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는 칼을 받으시오", 포복절도 결혼식

이런 이벤트라면 권장할 만하지 않을까

등록 2009.11.19 09:08수정 2009.11.19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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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행진준비중

행진준비중 ⓒ 김수복


a  칼로 이루어진 문이 열리고

칼로 이루어진 문이 열리고 ⓒ 김수복


"신랑은 군인 신분임에도 사회에서 못 마친 대학을 마쳤고, 이제 곧 대학원도 마쳐야 하고 박사도 되어야 합니다. 하객 여러분께서는 이 두 사람의 앞길을 밝혀주는 의미에서 커다란 박수를 쳐 주십시오. 박수 소리가 작으면 열 번 스무 번 계속 주문할 것입니다. 지금 시간이 열두 시 사십팔 분, 배도 고프실 겁니다. 어서 빨리 식당으로 내려가고 싶으시다면 한 번에 끝내주시기 바랍니다."


재치 있는 주례사가 끝나고 하객들에게 인사를 겸한 신랑 신부의 행진이 시작되었다. 군인답게 씩씩하게, 보무당당하게 뚜벅뚜벅 왼쪽 팔을 신부에게 맡긴 채로 도열한 장병들이 만들어준 은빛 찬란한 장검의 문을 들어서서 세 걸음이나 떼었을까. 멀리서 소대장의 "막앗" 소리가 들리고, 스르렁 쩌르렁 서늘한 금속성 음향을 내며 칼 두 자루가 신랑 신부의 앞길을 브이자로 딱 막아선다.

a  이건 뭐야. 왜 이래. 왜 막는 거야. 아까 예행연습 때는 이런 과정 없었잖아.

이건 뭐야. 왜 이래. 왜 막는 거야. 아까 예행연습 때는 이런 과정 없었잖아. ⓒ 김수복


"지금부터 신랑 신부는 몇 개의 관문을 통과해야 합니다. 여기는 일차 관문입니다. 신랑께서는 한쪽 신발을 벗으십시오."
"신발을? 아니 왜?"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듯 놀라고 황당해서 눈을 크게 뜨는 신랑, 이에 아랑곳없이 웃지도 않고 엄격한 목소리로 지시를 내리는 부하병사들.

"어서 벗으십시오. 늦으면 징벌이 따릅니다."
"야 이거 뭐야, 우린 때는 이런 거 없었는데........:"

신랑은 자신이 초급 부사관이던 시절 선배들 결혼식에 참여했던 일을 떠올리며 이건 전례가 없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모양이지만 과거는 과거, 오늘은 오늘일 뿐이다.


"신랑은 말할 권리가 없습니다. 질문도 받지 않습니다. 구두를 벗으십시오."
"아, 나 미치겠네. 뭘 하자는 거야, 너희들 이거?"
"징벌로 가시겠습니까?"

멀리서 소대장의 날카로운 "준비" 소리가 들리고, 신랑은 황급히 신발을 벗어들고 그래 벗었다, 어쩔래, 하는 표정으로 부하들을 노려보며 벙글벙글 웃어댄다.


a  처가에 가서 처남들에게 발바닥 맞는다는 소린 들었어도 예식장에서 신발 벗으란 얘기는 살다가 처음이다.

처가에 가서 처남들에게 발바닥 맞는다는 소린 들었어도 예식장에서 신발 벗으란 얘기는 살다가 처음이다. ⓒ 김수복


a  신랑이 하객들의 '마음'을 신발에 얻어오려고 간 사이 홀로된 신부. 표정이 제법 심각한데...

신랑이 하객들의 '마음'을 신발에 얻어오려고 간 사이 홀로된 신부. 표정이 제법 심각한데... ⓒ 김수복


"지금부터 신뢰도 측정을 시작하겠습니다. 신부는 신랑을 믿고 갑니다. 그 신랑이 어떤 성분을 가졌는지는 신부 자신도 아직 모릅니다. 신랑은 이제 그것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신랑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얼마나 많은 믿음을 쌓아 왔는지, 가족은 물론이고 일가친척, 친구 모두로부터 마음을 받아서 담아 오십시오."
"뮁이? 마음을? 야, 뭔 소리야. 마음을 어떻게 담아 오라는 거야."
"질문은 받지 않습니다. 대한민국 육군은 시간을 묶어두지 않습니다. 징벌로 가시겠습니까?"

밀고 당기고 옥신각신 끝에 신랑은 결국 구두 한 짝을 들고 하객들 사이로 들어가는데, 하객들도 내심 당황해서 무엇을 구두에 넣어주어야 하나 고민이 되고, 그리하여 어떤 사람은 가장 손쉬운 것으로 지폐를 꺼내 넣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손수건을, 명함을, 볼펜을... 등등 그렇게 해서 일단 이 관문은 통과. 악사들이 다시 행진곡을 연주하고, 음악에 맞춰 신랑 신부 서너 걸음을 떼는 순간 멀리서 소대장의 "막앗" 소리가 또 한 번 날카롭게 울려 퍼진다.

a  신발에 담아온 마음을 부하들에게 증거로 넘겨주고

신발에 담아온 마음을 부하들에게 증거로 넘겨주고 ⓒ 김수복


a  이제 됐겠거니 하고 나아가는데 다시 막아서는 칼날

이제 됐겠거니 하고 나아가는데 다시 막아서는 칼날 ⓒ 김수복


스르렁 쩌르렁, 날카로운 금속성 음향과 함께 다시 브이자로 막아서는 칼날, 신부는 그것도 경험이라고 이제는 놀라지도 않고 웃어 버리는데, 신발을 벗어들고 하객들 사이를 도느라 진땀을 흘렸던 신랑은 이제 은근히 화가 나는 모양이다. 또 뭐야? 하는 표정으로 왼쪽 오른쪽 번갈아 쳐다보다가 맞은편의 소대장과 시선을 마주치고는 주춤해서 천장이나 보고 있다.

