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붓아버지 눈치보며 33살 된 나, 원망하는 사람이 되었다

시작을 누가 했건 중독에서 벗어나는 일은 바로 나 자신의 문제다

등록 2009.11.25 13:32수정 2009.11.25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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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이 되도록 엄마가 고맙지 않았고, 오히려 원망했다.


전 마흔이 되도록 엄마한테 고마운 마음을 안갖고 살았습니다. 말로는 이만하게 살게 된 덕이 부모님 덕이라고 했지만 솔직한 제 밑마음은 '누구나 다 그 정도는 부모 역할 하지. 내 친구들 보면 더 잘해준 부모도 많더라'였습니다. 

그 마음에는 친정 엄마에 대해 무의식에서 큰 원망이 있었습니다. 늘 아들만 중시하는 엄마가 싫었고, 늘 남보다 못한 것만 지적하는 엄마가 싫었고, 돈돈돈 하는 엄마가 싫었습니다. 그래서 난 절대 엄마처럼은 살지 않을 거야, 라고 선언했고 반대의 삶을 살려고 무척 노력했습니다.

엄마와 다르게 살겠다는 첫 시도, 결혼.

그 노력의 결과, 첫 열매가 제 결혼이었습니다. 전 절대 엄마가 선 보라는 그런 좋은 자리는 관심도 두지 않았고, 엄마가 원하는 조건의 남자는 쳐다도 안봤습니다. 왜? 엄마를 부정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엄마가 중시하는 세속의 것들을 보지 않고 우겨서 결혼을 했습니다.

결혼한 후에도 전 엄마를 원망하는 마음이 가득했습니다. 그 원망하는 마음 한구석에는 '엄마가 날 그렇게 닥달하지만 않았어도 내가 빨리 결혼하지도 않았다'가 있었습니다. 정토회 '깨달음의 장'에 가서 엄마를 미워하는 나 자신 때문에 힘들어 한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쉽게 엄마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엄마에게 진심으로 참회하고, 감사하게 된 올 여름.

제가 그런 엄마를 진심으로 이해하게 된 건 올해 여름이었습니다. 여러 젊은 도반(친구)들과 라이프 스토리를 하는 과정에서 엄마에 대한 진정한 감사의 마음이 올라왔습니다. 많은 친구들이 부모님의 부부싸움으로 인해 불안한 어린시절을 보냈고, 아버지의 폭력도 있었고, 학교 갔다 돌아와서 엄마가 가버렸으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어른이 된 지금까지도 자신의 무의식에 남아서 힘들게 한다고 했습니다.


그때서야 전 엄마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전 한 번도 엄마가 집을 나갈 거라고 생각해 본 적도 없었고, 아버지의 폭력을 경험하지도 않았습니다. 제가 엄마를 싫어했던 건 단지 자식 앞에서 돈 걱정하는 게 싫었고, 비교하는 게 싫었지, 다른 친구들처럼 가정을 깰까봐 불안감을 주지는 않았습니다.

우리 엄마가 참 위대한 사람이구나.

다른 엄마들은 부부싸움을 하면 집 나가서 자식을 불안하게 했지만 내 엄마는 힘들어도 우리를 꿋꿋하게 지켜내셨구나. 얼마나 힘든 시간이 많았을까. 정말 고맙다.

요즘도 가끔 엄마가 아버지 때문에 못살겠다는 하소연을 하십니다. 그러면 제가 이렇게 흥분합니다.

"아버지가 진짜 그랬어? 아니 그 아버지는 왜 그래? 어디 가서 엄마같은 사람을 만날 거라고 말을 안들어? 남자들은 왜 속이 없나 몰라? 내가 아버지 만나면 따끔하게 혼내줄게. 아니, 싹싹 기어도 시원찮을 판에 큰소리를 왜 친대? 철이 없어. 철이."

이렇게 흥분하면 엄마가 같이 욕하실 때도 있지만 대체로 마지막엔 뭐라는 줄 아세요?

"그래도 느 아부지가 심성이 착하다 아이가. 권씨 집안이 융통성이 없어서 그렇지 순하고, 착하데이." 

쳇. 이러면 아버지 욕을 실컷 한 제가 뻘쭘하지요^^ 아니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 서리가 내리도록 품어야지 금방 그렇게 후퇴를 하다니요. 그래서 스님께서 남의 집 부부싸움에 관여를 하지 말라나 봅니다... 쩝.

오늘 질문하신 분도 서른 세살의 청년이라는데 부모님께 많이 원망스러우시답니다. 질문을 들으면서 저도 그 청년의 엄마에게 원망의 마음이 같이 올라오네요. 지혜로운 법륜스님은 이 청년의 괴로움을 어떻게 풀어주실까요? 스님께 법을 청해 봅니다. 

질문
저는 서른세 살의 청년입니다. 일곱 살 때 부모님이 이혼하고 줄곧 의붓아버지와 어머니의 눈치를 보면서 생활하였습니다. 열아홉 살 때는 선천성 뇌혈관 기형으로 뇌수술을 두 번이나 받았고 스물여덟 살 때부터는 고혈압 약을 먹어야 했습니다. 스무 살 때부터 편의점 아르바이트, 자장면 배달을 하면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런 저를 엄마가 몰라준다는 사실입니다. 병밖에 물려준 게 없어 정말 미안하다고 한마디만 해주면 되는데도 엄마는 단 한 번도 미안하다는 말을 한 적이 없습니다. 그 때문인지 저는 항상 남을 욕하고 원망하는 못난 사람이 되었습니다.

a  법륜스님 즉문즉설

법륜스님 즉문즉설 ⓒ 권영숙


법륜스님 법문 

어떤 여대생이 납치를 당해서 유흥업소에 팔려 갔다고 생각해봅시다. 그런데 그 여대생이 말을 안 들으니까 업주가 마약 주사를 놨습니다. 여대생도 처음에는 발버둥치면서 반항하다가 결국 시키는 대로 해서 마약에 중독이 되었어요. 그렇게 일 년쯤 지나서 그 업주가 경찰에 붙잡히게 되면서 여대생도 풀려났어요. 

