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 막고 눈감고 버틴 '리틀MB', 철퇴 맞다

역사의 뒤안길로 쓸쓸히 사라진 공정택 교육감이 남긴 것

등록 2009.10.29 18:37수정 2009.10.30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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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공정택 서울시교육감이 지난 10월9일 오전 서울시교육청에서 열린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공정택 서울시교육감이 지난 10월9일 오전 서울시교육청에서 열린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권우성


공정택 서울시교육감이 교육감직에서 물러나게 됐다.

대법원 1부(주심 이홍훈)은 29일 오후 2시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공정택 서울시교육감에 대한 상고심에서 '당선무효형'에 해당하는 벌금 15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이에 따라 공정택 교육감은 교육감직에서 물러나는 것은 물론 선거관리위원회에서 보전 받은 선거비용 등 28억5천여만원도 반환해야 한다.

불법 선거 운동 시비가 있던 지난해 7월부터 교장, 급식업자, 사교육업체 등으로부터 부정한 돈을 받은 사실이 줄줄이 밝혀지던 지난해 10월, 정치자금법과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기소되던 올 1월, 그리고 1심에서 유죄로 당선 무효형이 선고되던 3월, 이후 항소심에서 당선 무효를 재확인하던 6월, 마지막으로 "억울하다"며 대법원에 상고와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낼 때까지 고비마다 여론은 그의 사퇴를 요구했지만 그는 눈을 감고, 귀를 막았다.

국회에서, 교육계에서, 시민사회단체에서 사퇴 여론이 높았을 때 그는 버티기를 선택했다. 그동안 여론의 압도적인 반대에도 국제중을 설립하고, 자립형사립고를 허가했으며, 일제고사 반대 교사들을 해고했다. 그것도 모자라 자기 소신을 버리고 자율형사립고를 18개나 허용해 주는(전국 25개의 72%가 서울에 있음) 등 MB의 교육 정책을 앞장서서 실현하며 '리틀 MB' 또는 '교육계 MB(왕)의 남자'라는 닉네임까지 얻었다.

너무 큰 상처와 과제 남긴 교육감의 퇴진

그렇게 버티던 그에게 남은 것은 교육감직 박탈과 국민들의 차가운 눈초리뿐이다. 그가 늘 외치던 50년 교육자로서 명예도 모두 허공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애초부터 그의 불법과 부도덕성은 변명의 여지가 없어 보였다. 어떻게 교육대통령이라 불리는 서울교육 수장인 교육감이 사설학원장, 현직 교장, 급식업체 사장, 사학이사(장), 자립형사립고 협상 대상자 등에게 받은 돈으로 선거를 치르고 문제없다고 할 수 있는가?

비록 이 부분이 검찰의 봐주기로 결국 무혐의 처분 내지 무죄 선고를 받기는 했지만 이것만으로 교육 수장으로서 도덕적·교육적 명분은 사라져 버렸다. 이때 그나마 손톱만큼이라도 남은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 그는 교육감직에서 물러났어야 했다. 최소한 스스로 직무집행 정지라도 내렸어야 했고, 징계위원회에라도 회부했어야 했다. 국민 앞에 무릎을 꿇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빌었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런 후 법적으로 항소를 하든, 상고를 하든, 위헌 제청을 하든 했으면 지금처럼 비참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그 과정에서 반성은커녕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하여 주민의 대표로 선출된 교육수장이 아니라 MB의 임명직 교육 관료가 된 것처럼 MB 교육정책 추진에 앞장선 것은 두고두고 국민의 비난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

이번 공 교육감의 중도 퇴진은 우리 교육계에 너무도 큰 상처와 교훈, 그리고 과제를 남겼다. 그런데 돌아보니 공 교육감처럼 중도 퇴진한 교육수장이 한둘이 아니다.


지난해 10월 경북 초대 민선 교육감인 조병인 교육감은 사학재단 이사장으로부터 선거자금 1천만원을 비롯해 총 3천만원을 받은 것이 드러나 검찰에 의해 불구속 기소되면서 자진 사퇴했다. 오제직 충남교육감 역시 승진 관련 인사 청탁으로 뇌물 수수와 교육청 직원들을 동원한 불법 선거 운동 혐의로 불구속 기소되면서 사퇴했다.

파란만장한 대하소설 같은 대전 교육감 수난사

교육감 수난사는 이전부터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있었다. 2002년 조성윤 전 경기교육감은 처남이 돈을 받고 교육공무원들의 인사청탁을 받은 대가로 구속되어 실형을 선고받은 데 이어 고교 재배정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2004년 강복환 전 충남교육감은 지지 대가로 인사권을 위임키로 했다는 '인사권 밀약' 의혹을 사더니 인사 청탁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 기소돼 교육감직을 상실하였다. 그런데 우습게도 이 강복환 전 교육감은 지난 4월 29일 치러진 충남교육감 선거에 다시 출마했다. 코미디가 따로 없다.

