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정, 1억 제시하며 아들 문제 넘어가자 해"

[20대 전태일을 만나다 '동행'⑤ ] 전태일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를 만나다

등록 2009.11.05 14:51수정 2009.11.06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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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11월 13일 서울 동대문 평화시장에 이름도 없는 노동자 한 사람이 자신의 몸에 불을 붙였다. 그는 "근로기준법을 지켜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외치며 달리다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라는 말을 남기고 숨을 거둔 전태일이다. 그는 당시 한국 사회 노동자의 현실을 고발하고 그것을 바꾸기 위해 마지막 수단인 죽음을 택했던 것이다.

 

전태일 열사의 죽음은 한 개인이 자신의 삶을 비관하고 자살한 삶이 아니었다. 그의 죽음은 한국 노동운동의 역사를 다시 쓰는 계기가 되었다. 1970년 동대문 평화시장 일대와 그 주위 일대 노동자들이 만든 청계피복노동조합을 시작으로 70년 당시 2500여 개 달하는 노동조합이 탄생하며 노동자의 목소리가 하나의 빛이 되어 세상을 바꾸는 목소리가 되었다.

 

그리고 이 사건은 노동자 문제에 대해서 침묵했던 지식인과 학생들에게도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리하여 그들은 "대학생 친구 하나 있었으면"하는 전태일 열사가 남긴 말에 죄책감을 느끼며 전태일의 죽음 이후 거리로 나와 세상의 부조리에 맞서기 시작했다.

 

청계피복노조의 영원한 어머니 이소선

 

a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노동자 학교' 이소선 여사 강연회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노동자 학교' 이소선 여사 강연회 ⓒ 배성민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노동자 학교' 이소선 여사 강연회 ⓒ 배성민

 

11월 4일 7시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노동자 학교' 주최로 전태일 열사 어머니 이소선 여사의 강연회가 지역본부 대강당(2층)에서 진행되었다. 원래 이 강연은 '노동자 학교'라는 노동자들을 위한 강연이지만, 전국노동자대회 실천단 '동행' 단원들도 이소선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고자 강연에 참석했다.

 

얼마 전 서울에서 '20대 전태일을 만나다' 서울지역 참가단에서 활동하는 친구의 블로그에 글이 올라왔다. (서울지역에도 부산지역 '동행'과 같이 대학사회에서 전태일 열사 정신을 기리고 11월 8일 전국노동자대회에 참석하는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글 내용은 10월 30일 남양주 모란공원에 안치되어 있는 전태일 열사의 묘를 참배를 하고 이소선 여사를 만나려고 했지만 못 만났다는 것이었다. 당시 몸이 편찮으셔서 학생들과 만나지 못했다는 글이었다. 이 글을 보니 11월 4일에 부산에서 열리는 이소선 여사의 강연회도 취소될 것만 같았다.

 

"내가 배운 것도 없고 여기 앉아 계신 분보다 모르는 게 참 많습니다. 하지만 열심히 활동하는 부산 민주노총 동지들이 오라고 하니 내 몸이 아파도 안 올 수가 있나. 내 몸이 아프니 짧게 할 테니까 할매 말 잘 들어주소."    

 

이소선 여사는 몸이 좋지 않았지만 부산지역 동지들을 만나기 위해 부산까지 내려왔던 것이다. 우려했던 것과 달리 강연 내내 시종일관 웃음을 잃지 않고 농담을 해 청중들의 폭소를 자아내게 하는 등 가슴 아픈 아들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나가셨다.

 

"태일이는 별난 사람도 아니고 특별한 사람도 아니다"

 

a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 ⓒ 배성민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 ⓒ 배성민

 

대학교 1학년 때 <전태일 평전>을 처음 접했을 때 정말 전태일 열사는 특별한 사람이고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먹고 살기도 바쁜데 집에 가는 왕복 차비를 털어 밥을 굶는 어린 노동자에게 풀빵을 사주고, 여러 사람의 아픔을 방관하지 않고 직접 행동하여 바꾸려고 바보회/삼동친목회 등의 단체를 만든 점, 그의 죽음이 노동운동 역사를 바꾼 점 등 나에게 전태일은 특별한 사람이었다.

