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이네 담벼락 1집 [정저지가]
순이네담벼락
올해 11월 첫 음반 <정저지가(井底之歌)>를 발매한 '순이네 담벼락'의 소리들은 그래서 일상 안에서는 잘 들리지 않는다.
올해 발매된 여러 음반 가운데 가을이후 집중적으로 발매된 오소영, 생각의 여름, 양양의 음반들 역시 그랬듯이 이들의 조용한 읊조림은 결국 일상 밖에서 누가 얼마나 청자의 가슴속에 울림을 강하게 울리는가를 내기한다. 그들의 선배들이 그랬듯 그것은 '공감'이라고 불린다.
그리고 그 공감의 키워드를 순이네 담벼락의 음악은 현실보단 이상과 꿈을 통해 이야기한다. 미래보다는 과거를 추억하고, 힘내라는 응원가 대신 'No Brave'라는 곡을 통해 나도 너와 같이 겁 많고 소심한 그 누군가일 뿐이라는 자학적인 가사로 비집고 들어온다. 뿌연 수채화 같이 뭉뚱그려 먹먹하게 들어온다.
거기다 파스텔로 대충 칠한 그들의 소리는 그래서 그런지 다분히 시대착오적이다. 적어도 내가 세상을 통해 배웠던 승리의 공식은 안 되도 되게 하라는 불굴의 진리와 개인의 신념이었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이들 음악은 성공하지 못한 누군가의 기백 없는 중얼거림에 지나지 않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음악 속에 들어가 있는 화자의 모습에서 자신을 발견하게 되기에는 그렇게 긴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거울 속에 비쳐져 있는 그 덥수룩한 머리를 한 손으로 쓸며 담배를 입에 문 감성적인 사내는 언젠가 내가 우리 집 거울에서 본 그 사내의 모습과 너무나 닮아있음에 놀라게 되는 것이다. 아침마다 그럴듯한 양복과 폭 좁은 넥타이로 한껏 멋을 낸 껍데기의 나를 볼 때 느끼는 가식적인 자존감은 그렇게 이 음악의 흐름속에 비참하게 무너진다. 그리고 조우한 그 사내는 언젠가 잃어버린 나 자신을 찾은 듯 손을 흔들며 그곳에서 그렇게 홀로 서있다.
때로는 유년시절 떡볶이를 나눠먹던 소년으로, 때로는 방황하던 학창시절에 청년으로, 때로는 뒤늦은 사랑에 얼굴 붉히는 지금의 모습으로.
공감이다. 그렇게 강력한 파워로 만들어진 3단 합체 로봇은 칼을 집어 들어 저 앞에 있는 현실의 거대한 악당로봇과 싸우지는 못하지만, 나무로 만든 목검으로 다져진 우정만큼은 변치 않으리라. 그리고 함께 영원한 꿈을 꾸는 것이다.
꿈을 꾸는 그곳, 완성되는 저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