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휘자 금난새, 연주 뒤 무대에서 제일 늦게 나오는 이유

28일 창원대 인문과학연구소 초청 강연 ... "예술경영의 벤처 정신" 설명

등록 2009.10.28 15:55수정 2009.10.28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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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지휘자 금난새씨.

지휘자 금난새씨. ⓒ 윤성효

지휘자 금난새(62)씨가 지휘봉 대신에 마이크를 잡고 젊은 대학생들에게 '벤처 정신'을 오케스트라 연주하듯 들려주었다. 28일 오전 경남 창원대 인문과학연구소 초청으로 "하모니 리더십-예술경영의 벤처 정신"이란 주제로 강연했다.

청중에 대해 먼저 이야기했다. "2년 뒤 대구에서 세계육상대회가 열리는데, 기록을 재야할 때는 관중들이 조용히 해야 한다. 그런데 마치 축구경기 보듯 하면 안 된다. 주최측은 청중문화를 어떻게 만들 것인지 걱정한다는 말을 들었다"고 소개했다.


그는 "음악은 지휘자와 오케스트라도 있어야 하고 청중도 있어야 한다"면서 "특별한 연주를 할 때는 먼저 모든 청중들이 일어나게 하고, 옆이나 앞 뒤 사람들과 악수하는 등 인사를 나누도록 한다. 음악만 듣고 가는 게 아니다. 음악은 그런 것과 다 연결되어 있다"고 말했다.

"나는 돈키호테형이다"고 한 그는 "어릴 때 부모님이 좋은 친구를 사귀어야 한다고 말씀하시면, 좋은 친구를 만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좋은 친구가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약간 반항적인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친구는 사람만이 아니라 좋은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들어도 친구가 될 수 있다"고 한 그는 미국 케네디 대통령이 취임식 때 한 말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가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말은 "국가가 우리에게 무엇을 해 줄 것인지를 걱정하지 말고 우리가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가 중요하다"였다.

그는 "비지니스 하는 사람은 '노(No)'라고 하면 안된다는 말이 있다"면서 "뭐든지 안된다고 할 것이 아니라 그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을 찾으면 가능하다"고 말했다.

서울예고를 나와 대학에 들어갈 무렵 그는 지휘를 배우고 싶었는데, 당시 우리나라에는 지휘를 가르치는 학과와 지도자도 없었다는 것. 그래서 대학을 작곡과에 들어갔다. "우리나라는 학위가 없으니 '돌파리'라고 한다"고 한 그는 지휘를 배우기 위해 독일에 갔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독일 베를린 예술대학에서 라벤슈타인 교수를 만난 일화다.


"대학에서 소개를 받고 전화를 걸어 연결되어 만났다. 다음 날 라벤슈타인 앞에서 피아노를 치고, 지휘도 선보였다. 그때 나이 27살이었는데, 그는 늦었다며 지금부터 시작하라고 했다. 입학시험을 쳤는데, 10개 과목 중에 5개만 점수가 괜찮았고 나머지는 미달이었다."

"불합격 통지를 받고 힘이 빠져 있었다. 그랬더니 라벤슈타인 교수는 '지금은 너를 기억할 사람은 없다. 다음 학기에 다시 시험을 보면 된다. 늦었으니까 내 수업에 청강생으로 들어와도 좋다'고 했다. 청강을 하고, 미달되었던 5과목이 다음 학기 시험에 통과되어 다닐 수 있었다."


금난새씨는 "우리 같으면 다음 학기에도 10과목 모두 시험을 다시 쳐야 하는 것과 달랐다"면서 "사람과 사람을 경쟁시키는 것이 아니라 수준이 되어 충족되면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전화 한 통화에 '이상한 나라'에서 온 젊은이한테 기회를 주는 것을 보고 많은 것을 느꼈다"면서 "우리나라는 그런 친절을 베풀고 있나. 이후 저는 공부를 하겠다는 사람이 들어와서 이야기를 들어보겠다고 하면 한 번도 거절한 적이 없다. 라빈슈타인 교수한테 받은 빚을 갚아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 시절 청와대 연주회 일화

1977년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국제 지휘 콩쿨'에 출전해 4위에 입상한 그는 "추천서를 받아 런던이나 뉴욕으로 가고 싶은 생각에 심사위원을 찾아갔더니, 한국도 발전할 나라로 보이고 그러면 할 일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며 "그 말을 들으면서 앞에서는 웃었지만 기분은 씁쓸했다"고 말했다.

