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COM-ICEM 서울총회 2009(세계생활문화박물관위원회)가 지난 10월 19-21일 동안 서울프라자호텔과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열리고 22-24일에는 안동과 경주에서 열리고 있다. 세계가 "화해와 평화를 위한 박물관"이라는 주제이면서 부제로 "세계속에서 민속생활사박물관의 역할"로 진행되었다.
ICOM세계생활문화박물관위원회와 국립민속박물관의 주관으로 열린 이번 회의에는 한국을 포함한 40여국이 참여했다. 19-21일까지 펼쳐진 회의 참가후기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이 회의의 주제인 "화해와 평화를 위한 민속생활사박물관의 역할"이라 할 수 있었다. 전체 발표 구성은 기조연설과 국가박물관의 역할과 화해와 평화, 교육, 기술적인 적용들, 다양성, 일반적인 박물관의 문제들과 토론 등으로 전개되었다.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은 축하인사말에서 다양한 문화이해를 존중하여야 하고 세계평화에 기여하는 박물관이 되어야 하며 박물관은 이해 안내자여야 한다고 하였다. 첫날 기조연설을 한 리처드 바우만(미국) 인디애나 대학 교수는 구전 민속박물관의 중요성에 대해 언급하였다. "과거 방언들은 민중정신의 소산이며 기념비보다 나은 일상생활이고 마을언어는 마을의 성격을 보여준다"고 하였다.
고이지 이가라시(일본)는 일본의 문화재 보호법과 민속문화재와 박물관의 역할 등에 대해 발표하였다. 1897년 고대 사원보호를 위해 제정된 문화재 보호법이 제정되었고, 2차 대전 이후 1954년 무형문화보호까지 포함하였으며 2004년에는 모든 구조물에 확대적용하는 문화재로 설정되었다고 하였다. 동시에 박물관의 수집정책은 교육에 적극 활용할 수 있어야 하며 수집과 기록, 전시등은 지역행사등으로 공동체 유대감을 높여야 하고 무형문화재 기록을 정확히 해야 한다고 하였다.
둘째날 기조연설은 Beverly J. Stoeltje(미국)등이 하였다. 축제는 문화재상 효과를 가지는 것으로 문화와 관계를 맺으면서 공동체성을 회복할 수 있다고 하였다. 즉 지속성을 가능케 하는 것이 축제가 될 수 있으며 박물관은 신성한 것들을 보여주는 것은 별 의미가 없으며 축제를 통해 과거의 공동체를 현재와 미래로 연결시켜 주어야 한다고 하였다.
노르웨이 맥덜 교수는 박물관은 과거의 사회와 문화만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현재 사회문화적인 문제들을 다루어야 한다고 하였다. 특히 한국은 화해를 준비해야 하며 이것은 세계전역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하였다. "평화는 중립적인 것이 아니다"며 박물관이 평화를 촉진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하였다. 박물관은 스스로 가치관을 정립해서 독립성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박물관은 결코 중립적일 수 없다고 하였다.
셋째날 기조연설한 김인회(한국)는 굿을 통한 화해와 평화를 위한 박물관의 역할에 대해 연설하였다. 죽은자와 산자, 갈등이 있는 사람들을 화해시키는 굿의 의미를 되새기는 자리였다. 박물관은 이러한 것들을 통해 화해와 평화를 가져오는 무형문화유산의 재창조가 박물관이 해야 할 역할이라 하였다.
대부분의 발표자들은 자신이 몸 담고 있는 박물관의 전시, 교육 프로그램에 대해 소개하고 나누었다. 슬로바니아에서 온 Dasa koprivec는 보스니아 내전으로 정치적 경제적 망명자들이 박물관에서 전시를 통한 화해의 장을 보여주었다. 이스라엘에서는 팔레스타인 청소년들의 참여 프로그램으로 두 나라 간 갈등을 와해시킨 프로그램을 소개하였다. 한국의 제주 4.3기념관을 소개한 유철인 제주대 교수는 정의내리지 못한 4.3사건에 대해 역사적 정의가 내려지기를 바라며 전시실 내 이름 없이 눕혀진 비석과 다양한 학살유형을 보여주는 미술품들도 소개하였다.
