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들 용돈 줄 마음에 점심 건빵으로 때우고 살았어"

[인생을 듣다 2] 일흔일곱 고재호 할아버지

등록 2009.11.15 18:44수정 2009.11.25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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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 계절이 다가왔습니다. 이 맘 때면 누구보다 몸과 마음이 시린 이들이 있습니다. 바로 홀로 지내는 어르신들입니다. 이 분들에게 따뜻한 밥 한 그릇과 몸 누일 방도 필요하지만 더욱 필요한 것은 이야기 나눌 사람입니다. 긴 세월 이어온 그 분들 생엔 한 시대가 고스란히 스며 있습니다. 사회복지법인 '우양'(www.wooyang.org)과 함께 그 분들을 찾아나섭니다. 어르신들이 들려주는 이야기 속으로 여러분들을 초대합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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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살 무렵의 청년 고재호 할아버지. ⓒ 우양


초등학교 2학년 때 해방 맞아, 전남 나주 가난한 농부의 아들


77세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눌러 쓴 모자 아래로 보이는 눈빛이며 꼿꼿한 자세가 젊은이들 그것 못지 않은 고재호(1933년생) 할아버지. 인생 선배로 살아오신 지혜를 들으러 왔다는 말에 펄쩍 뛰시며 손사래를 치신다.

"나 같은 늙은이에게 무슨 들을 게 있다구. 젊어서야 무서울 것 없이 펄펄 날아다녔지만 지금은 아니야.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아무도 써주지도 않고... 얼른 죽어야지 뭐."

국민학교 2학년 때 해방을 맞았다는 할아버지는 전남 나주 작은 마을 가난한 농부의 아들이었다.

"어릴 때는 마을 서당에 다니면서 사자소학을 뗐어. 그 뒤엔 일제치하에서 초등학교 2학년 까지 다니다 해방을 맞았지. 다카야마라는 일본 이름이 있었지만 고자이코라고 불렀던 것 같아. 하도 오래 된 일이라서 이젠 기억이 가물가물하네."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근근이 살던 할아버지가 무작정 서울로 상경을 계획한 것은 1960년대 초반이었다. 지긋지긋한 가난을 피해 맨몸으로 고향을 떠난 사람들. 돈벌이와 출세의 꿈을 안고 무작정 서울행 입석 완행열차에 몸을 실었던 젊은이들 사이에 할아버지도 끼어 있었다. 남자들은 잡일이나 막노동, 여자들은 식모살이를 하거나 길을 잘못 들어 사창가로 팔려가는 일도 흔하던 시절이기에 일을 구하기도 쉽지 않았다.


"그땐 시골이 살기가 정말 힘들었거든. 시골 청년들 대부분이 너도나도 짐을 싸서 도시로 나갈 때였어. 서울로 가면 살길이 있을 것 같았거든. 주머니에 돈 한 푼 없이 무작정 올라와 헤매다 보니 지금의 마포쯤에 자리를 잡았던 거야."

풍운의 꿈을 안고 도시로 올라왔지만 일자리를 찾을 때마다 소위 "전라도"라는 이유로 문전박대 당한 것도 한두 번이 아니다.

"지금은 덜하지만 그때만 해도 전라도 사람이라는 이유로 일자리를 주지 않더라구. 일 좀 하게 해달라고 이 가게 저 가게를 기웃거리며 사정하고 다니다가 어찌어찌해서 중국집에 일자리를 얻었고 몇 년 열심히 일을 했지. 그렇게 몇 년 일을 하다가 운 좋게 수도운수에 들어가 배차 일을 하게 된 거야."

고향을 떠나 서울살이를 하면서 도둑질과 사기만 빼고는 안 해 본 일이 없다는 할아버지. 세상에 일이라고 생긴 일은 안 해 본 것, 못하는 것이 없다는 할아버지는 지금도 못질이면 못질, 페인트면 페인트 시켜만 주면 젊은 사람 못지 않게 잘 해낼 자신이 있단다.

"수도운수를 한 10년 다니다가 돈이 좀 모여서 내 가게를 하나 차렸지. '유리, 페인트'라고 유리 끼워 주고 페인트칠도 해주고 집수리도 하고... 당시엔 동네에서 나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지. 유리 끼우러 가고 페인트칠 하러 가면 서로 다 인사하고 그러는 이웃들이었으니까."

중국집 배달부에서 막노동까지, 도둑질과 사기 빼곤 안 해 본 일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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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살던 시절. 할아버지는 활달한 성격탓에 지역 일에도 열심이었다고 한다. ⓒ 김혜원


할아버지 인생에서 가장 열심히 살았던 때는 바로 자기 가게를 열고 열심히 일을 하던 그때라고 한다.

