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 청와대가 비보도 요청하면 언제나 따를 것인가

등록 2009.11.21 16:16수정 2009.11.21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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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출입기자단 간사단은 20일 <오마이뉴스>, <뷰스앤뉴스>, <데일리안>, <프레시안> 등 4개 매체에 대해 "오프더레코드(비보도) 규정을 파기, 15일의 출입정지 조치를 내린다"고 밝혔다.

 

이들 언론사들이 청와대 출입을 15일 동안 정지 당한 이유는  지난 17일 "세종시 생각, 서울시장 때부터 변함없다"와 "내 임기 중 김정일 안 만날 수도" 등 이명박 대통령의 비공식 발언을 이들 인터넷 언론들이 보도했기 때문이다. 기사바로가기 ☞<"실질 진전 없으면, 김정일 안 만나도 그만">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6일 중앙언론사 편집국장-보도국장단과 오찬간담회를, 10일에는 중앙언론사 정치부장단과 만찬간담회를, 17일에는 중앙언론사 경제부장단과 오찬간담회를 잇따라 개최했고, 이 대통령의 발언은 이곳에서 나왔다.

 

그 동안 대통령 일정 공식 취재가 아나라 비공식 만남에 나오는 발언들은 청와대가 '오프더레코드'(비보도)를 요청, 행사에서의 발언은 보도하지 않는다. 원래 비보도란 서로간에 동의로 성립한다. 초청받은 언론들이 보도하지 않은 이유다.

 

하지만 <오마이뉴스>를 비롯한 이들 인터넷 언론들은 청와대로부터 초청받지 못해 참석하지 못했다. 초청도 받지 못했는데 과연 비보도 대상인지 생각해볼 문제다.

 

그런데 청와대가 참석한 언론사들에게 비보도를 요청한 발언들은 가볍게 넘어갈 수 없는 내용들이었다. 지난 10일 청와대에서 가진 중앙언론사 정치부장단 만찬에서 나온 '남북정상회담'과 관련해 "실질적인 진전이 없는 것이라면, 임기 동안 김정일 위원장을 만나지 않을 수 있다. 안 만나면 그만"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6일 청와대에서 가진 중앙언론사 편집국장단 오찬에서 "내 생각은 서울시장 때부터 변한 것이 없다. 행정도시로 분할하는 것은, 통째로 옮기는 것보다 더 나쁘다"면서 "세종시를 그대로 추진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이 발언은 16일 세종시민관합동위원회가 세종시 문제 해결을 위한 방안을 논의하기도 전에 이미 수정 방향을 제시한 것으로 논란이 될 수 있는 내용이다.

 

이 정도 대통령 발언이라면 국가 기밀이나, 사생활 영역도 아니므로 보도가치는 충분하다. 아니 보도하지 않는 것이 언론으로서 책임있는 자세가 아니다. 그런데도 이를 보도했다고 청와대 출입을 15일이나 정지 시킨 것은 문제가 있다. 

 

청와대 출입기자단이 비보도를 보도했다고 기자를 징계한 일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미디어오늘> 보도에 따르면 김연세 기자는 지난 8일 한승수 국무총리의 대국민 담화 발표 기자회견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미국 순방 기간 중 CEO 간담회에서 한미 쇠고기 협상 타결 사실을 정부 공식 발표보다 먼저 알렸고 이동관 대변인이 대통령의 쇠고기 발언을 빼 달라는 요청을 했다는 사실을 질의응답 과정에서 폭로했다.

 

당시 청와대 기자단은 김연세 기자가 이동관 대변인의 이름을 밝힌 것과 대통령의 간담회 발언을 기사화한 것을 문제 삼아 한달 간 청와대 출입정지라는 징계를 결정했었다.

 

청와대뿐만 아니라 정부와 권력기관, 국회와 각 정당에는 기자단이 있을 것이다. 그럼 기자단이 존재하는 건 자유로운 취재와 보도를 위한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기사 내용을 두고 취재원과 담합하고 스스로를 규제하기 위한 게 아니다. 이유는 어떤 경우에도 '진실 보도'보다 중요한 원칙은 언론이 가지는 사명이기 때문이다.  

 

언론이 자기 사명을 철저히 지키기 위해 보도한 것에 대해 징계한다면 앞으로 권력이 자기 입맛에 맞는 보도만 요청하고, 권력에 손해되는 내용은 비보도를 요청하면 보도하지 않을 것인가. 권력이란 그 속성상 자기들 치부는 숨기기를 원한다. 기자들이 이를 더 잘 알 것이다. 그렇다면 그 내용이 보도됨으로써 국가에 심각한 불이익과 한 개인의 사생활이라면 모를까 시민들이 알아야 할 내용이라면 권력이 비보도를 요청해도 보도하는 것이 마땅하다.

 

청와대도 마찬가지다. 이명박 정부들어 '핵심관계자' '고위관계자'라는 말로 청와대는 말했고, 비보도를 요청하는 대통령 발언이 많았다. 특히 이번처럼 인터넷 언론을 배제하고 무시하는 경향을 보여왔다.

 

지난해 12월 29일 청와대 인터넷 출입기자단은 "청와대, 인터넷 언론 '대못질' 중단하라"라는 성명서에서 "인터넷 언론사는 이명박 대통령의 대 언론접촉에서 지난 1년 동안 철저하게 배제돼 왔다"면서 "앞에서는 '소통'을 외치면서도 인터넷 언론사를 의도적으로 배제하는 이러한 행태는 결국 '불통의 부메랑'으로 되돌아올 수밖에 없음을 청와대는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고 비판했었다.  

 

하지만 아직도 인터넷 언론은 청와대로부터 대못질을 당하고 있다. 이 대못은 청와대와 출입기자단이 함께 뽑아야 한다. 특히 청와대 출입기자단은 청와대가 인터넷 언론을 배제하고, 대못질하는 것에 대해 강하게 비판하고 진실을 보도하는 동료로 생각해야 한다. 청와대 기자단은 권력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와 시민을 위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 일을 인터넷 언론도 똑같이 하고 있음을 청와대와 청와대 출입기자단은 명심해야 한다.

2009.11.21 16:16ⓒ 2009 OhmyNews
#비보도 #인터넷언론 #청와대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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