Anna Grichting는 자연의 회복기능처럼 우리 사람간의 갈등도 화해와 평화의 시간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며 갈등지역을 공원화하는 방안도 제시하였다. 특히 갈등이 일어난 지역들을 자연의 유연성과 같이 치유의 과정으로 만들어 가자고 제안하였다. 한국과 사이플스, 르완다의 사례를 제시하면서 평화공원을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하였다.
기술적인 방법으로 박물관의 참여의 폭을 넓히는 시도들도 진행되고 있었다. 수장고에 있던 유물들을 가상박물관에서 전시하기 쉽도록 위키피디아 기술을 적용한 결과등을 발표하였다. 교육프로그램들도 소개되었는데 핀란드의 Maria Koskijoki는 로타바라 박물관의 교육프로그램이 다른 종교의 문건을 전시하고 교육한다는 이유로 특정 종교인들의 비판을 받은 사건에 대해 "모든 종교의식에 사용된 물품은 존중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서울선언문> 낭독이 있었다. 화해와 평화를 위한 박물관이라는 주제와 민속생활사박물관으로서의 역할이라는 두 주제 중에서 사실은 화해와 평화보다는 민속생활사박물관의 나아갈 방향을 찾는 회의라고 할 수 있었다. 화해와 평화를 위해 민속생활사박물관이 해야 할 역할을 찾기보다 민속생활사 박물관의 미래에 대해 고민한 자리였다고 할 수 있었다.
이러한 모호함은 서울선언문에 그대로 나타났다. 서울선언문에서 국립민속박물관은 "민족학은 우리 삶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것으로 다양성을 높이는 것이며 다문화를 포함하는 장이 된다 하였다. 결국 이번회의의 목적은 민족학박물관으로 나아가기 위한 발판을 만드는 자리였다고 생각되었다.
3일동안 행사에 참여하면서 살펴본 소감으로는 분주히 행사준비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쉴 시간임에도 공연이나 볼 거리 등을 마련하는 등 한국문화를 알려주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볼 수 있었다.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열린 2일째 회의에서는 비빕밥과 빈대떡 등 우리 음식과 소고등을 선보임으로써 체험의 장을 마련하기도 하였다. 3일째 되는 날에는 이리자 한복 특별전과 패션쇼를 개최하여 한복의 아름다움을 한 껏 누릴 수 있었다.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열린 이번 행사에 국가적인 지원과 협력이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행사지원을 위한 빈틈없는 준비와 일정들이 놀라울 만큼 착착 진행되었다. 그러나 서울총회라는 이름과 "화해와 평화"를 위한 주제를 놓고 볼때 아쉬움은 컸다. 각각의 박물관에서 처한 문제들을 나누려는 참가자들이 토론을 하거나 개별적으로 사귈 시간이 주어지지 않은 점은 회의나 토론의 장이라기 보다는 한국문화 체험의 장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도 주어진 대로 주입식으로 말이다. 거창한 행사도 필요하지만 같은 주제를 놓고 고민하는 진지한 박물관인들의 만남도 필요할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분단국가인 우리 현실을 외면하는 한국발표자들을 보면서 씁쓸했다. 북한과 박물관을 통해 어떻게 협력하고 화해하고 평화에 이르게 할 것인가를 고민한 것은 찾아 볼 수 없었다. 우리 현실을 외면한 화해와 평화, 민속생활사 박물관의 역할은 공허한 메아리 같이 들렸다. 그들과 어떻게 협력하고 평화에 대해 공유하는 자리를 마련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는 정말 한국발표자들에게서 찾을 수 없었다. 이것이 어쩌면 우리의 한계인지도 모른다.
남북한의 현실문제를 우리가 언급하지 않으면서 연 "화해와 평화를 위한 박물관"은 부끄러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박물관은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는 말이 새삼스럽게 들렸다. 화해와 평화를 위한 반성과 성찰의 공간으로서 박물관의 역할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것으로 보였다.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한국의 관광화된 공연과 관광문화를 접할 기회를 제공했다고는 할 수 있으나 화해와 평화를 위한 박물관으로서 역할은 부족하였다고 할 수 있겠다.
2009.10.23 10:05 | ⓒ 2009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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