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헌책방마실을 해 온 스무 해 가까운 세월을 돌아보면서, 언제나 이렇게 생각합니다. '나한테 인간문화재 하나를 꼽으라 한다면 나는 헌책방 일꾼이 이 나라에서 둘도 없고 다시 또 없는 인간문화재라고 하겠다'고. 저를 취재한다며 찾아오는 기자한테 언제나 "헌책방 아저씨 아주머니만큼 이 나라에서 제대로 대접 못 받은 사람문화재도 없다고 느낍니다." 하고 말씀드립니다. "부디 어느 헌책방이라도 좋으니, 그곳에 찾아가서 적어도 두 시간 남짓 온갖 책을 가만히 들여다보면서 헌책방 참맛을 깨달아 주시고, 이렇게 깨달은 이야기를 글이나 사진으로나 그림으로나 둘레 사람들한테 나누어 주셔요." 하고 덧붙입니다. 책상 앞에 앉아서 '출판사에서 보내 온 보도자료 공짜 책'에 파묻히지 말고, 스스로 두 손에 책먼지를 듬뿍 묻히면서 '우리 스스로 먼저 읽고프다는 느낌이 드는 책을 깨닫고, 우리 스스로 누구보다 먼저 이 책을 읽은 다음, 우리 스스로 누구보다 먼저 이 책 이야기를 갈무리하여' 나눌 수 있어야 비로소 문화부 기자이거나 책 평론가이거나 지식인이라고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대로 간다>(이홍우, 동아일보사, 2007)라는 책을 봅니다. '이런 책도 나온 적이 있구나' 하고 생각하며 집어듭니다. 썩 내키지 않고 달갑지 않지만, 글쓴이가 어느 '정치 편견'으로 이 책을 쓰지 않았다면, 한국 시사만화 발자취에 이바지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며 책장을 넘깁니다.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나대로 간다>라는 책에는 '조중동 입맛하고 안 맞는 정치꾼 비아냥과 깎아내리기'가 절반을 넘게 차지합니다. 책 줄거리 가운데 1/3은 아예 ㄴ 대통령 조지기에 바치고 있습니다. 정작 이홍우 님이 어린 나날을 어찌 보내고 젊은 나날을 어떻게 견디었으며 서른 마흔 쉰을 넘기는 동안 어떠한 어려움과 즐거움과 보람이 있었는가는 거의 비치지 않습니다. 이홍우 님 스스로 무엇을 하고자 시사만화라는 길을 걷는지 잘 느끼지 못하겠습니다.
그러면서도 이홍우 님은 이야기합니다. "(시사만화는) 내 파수꾼의 눈"이라고. "(내가 그린 시사만화는 사회를 읽는) 풍자"라고.
239쪽짜리 책을 금세 읽어치우면서 참말 씁쓸하고 쓸쓸합니다. 집으로 돌아가 인터넷으로 이홍우 님 요사이 발자취를 살펴보니, 2007년 11월 끝무렵에 <나대로 간다>를 내놓은 다음 한 달이 채 되지 않아 신문사를 그만두고 한나라당 공천을 받으려고 정치권으로 몸을 바쳤더군요. 그러나 공천을 못 받고 신문사에도 돌아가지 못했습니다. '신문기자로 정치권에 뛰어드는 폐해' 이야기가 〈미디어오늘〉에 적잖이 실렸는데, 이 꾸지람에 이홍우 님 이야기가 빠지지 않습니다.
인터넷창을 닫으며 생각합니다. 이홍우 님은 이렇게 정치권에 몸을 담그려고 <나대로 간다>라는 책을 '어떤 힘있는 정치권력자 입맛'에 잘 들어맞게끔 엮었는지 모르겠다고. 너무도 안타깝고 안쓰럽게 당신 만화쟁이 발자취에 먹을 발라 놓고 말았다고.