그는 "콩쿠르 4위 입상을 하니 '돌파리'라는 말을 듣지 않게 되어서 그런지, 서울시립교향악단과 국립교향악단에서 초대했다"며 "국립교향악단 지휘를 맡겠다고 했더니 처음에는 부모님들이 반대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KBS교향악단 지휘를 맡으면서 전두환 전 대통령 시절 청와대에서 연주했던 일화와 청소년음악회 연주회 일화를 비교해서 소개했다.

"KBS 사장부터 관심이 많았고, 단원들도 연주를 잘해야 한다는 생각에 연습도 열심히 했다. 그 때는 부드럽지 않았던 시대니까 그랬다. 단원들도 연습 시간만 끝나면 없어지는데 그 때는 자리를 뜨지도 않고 연습했다. 장관과 대사들이 모인 데서 연주를 했는데, 대통령도 좋았다는 반응이 나왔다. 그 다음에 청소년음악회가 있어 연주를 했는데, 단원들은 연습을 대충 하더라. 똑 같은 연주회인데 청와대에서 할 때 갖는 애정이 100이라면 그 때는 50 정도였다."

a  지휘자 금난새씨는 28일 창원대에서 강연했다.

지휘자 금난새씨는 28일 창원대에서 강연했다. ⓒ 윤성효


금난새씨는 "단원들은 카네기홀이나 유럽에 연주회를 간다고 하면 열심히 하고, 군산이나 순천 등 지방에 간다고 하면 대강 한다"면서 "같은 연주회인데 단원들이 애정을 다르게 갖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그는 "지나고 보면 대통령 앞에서는 별로 잘할 필요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 사람들은 바빠서 그렇기도 하지만 음악을 잘 모르니까. 그런데 청소년들은 음악에 관심이 많으니까 더 애정을 가져야 했던 것"이라고 덧붙였다.

수원시립교향악단 지휘를 맡게 된 사연도 소개했다.

"KBS교향악단 지휘를 맡고 있으면서 대학에서 강의를 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지휘하는 사람이지 강의하는 사람이 아니기에 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런데 수원시향에서 지휘를 맡아 달라고 했다. 당시 KBS교향악단은 1/3 정도의 역할을 하고 있어 겸할 수 있을 것 같아 제안했더니 안된다고 했다. 둘 중에 하나를 택하라는 식이기에 수원시향을 택했다. 뒤에 음악계에서는 KBS교향악단에서 쫓겨난 것 아니냐고 했는데, 실제는 내 발로 간 것이다."

단원들에게 '투자'에 대해 설명

금난새씨는 수원시향 단원들에게 '투자'라는 말을 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연주회를 하는데 청중은 80여명 정도였고, 2부가 되니 절반 정도만 남았다. 다음 해 1월 3일 수원시청에서 시무식을 했다. 500여명의 공무원들이 시무식을 하는 동안 복도 쪽에 오케스트라를 모아 연주 준비를 했다. 시청에는 알리지 않고 준비했다. 시무식을 마치고 공무원들이 나오자 경쾌한 음악을 연주했다. 대부분 공무원들이 모여 들었다. 시장도 '흥분'했던 모양이다. 당시 공무원들은 보너스가 800%였는데 시향 단원들은 400%였다. 그 뒤에 시장이 보너스 100%를 올려주었다. 단원들 표정이 달라졌다. '투자'를 계속하자는 것이었다."

"적극적인 생각이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한 그는 8시간 마라톤 연주를 했던 이야기를 했다.