오광록 대전교육감 역시 지역 교장 등에게 900만원 상당의 양주 270여 병을 선물하는 등의 사전선거운동을 벌인 혐의로 기소되어 2006년 대법원에서 벌금 150만원을 받고 당선이 취소되었다. 김신호 대전교육감은 2006년 어느 식당에서 있었던 지지자들의 모임에 참석해 지지를 호소하면서 식사비를 대신 지불하는 등의 불법 선거운동으로 기소되어 1심 재판에서 당선무효형을 선고받았다가 천신만고 끝에 항소심에서 벌금 80만원을 선고받아 교육감직을 유지할 수 있었다.

2004년 표동종 경남교육감은 재임 시 교원 인사와 관련해 8명으로부터 5천여만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되어 실형을 선고받았고. 이어서 교육감이 된 권정호 현 교육감은 상대 후보에 대한 허위 사실 유포 불법 선거운동으로 불구속 기소되었다가 대법원까지 가는 우여곡절 끝에 "(권교육감의 발언이 허위사실이지만) 허위성의 인식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위법성이 조각되어 무죄를 선고받음으로써 겨우 직을 유지할 수 있었다.

교육에 대한 불신, 정부와 청와대 책임도 크다

 공정택 교육감의 당선무효형을 확정한 대법원 판결을 환영하는 교육단체 기자회견이 열렸다.

공정택 교육감의 당선무효형을 확정한 대법원 판결을 환영하는 교육단체 기자회견이 열렸다. ⓒ 김도균


울산에서도 2005년 김석기 교육감이 학교운영위원 등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등의 선거법 위반으로 취임 하루 만에 구속됐는데, 그는 지난 1997년에도 교육위원 선거과정에서 뇌물을 준 혐의로 구속기소돼 대법원으로부터 징역 8월을 선고받고 직에서 물러난 바 있다. 결국 2007년 대법원에서 다시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두 번이나 교육감직을 상실하는 불명예 기록을 세웠다.

2008년 2월에는 현 김상만 울산교육감의 선거운동 과정에서 김 교육감 아들이 정보통신업자에게 돈을 주고 불법으로 휴대전화 문자를 이용한 사전선거운동을 한 혐의로 구속되어 재판을 받았다. 가족이 선거법 관련으로 벌금 300만원 이상의 형을 선고받으면 당선 무효가 되는데 이 사건은 법원이 사건은 병합하되 판결은 금품제공 벌금 150만원, 문자발송 징역 4월로 분리하여 내림으로써 겨우 교육감직을 유지할 수 있었다.

교육감 선거를 둘러싼 불법 선거운동 시비와 법정 소송, 그리고 교육감의 중도 하차는 너무 흔한 일이 되어서 국민들의 교육에 대한 불신이 하늘을 찌르고 있다. 교육계의 수장이 이 모양이니 교육 관료들, 일선 현장은 또 어떻겠느냐는 불신이 바로 그것이다. 가장 깨끗해야 할 교육계가 가장 추하다는 국민의 인식이 이런 현실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번 공 교육감의 불명예 퇴진은 이런 불신의 압권이다.

이런 불신을 초래한 것에는 청와대와 한나라당, 교과부, 보수적 교육단체들의 책임도 크다. 전교조 교사들의 시국선언에는 이들이 똘똘 뭉쳐 형사고발과 파면 해임을 주도하던 이들이 웬일인지 공교육감의 불법과 선고에는 침묵했다. 오히려 그에게 "물러날 정도는 아니다", "끝까지 법의 판단을 받아봐야 한다", "소신껏 해봐라" 등의 힘을 실어주는 발언까지 서슴지 않았다.

교육감 선거와 정당과의 관계, 제도적으로 정비해야

공 교육감의 중도하차 사태가 국민의 교육에 대한 불신만 키우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사람의 탓으로만 돌릴 것이 아니라 제도적 틀을 만들어야 한다.

먼저, 천문학적인 선거 비용의 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이다. 지난 서울교육감 선거에 사용된 비용이 무려 310억이라고 한다. 이번에 공교육감이 당선 무효를 선고받음으로 해서 국민 혈세 310억이 허공으로 사라진 것이다. 임기가 1년도 안 남은 상황에서 다시 선거를 하자고 하기도 민망하여 아마 선관위는 선거 없이 대행 체제로 내년까지 가는 것으로 결정할 것 같다. 한편으로 이 또한 부끄러운 일이다. 국민으로부터 선출된 교육계의 수장 없이 선출되지 않은 부교육감이 교육을 좌지우지해야 하는 이 현실이 말이다.

a  공정택 서울시교육감이 지난 10월9일 오전 서울시교육청에서 열린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국감 파행과 관련한 여야 의원들의 설전을 지켜보고 있다.

