어사전에는 '작업' 말풀이가 세 가지뿐입니다만, 오늘날 사람들이 으레 쓰는 '작업한다' 가운데 하나는 "다른 짝꿍을 사귀려고 애쓰는 일"이곤 합니다. 한 마디로 한다면 '꼬드기다'이거나 '꼬시다'인데, 이러한 말뜻을 새롭게 달 만한가 아닌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익히 쓰는 말씀씀이로 오래오래 뿌리내린다면 이 말뜻 또한 살포시 담아야 한다고 느낍니다. 다만, 저로서는 한자말 '작업'까지 굳이 써야 할 까닭이 없다고 느끼며, '꼬드기다-꼬시다-꾀다'만으로도 넉넉하다고 느낍니다. 그리고, 이러한 말마디로 모자라거나 아쉽다면, '애쓰다-힘쓰다' 같은 낱말을 쓸 수 있는 한편, '일하다'라는 낱말로도 '작업하다 (4)' 쓰임새가 되도록 쓸 수 있다고 봅니다.

 

 아무튼, 한자말 '작업'은 '일'을 가리킵니다. 아니, 예부터 으레 '일'이라고 가리켜 오던 말마디를 한자로 옮겨적으면 '작업'이 될 뿐입니다. 일을 하는 곳은 '일터'요, 작업을 하는 장소는 '작업장'입니다. 일을 하는 사람은 '일꾼'이고, 작업을 하는 사람은 '작업자'이거나 '노동자'이거나 '인부'입니다. 일을 해서 받는 돈은 '일삯'이요, 작업을 해서 받는 보수는 '작업비'입니다.

 

 ┌ 작업 시간 → 일하는 시간 / 일하는 때 / 일때

 ├ 교량 복구 작업 → 다리 다시 놓는 일 / 다리 되놓기

 ├ 그들의 작업은 오후 늦게까지 계속되었다

 │→ 그들이 하는 일은 낮 늦게까지 이어졌다

 ├ 규범의 수정ㆍ보완 작업을 벌이다

 │→ 규범을 고치고 보태는 일을 벌이다

 │→ 규범을 손보고 다듬는 일을 하다

 └ …

 

 우리한테는 우리 토박이말이 있습니다. 우리들이 토박이말과 아울러 한자말을 쓰고 있습니다만, 우리한테는 어김없이 우리 토박이말이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 제대로 안 쓰고 있을 뿐입니다. 우리 스스로 옳게 가누지 않을 뿐입니다.

 

 내 사랑을 나눈다고 하는 자리에서 '사랑'만이 아닌 '애정(愛情)'을 구태여 불러들이는 우리들입니다. 내 믿음을 보여준다고 하는 자리에서 '믿음'만이 아닌 '신뢰(信賴)'를 굳이 쌓으려고 하는 우리들입니다. 있는 그대로 말하지 않습니다. 있는 그대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있는 그대로 살지 않습니다.

 

 자꾸자꾸 껍데기를 들씌웁니다. 끝없이 겉옷을 입힙니다. 차를 만든다고 하면 '차 만들기'인데, 있는 그대로 '차 만들기'라 하지 못하고 '차 만들기 작업'처럼 쓰고야 맙니다. 좀더 깊이 생각해 보면 '차 만들기'라고 말했을 때 바로 이 말마디에 '일(작업)'이라는 느낌이 담깁니다만, 이러한 흐름을 읽지 못합니다. 아니, 이러한 흐름을 안 읽으려고 한달까요. 참말을 잊고 거짓말에 매이며, 참말을 모르며 거짓말만 머리에 가득 들어찬다고 할까요.

 

 어떤 일을 바야흐로 붙잡는다고 할 때에 "소매를 걷어붙인다"라든지 "머리끈을 동여맨다"라든지 "신발끈을 단단히 묶는다"고도 말합니다만, 이런저런 상말은 하루하루 잊혀집니다. 나날이 스러집니다. 말도 생각도 삶도, 글도 넋도 이야기도 시나브로 옅어집니다. 하루가 다르게 무디어집니다. 이리하여, 우리들은 어느 모로 보나 얼굴은 한국사람이고 생김새며 차림새며 밥버릇이며 한국문화라 할 터이나, 우리 입과 손에서 터져나오는 말글은 한국말이나 한국글이라 하기 어려운 노릇입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2009.10.16 11:20ⓒ 2009 OhmyNews
덧붙이는 글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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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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