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 없애야 말 된다 (264) 물질적

― '물질적인 사정'과 '가난한 주머니'

등록 2009.11.03 09:35수정 2009.11.03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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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질적인 사정

 

.. 이제 너에게 분명히 말하지 않을 수 없는 사정이 있는데, 최근 며칠 물질적인 사정이 너무 어렵다는 거야 ..  《빈센트 반 고흐/박홍규 옮김-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편지》(아트북스,2009) 573쪽

 

 '분명(分明)히'는 '똑똑히'나 '제대로'나 '반드시'로 다듬고, '사정(事情)'은 '일'로 다듬습니다. '최근(最近)'은 '요사이'나 '요즈음'이나 '요'로 손보고, "어렵다는 거야"는 "어려워"나 "어렵단다"로 손봅니다.

 

 ┌ 물질적(物質的) : 물질과 관련된

 │   - 물질적 보상 / 물질적인 풍요로움 / 물질적인 후원도 좋지만 더 중요한 것은

 ├ 물질(物質)

 │  (1) 물체의 본바탕

 │  (2) '재물'을 달리 이르는 말

 │   - 온갖 물질을 탐내다 / 물질에 욕심을 내다

 │  (3) [물리] 자연계의 구성 요소의 하나

 │  (4) [철학] 감각의 원천이 되는 것

 │

 ├ 물질적인 사정이 너무 어렵다

 │→ 돈 사정이 너무 어렵다

 │→ 살림살이가 너무 어렵다

 │→ 돈이 없어 너무 어렵다

 │→ 돈이 바닥나 너무 어렵다

 └ …

 

 돈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오늘날입니다. 사랑을 하려 해도, 아이를 키우려 해도, 집살림을 꾸리려 해도, 학교를 다니려 해도, 옷을 입거나 밥을 먹으려 해도 언제나 돈입니다. 그리고, 돈이 없으면 길거리에서 떨꺼둥이가 되어야 합니다.

 

 돈이 있으면 힘이 뒤따릅니다. 돈이 없으면 힘이 없습니다. 돈이 있으면 못생기거나 못나도 봐주고, 돈이 없으면 그예 더 모질게 다루어지거나 내동댕이쳐집니다. 돈으로 사람값을 매기고, 돈으로 집값을 따지고, 돈으로 책값을 봅니다.

 

 그런데, 온통 돈으로 굴러가는 이 세상이요 이 흐름이요 이 물결이건만, 정작 돈을 '돈'이라 말하는 일은 매우 드뭅니다. 화폐니 재화니 재물이니 경제적이니 물질적이니 하면서, '돈' 아닌 다른 옷을 잔뜩 입힙니다.

 

 국어사전을 들여다보니 '물질' (2) 뜻으로 '재물(財物)'을 달리 이르는 말이라는 풀이가 달립니다. 그러면 '재물'은 무엇일까요? 국어사전을 다시금 펼치면, "돈이나 그 밖의 값나가는 모든 물건"이라고 풀이합니다. 그러니까, '재물'이란 다름아닌 '돈'이나 '돈 되는 물건'을 가리키는 셈이고, '재물'이든 '물질'이든 한 마디로 하자면 '돈'을 가리키는 셈입니다.

 

 ┌ 돈이 떨어져 몹시 쩔쩔매고 있어

 ├ 살림돈이 없어 아주 허덕이고 있어

 ├ 먹고살 돈이 한푼도 없어 무척 힘들어

 └ …

 

 돈은 좋지 않습니다. 그러나 돈은 나쁘지 않습니다. 돈은 꼭 좋지 않으나 꼭 나쁘지 않습니다. 언제나 나쁜 돈이 아니요, 언제나 좋은 돈 또한 아닙니다. 이는, 책도 마찬가지요 꽃도 마찬가지이며 밥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엇이든 알맞춤하게 있을 때가 가장 낫거나 좋고, 무엇이든 알맞춤하게 다스리면서 즐길 수 있어야 가장 낫거나 좋을 뿐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돈이든 옷이든 집이든 이름이든 힘이든 무엇이든, 알맞춤하게 펼치거나 다스리거나 나누거나 즐기지 못합니다. 마구 휘두릅니다. 함부로 휘젓습니다. 제멋대로 휘감아 놓습니다. 나 스스로 기쁜 길을 걷고, 내 이웃과 반가운 길을 찾으며, 서로서로 흐뭇한 길을 마련하는 데에는 너무 젬병입니다.

