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보즈워스-강석주 회담, 양측이 준비는 되어 있는가?
여전히 방점이 다르고 우선순위와 시간표에서 차이가 있다. 무엇보다도 큰 문제는 오바마 행정부 내에서 적극적으로 협상에 임한다면 핵폐기 목표를 달성할 수 있으리라는 확신을 가진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번 책임지고 해볼 테니 믿고 맡겨달라는 분위기는 이미 지난 5월 하순 북한의 2차 핵실험으로 완전히 사라진 듯하다. 과연 북한이 시간만 질질 끌면서 제재 효과를 누그러뜨리는 데 미-북 양자회담의 목적 아닌가 하는 회의론에 대해 아무도 반론을 제기할 근거를 갖고 있지 않다. 따라서 핵폐기는 돌이킬 수 없게 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높지만 구체적인 로드맵 작성에는 진도를 많이 내지 못했다. 여기에 한국과 일본이 끼어들어 원칙이라는 이름의 쐐기만 박으려 하기 때문에 더더욱 여유가 없다. 바로 이런 측면 때문에라도 보즈워스-강석주 회담이 한차례에 끝나선 안 된다. 시간을 들여서 서로의 의중을 확실히 타진하고, 자신의 카드를 가급적 전부 꺼내 놓되 '말이 되는 제안'을 해서 실행력을 높여야 한다.
사실 이번 보즈워스 평양 파견 결정은 협상 진전을 확신해서라기보다는 더 이상 결정을 유보하는 것이 결코 유리하지 않다는 판단이 더 크게 작용했다. 8월 클린턴 전 대통령 방북-9월 다이빙궈 국무위원 방북-10월 원자바오 방북을 통해 김정일 위원장에게서 "양자회담을 가진 뒤 6자회담을 포함한 다자회담에 나오겠다"는 발언을 얻어낸 것이다. 여기서 보즈워스 방북을 미룬다면 북한이 예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 즉, 재처리 완료, 무기화 완료, 농축 규모확대 같은 말도 안 되는 압박 발언 등에 시의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한 오바마 팀의 패착으로 평가될 것이다. 이런 우려 때문에 더 이상 뭉개서는 손해라는 판단을 했다. 준비는 실무적 수준에서는 있었지만 고위급에서 재가를 내릴 정도의 협상안 마련까지 가지 못했다. 오바마 행정부는 핵폐기를 가시적이고 단단하게 이행하도록 북측에 요구를 하되, 이미 다 알려진 북한의 핵심적인 요구 사항에 대해서도 충분한 답안을 들고 가야 한다. 상호 동시행동과 등가교환을 기준으로 삼는다면 큰 어려움은 없을 것이다. 정치적 의지가 중요한 시점이다.
이번 리근 국장팀이 와서 풀어놓은 보따리를 보고 "긍정적(positive)"이라고 평가하면서도 북측의 태도에 대해 아직 "고무적(encouraging)"이라는 점수는 나오지 않고 있다. 물론 주한미군의 한반도 주둔을 핵폐기의 조건으로 하지도 않았고, 6자회담이 살아있다는 발언을 통해 9.19공동성명의 틀 안에서 협상을 진행시킬 수 있음을 함축한데 대해서는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 하지만 여전히 핵물질과 핵무기 포기에 대해 불분명하다. 한반도 전체 비핵화를 강조하는 대목에서는 시간을 끌려고 하는 것 아니냐 하는 의구심을 되살려 놓았다. 물론 보즈워스가 평양에 와서 과연 귀 기울일 만한 발언을 할 것인지 북측도 확신이 없기 때문에 리근 국장이 모든 것을 다 말할 수는 없었다. 미 정부당국자도 이 점은 일단 수긍한다. 보즈워스-강석주 회담에서 나올 수 있는 큰 덩어리이기 때문이다.
전체적으로 보면 클린턴 행정부와 이미 15년 전에 큰판을 벌여본 적이 있기 때문에 북한이 더 많이 준비되어 있다. 핵실험 까지 감행한 나라가 핵무기를 포기한 경우는 아직은 전례가 없기 때문에 낙관할 수 없다. 다만 여전히 강하게 시도해 볼 가치가 있으며, 한반도 비핵화는 불가능한 목표여서는 안 된다는 당위적 측면에서라도 오바마 행정부에서 남은 수주일간 더 많이 준비해서 나갈 필요가 있다. 원래 방문경기가 다 어려운 법이다. 그러나 북한 체제의 특성상 방문외교 보다 더 효과적인 것도 없다.
3. 합의 이행능력이 담보될 것인가?