 

"태일이는 별난 사람도 아니고, 특별한 사람도 아니고, 대단한 사람도 아니여. 조금 다른 게 있다면 사람을 정말 좋아하더라고. 그거 말고는 다 똑같어. 23살이면 내 눈에도 아직 애긴데 뭘. 대단하지 않아. 사람을 무척 좋아해서 이렇게 죽음까지 간 거지."

 

이소선 어머니는 전태일 열사를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고 했다. 왜냐하면 사람을 좋아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했다. 단지 무척 좋아해서 타인들의 아픔을 자기가 다 감내하고자 했던 게 죽음까지 이르게 된 원인이라고 했다.

 

"지가 어린 여공들이나 노동자들 아픔을 해결하려면 살아서 해야지. 참 그때는 안 죽고 살아서 할 수는 없던가 라는 생각이 들었소이다. 죽으면 무슨 소용인가 싶기도 했고. 근데 친구들이랑 같이 일하던 노동자들 만나보니 그게 아니데. 태일이가 죽고 싶어서 죽은 게 아니라는 게 이해가 되더만… 그래도 참…."

 

"엄마 다른 생각하지 말고 내 말하는 거 들으세요"

 

a  청계피복노조 위원장을 했고, 3년 전 전태일기념사업회 사무국장을 맡았던 황만호씨도 이소선 여사 강연회에 참석해 청계피복노조에 대해 짧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청계피복노조 위원장을 했고, 3년 전 전태일기념사업회 사무국장을 맡았던 황만호씨도 이소선 여사 강연회에 참석해 청계피복노조에 대해 짧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 배성민

청계피복노조 위원장을 했고, 3년 전 전태일기념사업회 사무국장을 맡았던 황만호씨도 이소선 여사 강연회에 참석해 청계피복노조에 대해 짧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 배성민

 

"태일이 분신하고 병원 실려 갔을 때 계속 물을 달라고 했어요. 근데 의사 샘은 물주면 불길이 더 빨리 오른다고 물 못 주게 하더라고. 그래서 내가 물수건을 입에 대주었지. 그리고 몸이 더 팔팔 끊는데 보고 있을 수 없어 의사 샘한테 화를 좀 낮추는 거 없냐고 물었더니 그 약이 당시 2만 7천원 한다더라고. 2만 7천원이면 우리가 그때 살던 무허가 집 팔아도 될깡 말깡 하는데 암튼 그거 팔아서 해준다고 했지. 근데 의사가 저기 같이 온 근로감독관이랑 얘기해라고 하디만. 근데 그 감독관이 날 밀치고 가면서 도망가는기라."

 

아들을 살리려고 이소선 여사는 의사들에게 사정사정 했다 하지만 전태일의 몸은 점점 뜨거워졌고 치료할 수 없음을 안 그는 어머니에게 당시 자신이 느꼈던 평화 시장 노동자들의 현실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평화시장 노동자 이야기 생략) 절대적으로 우리나라에서 돈 있는 사람이 사장되고, 노동자는 평생 사장들에게 착취 받는 노동자로만 살게 되요. 우리 노동자들은 저들이 원하는 부속품 밖에 안돼요. 엄마, 미래에 사장들이 노동자들에게 쇠고랑을 채워 일 시키는 그런 세상이 올 것 같아요. 이런 세상이 올 수 없게, 노동자들이 행복한 세상이 되게 엄마가 노동조합도 만들고 제 뜻을 지켜 주실 거죠?"

