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계고 학생이 바라본 '외고폐지' 논란

절망에서 벗어날 수 있는 희망의 불씨

등록 2009.11.02 10:16수정 2009.11.02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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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고폐지논란, 공부를 해야 한다는 핑계로 세상 돌아가는 일에 별 관심을 기울이지 않던 고2 학생으로서 정말 오랜만에 듣는 반가운 소식이다. 외고가 폐지 된다는 것은 상상도 해보지 않았던 일이다. 우리나라 국민 대다수가 그렇게 느끼겠지만 특히나 나 같이 외고를 준비했었던 학생들에게 외고는 이미 수능시험 이전에 맞보는 인생에 있어서 큰 관문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그런 외고가 폐지될 가능성이 있다니! 우리 일반계고 학생들에게도 희망의 불빛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가 외고 폐지에서 우리들 인생의 희망을 찾는 것인가?

 

외고합격의 70%는 부모님의 능력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다시피 나도 중학교 때 외고 대비를 했었다. 물론 어릴 때 부터 영어교육이다 뭐다 선행학습을 한 것은 절대 아니고, 중2 때쯤부터 동네에 외고입시로 유명하다는 종합학원에 다니게 되어 어쩌다 보니 외고대비를 하게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외고대비를 하면서 외고에 가기에는 너무 늦었다는 것을 점차 깨달아 갔다. 열심히 해서 일정 수준까지는 올라갈 수 있었으나 어릴 때부터 준비해 온 내공이 없었기 때문에 그 한계를 넘을 수 없었다. 반면 유치원 때, 혹은 초등학교 때부터 엄마의 학구열과 그에 따르는 발빠른 정보로 선행학습을 하였던 친구들은 외고에 합격했다. 내 주위에서뿐만이 아니라 전국적으로 이랬을 것이다. 외고 합격의 반 이상을 부모님이 좌우하는 것이다.

 

외고의 수월성 교육, 일반고의 위축성 교육

 

나와 같이 공부했던 친구들 중 몇몇은 외고에 합격하였고, 나는 일반계 고등학교에 왔다. 고1때까지만 해도 난 그들과 단지 다른 학교에 다니는 것일 뿐, 별로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고3을 앞둔 시점에서 나의 생각은 완전히 달라져 있다. 그들과 내가 언제 같은 교실에서 공부를 했었냐는 듯이 그들은 우리들에게 바라볼 수도 없는 존재, 원래 저런 존재, 아무리 발버둥쳐도 감히 따라가지 못할 존재, 한마디로 신적인 존재로 인식되어있다.

 

중3말 때 그들과 나의 실력차가 10정도였다면 지금은 아마 100, 아니 1000은 될 것이다. 실로 그럴 것이 우리가 수능을 공부할 때 그들은 수능의 수준을 뛰어넘는 교육을 받으니 말이다. 그러니 수능은 그냥, 일명 1 1 1(언어 수학 영어 1등급)로 들어갈 수밖에. 외고 스스로도 말한다. "우리는 글로벌 인재를 육성하기 위한 수월성 교육을 한다"고, 외고의 이러한 외침에 오늘도 우리 일반계고 학생들은 스스로를 위축시킨다. 그러고는 위로를 한다, '그들은 원래 그런 존재니까 뭐.' 

 

10년 후의 미래, 외고출신들의 사회주도

 

수능을 뛰어넘는 교육을 받는 외고 학생들이 세계무대로 뛰어나가서(대학도 외국대학으로) 글로벌적인 인재가 되면 차라리 좋을 것을,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일반계고 학생과 똑같이 수능을 보고, 한국의 명문대를 바라보며 한국사회에서의 출세만을 희망하는 경우도 많다.

 

더 큰 문제는 한국의 명문대학들이 적극적으로 이들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그것을 무릅쓰고 부단히 노력해서 명문대에 가서도 그곳에서 만난 외고 출신으로부터 위축당할 것이다. 실제로, 주위에서 일반계고 출신으로 sky에 간 사람의 말을 들으면, 대학에 입학하고 초기에 외고출신을 따라가는 것이 굉장히 벅찼다고 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취업을 할 때에도 똑같은 대학을 나온 외고출신과 겨루게 된다면 내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그들의 '외고출신'이라는 스펙 때문에 밀릴 가능성이 크다. 솔직히 나 같아도 똑같은 조건이라면 외고출신을 뽑을 거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10년 후의 미래, 생각만 해도 속상하고 절망이다. 사회적 성공의 경쟁구도 속에서도 우리들은 '그들은 외고출신이니까 뭐'라는 위로로 체념해야 하는 것일까.

 

이 모든 과정을 단적으로 정리하긴 뭐하지만, 굳이 정리해 본다면 "부모님의 능력으로 어릴 때부터 사교육을 많이 받은 학생들의 사회장악"이 돼 버린다. 실제로 이번 외고폐지문제가 불거진 원인 중에 하나가 사교육 문제이니 이는 우리 사회의 큰 병폐가 아닐 수 없다. 이번 논란이 사그라들기 전에 빨리 뿌리를 뽑아버려 이 큰 병폐를 차단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외고를 대신할 수 있는 좋은 대책을 이명박 정부가 내놓아서 한국사회가 하루빨리 '고등학생들이 절망하지 않으며 공부할 수 있는 나라', '모든 학생이 수월성 교육을 받는 나라'가 됐으면 한다. 

2009.11.02 10:16ⓒ 2009 OhmyNews
#외고 #외고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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