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대학이 멀리 이사한다고? 왜 난 모를까

대학가 제2, 3캠퍼스 붐, 학생 의견수렴 없어 문제

등록 2009.11.20 15:23수정 2009.11.20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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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대 스타시티 건국대 야구장 부지를 매각하고 건립한 주상복합단지 스타시티 전경. 스타시티를 건립하기 위해 천문학적인 등록금이 사용되었다. ⓒ 금준경


건국대학교는 의정부 미군기지 터에 건국대학교 제3캠퍼스를 건립하기로 발표했다. 이달 5일 의정부 시청에서 의정부시와 'KU Tech 의정부 클러스터' 조성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것이다. 이 자리에는 건국대학교 김경희 이사장과 오명 총장, 김문수 경기도지사, 김문원 의정부 시장이 참가했다.

건국대학교 뿐만 아니라 서울지역의 각 대학들이 제2, 제3 캠퍼스 건립에 열을 올리고 있는 추세이다. 이화여대는 파주시에, 동국대는 일산시에, 연세대와 한국외대는 송도경제자유구역에, 중앙대는 하남시에, 성균관대는 평택시에 캠퍼스 건립을 확정했다. 또한 국민대, 세종대, 성균관대는 캠퍼스 건립 추진 중에 있다고 한다.

건국대 본부측은 의정부 캠퍼스에 대한 두 가지 계획안을 가지고 있다. 77개의 연구소를 모아 산학연 클러스터로 만들어 연구중심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 첫 안이다. 기숙사나 생활편의시설이 완비된 상태에서 외국어로만 생활이 가능한 '글로벌 캠퍼스' 조성은 두 번째 안이다.

학생들은 소외된 학교 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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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대 총학생회 레디액션 선거운동본부가 만든 건국대 제3캠퍼스 공개질의 유인물이다. ⓒ 금준경


서울캠퍼스가 과포화된 상태에서 근거리에 새로운 캠퍼스 건립을 통해 교육환경을 개선하고 궁극적으로 학교가 발전하는 것에 대해 학생들은 큰 이견이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건국대학교 제3캠퍼스의 경우 절차상 문제가 거론되어 학생들 사이에 논란이 되고 있다.

가장 큰 문제점은 대학 내 구성원들의 의견수렴과정이 전무했다는 것이다. 실제 건국대학교 학생들은 언론보도가 있기 전까지 의정부 캠퍼스에 대한 정보를 전혀 접하지 못했다고 한다. 건국대학교 문과대 09학번 Y양은 건국대학교 의정부 캠퍼스 건립 계획을 전혀 몰랐다고 답했다. 학교의 일방적 결정에 대해서는 "학교의 존립과 변화는 학교의 주인들과 논의해야 할 필수불가결한 문제이기 때문에 일방적으로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와 관련해 건국대학교 레디액션 총학생회 선거운동본부 측에서는 공개질의 유인물을 통해 건국대 제3캠퍼스 건립건에서 학생이 소외된 상황을 비판하며 대학본부 정책을 미리 알 수 있게끔 '정책예고제'를 공약화하기도 했다. 레디액션 총학생회 정후보 김재근(철학06)은 "학교 행정과 제도는 학생들의 생활전반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그런데 학생들은 사안에 대한 결정권이 없으며 의사 반영구조도 부재한 상태"로 현 상황을 진단하며 학생들이 의견이 학교 행정에 반영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피력했다.


미궁 속의 이전 단과대학 선정기준과 절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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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건국대 학사구조조정 당시 일방적 폐과에 반대하는 학생들의 퍼포먼스이다. 협상테이블도, 의견수렴과정에도 참여하지 못한 학생들은 이 방법으로 나름의 시위를 할 수 밖에 없었다. ⓒ 금준경


의정부시의 제3캠퍼스 부지는 서울시 광진구에 위치한 서울캠퍼스와 20Km가 채 안되기 때문에 대학운영규정상 분교가 아니다. 따라서 의정부 제3캠퍼스는 새로운 학과를 설립하기보다는 단과대학 이전 중심으로 건립될 것이다. 그러나 구체적 안이 확정되지 않은 현재 건국대학교 서울캠퍼스 재학생들은 어떤 단과대가 이전할지 알지 못하는 상황이다.

상대적으로 유력한 안인 의정부 클러스터가 확정될 경우 서울캠퍼스의 컴퓨터, 전자공학, 생명과학, 축산식물생물공학 등의 77개 연구소 이전 및 관련 이공계열 단과대학을 이전한다는 정도다. 그러나 이러한 결정에 대해 학생들과의 논의는 전무했으며 건국대학교 교수들도 구체적 사실에 대해 알지 못했다고 한다.

