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뱃속에도 아들씨가...' 삼베 같은 인생들

비문해 엄마들의 자서전 발간

등록 2009.11.05 16:02수정 2009.11.06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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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서전발표식 고운 한복 입으신 비문해 어머니들 ⓒ 청노평생교육센터

▲ 자서전발표식 고운 한복 입으신 비문해 어머니들 ⓒ 청노평생교육센터

올해의 작품발표회는 여러가지로 뜻 깊다. 왜냐하면 단순한 작품발표만이 아니라 비문해 어르신들 자서전들도 지자체에서 지원하는 1인 1책 펴내기를 활용해서 발간을 했기 때문이다. 전시기간도 처음 계획된 1주일에서 더 연장하기로 했다.

 

발간기념 행사에서 한 분이 고운 한복을 입고 눈을 적시며 소감을 말하셨다.

 

"70세가 되어서 글을 배운다는것이 참 영광스럽고, 이렇게 책까지 발간되어 너무 고맙고 기쁘고 그리고 글이 부끄러워 미안합니다"라고 하셨다.

 

비문해 어르신들 자서전을 읽어보니 내용들이 참 소박하고 정겹다. 20세에 시집을 가서 첫 아이를 낳자마자 바로 군대를 간 남편이 복무중 사망해 유복자인 아들을 낳고 평생을 그렇게 사신 김정순 어머니는 '꽃을 사랑하거든 꽃이 되어라'는 책을 발간하셨다.

 

'아무리 공부를 해도 받아쓰기를 하면 100점을 못 받는다. 잘해보려 해도 뇌세포가 혼자 애를 쓰다가 죽어버린다'에선 천진무구한 동심이 느껴져 절로 웃음이 나왔다. 또한 ' 70평생 못 배운 글을 이제야 배우니 너무 좋다. 말도 안되고 쓸 줄 모르는 글들이 책이 되어 나와 너무 행복하면서도 미안하다는 진솔한  글귀는 절로 마음을 숙연하게 만든다.

 

그리고 <내 생애 가장 큰 행복>이란 책과 <그 해 겨울은 따뜻했네> <내 뱃속에도 아들씨가 있었네>는 내용은 참 정겹다. 문학적인 기법과 세련된 문장은 아니지만 살아온 체취가 진솔한 무명, 삼베처럼 그렇게 드러나 있다. 

 

선도 안 보고 사진만 보고 시집을 가신 어머니의 애환과 내리 딸들만 줄줄이 낳아 어른들로부터 아들씨가 아예 심어질 수 없는 뱃속이라고 구박을 당하시다 아들을 낳고 감개무량하신 심정이 절절히 있는 그대로 표현된 글들도 참 진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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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서전 발간되어 전시된 책들 ⓒ 청노평생교육센터

▲ 자서전 발간되어 전시된 책들 ⓒ 청노평생교육센터

어떤 분은 비문해반에서 공부를 하다가 여름방학이 되었는데도 똑같이 평소와 다름없이 공부하러 오셨다가 "아차! 오늘부터 방학이었지!" 하고 되돌아가신 에피소드를 기록해 절로 웃음이 나왔다.

 

요즘 사람들이 행복의 기준으로 삼는 것과는 다소 거리가 있을지 모르지만, 이 자서전들에는 오직 첫째도 가족, 둘째도 가족, 셋째도 가족을 위해 살아오신 이 땅 엄마들의 숨결들이 살아있다. 비록 70세에 글을 깨쳐 문장이 다소 서툴지만은 우리들이 잃어가고 있는 그러한 따스한 심성들이 고운 단풍처럼 잔잔히 깔려있다.

 

우리들이 이 다음 한 세상 다 산 뒤 꼽을 수 있는 행복은 무엇일까?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가족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이 땅의 여자들이 과연 몇 이나 될까?

 

때로는 약점과 모자란 점들이 그대로 보이지만, 그래서 마음에 오히려 약이 되고 모자란 곳들은 우리들이 정감으로 채워가면서 읽을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준다. 꼭 문학을 좋아하거나 전공하지 않아도 이렇게 삶의 향기들을 남기어 나눈다는 것이 참 아름답다.

2009.11.05 16:02 ⓒ 2009 OhmyNews
#자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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