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플루 감염환자 하루 9000명 육박, 3시간씩 대기하는 넘치는 환자, 부족한 의료 인력, 병원 내 다른 환자들의 항의, 그리고 병원 내 감염 의료진 증가···.
신종플루 거점병원에서 근무하는 의료진들은 피곤하다. 사명감으로 환자를 진료하지만, 몸의 피로와 가슴 속의 답답함이 조금씩 임계점에 다다르고 있다고 한다. 정부가 3일 국가재난 단계를 최고 수준인 심각단계로 격상하기로 한 가운데 이들은 "의료인들의 사명감과 희생만을 요구하지 말고 정부가 공공의료 정책을 제대로 수립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오마이뉴스>는 지난달 30일 서울 영등포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사무실에서 신종플루 거점병원 의료진 7명을 만났다. 모두 서울과 경기도의 대학병원과 국립의료원에서 근무하는 이들이다. 이들은 익명을 전제로 신종플루 진료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이들은 우선 "인력과 시설이 부족해 거점병원이 제대로 된 병원의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부는 아니지만 일부 병원에서는 "신종플루를 진료했던 의료진이 곧바로 고위험군 환자가 있는 응급실이나 일반 병동에 투입되기도 한다"고 밝혔다.
한 의료인은 "몰려드는 신종플루 환자로 인해 정말 응급진료가 필요한 응급환자를 진료하지 못해 119에 환자 분산을 요청할 정도"라고 밝혔다. 또 다른 의료인은 "회사 경비까지 신종플루 진료소에 배치했는데도 넘치는 환자를 감당할 수 없다"며 "국가가 공익요원을 배치해 전화라도 받아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 국립의료원의 한 관계자는 "비싼 신종플루 진단비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은 병원에도 오지 못한다"며 "국가가 치료 약품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하는 등 초기 대응을 못한 만큼 신종플루 진단비를 무상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직원들이 임신도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그곳. 지금 신종플루 거점병원에서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을까. 거점병원에서 근무하는 7명의 의료진 이야기를 그대로 전달한다.
"갑자기 폭증한 환자들... 병원이 병원이 아니다"
A 병원 "사실 거점병원으로 지정되고 초기에는 하루 30~40명이 왔다. 그런데 10월 18일을 기점으로 갑자기 늘더니 이제 하루 평균 700~800명이 온다. 생각해봐라. 평소 외래환자가 3000명 방문하는데, 신종플루 때문에 하루 700~800명이 더 온다면 병원이 어떻게 되겠나. 병원이 감당할 수 없는 상태다.
아무리 어떻게 해봐도 인력 수급이나 교체가 제대로 안 된다. 어쨌든 병원이니까 환자를 보는데, 노동 강도가 너무 세다. 하루 12시간 일해도 쉴 수 있는 날이 없다. 신종플루 진료소에서 며칠 진료했는데, 집에 가면 아이만 셋이다. 놀이방에 있는 아이를 찾으러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늘 걱정이다."
B 병원 "우리 병원도 과부하 상태다. 어제 병원 공지를 봤더니, 전 직원 상대로 자원봉사에 나서달라는 호소문이 나왔다. 신종플루 검사 받겠다는 사람이 몰려 몇 시간을 밖에서 기다리다보니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아나.
열 있는 환자는 무조건 신종플루 검사소로 보냈는데, 이를 뚫고 그냥 외래 병동으로 가서 접수하는 사람들도 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몰리니까 환자들도 알아서 살길을 찾는 형국이다. 사실 우리 병원은 신종플루 대응 우수 병원인데, 인력에 대한 정부 지원이 정말 절실하다."
C 병원 "일반 환자와 신종플루 의심 환자가 섞이는 걸 막아야 하는데, 도무지 방법이 없다. 신종플루 검사에 많은 인력이 투입되다 보니, 진짜 응급 치료가 필요한 응급환자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고 있다. 119에 전화 걸어 다른 병원으로 응급환자를 분산시켜달라고 부탁할 정도다.
우리 병원 응급실에서 근무하는 간호사 두 명이 신종플루에 걸렸다. 모두 아이 엄마이고, 집에 나이든 고위험군 부모님도 있다. 집에서 격리를 당하는데, 병원에서는 공상처리도 안 된다. 근무하다가 병원에서 감염된 것인지, 아니면 지역사회 감염인지 확인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의심자는 감시 뚫고 외래병동으로, 병원은 119에 '협조' 요청"
B 병원 "우리 병원에도 중환자실에 입원한 신종플루 환자가 있었는데, 거기 전담하는 간호사가 신종플루 확진 판정을 받았다. 결국 중환자실 절반을 폐쇄했고, 그 간호사도 거기에 누웠다."
D 병원 "의료인들이 감염되지 않아야 한다. 그 의료인이 중환자실 진료하면 고위험군 환자에게 옮길 수 있다. 그런데, 정말 중환자실에 대한 뚜렷한 대책이 없다."