<낮은 산이 낫다>(남난희, 학고재, 2004)라는 책을 집어듭니다. 이분이 1990년에 펴낸 <하얀 능선에 서면>을 아주 즐겁게 읽었던 터라, <낮은 산이 낫다>는 몹시 반갑습니다. 나중에 책을 다 고르고 책값을 셈하는 자리에서 '정은서점' 할아버지는 이 책을 보더니, "아, 그 사람 참 대단한 사람이야. 예전에 이 사람이 쓴 <하얀 능선에 서면>인가를 읽었는데 대단한 사람이더라고. 혼자서 백두대간을 겨울에 가로질렀으니. … 그런데 이런 사람 책도 내가 헌책방에서 일하니까 볼 수 있지, 다른 데에서 일했으면 이런 사람을 알았을까. 그 책이 하도 눈에 뜨여서 한번 읽어 봤는데 대단한 사람이더라고." 하고 이야기했습니다. '정은서점' 할아버지가 이야기하기도 했지만, 남난희라고 하는 분 삶은 여러모로 되새길 만하고 귀기울여 들을 만하고 곰곰이 읽으면서 곰삭일 만하다고 느낍니다.
.. 원래 우리의 산은 등산의 대상이 아니었을 것이다. 서구의 알피니즘이 들어오면서 산은 도전의 대상이 되었다. 더 빨리, 더 힘든 곳을 향하여 끊임없이 오르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의 산은 도전의 대상이 아니다 … 아이와 함께 산을 오르면 아이의 동심이 부러워진다. 아이는 온몸으로 산과 만난다. 나무를 껴안기도 하고, 뒹굴기도 하고, 천방지축으로 날뛰기도 한다. 온 산이 소란스러울 정도로 떠들기도 한다. 나에게는 도전의 대상으로, 제압해야만 했던 산이 아이에게는 정겨운 친구이다 .. (11쪽)
문득, 내가 내놓은 몇 가지 책은 내 둘레 사람들한테 얼마나 읽힐 만하고 얼마나 되새길 만하며 얼마나 간직할 만한가 궁금합니다. 아니, 나 스스로 내 길을 얼마나 옳고 바르게 걸어가면서 내 삶을 글과 사진으로 담아내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나는 나 혼자만 흐뭇해 하다가 그치는 글굴레에 갇혀 있지는 않은지, 나는 나 홀로 눈물짓기만 하는 사진굴레에 매여 있지는 않은지 모르겠습니다. 내 가슴을 적실는지는 몰라도 내 이웃 가슴을 함께 적시지 못하는 삶은 아닌지, 내 마음을 채울는지는 몰라도 내 식구들 마음을 함께 채우지 못하는 모습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 이후로 모든 생활은 아이에게 맞춰졌다. 아이를 위해서 삼칠 일까지 방에 전등도 켜지 않았다. 그 정도는 지나야 아이의 시력이 적응하기 때문이다. 아이가 나를 선택하였는데, 아이에게 그 선택이 잘한 것이라 느끼게 해 주고 싶었다 … 주변 사람들은 나를 보고 아이를 공짜로 키운다고들 한다. 모르긴 몰라도 과히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아니, 사실은 공짜 정도가 아니라 아이는 돈으로 얻을 수 없는 값진 것을 엄마에게 되돌려 주었다. 방긋 웃는 모습만으로도 세상의 근심은 사라지고 마음은 환희로 충만하였다 .. (106, 108쪽)
오늘 하루도 좋은 마음밥을 만나고, 기쁜 마음밥을 얻으며, 반가운 마음밥을 받아듭니다. 책방에 선 채로 조금조금 읽다가는 책값을 치르고 가방에 꾹꾹 눌러담아 집으로 돌아가는 전철길에 눈물 몇 방울 찍으면서 새깁니다. 그런데 이 좋은 마음밥을 먹은 나는 얼마나 더 좋은 사람으로 달라지거나 새로워진다고 할 수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나는 참말 아름다운 사람이 되는 책읽기를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3) 이런저런 책을 차곡차곡
지난날 퍽 뛰어나다고 하던 러시아문학 가운데 하나라는 <시멘트>(F.W.글라드꼬프/강모라 옮김, 만남, 1989)라는 소설책을 집어듭니다. '내 도서관에 갖출 만한 책이니 갖추어야 할 텐데, 이 책을 내가 읽을 겨를을 낼 수 있을까?' 언젠가는 겨를을 낼 수 있으리라 믿어 봅니다. <ABC의 공포>(애거더 크리스티/장수철 옮김, 성문각, 1969)를 쥐어듭니다. 어릴 적 학급문고로 읽은 책인데, 우리 아이가 커서 학교에 간다면 우리 아이도 그무렵에 아이 스스로 골라서 학교에서 읽은 책을 먼 뒷날 떠올리며 애틋하게 여기겠지요.
