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갑내기 오바마보다 행복하면 되지 뭐

[2010有감⑥] 지천명! 흰머리에 때론 좌절해도 젊게 살련다

등록 2009.11.24 14:22수정 2009.11.24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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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근속 표창 한 학교에서 20년 동안 동고동락했던 동료 교사 ⓒ 박병춘


지난해 12월이었다. 학교에서 20년 근속 기념식을 한다는 공고가 났다. 전 직원 80여 명 가운데 네 명이 20년 교직 동기였다. 실감이 나지 않았다. 어느새 20년이라니! 세월 가는 줄 모르고 지냈는데 막상 20년 근속상을 받고 나니 지난 세월을 실감했다. 우리 셋의 공통된 느낌이었다.


스물여덟 살에 교직에 들어서 누구보다 젊게 살았다. 더구나 사립 인문계 고교 한곳에서만 생활하다 보니 주로 고교생들과 호흡했다. 상당수 제자들이 졸업을 하고 나면 소주·맥주를 들고 찾아온다. 가끔은 폭탄주를 마시며 사는이야기를 나누고 노래방에 들어가 젊은 제자들과 동화되곤 했다.

30대에는 20대 초중반 제자들과 동화되고, 40대에는 20대 중후반부터 30대초반 제자들과 어울리고, 학교에서는 언제나 17세~19세까지 질풍노도의 청소년들과 생활하다 보니 실상 나이를 먹는다는 것에 관심조차 없었던 게 사실이다.

졸업한 제자들을 만날 때나 후배 교사들과 어울릴 때마다 "이래봬도 아직까지는 밤에 침대를 부순다!"라든가 "아침 밥상에 마누라가 해주는 해장국은 한결같다"며 큰소리로 술안주를 삼곤 했다. 이게 내 사십대였다.

약간 '동안', 흰머리카락 앞에 좌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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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란 말인가! 저 흰머리를 어쩌란 말인가! 눈가의 주름도 받아들일 수밖에!! ⓒ 박병춘


젊은 제자들과 당구, 볼링을 치고 꿋꿋하게 술을 마시고 끄떡없이 다음 날을 맞이하곤 했다. 마흔을 갓 넘기고 노안이 찾아왔을 때 나이를 먹고 있다는 불안감에 젖어들긴 했으나, 어릴 적부터 안경을 썼으니 당연지사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위기가 찾아왔다. 40대 중반 들어 검은머리보다 흰머리가 많아지기 시작했다. 보는 이들마다 측은하게 혀를 찼다.


"어허! 이제 박 선생도 틀렸구만!"
"나만 늙는 줄 알았더니 같이 늙네?"

그래도 '약간' 동안에 속하는 얼굴인데 흰머리는 자꾸만 나를 나이 먹은 축으로 몰아넣었다. 딸내미들은 아빠에게 염색을 강요했다.


"자연 그대로가 최고지 염색한다고 변할 게 뭐 있니?"

하지만 딸내미들 의견은 견고했다. 어쩔 수 없이 염색을 감행했다. 사람을 처음 대할 때 가장 먼저 보는 것이 머리모양이라고 한다. 맞는 말이었다. 염색은 내 동안을 어느 정도 찾아주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새록새록 반짝반짝 두피를 장식하는 흰머리는 내 나이를 드러내고 만다.   

지나 보니 참 자유롭게 살았다. 워낙 장발을 좋아해서 원 없이 단발머리를 했다. 지루하면 파마도 했다. 늘 고정된 머리모양으로 살지 않았다. 연중 두세 번은 변화를 주면서 두발 제한으로 불만 넘치는 학생들에게 대리만족을 주는 선생이고 싶었다. 아니, 차라리 내 취향대로 살고 싶었다.  

40대 후반 엄지족, 본 적 있을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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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 아홉 청춘 올해 여름 친구들과 충남 금산 야유회를 갔을 때 ⓒ 박병춘

나는 현재 40대 후반이지만 엄지족이다. 가족, 친구, 제자들과 가장 신속하게 소통할 수 있는 문명의 이기는 손전화다. 너무나 많은 문자를 쓰다 보니 월정액을 정해놓고 이용한다. 동료교사나 친구들이 내 엄지 놀림에 감탄을 한다. 심심풀이로 문자 찍는 속도를 놓고 내기를 한다. 지금까지 내 동년배들에게 져 본 일이 없다. 이 또한 젊게 살고 있다는 소박한 증거 아닐까?

그러나 어쩌랴! 오르는 계단에서조차 발을 헛디디기 시작했다. 주량도 현저히 줄었다. 운동에 목숨 거는 사람들이 우습게 보였지만 이제 존경심마저 든다. 하룻밤 정도 밤샘해도 거뜬했지만 이젠 그 여파가 며칠을 간다.

그냥 쉽게 넘겨도 좋을 일에 집착을 한다. 별 것도 아닌 일에 신경을 쓰고 섭섭해 하고, 마음고생을 한다. 나도 모르게 꽁생원이 되고 만사에 예민하다. 그런 나를 보고 선배들이 말한다. 이제 너도 나이를 먹는 거라고…. 젊게 사는 것도 한 때라고….

