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성어'보다 좋은 우리 '상말' (80) 후안무치

[우리 말에 마음쓰기 798] 우리 말 '뻔뻔하다'를 잊는 우리들

등록 2009.11.14 12:11수정 2009.11.14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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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후안무치한 사나이

 

.. 당신은 후안무치한 사나이오! 자기가 한 노릇을 다른 사람에게 묻다니! 그래 진실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으려는 거요? ..  《시마무라 자부로/이계추 옮김-어느 제국주의자의 눈물》(춘추원,1992) 109쪽

 

 "자기(自己)가 한"은 "당신이 한"이나 "스스로 한"으로 다듬고, '진실(眞實)한'은 '참된'이나 '거짓없는'이나 '바른'으로 다듬어 줍니다. "되고 싶지 않으려는 거요"는 "되고 싶지 않소"나 "되고 싶은 마음이 없소"로 손봅니다.

 

 ┌ 뻔뻔하다 : 부끄러운 짓을 하고도 아무렇지도 않아 하다

 │    (잘못을 하고도 뉘우치거나 고개 숙이는 마음이 없다)

 │    <뻔뻔한 소리 좀 작작 해 / 쓰레기를 몰래 버리고도 뻔뻔하게 대꾸하다니 /

 │     친일부역자와 독재부역자가 외려 뻔뻔하게 판치는 세상이다>

 ├ 후안무치(厚顔無恥) : 뻔뻔스러워 부끄러움이 없음

 │   - 후안무치로밖에 달리 말할 수 없는 일 /

 │     하는 짓들이 후안무치하고 염치가 없어

 │

 ├ 당신은 후안무치한 사나이오

 │→ 당신은 뻔뻔한 사나이오

 │→ 당신은 낯짝도 두꺼운 사나이오

 │→ 당신은 어처구니없는 사나이오

 │→ 당신은 마음이 지저분한 사나이오

 │→ 당신은 부끄러운 줄도 모르는 사나이오

 │→ 당신은 양심도 없는 사나이오

 └ …

 

 사람들은 국어사전을 뒤적여 '후안무치'가 무슨 뜻인가를 살피려 하기는 하여도, '뻔뻔하다'를 찾아보며 무엇을 가리키는지 알아보려고는 하지 않는다고 느낍니다. 그래서 국어사전을 차근차근 뒤적여 보면 '후안무치 = 뻔뻔함'임을 깨닫고, '뻔뻔함 : 부끄러움을 모르며 나쁜 짓이나 잘못을 저지름'임을 깨달아, '후안무치' 말풀이가 엉터리 겹말로 되어 있음까지 알아챌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토박이말 '뻔뻔하다' 말풀이를 찾아보는 사람이 드물 뿐 아니라, 으레 '후안무치' 같은 말마디를 쓰면서 지식자랑을 하기에 바쁜 나머지, 우리 스스로 우리 말글을 어지럽히거나 무너뜨리거나 흔들기만 합니다.

 

 ┌ 후안무치로밖에 → 뻔뻔하다고밖에 / 부끄럽다고밖에

 └ 하는 짓들이 후안무치하고 → 하는 짓들이 뻔뻔하고 / 하는 짓들이 괘씸하고

 

 꼭 토박이말이 가장 알맞고 바르고 살갑고 손쉽고 깨끗하며 아름답기까지 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람들 누구나 한자말을 쓰고프면 쓸 노릇이고 영어를 섞어쓰고 싶으면 섞어쓸 노릇입니다. 어리숙하게 말을 하고 어설프게 글을 쓴다고 해서 말썽거리가 되지는 않습니다.

 

 다만, 내가 읊는 말마디를 누가 듣는지를 곰곰이 곱씹어 보면 좋겠습니다. 내가 끄적이는 글줄을 누가 읽는지를 가만히 되새겨 보면 좋겠습니다. 우리 집 아이, 이웃에서 사는 아이들, 스스로 학교 교사라면 스스로 가르치는 아이들, 둘레에서 만나는 어른들한테 내 말마디와 글줄이 알게 모르게 퍼져나가고 있음을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서로서로 사랑과 믿음 담는 말마디를 주고받으면, 서로서로 사랑과 믿음이 가득 담긴 말마디로 저절로 우리 말살림을 북돋웁니다. 우리가 서로서로 대충대충 아무렇게나 글을 끄적이면서 가득 채운다면, 우리 삶자리에는 뻔뻔하고 얄궂고 지저분한 글줄만 판을 치면서 우리 생각도 이런 뻔뻔함과 얄궂음과 지저분함이 흘러넘치기 마련입니다. 가는 말과 오는 말은 같기 때문입니다. 내가 들려주는 말이 내가 듣는 말이 되기 때문입니다. 내가 좀더 싱그럽고 기운차게 살아가겠다고 한다면, 내 생각 또한 좀더 싱그럽고 기운차게 거듭나고, 내 말글 또한 좀더 싱그럽고 기운차게 거듭날 수 있습니다.