"70년대 중반일까. 당시 우리 애들 용돈 천원 주면 많이 주는 때였거든. 애들 용돈 줄 마음에 점심을 건빵으로 때우고 살았네. 용돈 받고 좋아하는 애들 볼 욕심에 배고픈 것도 모르고 일했던 거야. 그래도 그때가 제일 좋았지."

중국집 배달부에서 노가다라고 말하는 막노동까지 도둑질과 사기만 빼고 안 해 본 일이 없다는 할아버지는 맨몸뚱이로 서울에 올라온 지 30여 년 만에 서울시 서대문구 남가좌동에 50평짜리 2층 집을 장만했다. 얼마나 기뻤을까. 하지만 기쁨도 오래지 않았다. 호사다마라고 아내가 암으로 세상을 떠나고 만 것이다.

"88년 아내가 갑상선암으로 세상을 떠났어. 그 복잡한 말을 어떻게 다해. 말하자면 끝도 없지. 아직 가기에는 턱없이 젊은 나이였는데..."

목이 메는지 말씀을 멈추시고 허공을 바라보시는 할아버지. 그 사이에 잠시 주변을 둘러보니 7kg짜리 작은 쌀 포대와 컵라면 몇 개가 눈에 들어온다. 라면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으려니 눈길을 의식하셨던지 라면 하나 먹고 가겠느냐고 물으신다.

"내가 사는 게 이래서 대접할 건 없고. 라면이나 하나 끓여 줄까? 아내 떠나고 라면만 먹고 살아. 음식이라고 다른 건 할 줄도 모르고. 라면이야 밥 대신도 먹고 국 대신도 먹고 편하니까 그렇게 먹고 사는 거지. 한 20년 라면만 먹고 살았네."

아내와 사별한 후 할아버지에게는 또 다른 불행이 닥쳤다. 사업을 했던 딸의 빚보증을 서 주었다가 어렵게 장만한 집을 날리게 된 것이다. 그 때문에 세 아들들과 사이도 멀어져 연락을 끊고 산 지도 10년이 가깝지만 자식들에 대한 미움이나 원망은 없다고 한다.

"애들 뭐라고 할 수 없어요. 세상이 이런 걸. 세상이 우리 어릴 때랑은 달라졌잖아요. 세상 달라진 걸 어떻게 해. 이런 상황에서 왜 내 자식은 그러나? 왜 난 이 모양인가? 하면서 살아야 달라질 게 없어. 그럴수록 마음만 힘들어지거든. 그저 세상이 이런가 보다 하고 포기하고 살면 되는 거야. 딸이나 나나 거지가 되었어. 하지만 지금 와서 아들들에게 손 내밀고 싶은 마음은 없어. 내밀어봐야 주지도 않겠지만 말이야. 부모는 누구나 그래요. 자식이 잘되면 나는 못 되어도 괜찮은 거야."

호적상 아들이 있다는 이유로 정부로부터 아무 도움 못 받는 노인들

복잡한 가족사 때문에 부모자식 사이에 연락을 끊고 지낸 지 벌써 오래됐다는 할아버지는 호적상 가족(아들)이 있다는 이유로 수급자 지정을 받지 못해 경제적인 어려움을 면할 길이 없다.

할아버지 말로는 많은 노인들이 실제로 독거를 하고 있으면서도 호적상 아들이 있다는 이유로 정부로부터 어떤 도움도 받지 못해 추위와 배고픔에 시달리고 있다고 한다.

"독거노인들, 자식이 없어서 혼자 산다고 생각하면 오해예요. 자식들 눈치 보면서 사람취급 못 받고 사느니 굶든 먹든 혼자 사는 게 차라리 편하다는 거지. 자식 눈치, 며느리 눈치, 손자 눈치까지... 살다 보면 부딪히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거든. 특히 화장실과 냉장고 사용이 제일 문제야. 손자들 아침에 얼른 씻고 학교 가야 하는데 노인들이 화장실에 떡 들어앉아 있어봐. 애들이 얼마나 싫어하겠어. 하지만 어떻게 해. 노인들도 참을 수가 없는데 말이야."

"냉장고도 그래. 노인들은 먹다 아까우면 남은 음식을 싸서 냉장고 구석에 넣어두잖아. 버리긴 아까우니까 뒀다가 나중에 먹으려고 그러는 건데 손자들이나 며느리는 그게 더럽다는 거야. 이런 문제들이 자꾸 쌓이다 보면 노인들이 집을 나오게 되는 거지."

할아버지는 자식들과 한집에 살면서 잘 맞지 않아 힘들어 하느니 노인들이 스스로 독거를 선택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라고 한다. 경제적인 여유가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지만  추위와 배고픔, 외로움과 싸우면서도 독거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분명히 있다는 것이다.

할아버지 말씀을 듣고 보니 어쩌면 오십을 바라보는 우리들이 노년을 맞을 때쯤이면 노인들의 독거가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 자리 잡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의 능력만 된다면 독거를 마다할 이유가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상황이 만들었든 스스로 선택했든 현재 독거 상태인 할아버지는 매일 매일을 절대적 빈곤과 싸우며 살아간다.