"보통 연주회는 2시간 안팎이다. 마라톤콘서트를 하니까 신문에도 나왔다. 수원에 처음 가서 '수원의 자랑거리가 뭐냐'고 했더니 '갈비'라고 하더라. 단원들에게 갈비가 자랑이라고 하는데 자존심이 상하지 않느냐고 했다. 오케스트라를 자랑거리로 만들자고 했다."

그는 "예술의전당에서 청소년음악회를 하자는 제안이 와서 스텝들과 같이 의논해서, 청소년들이 용돈으로 입장권을 구입해서 올 수 있도록 2000원으로 했다. 영화는 표 사서 보는데 음악은 초대권으로 보려는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 그리고 청소년들이 모르니까 해설을 하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면서 "첫회 연주회부터 매진됐고 그 해 9차례 공연뿐만 아니라 6년간 모두 매진됐다"고 말했다.

유라시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성공 비결은?

a  지휘자 금난새씨.

지휘자 금난새씨. ⓒ 윤성효

1998년 유라시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만들어 '성공'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는 "포스코를 찾아가서 강당을 빌려 달라고 했더니 이미 대관이 되어 있는 상태에서 안된다고 했다"면서 "로비(현관) 높이가 17m로 유리로 되어 있었는데 공연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 곳을 빌려 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처음에 담당자는 거기서 공연이 되겠느냐고 했다. 유리로 되어 있어 '성당 같다'며 가능하다고 했더니 허락했다. 포스코는 포항제철에서 바뀐 회사인데 그때까지 이미지가 철모와 용광로였다. 이미지 변화가 필요했다. 음악회는 1999년 12월 30일 밤 10시에 시작했다. 2000년대를 바로 앞에 두고 있을 때였다. 베토벤 교향곡 9번을 연주했는데 1시간50분 걸렸다. 연주가 끝나니 2000년까지는 10분 정도 남았다. 1000명이 모였다. 연주가 끝나니 기립박수였다. 다들 집에 가려고 일어서는 줄 알았는데, 모두 대단했다는 반응이었다."

금난새씨는 "기업 이미지를 바꾸는 데도 도움이 되었던 것"이라며 "연주가들은 앵콜도 좋지만 다음 연주회를 언제 하느냐는 말을 듣는 것을 제일 좋아한다. 그 뒤 포스코 로비에서 베토벤 교향곡 9번을 모두 연주했고, 광양과 포항에서도 각각 두 번씩 해서 모두 13회 연주했다"고 말했다.

연주회를 들었던 청중들이 소감을 적어 내도록 했는데, 그는 "단원들은 신문에 비평가들이 어떻게 쓰느냐에 관심이 많았다"면서 "물론 그것도 중요하지만 청중이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중요하다. 청중들로부터 받은 글을 단원들에게 읽어주면서 많은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또 그는 "영국의 한 배우는 연극 공연이 끝나고 나면 뒤에 있는 조명기사한테 악수를 하고서 무대에서 내려온다고 했다. 그 말을 5년 전 듣고서 연주회 지휘가 끝난 뒤 바꾼 게 있다"면서 "대개 연주회가 끝나면 지휘자가 먼저 나가고 그러면 청중들은 지휘자가 나갈 때까지만 박수를 친다. 단원들은 박수소리도 듣지 못하면서 뒤에 쓸쓸하게 나온다"고 말했다.

"5년전부터 바꾸었다. 사전에 단원들과 약속했다. 연주가 끝나면 단원들이 서로 악수를 하고 그 다음에 나오도록 했다. 단원들이 다 나간 뒤에 지휘자가 무대에서 나왔다. 청중들은 지휘자가 나올 때까지 박수를 쳤다. 단원들은 월급도 많이 받지 못하는데 박수라도 나누어 가져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이후부터 매일 늦게 무대에서 나오는 지휘자가 됐다."

금난새씨는 "남이 나를 알아주기를 바랄 것이 아니라 거꾸로 나 때문에 그를 부자로 만들 수 있고, 나 때문에 그를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면 우리 사회는 건강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대학생들도 대학이 최고가 되어 내가 도움을 받는다는 생각보다 나로 인해 대학이 도움을 받는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지휘자 금난새 #유라시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창원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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