<이름없는 순례자>(최익철 편역, 가톨릭출판사, 1978)라는 작은 책을 보고, <믿음은 외침이 아니다>(백민관, 성바오로출판사, 1979)라는 작은 책을 함께 봅니다. <믿음은 외침이 아니다>라는 책은 출판사에서 일하는 수녀님들이 '김형석 교수님'한테 드린다는 펜글씨가 이쁘장하게 가지런한 글씨로 적혀 있습니다. 자그마치 서른 해가 묵은 손글씨이지만, 꼭 엊그제 적은 듯한 느낌입니다. 두 가지 책을 살피면 간지가 붙은 자리에 볼펜으로 흘려쓴 서명이 보입니다. 누구 서명일까 하고 곰곰이 들여다봅니다. 이 책을 받은 김형석 교수님이 이 무렵에 책을 다 읽고 남긴 자국일까요? 글씨 흐름으로 보아서는 그렇구나 싶으나 잘 모르겠습니다.
<한국의 세시풍속과 민속놀이>(장주근 글-이인실 그림, 대한기독교서회, 1974)라는 작은 책을 보고, <世界名作アニメ劇場 15話>(小學館,1990)라는 도톰한 책을 봅니다. 우리한테도 낯익은 〈소공녀 세라〉나 〈플란다스의 개〉나 〈빨간머리 앤〉이나 〈엄마찾아 삼만 리〉 같은 만화영화 작품을 보여주는군요. 그런데 '세계명작 만화영화'라면서, 열다섯 작품이 모두 서양을 무대로 하고 있습니다. 일본사람한테 '세계명작'이란 오로지 유럽사람 이야기일 뿐일까요? 그러고 보면 우리들은? 우리한테 세계명작으로 손꼽는 작품은 어느 나라 사람이 쓴 글일까요?
<제2차 사업 : 누가 우리 문화재에 담쟁이를 심었는가?>(우리문화재바르게지킴이,2009)라는 자료모음을 봅니다. 정부기관에서 낸 자료인가 싶었으나 가만히 살펴보니 아닌 듯하고, 개인 단체에서 펴낸 자료모음이지 싶습니다.
.. 1910년 우리 나라를 빼앗은 일본은 우리의 문화와 문화재 말살 정책을 쓰면서 많은 문화유산을 파괴ㆍ훼손하였다. 그중의 하나로 우리의 귀중한 문화재에 담쟁이를 심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 1945년 해방 이후 1960년까지는 일정시대 심은 담쟁이 제거에 국가에서 많은 노력을 하여 상당수는 제거되었으나, 일부는 뿌리를 고사시키지 못하여 되살아났다. 또 시간이 흐르면서 담쟁이 제거하는 일에 소홀하게 됐고, 따라서 잊혀져 갔다 .. (머리말)
참말로 문화유적에 담쟁이를 심은 데에는 이런 뜻이 있었을까요? 우리로서는 알 수가 없는데 1850년이라든지 1750년을 거슬러올라가 들여다볼 수 있다면 무엇이 참이고 거짓인지 알 수 있겠지요.