 

이소선 여사는 아들의 부탁에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고 한다. 심지어 아들이 점점 죽어가고 있다는 생각에 다리가 떨렸다고 한다. 이런 이소선 여사의 모습에 전태일 열사는 "만약 엄마가 내가 부탁한 거 안 들어주시면 하늘 나라 위에서 안 볼 거에요. 엄마 다신 한번 부탁할게요. 크게 대답해주세요. 나 이제 곧 죽을 것 같아요" 라고 말했다. 이러자 이소선 여사는 병원이 떠나갈 정도의 큰 소리로 "꼭 지킬게! 내가 할게"라고 말했다고 한다.

 

"중앙정보부에서 1억 원 제시하더라"

 

전태일의 죽음 이후 어머니는 중앙정보부에 끌려가서 협박을 받기도 했다고 했다.

 

"처음에 중앙정보부에서 천만 원 줄 테니 전태일의 죽음에 대해서 조용히 넘어가자고 하더라고. 내가 곰곰이 생각 보니 내 아들 팔아서 남편도 없는데 내 혼자 잘 먹고 잘 살 순 없더라고. 그래서 중앙정보부 직원한테 버럭 화를 내며 당장 나가라고 그따위 소리 다시는 하지 마라고 했다."

 

이소선 여사는 아들과 마지막으로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중앙정보부의 협박을 이겨내고 아들의 죽음을 온 세상에 알리는 일에 평생을 받쳤다.

 

"천만 원 준다는 거 말고 별난 압력이 다 들어왔어. 그거 다 이야기 하면 여러분 밤새야 될낀데? 짧게만 얘기 하지. 어느날 화장실에 갔는데 누가 날 덮치더라고. 어디 끌고 가느냐고 하니 가보면 안다며 그냥 내 입을 막고 끌고 갔어. 암튼 눈 떠보니 창문도 없고 거울 딱 하나 있는 지하실에 도착했더라고. 그 지하실에 가보니 한 사람이 있었고 그 사람 책상 위에는 아파트 34평짜리 집문서랑 내 이름으로 된 1억 원짜리 은행 통장 등이 있었어. 그 사람이 그것 중에 하나 고르고 이제 아들 문제 조용히 넘어가자고 하는 기라. 딱 잘라 계속 거부했지. 내가 어찌 아들을 팔 수 있겄소."

 

"우리 모두 하나로 뭉쳐야 해!"

 

a  민주노총 부산본부 김진숙 지도위원 "어머니 고맙습니다!"

민주노총 부산본부 김진숙 지도위원 "어머니 고맙습니다!" ⓒ 배성민

민주노총 부산본부 김진숙 지도위원 "어머니 고맙습니다!" ⓒ 배성민

이소선 여사는 전태일 열사의 죽음에 대한 것과 그 이후 자신이 청계피복노조에서 활동한 일들이나 중앙정보부에서 여러 차례 압박을 받은 사건까지 이야기하였다.

 

강연 끝나고 참가자들이 질문을 했는데, <소금 꽃 나무>의 저자이자 86년 한진중공업 해고자이며, 현재 민주노총 지도위원으로 활동하는 김진숙 선생님이 짧게 이야기를 하셨다.

 

"저는 86년 한진중공업에서 해고된 노동자입니다. 20년이 더 지났지만 유일하게 저만 아직 복직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 주에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에서 부당해고 판결이 났습니다. 24년 만에 판결이 난 것입니다. (청중들 박수) 어머니가 투쟁하셔서 젊은 사람들이 덕 보고 사는 것 같아 죄송하지만 정말 고맙습니다. 지금 어렵게 투쟁하고 계시는 부산 센텀병원 간병노동자, 용산참사 철거민 유가족들도 시간이 흘러 역사적 판결이 날 것이라고 믿습니다. 어머니, 건강하시고 매우 고맙습니다."

 

끝으로 이소선 여사는 "하나가 안 되면 절대 안 돼. 앞으로 이명박이가 어떻게 또 할지 모르는디 우리가 흩어져서 서로 지 살길 가면 안 되는 기라. 하나가 되어서 싸우는 길 밖에 없는기다!" 라고 하며 강의를 마무리 하였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09.11.05 14:51ⓒ 2009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다음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이소선 #전태일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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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 부산본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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