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복대 정상의 첫눈햇님에게 쫓겨 만복대 꼭대기로 올라간 첫눈. 2009년 산촌 지원사업인 산마늘 재배지를 물색하러 시랑헌 곳곳을 뒤지면서 고개를 들어 처다보니 만복대의 첫눈이 추억의 세계로 유혹한다.정부흥
▲ 만복대 정상의 첫눈 햇님에게 쫓겨 만복대 꼭대기로 올라간 첫눈. 2009년 산촌 지원사업인 산마늘 재배지를 물색하러 시랑헌 곳곳을 뒤지면서 고개를 들어 처다보니 만복대의 첫눈이 추억의 세계로 유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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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과 중학교 2학년
첫눈에 얽힌 사연은 누구에게나 한 두 가지 있기 마련이다. 엊그제 고등학교 졸업 40주년 기념 행사에 참가했으니 내 첫눈과 얽힌 사연은 고등학교 졸업으로부터도 5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보통 때는 잊고 살아가지만 가슴 한 켠에 접어 간직한 아련한 아픔이고 소중한 추억이다. 이성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일고 턱 주변에 거뭇거뭇한 수염이 한 두 개씩 돋는 그 때는 모든 것이 가능이고 희망이었던 것 같다.
국민학교 동창생이었던 사촌누나가 친구와 같이 우리 집에 왔다. 나를 만나보고 싶다는 친구의 요청 때문이었단다. 부모님께 혼날세라 집 뒤의 동산으로 안내했다. 누나는 자연스럽게 우리들의 대화 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45년 전 일이지만 그 때 무슨 얘기들을 했는지 생생하다. 한 달에 한번 정도 만나 서로 공부의 진도도 점검해주고 읽은 책의 내용에 대해서도 토론하기로 했다.
다음에는 유동에 있는 토끼탕집에서 만나기로 했다. 당시 나는 부모님께 걱정을 끼쳐드리는 애가 아니었지만 사건이 사건인지라 어머님께 자초지종을 말씀 드리고 토끼탕 2인분 값을 부탁드렸다. 어머님은 토끼탕 값을 내 손에 쥐어 줄 수 없었다. 그 당시 우리 집 형편을 잘 기억하고 있다.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6년 동안 버스요금을 아끼려고 걸어서 등교한 경우도 많았다. 광주시 서쪽 가장자리의 집에서 동쪽 끝에 있는 학교까지는 먼 길이었다.
걔가 먼저와 식당 안에서 기다린다면 큰 낭패인지라 일찍부터 토끼탕집 앞에서 기다렸다. 약속시간 5분 정도 전에 걔가 멀리서 우산을 돌리면서 나타난다. 달려가 돌려세우면서 그 식당은 오늘 문을 닫았으니 걷으면서 얘기하자고 했다.
할 얘기가 많았는지 아니면 춥고 배고픈 것을 참고 말없이 걸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지만 6시에 시작한 데이트는 9시가 되어서도 걷기를 계속하고 있었다. 사직공원 주변에 이르자 강한 바람과 함께 진눈깨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걔가 가져온 우산을 받쳤지만 월산동에 이르자 나의 바지는 무릎까지 완전히 젖었다. 걔는 치마를 입었었다.
만두와 찐빵 집이 유달리 눈에 띈다. 연탄난로 연통으로 하얀 연기가 나오고, 진열장의 만두와 찐빵에선 김이 모락모락 나고 있었다. 처처(處處)가 걔와 내가 언 몸을 녹일 곳이고, 저녁부터 주린 시장기를 면할 곳이다. 진눈깨비는 저녁이 깊어지자 함박눈으로 변했다. 절반은 얼고 절반은 녹아 질퍽거리는 아스팔트 길을 따라 걷고 또 걸었다
떨리는 심한 추위를 줄이려고 우산 속에서 걔의 어깨 위로 올린 나의 오른팔은 그녀의 느낌을 전해온다. 충분히 강했다. 두 번의 만남이었지만 내 생애 첫 번째인 걔와 만남의 추억은 인생의 나침반이 되어 기쁠 때에도 슬플 때에도 살며시 고개를 내민다. 아리지만 달콤한 추억이다.
지금까지 45년을 홀로 간직해 온 나만의 소중한 추억이지만, 이제 나이 육십이 되어 시랑헌에서 첫눈을 대하고 보니 유언하는 심정으로 그 때로 되돌아가 고치고 싶은 부분을 토로하고 싶다.
그 때 나에게 다가가 만 원짜리 지폐 한 장만 쥐어 줄 수 있다면…
2009.11.06 10:48 | ⓒ 2009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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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덕연구단지에 30년 동안 근무 후 은퇴하여 지리산골로 귀농한 전직 연구원입니다. 귀촌을 위해 은퇴시기를 중심으로 10년 전부터 준비했고, 은퇴하고 귀촌하여 2020년까지 귀촌생활의 정착을 위해 산전수전과 같이 딩굴었습니다. 이제 앞으로 10년 동안은 귀촌생활의 의미를 객관적인 견지에서 바라보며 그 느낌을 공유해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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