<연변조선족력사화책>(연변해외문제연구소 편저, 연변인민출판사, 1997)은 퍽 알뜰하게 엮은 사진자료입니다. 그러나 여기저기 잡지와 신문에서 오려붙인 사진이 많아 흐르멍덩한 사진이 너무 많군요. 그래도, 연변조선족한테는 더없이 반가운 사진자료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만들어 온 땅과 삶, 호남평야 농부 김씨의 한평생>(국립민속박물관,2008)을 보면서 '우리 민속박물관이 좀더 옛날부터 이런 일을 해서 이런 책을 엮었다면 얼마나 기뻤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라도 늦지는 않은데, 이렇게 '수수하고 조용하게 살아온 사람들 발자취'를 더듬는 일은 나라돈으로 해야 합니다. 한 가지를 더 바란다면, 이렇게 더듬어서 엮는 책은 '너무 크고 비싸게' 꾸미지 말고, 수수하고 조용한 사람들 삶과 마찬가지로 낮고 가볍고 작고 값싸게 꾸미되 알차고 아름다이 엮어야 한결 낫습니다.
▲좋은 책밭이요 책쉼터인 헌책방입니다.최종규
▲ 좋은 책밭이요 책쉼터인 헌책방입니다.
ⓒ 최종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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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나는 늘 책선물을 받는다
책값을 셈합니다. 오늘은 자그마치 7만5천 원입니다. 지갑을 여는 손이 떨립니다. 그러나 이만한 돈을 치를 값을 하는 책입니다. 책값을 셈한 다음 '정은서점' 할아버지와 도란도란 몇 마디를 더 주고받다가 '아차차, 이 책도 사려고 했는데 깜빡 했네!' 하면서 <크로스게임 (1∼10)>(아다치 미츠루/강동욱 옮김, 대원씨아이, 2006∼2008) 묶음을 더 셈합니다. 여태껏 따로 에누리를 해 준 적이 거의 없는 '정은서점' 할아버지인데 오늘은 에누리를 하면서 만화책값 2만 원에서 5천 원을 덜어 주십니다. 저는 이제까지 에누리를 바라지도 않았고, 앞으로도 바랄 마음이 없으며, 언제나 '헌책방 일꾼이 부르는 값대로 책값을 치르고'자 합니다. 왜냐하면 얼마를 부르는 책값이라 하든 저한테는 조금도 '비싼 값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느 책이든 글쓴이 땀방울이 알뜰살뜰 담기지 않은 글뭉치란 없습니다. 어느 책이든 책마을 일꾼 손품이 차근차근 실리지 않은 글꾸러미란 없습니다. 어느 헌책이든 헌책방 일꾼 다리품과 손때가 알알이 배이지 않은 글보따리란 없습니다. 저는 기껏 돈 몇 푼으로 고마운 선물을 받는 셈입니다. 헌책방 일꾼이 눈을 밝히고 온몸을 먼지구덩이에 집어넣지 않으면 캐낼 수 없는 책을 손이나 몸에 책먼지 거의 안 묻히고 슬렁슬렁 두리번거리면서 얻는 셈입니다.
<멈춘 학교, 달리는 아이들>(교육사진연구회, 눈빛, 1992)이라는 사진책이 하나 더 보입니다. 책값은 자꾸자꾸 나갑니다. 그나마 오늘은 10만 원을 넘기지 않았습니다. 골마루를 한 번 더 휙 돈다면 10만 원이 대수냐 할 만큼 더 많은 책을 집어들 텐데, '오늘은 이만큼 고른 책으로도 마음이 넉넉히 부르지 않으냐?' 하고 생각합니다. '나 혼자 좋은 책을 다 차지할 생각을 말고, 다른 책은 다른 책손이 즐거이 만날 수 있도록 못 본 체하며 지나가자!'고 다짐합니다.