만약 두 차례의 미-북 고위급 회담에서 전반적인 비핵화에 그에 대한 상응조치에 대해 공감대가 형성된다면 양측의 합의 이행력은 과거 어느 때 보다도 높다고 본다. (비핵화 추진 방향에 대한 구체적인 로드맵은 "페리프로세스 잇는 보즈워스 프로세스 준비해야" 참조)
오바마 행정부의 의사결정 방식이 과거 부시행정부와 크게 다르기 때문이다. 부시행정부 1기때는 과도한 이념적 강경론으로 실질이 무엇인지 몰랐다. 부시행정부 2기때는 무엇이라도 대화가 유지되는 모습만 보이면 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부시 대통령-라이스 국무장관-힐 차관보 3인의 비밀주의 외교가 관계부처 협의나 절차는 무시하는 관행을 낳았다. 오바마 행정부는 모든 논의에 관계부처 핵심당국자들이 모두 참여해서 의견을 모으고 하나의 정책으로서 권위와 정통성, 통합성을 충분비 강조한다. 속도는 느리고, 일인독주현상은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
물론 취임 직후부터 북한이 강공으로 나왔기 때문에 정책 결정자들 간에 의견 차이를 드러낼 근거가 거의 없었다. 앞으로 협상이 진행되면 강경론자와 온건론자로 분화가 있을 수는 있다. 하지만 의견조율과 팀워크를 중시하는 오바마 행정부의 정책결정과정은 앞으로 북한과 합의가 이뤄지면 이행을 둘러싼 잡음이나 사보타지, 나아가 발목잡기 같은 현상을 막는 기초로 작용할 것이다.
북한으로서도 현재의 제재 아래에서 계속 버티기로 일관할 수 없다. 일각에서는 중국과 협력 때문에 제재가 효과가 없을 것이라는 평가도 있다. 중국은 북한이 붕괴되는 상태에 이르지 않도록 위기시 도움을 준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비핵화에 진전이 없다면 경제지원합의서는 그저 합의서일 뿐이다. 북-중 국경무역까지 전면적으로 통제하지는 못하겠지만 북한이 미-북 양자회담, 그리고 후속 6자회담에서 충분히 성의있게 임하지 않으면 제재 해제는 없을 것이며, 중국의 경제지원도 제제의 효과를 상쇄할 수준까지 가진 못한다. 중국과의 경제교류로 인해 제재의 효과가 없다면 북한이 최근 벌이고 있는 소위 '매력외교 캠페인'(charm diplomacy campaign)의 이유를 이해할 수 없게 된다.
더욱이 국방위원회 위원들에 대한 개별적 제재까지 검토하고 있다는 점까지 감안한다면 말이다. 물론 제재라는 부정적 요인 보다는 미국과의 새로운 관계 구축이라는 적극적 요인이 미-북 고위급 회담을 강하게 희망하는 동력이며, 이것만이 2012년 이후 미래를 개척할 수 있다는 상황인식이 작용했다고 본다. 달리 말해 북한도 일단 미국과 합의한 사항에 대해서는 이제 웬만해서는 깨지 못할 것이다. 이행할 것이다. 보즈워스-강석주 회담을 둘러싼 객관적이고 구조적 특성이 그렇게 되어 있다.
4. 한국은 무엇을 해야 하나?
어느 한반도 전문가는 도대체 보즈워스 방북을 지원하는 '콧김'조차 찾기 어렵다는 말을 한다. 한국, 일본도 그렇고 오바마 행정부 내부도 사실 그런 기류라는 말이다. 앞서 설명한 대로 보즈워스 평양 파견은 뭔가 만들어보자는 능동적 측면보다는 이러다가 북한이 무슨 짓을 하면 미국이 다 책임을 져야 할이지 모르기 때문에 북한의 의도가 무엇인지 앉아서 추측하고 의심하기 보다는 어쨌든 한번 만나보지 않으면 안 되는 시점이라는 인식이 더 크게 작용했다. 그만큼 오바마 행정부의 적극적 비전은 자체 동력을 축적하지 못한 상태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한국은 어떤 세상에 살고 있는가? 한반도 평화와 안정, 나아가 냉전체제 해체와 남북 평화공존을 통한 통일의 길을 포기한 집권자를 두고 있지 않는가? 1972년 박정희가 이후락을 평양에 보낸 이후 약 37년의 지난 역사 가운데 대한민국의 대북정책은 기본적으로 평화공존 지향이며 포용지향이었다. 대화 중시이며 협력 우선이었다. 김영삼 정부 시절 일시적으로 흡수통일을 시도한 적이 있었지만 실착이자 무모한 짓이었다는 것이 범국민적 교훈이었다. 그런데 지금 남북정상회담을 기분 문제 비슷하게 여기고, 미-북 고위급 회담을 두 번 이상해서는 안 된다는 기상천외한 주장을 내놓고 있다. 무지하거나 무모하거나 무책임하지 않고선 나올 수 없는 것들이다. 대책이 없다.
한반도 전쟁상태를 걷어내고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대장정은 민주개혁진영의 주도성이 없다면 결코 한걸음도 내딛을 수 없다. 대책은 민주개혁진영에서 나와야 한다. 아니면 미-북 고위급 회담 분위기에 편승한 단기적 관제 평화공세만이 난무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박선원 기자는 노무현 정부 청와대에서 안보전략비서관을 지냈으며, 현재는 미국 브루킹스연구소 초빙연구원이며, 한국 미래발전연구원 연구실장으로도 일하고 있습니다.
2009.11.08 11:48 | ⓒ 2009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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