시작을 누가 했건 중독에서 벗어나는 일은 바로 나 자신의 문제다.  

그런데 풀려난 여대생은 강제로 주사 놓는 사람이 없어졌는데도 스스로 마약을 찾습니다. 그래서 마약을 하지 말라고 하니까 이것은 자기가 시작한 게 아니라 그 업주가 시켜서 시작한 것이므로 그 업주 책임이라는 것입니다. 여대생이 스스로 마약을 시작한 것은 아니지만 이미 중독이 된 상태에서 그것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은 남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자신의 문제입니다.

이처럼 어떤 이유가 되었든 지금은 자신의 카르마(업)가 돼버린 것입니다. 본인에게서 시작된 문제가 아니라고 다른 이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그렇게 자기 인생을 함부로 팽개치고 살아갈 겁니까? 

내 의지로 태어나지 않았지만 그래도 인생은 자신의 것이다.

스스로 벗어나야 합니다. 이 세상에 자기 의지로 태어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래도 인생은 자신의 것입니다. 성장 환경이 좋지 않았다고 해도 그 모든 상처는 내가 고쳐야 할 내 문제입니다. 어머니가 해결해주지 않는다고 자학하면서 살면 결국 내 손해입니다. 이 병은 현재 내 것이니 내가 치료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어머니에게는 우선 생명을 주신 것에 대해 감사해야 합니다. 어머니가 이혼을 하고 의붓아버지와 재혼을 했다 하더라도 본인에게 젖 먹이고 밥 먹이며 키웠습니다. 스스로 중국집 배달원을 하면서 공부했다고 해도 고등학교 때까지는 어머니가 키워주었습니다. 낳아준 것만으로도, 어릴 때 키워준 것만으로도 어머니를 감사하게 여겨야 합니다. 그 다음은 자기 인생입니다.  

재혼한 남자 눈치보며 자식을 키웠던 어머니 입장을 생각해라.  

어머니 입장에서 한번 생각해보세요. 어머니가 스물다섯에 본인을 낳았다고 했는데, 스물다섯이면 아직 한참 어릴 때입니다. 그때 결혼해서 아이 키우면서 고생하다가 결국 이혼까지 하게 된 것입니다. 어린 나이에 혼자 사는 게 쉽지 않아 재혼을 했을 텐데, 재혼하는 남자 입장에서 보면 자기가 낳은 아이들도 보살피기 힘든데 남이 낳은 아이까지 보살피고 싶지 않았을 겁니다. 그래도 어머니는 불이익을 감내하면서 재혼한 겁니다. 어머니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정말 눈물 날 일이에요.  

요즘 아이를 버리는 엄마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래도 어머니는 젊은 나이에 아이를 낳아 혼자서 고등학교 때까지 길러주었으니 얼마나 고마운 분입니까? 부모가 일부러 나한테 상처 주려고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다 자기 살기 힘들어서 그런 것입니다. 어머니도 완벽한 인간은 아닙니다. 어머니의 입장이 되어보고, 어머니를 불쌍하게 여겨야 됩니다. 어머니를 불쌍하게 생각하면 어머니로부터 받은 상처가 다 사라집니다. 

자식을 눈치보게 키우려면 재혼을 하지 말지.

처음 청년의 질문을 들으면서는 '어떻게 자식을 의붓아버지 밑에서 눈치보게 키우냐, 자식을 그렇게밖에 못키울거면 재혼을 하지 말아야지', 하면서 제가 청년이 된 것처럼 원망의 마음이 올라왔습니다.

그런데 스님께서 어린 나이에 혼자 사는 게 어려워서 재혼했을 거고, 재혼한 남자 눈치보며 아들을 키웠을 어머니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눈물 날 일이라는데 제 원망하는 마음이 탁 놓여졌습니다. 그 엄마도 얼마나 힘들었겠나. 경제적인 능력이 있었으면 당장에라도 아들을 데리고 나오고 싶었겠다. 그 치사함을 누르고 사느라 정말 애썼겠다.

재혼남의 눈치 보느라 그 엄마가 힘들었겠다.

만약 나였더라면 하루도 못살았겠다. 자식 제대로 못 키우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그런 내 자신이 한심해서 못살았겠다. 스님의 법문을 들으면서 그 엄마 입장이 되니 이해가 충분히 됩니다. 지금도 여자 혼자 아이를 키우는 일이 힘든데 그 엄마 세대에는 더 했을텐데 많이 울었겠다. 상대를 이해하는 일이 곧 내가 행복해지고, 내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길이라는 것을 깨닫는 법문이었습니다.

이 세상에 자기 의지로 태어난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그래도 인생은 자신의 것이고, 그 상처를 고치는 건 바로 내 문제기에 나를 사랑하려면 더이상 상처로 인해서 자신을 괴롭히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청년에게 많이 고맙습니다. 이 청년이 자신의 이야기를 질문하지 않았다면 제가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는데 더 오랜 시간이 걸렸을테니까요. 이 글을 읽어주시는 여러분께도 고맙습니다. 이 좋은 법을 저 혼자 듣기 아까운데 기꺼이 읽어주시니 고맙지요.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정토회 #법륜스님 #무엇이든 물어라 #즉문즉설 #날마다 웃는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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