미합중국 대통령 버락 오바마는 나와 동갑내기다. 그와 나는 불과 12일 차이로 이 세상에 나타났다. 그는 1961년 8월 4일에 태어났고, 나는 1961년 8월 16일에 태어났다. 어찌됐든 그는 현재 미합중국 대통령이고, 나는 대전의 한 고등학교에 근무하는 선생이다.

내 동갑나기 오바마가 미국 대통령이 되고 난 뒤, 하도 기가 막혀(?) 그의 다양한 연설문이 담긴 책을 구해 읽었다. 그가 복잡한 가계에 혼혈 흑인으로서 대선후보가 되기까지 크고 작은 생애를 훑어봤다. 그리고 나를 비교하고 조명했다. 처음엔 내가 그보다 훨씬 당당하고 보람 넘치며 행복한 존재라고 우쭐했다.

그러나 내가 따를 수 없는 한계에 봉착했다. 버락 오바마는 그 무엇보다도 도덕·윤리적으로 나를 압도하고 있었다. 그의 학습력과 연설 능력 또한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스물여덟에 시작한 교직 생활, 그리고 20여 년을 보내며 한 인간으로서 나와 내 주변, 제자, 조국과 민족 앞에 나는 너무나 많은 죄를 지었고, 무기력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천명... 이제 하늘의 명을 알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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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동창생들과 대전에서 교직 생활을 하고 있는 고등학교 동창생들과 올해 여름 충남 금산에서 야유회를 했다. 내년이면 모두 나이 50을 먹는다. 다들 젊게 사는 친구들이다. ⓒ 박병춘


나는 수업 때 여분의 시간이 있을 때 학생들에게 나와 오바마를 비교하는 도표를 그려 보이곤 한다. 나는 교사로서 사랑하는 제자들과 아름답게 상호작용하며 사제동행하는 기쁨을 역설했다. 그래서 내가 오바마보다 훨씬 행복한 사람이라고 역설했다. 그러나 어리둥절해하는 제자들에게 나는 그가 나보다 훨씬 우월한 사람이라고 솔직담백하게 털어놓았다. 버락 오바마는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충분히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고 말하면서 대한민국 국회 청문회를 예로 들었다. 

부동산 투기, 논문 표절, 병역 비리 등 수많은 도덕적 흠집을 지니고도 당당하게 국회청문회를 통과하고 국무위원이 되는 현실이 다시는 재현되지 않도록 자기 단속을 잘 해 달라는 훈화였다. 이제 낭랑 18세 여러분들이야말로 버락 오바마를 능가하는 삶이 펼쳐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는 보다 정의롭게 살아오지 못했던 내 콤플렉스를 제자들에게 드러내면서 이후 제자들이야말로 국회청문회장에 섰을 때 흠집 없는 인재로 성장해 줄 것을 당부하곤 했다. 

나이 50! 이 믿어지지 않는 현실 앞에 지그시 눈을 감는다. 그동안의 삶은 어차피 껍데기였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제 속살을 어루만질 때다. 지천명에 이르러 내면을 갈고닦는 일만큼 중요한 게 어디 있으랴! 공자의 나이 셈법이 진리처럼 작동한다. 그래, 지천명! 하늘의 명을 알 때가 아닌가!

직업상 해마다 나는 17세부터 19세까지 청소년들을 끊임없이 만난다. 내가 만나는 제자들 나이는 고정돼 있으나, 나는 나이라는 것을 먹으며 변화무쌍한 삶을 살고 있다. 나이 먹는 사람이 선다는 주례는 마흔 셋에 시작하여 현재 13쌍 부부 탄생 순간을 집전했다.

28세 교사 시절에 만난 제자들과 나이 차이는 불과 열 살 안팎이었다. 50세 교사 시절에 만날 제자들과는 30년이 넘게 나이 차이가 날 것이다. 그 차이를 극복해야 한다. 나잇살이나 먹은 선생으로서 가급적이면 세대 차가 나지 않게 그들과 동화되고 소통할 수 있게 대비해야 한다.

50이든, 60이든 더 젊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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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 때까지 아름다운 동행! 제자들과 함께 라면 이 세상 부러울 게 없다. ⓒ 박병춘


나이 50을 받아들이며 소박한 다짐을 한다. 결코 늦지 않았다. 더 공부하고 더 잘 가르치는 선생 되는 일이 남았다. 정년까지 간다 해도 13년이나 남았다. 끊임없이 독서하고 대안교육을 공부하고 실천하는 일이 내 평생 과제다.

하던 일도 계속할 것이다. 책읽기와 글쓰기는 죽을 때까지 이어갈 것이다. 이밖에 붓글씨 쓰기, 대금 불기, 사진 찍기 등 나를 나답게 하는 다양한 취미 활동도 꺾지 않을 것이다. 더 좋은 사람을 만나고, 더 좋은 말을 할 것이다. 그래서 얻은 것은 교실에 담아 두고, 내 수업의 부교재로 사용할 것이다.

나이 50! 소위 5학년에 접어드는 심정은 경건하기만 하다. 아하, 그러고 보니 내년에 내가 먹는 나이는 우리 식으로 50이다. 만으로는 49세 아닌가! 그러니 50 되려면 아직 멀었다! 곧 죽어도 나는 아직 40대다. 50이든 60이든 무슨 상관있으랴! 더 젊게 살자!
#지천명 #나이 50 #박병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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