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 쓴 겹말 손질 (77) 차에 승차

[우리 말에 마음쓰기 784] '벌초'와 '풀베기'

등록 2009.10.25 17:17수정 2009.10.25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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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차에 승차

 

.. 통역을 포함한 네 명은 조선적십자회 간부의 마중을 받고 차에 승차해 폭넓은 스탈린 가의 가로수 사이를 지나 호텔에 도착했다 ..  《테사 모리스-스즈키/한철호 옮김-북한행 엑서더스》(책과함께,2008) 153쪽

 

 "통역을 포함(包含)한 네 명(名)"은 "통역까지 해서 네 사람"으로 다듬고, "간부의 마중을 받고"는 "간부가 마중을 나와"나 "간부한테 마중을 받고"로 다듬습니다. '폭(幅)넓은'은 '넓은'으로 고쳐씁니다. '가로수(街路樹)'는 그대로 두어도 나쁘지 않으나 '거리나무'로 손보면 한결 낫고, 이 자리에서는 앞말과 묶어 "스탈린거리에 심긴 나무들"로 손볼 수 있습니다. '도착(到着)했다'는 '닿았다'나 '다다랐다'로 손질합니다.

 

 ┌ 승차(乘車) : 차를 탐

 │   - 승차 거부 / 승차 정원 / 차례로 버스에 승차하다

 │

 ├ 차에 승차해

 │→ 차에 타

 │→ 차에 올라타

 └ …

 

 자동차는 나라밖에서 들어온 물건입니다. 그러나 우리한테 자동차가 없었어도 "말을 탄다"거나 "수레에 탄다"고 해 왔던 만큼, 자동차며 기차며 비행기며 '타다'라는 움직씨를 넣어서 가리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배에서 내린다"고 말하듯 "버스에서 내린다"고 하며 "택시에서 내린다"고 하고 "자전거에서 내린다"고 합니다.

 

 '승차'를 모르고 '하차(下車)'를 몰라도, 우리들은 우리 나름대로 이야기를 해 왔습니다. '승하차(乘下車)' 또한 모를지라도, 예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타고내리다'라 말해 왔어요.

 

 ┌ 승차 거부 → 못 타게 함 / 타지 못하게 막음

 ├ 승차 정원 → 탈 수 있는 사람

 └ 차례로 버스에 승차하다 → 차근차근 버스에 타다 / 한 사람씩 버스에 타다

 

그렇지만 예부터 써 온 낱말로는 모자라다고 느끼는가요. 오래오래 써 오던 낱말은 너무 낡았다고 생각하는가요. 세계 시민이 되어야 한다는 21세기에는 21세기에 걸맞는 영어를 쓰고, 이웃나라 중국과 일본에서 쓰는 한자말을 남김없이 받아들여야 한다고 여기는가요.

 

 손쉬운 말을 손쉽게 하지 못하면서, 어떤 세계 시민이 태어날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수월한 글을 수월하게 쓰지 못하면서, 어떤 세계 넋과 얼을 키우게 되는지 궁금합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줏대를 세우지 못하면서, 어떤 세계 이웃을 사귀고 어떤 세계 동무와 어울리게 될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 손으로 우리 말과 글을 업신여기는 가운데, 어떤 세계 흐름을 읽어내어 우리 흐름으로 받아들일 마음그릇을 키울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ㄴ. 벌초와 풀베기

 

.. 할머니 산소에 벌초하러 갔다 // 가을 햇볕이 / 머리 위에 / 풀 위에 / 쨍쨍 내려왔다. // 아빠는 낫으로 조심조심 / 풀을 베었다. // 나는 잔디 가위로 산소 위에 난 / 긴 풀들을 / 잘라 주었다 ..  《이상교-먼지야, 자니?》(산하,2006) 48쪽

 

 '산소(山所)'란 '뫼'를 가리킵니다. '뫼'는 '무덤'이며, 한자말로 옮겨적으면 '묘(墓)'가 됩니다. '조심조심(操心操心)'은 그대로 두어도 괜찮으나 '살살'이나 '살살살'이나 '마음 쏟으며'나 '온마음 들여'로 손보면 한결 낫습니다.

 

 ┌ 벌초(伐草) : 무덤의 풀을 베어서 깨끗이 함

 │   - 증조할아버지의 묘에 벌초를 하거나 / 성묘를 하고 무덤에 벌초까지 끝내자

 │

 ├ 산소에 벌초하러 갔다 (x)

 ├ 풀을 베었다 (o)

 └ 풀들을 잘라 주었다 (o)

 

 국어사전 풀이를 보니, '벌초'란 "무덤에 자란 풀을 베는 일"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그러면, 우리들은 '벌초한다'라고만 말해야지, "묘에 벌초를 한다"라 하거나 "무덤에 벌초를 한다"라 말하면 틀립니다. 겹치기 말투가 되고 말아요.

 

 ┌ 묘에 벌초를 하거나 → 무덤에 풀을 베거나

 └ 무덤에 벌초까지 끝내자 → 무덤에 풀까지 다 베자

 

 한자말 '벌초'를 쓰고 싶다면 써야 할 일이고, 쓰고 싶은 분들한테 억지로 쓰지 말라고 옷소매를 잡아당길 수 업습니다. 그러나, 이런 한자말이든 저런 한자말이든, 쓰임새에 알맞게 써야 합니다. 엉터리로 쓴다든지 틀리게 써서는 안 돼요. 토박이말을 쓸 때에도 알맞게 써야지, 틀리게 써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우리 나라 국어사전 말풀이만 보아도, 앞뒤가 어긋나 있습니다. 얄궂게도 겹치기 말투를 보기글을 다룹니다. 그러면서도 말풀이가 잘못된 줄을 알아채지 못하고, 말씀씀이를 어긋나게 적어 놓고 있는 줄을 깨닫지 못합니다. 스스로도 못 고치고, 둘레에서 바로잡아 주는 손길 또한 없습니다. 학자조차 우리 말글을 옳게 못 쓰고 바르게 못 가누며, 여느 우리들 또한 우리 말글을 슬기롭게 가다듬지 못하며, 알차게 추스르지 않습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말을 차근차근 돌아보지 않기 때문에 우리 말은 하루가 다르게 무너지거나 뒤틀리거나 흔들립니다. 우리 손으로 우리 글을 하나하나 보살피지 않는 탓에 우리 글은 어제와 오늘뿐 아니라 앞으로도 엉망진창이 되거나 뒤죽박죽이 되고 맙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2009.10.25 17:17ⓒ 2009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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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겹말 #중복표현 #우리말 #한글 #국어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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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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