"저기 보면 새 있지요? 그거 톡 건드리면 새 우는 소리가 나. 우리 아이가 갖다 놓았는데, 젊은 사람들은 그런 거를 좋아하나 봐. 여기 문간에도 책 읽는 인형이 하나 있어요. 혼자서 움직인다고." "그러네요. 참 재미있네요." "거기, 최종규씨가 있는 인천 배다리는 어떤가요?" "헌책방 있는 거리는 싹 쓸어버리고 주상복합 지어서 분양권 내준다고들 하는데, 배다리뿐 아니라 인천을 싸그리 갈아엎는다고 해서 말이 많아요. 엊그제 그 배다리 재개발한다는 공청회가 있었는데, 그 공청회는 겨우 막았어요. 공청회는 시늉이고, 그 공청회를 열면 주민의견 다 들었다고 해서 곧바로 밀어붙이려 하거든요. 그런데 공청회를 막으나 마나 이대로 다 엎을 생각이고, 또 공청회를 막은 주민들을 모두 불법행위를 했으니 형사고발을 한다더라구요. 그런데 헌책방한테 주상복합 자리를 하나 준다고 해 보아야, 지금 어디로 가게를 옮겨서 장사를 하고, 또 어떻게 다시 들어올 수 있겠어요. 지금처럼 오래된 건물에 있으니 그마나 달삯도 적은데 새 건물 달삯을 어떻게 내겠어요." "그려, 그렇지. 그런데 우리도 여기 개발한다고 하면 그때에는 문을 닫아야 할 텐데, 어디로 가야 할까?" "이제는 헌책방들이 더는 큰길 둘레에서는 장사를 못하지 않을까 싶어요. 큰길 가게는 다 술집 옷집 밥집이 하라고 하고, 책집은 골목길 살림집 있는 안쪽으로 깊숙하게 들어가야 하지 싶어요. 그리고, 이제는 예전하고 문화가 많이 달라져서, 헌책방을 몸소 찾아오는 사람들은 걸어다니며 골목 나들이 하기를 좋아해요. 그러니까, 인터넷 누리집을 하나 마련하고, 골목 안쪽에서 조금 더 널찍하고 넉넉하게 가게를 열어 놓으면, 다리품 팔며 찾아오는 사람들이 더 좋아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러나, 앞으로 서울이든 인천이든 부산이든 대구이든 제주이든 광주이든 전주이든 대전이든 …… 골목길 올망졸망 살림집이 남아날 수 있을까요? 앞으로 이 나라에서 가난하며 수수한 사람들 삶터를 지킬 수 있을까요? 오늘날 대한민국은 돈 많고 잘사는 사람이 나라밖으로 떠나는 나라가 아니라, 돈 없고 못사는 사람이 나라밖으로 쫓겨나야 하는 나라가 아닐까요? 헌책이든 새책이든 책 하나에 땀과 피와 눈물과 웃음과 넋과 햇살을 살포시 얹어 놓는 마음결은 뿌리내릴 수 없는 우리 나라가 아닐까요?
책선물 한가득 고맙게 받고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몹시 슬퍼 다리가 무겁습니다. 붐비는 전철역과 전철칸에서 밀고 밟고 치고 누르는 사람들하고 뒤섞여 오징어떡이 되는 가운데 책을 손에서 놓지 않으면서, 나 한 사람이라도 옆사람을 밟거나 치거나 밀지 않으면서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자꾸자꾸 흔들립니다. 도시에서 끝까지 붙어서 살아가려 한다면 나 또한 옆사람 발을 아무렇지도 않게 밟도록 내몰리지 않겠느냐 싶습니다. 오늘날 세상흐름에서는 도시에서도 사람답게 살아갈 길이란 거의 벼랑끝까지 몰리고 말지 않았나 싶습니다. 골목골목 아직 헌책방이 제법 많이 남아 있어서 나들이를 할 만한 서울이라고 생각했지만, 이 서울을 앞으로 얼마나 더 찾아와야 할까 참으로 모르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 서울 연세대 앞 〈정은서점〉 / 02) 323-3085
http://jbstore.co.kr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2009.10.18 18:20 | ⓒ 2009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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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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