 

 말다운 말 한 마디 찾는 데에는 거의 눈길을 두지 않습니다. 생각다운 생각 한 가지 품는 데에는 거의 힘을 쏟지 않습니다. 삶다운 삶 한 자락 붙잡는 데에는 그리 눈길이 안 가는 듯합니다. 즐기는 말, 즐기는 생각, 즐기는 삶에서 지나치게 멀리 떨어져 버리고 맙니다. 사랑스러운 말, 사랑스러운 생각, 사랑스러운 삶에서 자꾸자꾸 동떨어져 버리고 맙니다.

 

 나부터 아름답게 살리는 말이요, 나부터 아름답게 가꾸는 생각이요, 나부터 아름답게 즐기는 삶입니다. 멋부리는 말이 아닙니다. 멋내는 생각이 아닙니다. 멋져야 하는 삶이 아닙니다. 그러나, 내 발자국을 차근차근 돌아보지 못해요. 내 발자취를 싱그럽게 헤아리지 않아요. 내 발걸음을 튼튼하게 추스를 뜻이 없어요.

 

 ┌ 물질적 보상 → 돈으로 갚기

 ├ 물질적인 풍요로움 → 돈이 넉넉함 / 돈이 많아 넉넉함

 └ 물질적인 후원도 좋지만 → 돈으로 도와줘도 좋지만

 

 저한테는 돈이 넉넉하지 않습니다. 저한테는 돈이 늘 모자랍니다. 그래도 어찌어찌 잘 버티는지 잘 사는지, 아무튼 아이까지 낳아 키우고 있습니다. 제 가난한 살림을 보태어 주는 벗님이 있고 길동무가 있으며 피붙이가 있습니다. 언젠가 우리 형은 저한테 '어떤 사람은 돈이 있고 어떤 사람은 시간이 있다'는 말을 들려주었습니다. 이 말마디를 곱씹어 보면, 어떤 사람한테는 사랑이 있고 어떤 사람한테는 믿음이 있다는 셈이 될 테고, 어떤 사람한테는 뜻이 있고 어떤 사람한테는 일이 있다는 셈도 되겠지요. 어떤 사람한테는 아픔이 있고 어떤 사람한테는 아픔을 달랠 손길이 있을 테고요.

 

 ┌ 물질적인 후원도 좋지만 더 중요한 것은

 │

 │→ 돈으로 도와줘도 좋지만 더 중요한 대목은

 │→ 돈을 보태 주어도 좋지만 이보다는

 │→ 돈을 베풀어 주어도 좋지만

 └ …

 

 사랑을 받아 보지 못한 가운데 사랑을 나누기란 힘들다고 하는 말을 귓결이 아닌 마음결로 받아들이기는 퍽 힘들었습니다. 평화를 누려 보지 못한 가운데 평화를 배우거나 깨닫거나 이루려 애쓰기는 힘겹다고 하는 말을 귓등이 아닌 몸뚱아리로 헤아리기는 꽤 벅찼습니다.

 

 고작 백 해가 되기 어려운 짧은 삶에 걸쳐, 우리들은 얼마나 많은 일을 치를 수 있겠습니까. 우리들은 얼마나 많이 깨닫고 알면서 슬기롭고 아름다운 쪽으로 접어들 수 있겠습니까. 스스로 좁은 우물에 갇힌 채 제자리걸음이 아닌 고인 물이 되어 썩기만 되풀이하지 않겠습니까.

 

 돈이든 마음이든, 사랑이든 뜻이든, 생각이든 넋이든, 말이든 글이든, 나누려 하는 몸짓이 있어야 합니다. 함께하려는 움직임이 있어야 합니다. 어깨동무하려는 매무새가 있어야 합니다. 처음에는 모르거나 잘못 알 수 있을지라도, 꾸준히 지켜보고 살펴보고 어루만지는 가운데, 나 혼자 걷는 길이 아닌 내 이웃과 손을 잡고 걷는 길로 나아가야지 싶습니다.

 

 옳고 바르게 살아가는 길을, 옳고 바르게 생각하는 길을, 옳고 바르게 말하는 길을, 나부터 꿋꿋이 걷되, 나 혼자만이 아니라 내 이웃과 함께 걸어야지 싶습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2009.11.03 09:35ⓒ 2009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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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 #적的 #우리말 #한글 #국어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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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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