A 병원 "인력이 부족하다 보니 피해가 고스란히 모든 환자에게 돌아간다. 응급환자는 빨리 봐줘야 하는데, 현재는 많이 어렵다. 그러면 응급환자는 의료진에게 항의한다. 또 의료진은 육체적 피로에 정신적 스트레스까지 쌓이고... 그러면 또 환자에 대한 친절도가 떨어지고."
E 병원 "오늘 신종플루 진료를 봤던 의료진이 그 다음날 일반 병동 환자를 진료하기도 한다. 상황이 어쩔 수 없다. 환자는 폭증했고 의료진은 그대로이니 방법이 없지 않나."
B 병원 "신종플루 진료소 앞에서 대기하는 사람들 보면 불쌍하다. 날씨도 추운데, 새벽부터 마스크 쓴 채 땅바닥에 앉아 있는 사람을 보면 내가 입고 있는 옷을 다 벗어주고 싶은 심정이다. 다 열이 나는 사람들인데, 밖에서 몇 시간 동안 덜덜 떨고 있는 것 아닌가. 그런 걸 보면 병원이 병을 키우는 것 같다."
F 병원 "우리 병원 환자들도 다 밖에서 대기하는데, 마치 침묵시위 하는 것 같다. 진료비는 비싸고 몇 시간 동안 추위에 떨고."
A 병원 "드라마 <대장금>이나 <허준>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하다. 정말 '줄을 서시오!'라는 말이 입에서 맴돈다."
B 병원 "어쨌든 욕은 정부가 아니라 병원들이 다 먹고 있다. 컨테이너박스 등 진료소 설치 비용은 모두 병원이 지불했다. 정부는 거점병원 지정만 해놓고 아무런 대책이나 계획이 없다. 도대체 뭔가.
우리 병원은 인력이 너무 부족해서 응급실 앞에 있는 경비까지 신종플루 진료소에 투입돼 환자 응대를 하고 있다. 말 그대로 용역인 비정규직 사람들인데, 정말 열심히 한다. 그런데 국가는 해주는 게 하나도 없다."
"병원 경비까지 진료소 배치... 국가는 공익근무 요원이라도 배치를"
F 병원 "모든 직원을 동원해 신종플루 진료소에 배치하고 있다. 그런데 어차피 다른 병동에 배치돼 있는 인력을 빼다가 박는 방식이다. 그러면 다른 병동의 환자 서비스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임시 계약직이라도 뽑아서 인력난을 해결하려고 해도, 계약직들도 모집 자체가 안 된다."
A 병원 "우리나라에는 분명 병원 체계라는 게 있다. 그런데 이게 지금 무너졌다. 국가가 조금만 증상이 있어도 거점 병원으로 가라고 하지 않나. 감기 환자를 3차 의료기관인 대학병원에서 진료하고 있는 형국이다. 인력 수급이 안 되는데, 정부에서는 해주는 일이 없다."
F 병원 "얼마 전 보건복지가족부 직원이 병원을 찾아왔다. 관리감독 하러 왔을 텐데, 직원들이 뭔가 하소연을 하려 하니까 그냥 도망가더라. 자기들도 뭔가 대책이 없는 것이다. 당국이 매일 확인하는 건 '오늘 신종플루 환자 몇 명 발생했냐'는 것뿐이다."
D 병원 "신종플루가 더 유행이 되면 어떻게 대응을 해야 한다는 정부 지침이 있어야 하는데, 우리 정부는 이게 없다. 국가가 최소한 인력에 대해서는 도움을 줘야 한다. 약 타다 주고, 환자 이름 불러주고, 전화라도 받아주는 인력을 보충해주면 좋겠다."
B 병원 "병원에 여성 직원들이 많은데, 빨리 임신을 원하는 사람이 있어도 할 수가 없는 상황이다. 지금 상황에서 아이가 생기면 큰일 나겠구나 하는 위기감이 있다."
F 병원 "국가 의료기관이다 보니, 신종플루 검사비가 다른 병원에 비해 싸다. 그러다보니 전화로 검사비가 얼마냐고 묻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그렇게 묻는 사람들은 거의 검사비도 댈 수 없는 어려운 사람들이다. 우리는 목소리만 들어도 '아, 이 사람은 돈이 없어서 못 오겠구나'하는 느낌이 든다. 결국 진짜 검사를 받아야 하고 치료를 받아야 사람들은 병원에 오지 못한다."
D 병원 "신종플루 검사비를 무료로 해야 한다. 국가의 준비와 대응이 늦어 문제가 커졌는데, 모든 비용을 개인에게 부담시키고 있다. 당장 무상진료를 해야 한다."
2009.11.03 08:51 | ⓒ 2009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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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서 떠는 환자들... <대장금> 방불  인력 태부족... 공익이라도 배치해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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