 

ㄴ. 후안무치의 행태?

 

.. 환경보호를 부르짖는 허울좋은 단체들이 마구잡이식 자연파괴를 외면하는 차원을 넘어, 아예 체계적인 훼손에 앞장서는 후안무치의 행태? .. 《마르타 쿠를랏/조영학 옮김-나쁜 감독, 김기덕 바이오그래피 1996-2009》(가쎄,2009) 79쪽

 

 "환경보호(-保護)를 부르짖는"은 그대로 두어도 되고, "환경을 지키자고"나 "환경을 살리자고"로 손보아도 됩니다. "마구잡이식(-式) 자연파괴(-破壞)를 외면(外面)하는 차원(次元)을 넘어"는 "마구잡이로 자연을 무너뜨리는 일에 등돌리는 테두리를 넘어"나 "마구잡이로 자연을 망가뜨리는 흐름을 모른 척하는 모습을 넘어"로 손질하고, "체계적(體系的)인 훼손(毁損)에 앞장서는"은 "차근차근 빈틈없이 허물어뜨리는 데에 앞장서는"이나 "하나하나 남김없이 부숴 버리도록 앞장서는"으로 손질해 봅니다. '행태(行態)'는 '모습'이나 '짓'이나 '짓거리'로 다듬습니다.

 

 ┌ 후안무치의 행태?

 │

 │→ 어리석은 모습?

 │→ 어리숙한 모습?

 │→ 어이없는 모습?

 │→ 바보스런 모습?

 └ …

 

 예나 이제나 허울만 좋은 사람이 있고 허울만 번드레한 모임이 있습니다. 속 깊이 아름다운 길을 걷지 못하는 사람이 있으며 겉멋만 잔뜩 부풀리는 모임이 있습니다. 속을 차리지 않고 겉만 차리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얼핏 보기에는 훌륭한 듯하더라도 조금도 훌륭하지 않습니다. 어리석거나 어리숙할 뿐입니다. 속을 튼튼히 가꾸지 않고 겉모습만 부풀리고 있는 모임들이기 때문에 얼추 살피기에는 대단한 듯하더라도 하나도 대단하지 않습니다. 어이없거나 어처구니없을 뿐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우리 둘레에서 숱한 사람들과 모임들이 어줍잖은 길을 걷고 있음을 똑똑히 지켜보면서도, 우리 스스로 이런 어줍잖은 길을 따라 걷기도 합니다. 다른 이들이 얄궂은 쪽으로 빠져들더라도 우리들은 꿋꿋하게 바르고 곧은 길을 걸으면 되지만, 우리 또한 겉멋과 겉모습 꾸미기에 빠져들기 일쑤입니다.

 

 세상이 온통 얄딱구리하게 흐르기 때문인지 모릅니다. 세상 모두 겉훑기로 치닫는데 나 혼자서 깨끗하게 살기란 어려웁기 때문인지 모릅니다. 홀로 깨끗하여도 알아보는 이가 없고, 홀로 깨끗하다 할지라도 먹고살 길이 까마득하기 때문인지 모릅니다.

 

 ┌ 볼썽사나운 모습?

 ├ 볼꼴사나운 모습?

 ├ 씁쓸한 모습?

 ├ 두동진 모습?

 └ …

 

 우리들 저마다 맑고 곱고 싱그럽게 말하고 글쓰는 매무새를 다스리지 않는 까닭 또한 이와 맞닿아 있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어른이나 어린이나 밝고 튼튼하고 따뜻하게 말하고 글쓰는 몸가짐을 잃어가는 까닭 또한 이와 이어져 있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우리는 우리네 삶과 생각과 말을 우리 스스로 볼썽사납게 일그러뜨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이웃 삶과 생각과 말을 우리 손으로 볼꼴사납게 뭉개 버리고 있습니다. 내 앞가림 때문에, 내 밥그릇 때문에, 내 이름값 때문에, 우리들은 허울로 채우는 삶을 버릴 마음이 없습니다. 우리들은 허울로 가꾸는 생각을 고칠 뜻이 없습니다. 우리들은 허울만 빛나는 말을 바꿀 낌새가 없습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2009.11.14 12:11ⓒ 2009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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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성어 #상말 #국어순화 #우리말 #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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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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