"매월 받는 노령연금 8만8천원하고 취로사업 일을 하고 받는 돈 20만원, 오며 가며 폐지랑, 고철, 헌옷 같은 거 수거해다 팔면 만원도 되고 몇 천원도 되고... 그게 전부야. 먹는 거야 삼시세끼 라면만 먹고 산다지만 먹는 데만 돈을 쓰나? 전기요금이 겁나서 TV는 잘 켜지도 않아. 주로 라디오만 듣지. 밤에 잠 안 올 때 라디오 음악 틀어 놓으면 참 좋아. 위로가 되고 잠도 잘 오고 말이야."

"난 설날이 한 달에 한 번씩 있었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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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머리에 주름투성이 얼굴이 되었지만 마음은 여전히 청춘이라는 고재호할아버지. ⓒ 김혜원


방에 불을 넣지 않은 지 오래되었는지 깔아놓은 이불에서 축축한 습기와 냉기가 올라온다. 아주 추우면 보일러를 돌리겠지만 요즘 같은 추위는 견딜만해서 보일러를 돌리지 않으신다는 할아버지. 날씨가 추워지면 취로사업도 중단되기 때문에 지금보다 더 허리띠를 졸라매야 살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겨울이 오는 게 한편으로 너무나 기다려진단다.

"난 설날이 한 달에 한 번씩 있었으면 좋겠어. 아니 매일 설날이면 좋겠어. 그런 날이면 독거노인들 불러다가 맛있는 음식도 주고, 같이 놀아도 주고, 아주 우리를 재미있게 해주잖아. 우리 같은 늙은이들 누가 그렇게 놀아주고 대우해주고 그래."

환갑잔치, 칠순잔치는 물론 해마다 돌아오는 당신 생일조차도 챙겨보지 못하셨다는 할아버지. 활달하고 밝은 성격 탓에 어딜 가든 좌중의 인기를 독차지해 '술안주'라는 별명도 얻었지만 혼자 살게 된 후로는 그런 즐거운 자리에 초대될 일이 없어서 아쉽다.

"지금도 마음은 청춘이야. 노가다든 경비든, 맡겨만 주면 잘할 자신이 있지. 젊은이들보다 부지런하게 꼼꼼하게 할 자신이야 있지만 요즘 젊은이들도 놀고 있는데 우리 같은 늙은이를 누가 쓰겠어. 아무리 젊어서 기술이 좋았어도 늙으면 그걸 써 먹을 데가 없어. 취로사업이나 폐지를 줍지 않으면 돈 나올 데가 없는 거지."

동네를 다니다 보면 버려진 폐지나 공병을 놓고 서로 자기 것이라며 싸우는 노인들도 적지 않게 만나게 된다는 할아버지. 당장 먹고살 것이 없는 상황이 아닌 노인들마저 너도나도 폐지수거에 나서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많이 아프다고.

"난 그래. 그거 싸워가며 서로 뺏고 그러고 싶지 않아. 솔직히 당장 폐지 줍지 않아도 살만한 사람들도 많거든. 부탁하고 싶은 게 있어. 먹고살만하면 폐지 정도는 진짜 없는 사람들 주워다 먹고 살게 좀 내버려둬 달라고 말이야. 서로 조금만 배려하면 살만할 텐데 말이야..."

고재호 할아버지는?
서울 서대문구 남가좌동 반지하에 거주. 전세 2천(융자1천 포함). 노령연금 8만8000원과 부정기적 공공근로로 버는 20만원, 폐지수거로 얻어지는 얼마간의 수입이 전부다.

매달 사회복지법인 우양에서 쌀 7kg을 지원받고 있으나 대부분 라면으로 식사를 대신한다. 저축은 없고 융자에 따른 이자를 매달 5만원 지출해야 함. 개인위생상태가 좋지 않으며 안과질환과 피부질환이 의심되지만 병원비 때문에 진료 받지 못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 어르신들 친구가 돼 주세요.

이 글을 읽고 어르신들에게 답글을 보내주세요. 사회복지법인 우양(www.wooyang.org/서울시 마포구 서교동 460-1, 02-324-0455, wy-welcome@hanmail.net)으로 편지나 이메일을 보내주시면 어르신들에게 전해드리겠습니다. 한 끼 식사보다, 하루 잠자리보다 더 큰 선물이 될 것입니다. 더불어 우양에도 후원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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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재호할아버지 #독거노인 #우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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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아줌마가 앞치마를 입고 주방에서 바라 본 '오늘의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한 손엔 뒤집게를 한 손엔 마우스를. 도마위에 올려진 오늘의 '사는 이야기'를 아줌마 솜씨로 조리고 튀기고 볶아서 들려주는 아줌마 시민기자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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