공정택 서울시교육감이 지난 10월9일 오전 서울시교육청에서 열린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국감 파행과 관련한 여야 의원들의 설전을 지켜보고 있다. ⓒ 권우성

후보별로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수십 억씩의 선거 비용을 지출하였다. 선거에 나온 후보들이 대부분 교육 현직에 종사하던 사람들이라 수십 억의 선거 비용을 마련하는 것이 쉽지 않다. 그런데 이들에게는 정치인들과 달리 후원회를 두거나 합법적으로 정치자금을 모을 수 있는 길이 없다. 오로지 자신의 돈으로만 선거를 치러야 하기 때문에 돈 선거, 대가성 유혹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할 것이다.

둘째는 정당과의 관계 정리 문제다. 현행 지방교육자치에관한법률은 교육감 선거에서 정당 공천을 배제하고 있으며, 최근 2년간 당원 신분을 가지고 있던 사람은 출마 자체가 금지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정당을 빼고 대규모 선거를 벌이는 것이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그리고 국민들은 이미 누가 어느 정당 성향이고, 어느 정당이 어떤 후보를 밀고 있는지 알고 있다. 지난 서울교육감 선거에서도 한나라당은 공정택 교육감을 지지했고,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등은 주경복 후보를 지지했다는 것을 모르는 이는 없다. 경기도의 김상곤과 김진춘 후보 역시 마찬가지다. 이 또한 중요한 판단 기준인 것도 부정할 수 없다.

사정이 이러한데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내세워 이를 금지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검토가 필요하다. 교육의 정치적 중립은 부정할 수 없는 중요한 가치다. 그러나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이라는 의미가 교육이 정권의 선전도구로 이용되지 않을 권리이고, 교육을 이용해 정권의 이익을 도모하는 것을 막자는 의미에서 재론의 여지가 충분해 보인다.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가장 앞장서서 지켜야 할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이 대통령이 임명하는 정치인이고, 특정 정당의 지지자 또는 당원들이 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시도교육감이라고 해서 안 될 이유는 없다고 할 수도 있다. 마치 모든 교원에게 업무와 관련하여 종교적 중립성이 요구되고 이를 어기면 징계를 받도록 되어 있지만, 교원에게 종교의 자유를 박탈하거나 특정 종교를 가진 교원은 교육감 선거에 출마를 금지하는 것이 말도 안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는 토론의 과제이고 국민적 합의를 거쳐야 할 문제로 보인다. 이미 국회에는 교육감 선거와 관련하여 정당 공천 또는 정당인의 출마 등과 관련된 선거법 개정안이 제출되어 있으니 이참에 광범위한 국민적 토론을 거쳐 제도적 합의를 이루어내야 한다.

당선 위한 불법 수단 정당화 안 된다는 선례 되야

셋째, 이번 공교육감 재판뿐 아니라 현재 진행 중인 주경복 교수와 관련되어 논란이 되고 있는 내용 중의 하나가 지방교육자치에관한법률에 의한 교육감 선거에 공직선거법과 정치자금법을 준용하는 문제다.

지방교육자치에 관한 법률과 공직자선거법, 정치자금법은 그 목적과 대상을 달리하는 법이다. 또 앞서 밝힌 바와 같이 교육감과 시도교육위원 선거에는 정당 공천이 배제되고 정당의 당원은 아예 입후보 자체가 금지되기 때문에 공직자선거법과 정치자금법을 그대로 준용하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어 보인다. 그렇다고 아무런 규정을 두지 않는 것은 더 문제다. 이번 불행을 기회로 삼아 교육감 선거와 공직자선거법, 정치자금법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지도 논의하여 제도적 정비를 해야 함이 마땅해 보인다.

이번 공 교육감 재판의 가장 큰 교훈은 "누구라도 불법 선거는 철퇴를 맞아야 한다"는 것이고, "아무리 당선이 중요하더라도 수단이 방법을 정당화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교육계의 깊은 불신을 초래한 이번 사태를 기회로 하여 다시는 이런 불행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교육가족 전체의 각성과 정치권의 제도적 정비가 반드시 필요하다.
#공정택 #당선무효 #대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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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육에 관심이 많고 한국 사회와 민족 문제 등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합니다. 글을 읽는 것도 좋아하지만 가끔씩은 세상 사는 이야기, 아이들 이야기를 세상과 나누고 싶어 글도 써 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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