의정부 클러스터 계획안이 원안대로 실행될 경우 해당 학과 학생들은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이전을 받아들여야 한다. 차후 캠퍼스 건립 계획이 구체화됨에 따라 원안이 수정될 경우를 고려해서 이전 예정 단과대 학생이 아니라고 해서 남의 문제만으로 받아들이지는 않는 분위기이다. 정치대학 09학번 A양은 "만일 우리 단과대가 이전하게 된다면 반대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사실상 서울에서 경기도로 가야 하는 것인데 서울캠퍼스라는 이점을 쉽게 포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딱 잘라 말했다.

관건은 건국대 본부가 단과대 이전과 관련해 앞으로 학생들의 의견을 얼마나 반영하고 의견조율을 하는가이다. 그러나 일방소통식 행정이 대학가에서 행해졌던 전례를 비춰보면 전망은 밝지 못하다. 1년전 건국대 학사구조 개편 당시 문과대 학생회장을 맡았던 문과대 06학번 박병민씨는 학교본부의 소통방식을 떠올리며 냉소를 보냈다.

"2008년 학사구조개편 때 학교측은 학생들에게 폐과를 알리는 이메일을 통보했을 뿐이었다. 문과대 문화정보학부의 3년된 신생학과 두 개가 경쟁력이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이후 공청회를 개최하긴 했지만 학교측은 이미 폐과를 결정한 후라서 별 소용 없었다. 의정부 제3캠퍼스 건립에 따른 학과 이전절차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의정부 캠퍼스 재원 부담은 학생이 지게 돼

건국대는 의정부 제3캠퍼스 건립에 따른 천문학적 비용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비단 건국대 뿐만 아니라 제2, 제3캠퍼스를 계획 중에 있는 모든 대학들이 떠안는 공통의 문제점이다. 건국대 본부측은 제3캠퍼스 학생부담설을 잠재우려는 듯 다음과 같이 밝혔다.

"수익사업을 통해 적립한 재원, 민간 기업 자본 유치 등의 다양한 재원을 통해 교비사용을 억제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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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대학교 의정부 캠퍼스 건립 재원은 다음과 같은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교비재원의 투자가 등록금 인상으로 이어질 것은 뻔하다. ⓒ 금준경


수익사업을 통한 재원이라는 말은 학생부담을 덜어줄 것 같은 뉘앙스지만 사실은 다르다. 5년전 서울캠퍼스 부지에서 스타시티 사업을 시행할 때 고통분담 논리로 등록금을 높이며 사업이 완료되면 등록금 동결 및 학생 환원을 하겠다고 본부는 약속했었다. 그러나 2008년 스타시티를 포함한 사업으로 1447억 원의 수익을 올렸음에도 1할 정도인 178억 가량만 학교로 전입되었다. 약속한 환원도, 2008년도 등록금 동결도 하지 않은 채 새로운 사업을 벌이는 악순환의 반복이다.

민간기업자본 유치 역시 맹점을 지니고 있다. 민자유치 방식으로 건립된 건국대 기숙사의 사례를 보자. 2인실 기준으로 한 달 기숙사비 33만 원 가량을 지불해야 하며, 별도로 지불해야 하는 식비와 빨래비를 합치면 한달에 40~50만 원 정도가 된다. 민자투자 덕분에 건립에 따른 재정 부담은 줄어들었지만 결국 민간기업에서 이윤을 내기 위해 학생부담을 가중시키는 것이다.

대학가 일방통행은 이제 그만!

대학가 캠퍼스 확장 붐에서 대학본부의 일방통행식 행정의 한 단면을 엿볼 수 있다. 일방통행의 근거로 학교발전이 강조되었지만 그 속에서 학생발전 문제는 간과되어 왔다. 캠퍼스를 새로 건립하고 다양한 수익사업을 시행하는 것은 학생들의 교육환경을 개선하고 복지를 강화하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 그러나 좋은 대학평가를 받기 위해 혹은 큰 이윤을 남기기 위한 것으로 주객전도 되어왔던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학문 탐구'라는 본연의 목적이 '장사'를 위한 목적으로 변질되었기 때문에 대학은 학생들을 대학 구성원이자 주체로서보다는 소비자로 인식하기 일쑤다. 대학본부와 학생간 권위에 있어서는 동등한 위치가 아닌 수직적인 소통구조다. 이러한 까닭으로 결국 등록금 문제, 재단 전입금 문제, 교내 공간문제 등의 학사행정에 학생들은 적극적인 의사를 반영할 수 없게 된다. 결국 대학생들은 구성원으로서의 지위를 갖지 못한다.

가장 민주적이어야 할 대학가에서 토론과 의견수렴절차, 의견조율의 과정은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민주화의 성지이자 진리의 상아탑으로 불리던 대학가의 2009년 가을 풍경은 유난히 을씨년스럽다.
#건국대 #제3캠퍼스 #의정부 #등록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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