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351)

― '나의 동포여', '나의 글', '나의 17번째 생일' 다듬기

등록 2009.10.17 12:22수정 2009.10.17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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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나의 동포여

 

.. 조선, 나의 고x이어! / 조선 사람, 나의 동포여! / 산 높고 물 맑은 네 품. / 그리고 그리운 한겨레여! ..  《민충환 엮음-한흑구 문학선집》(아시아,2009) 35쪽

 

 이 보기글은 1931년에 쓴 글이라고 합니다. 일제강점기 때에, 글쓴이가 미국에서 배우면서 쓴 시라고 합니다. '내'가 아닌 '나의'로 적는 말투가 벌써 이때에도 이렇게 있었다니 놀랄 노릇입니다. 글쓴이는 1931년 이 무렵에 왜 이와 같이 글을 써야 했을까요. 글쓴이는 왜 '내'라고는 한 마디도 못하면서 '나의'라고만 적어야 했을까요.

 

 ┌ 네 품 (o)

 └ 너의 품 (x)

 

 그런데, 이렇게 '나의'로 잘못 쓰는 가운데 '너의'로 잘못 쓰지는 않습니다. 한 군데만 잘못 쓰고 그칩니다. '너의' 아닌 '네'라고 적어야 하는 줄 압니다.

 

 ┌ 나의 동포여 (x)

 └ 내 동포여 (o)

 

 아주 쉬운 일입니다. 아주 쉬우며 마땅한 일입니다. 아주 마땅하며 바른 일입니다. 아주 바르며 옳은 일입니다. 아주 옳으며 수수한 일입니다.

 

 있는 그대로 나누고 함께하는 말과 글입니다. 스스럼없이 나누고 어깨동무하는 말과 글입니다. 꾸밈없이 나누고 사랑하는 말과 글입니다.

 

 말마디로 트는 길을 살가이 틀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말마디로 트며 열어젖힐 환한 생각마디를 알차게 가꿀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생각마디를 알차게 가꾸면서 삶마디를 즐겁고 넉넉하게 일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리하여, 즐겁고 넉넉하게 일구는 삶마디에 따라 내 말과 글이 다시금 즐겁고 넉넉함이 듬뿍 묻어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ㄴ. 나의 글

 

.. 나날이 까칠해지는 내 자신이 싫었고, 하루하루 거칠어지는 나의 글이 미워졌기 때문이다 ..  《전상인-아파트에 미치다》(이숲,2009) 9쪽

 

 "내 자신(自信)"이라고 흔히 씁니다. 저도 이 말투를 오래도록 써 왔습니다. 따지고 보면 '나(내)'와 '자신'이 겹치기로 쓰인 셈이지만, 우리들한테는 이 말투가 관용구처럼 굳었습니다. 그러니 잘못 쓴 글월이라 할 수 없습니다. 다만, "나날이 까칠해지는 내가 싫었고"라든지 "나날이 까칠해지는 내 모습이 싫었고"나 "나날이 까칠해지는 내 몸뚱이가 싫었고"로 손보면 한결 낫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 내 자신

 └ 나의 글

 

 글쓴이는 "내 자신"이라고 하다가 "나의 글"이라고 합니다. "나의 자신"이라고는 하지 않았습니다.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그러고 보니, "내 자신"이라고는 말하여도 "나의 자신"처럼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퍽 알쏭달쏭한 노릇입니다. 온갖 곳에는 다 '나의'로 적으면서, 한자말 '자신' 앞에서만큼은 토씨 '-의'를 얄딱구리하게 붙이지 않으니까요.

 

 이곳저곳에서는 스스로 제 말투를 얄딱구리하게 깎아내리는 줄을 느끼지 못하면서 "내 자신"이라고 말하는 매무새인데, 이런 매무새는 얼마나 오래 이어갈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머잖아 이 말투도 "나의 자신"으로 바뀌게 될는지, 이리하여 우리들한테는 '내'가 가뭇없이 사라지고 '나의'만 덩그러니 남게 될는지 궁금합니다.

 

 

ㄷ. 나의 17번째 생일

 

.. 더 이상 깜짝파티는 아니지만, 깜짝 놀랄 준비는 되어 있다. 뻘써부터 기다려진다. 나의 17번째 생일이 ..  《오자와 마리/hiyoko 옮김-민들레 솜털 (2)》(북박스,2008) 69쪽

 

 "더 이상(以上)"은 "더는"으로 다듬고, '깜짝파티(-party)'는 '깜짝잔치'로 다듬습니다. "놀랄 준비(準備)"는 그대로 두어도 되고, "놀랄 마음"으로 손질해도 됩니다.

 

 ┌ 나의 17번째 생일이

 │

 │→ 내 열일곱 번째 생일이

 │→ 내가 맞이할 열일곱 번째 생일이

 │→ 내가 태어난 열일곱 번째 날이

 │→ 나 태어난 열일곱 해째 날이

 └ …

 

 어느 누구도 따로 탓하지 않으면서 두루 쓰이게 된 말투나 낱말은 우리한테 문화가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문화는 문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 대목이 있다고 느낍니다. 그러나, 오늘은 문화로 굳어졌어도 내일까지 문화여야 하지는 않습니다. 오늘은 문화이나 내일은 문화가 아닐 수 있는 한편, 알맞지 않게 뿌리내리려 하는 문화는 알맞춤한 길로 접어들도록 가다듬을 수 있습니다. 하나둘 매만지고 어루만지면서 곱고 바르도록 이끌 수 있습니다.

 

 ┌ 내 생일

 ├ 내가 태어난 날

 │

 └ 나의 생일

 

 '내' 생일이고 '네' 생일입니다. '아빠' 생일이고 '엄마' 생일입니다. "아빠의 생일"이나 "엄마의 생일"이 아닙니다. "형 생일"과 "동생 생일"일 뿐입니다.

 

 또는 "내가 태어난 날"입니다. "내 귀 빠진 날"입니다. "내가 세상에 나온 날"입니다. 이리하여, "내가 맞이할 생일"이나 "나한테 찾아올 생일"입니다. "내가 맞은 생일"이요, "내가 치른 생일"이며, "나한테 기쁨인 생일"입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2009.10.17 12:22ⓒ 2009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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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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