"신부께서는 부케를 신랑에게 넘기십시오."
"네?"
"신랑과 마찬가지로 신부의 질문도 받지 않습니다. 어서 넘기십시오."

신부는 이게 무슨 영문인가 싶어서 잠시 망설이다가 어쩌지 못하고 손에 든 부케를 신랑에게 넘기고, 얼결에 그것을 받아든 신랑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어가며 한숨을 푹푹 내쉰다.

"신부께서는 이제 칼을 받으십시오."
"네? 아니 이것을 왜요?"
"받으십시오."
"신부께서는 그 칼로 신랑의 신체 부위 중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곳을 지적해주십시오."

이때까지도 하객들은 물론 신랑 신부 자신들도 그 말이 무슨 뜻인지를 몰라서 어리둥절해 있는데, 지휘자는 두 번 세 번 같은 말을 반복하는 방식으로 그 말의 뜻을 확실하게 주지시켜 준다.

a  부케를 신랑에게 넘겨주고 칼을 받아야 하는 신부. 부끄럽고 민망하고 아유 참, 뭐 이런 이벤트를 준비했을까나.........

부케를 신랑에게 넘겨주고 칼을 받아야 하는 신부. 부끄럽고 민망하고 아유 참, 뭐 이런 이벤트를 준비했을까나......... ⓒ 김수복


a  내 마음도 그렇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만인 주시하에 잘라버린다는 말을 내 입으로 어떻게 해, 어떻게.......

내 마음도 그렇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만인 주시하에 잘라버린다는 말을 내 입으로 어떻게 해, 어떻게....... ⓒ 김수복


뜻을 겨우 이해한 신부가 칼날로 신랑의 등을 가리키고,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신부는 신랑의 등이 그렇게도 중요합니까. 똑바르게 해주십시오" 소리가 나오고, 신부는 다시 한참을 주저하다가 신랑의 어깨를 가리켰다가 다시 가슴을 가리켰다가 그래도 거부당하자 그만 울상을 짓는다.

그러자 멀리서 소대장이 "야 임 하사, 네가 신부를 구원해 드려라" 지시를 내리고, 임 하사라는 사람이 칼을 들고 앞으로 쓱 나서더니 "숙달된 조교로부터 시범이 있겠습니다. 신부께서 가장 중요하게 여길 신랑의 신체 부위는 바로 이곳인 것 같습니다" 하며 신랑의 가랑이 쪽으로 칼을 찌르듯이 내미는 순간 장내는 웃음바다가 되고 만다.

주례사의 정리로 장내의 소란은 겨우 진정이 되고, 숙달된 조교는 몇 차례의 반복된 지시 끝에 신부로 하여금 칼날을 신랑의 가랑이 쪽을 가리키게 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다시 이어지는 지시사항.

"신부께서는 복창하십시오. 자기야, 바람 피면 잘라 버린다."

장내는 다시 웃음바다가 되고, 신부는 그만 주저앉을 태세인데, 냉정한 조교의 지시는 철회될 줄을 모른다. 신부의 입에서 겨우 한 마디 "자기야 바람 피......" 소리가 작게, 아주 작게 나오다가 그나마 꼬리를 감추듯이 사라질 즈음 냉정한 조교는 얼음장이라도 깨트리듯 소리를 지른다.

"신부님, 그 소리가 사람이 하는 소리입니까. 모기도 그렇게 작게는 안 합니다. 사람이 하는 소리로 씩씩하게 복창하십시오. 자, 자기야, 바람 피면 잘라 버린다."
"자기야, 바람 피면 잘라......"
"지금 무얼 하시는 겁니까. 대한민국 육군을 농락하시는 겁니까. 자, 한 번만 더 다시 갑니다. 이게 마지막이예요. 이번에도 실패하면 정말 징벌로 갑니다. 명심하십시오."

신부도 이제는 사태를 완전히 파악한 것 같다. 부끄럼이나 타고 있어서는 언제까지나 계속 같은 일로 부끄러워해야 한다는 것을. 그리하여 그녀는 있는 힘껏 '그들이' 원하는 대로 복창을 하고 장검의 문을 빠져 나오기에 이르렀다. 덕분에 하객들은 오랜만에 아니 어쩌면 태어나서 처음으로 예식장에서 그렇게 마음껏 그리고 오랜 시간 웃어보는 경험을 했었을 것이다. 

a  하라니까 하기는 했지만, 아이고 이 얼굴을 어떻게 하지.

하라니까 하기는 했지만, 아이고 이 얼굴을 어떻게 하지. ⓒ 김수복


a  진땀을 흘리는 신랑. 휴, 행진 한 번 힘들다

진땀을 흘리는 신랑. 휴, 행진 한 번 힘들다 ⓒ 김수복


#결혼행진 #이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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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것이 일이고 공부인, 공부가 일이고 사는 것이 되는,이 황홀한 경지는 누가 내게 선물하는 정원이 아니라 내 스스로 만들어나가는 우주의 일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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