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주름진 얼굴에서 천사의 모습을 보았소

바쁘다는 핑계로 결혼기념일도 생일도 잊어버린 무능한 남편

등록 2009.11.25 17:28수정 2009.11.25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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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무는 가을  이 산길을 지나 뒷산으로 오르고 있다. 사가사각 밟히는 소리가 아내의 정다운 음성처럼 들린다.
저무는 가을 이 산길을 지나 뒷산으로 오르고 있다. 사가사각 밟히는 소리가 아내의 정다운 음성처럼 들린다. 김학섭
▲ 저무는 가을 이 산길을 지나 뒷산으로 오르고 있다. 사가사각 밟히는 소리가 아내의 정다운 음성처럼 들린다. ⓒ 김학섭

 

아내를 위한 기도  

 

           김  학  섭 

 

지금은 밤 아홉시요

평상시 같으면 아직 당신은 잠들 시간이 아닌데

오늘은 일찍 티브이 앞에서 잠이 들었소.

피곤이 당신을 괴롭히는 모양이구려.

당신의 잠든 얼굴을 보며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소

온통 얼굴에 주름뿐이오.  

울컥하고 눈물이 나는 구려

가족을 위해 평생 일하는 당신의 모습을 보며

참으로 미안한 생각뿐이요.

 

덧없이 흘러간 세월

바쁘다는 핑계로 결혼기념일도 당신의 생일도

챙겨주지 못했던 못난 남편    

아이들이 어떻게 자라는지 몰랐던 무능한 남편을 위해

당신은 묵묵히 일만 했소,

나는 왜 바보처럼 세상을 살았는지

이제야 후회되는 구려.  

당신에게 용서를 빌어야 하겠소. 

 

세월은 내 청춘을 빼앗아가 버렸소,

당신을 행복하게 해주겠다고 한 약속도 

패기도 세월과 함께 이제는 사라졌소. 

그래도 당신은 무능한 남편을 위해

오늘도 일하러 갈 준비를 서두르는구려.

그 많은 세월동안 나는 무엇을 했는지

참으로 바보처럼 살았소.

 

지금은 새벽 네시, 뒷산에 오르고 있소,

당신은 아직도 단꿈을 꾸고 있을 시간이오. 

오늘은 당신을 위해 하느님께 부탁하겠소,

당신의 주름진 얼굴을 펴달라고.   

나는 시인은 아니오, 하지만 당신을 위해 노래하지 않고는

이 가슴이 미어질 것만 같소.  

 

가을이 저물고 있소

간밤에 비가 내리더니

오늘 새벽별은 유난히 빛나고 있소.

산길에 낙엽들이 떨어져 사각사각 밟히오.

지난 일요일 당신이 나와 함께 산을 오르다가

누군가 다칠 수 있다며 길가에 낙엽을 쓸어 내는

자상한 당신의 모습을 보며 가슴이 뭉클하더이다.

오늘 새벽 그 길을 밟으며 산에 오른다오.   

내가 만일 세상에 다시 태어난다면 

당신에게 무엇을 해야 된다는 것을

이제는 확실하게 알 것 같소이다.

인생은 연습이 없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오.  

당신에게 무엇을 해주겠다고 약속하기에는

나는 너무 많이 늙어 버렸소. 

 

당신은 죽으면 나 같은 사람과 결혼하지 

않겠다고 웃으며 말하지만 나는 그 반대요.

다시 세상에 태어날 수만 있다면

당신과 결혼하여 그동안 해주지 못한 행복을

실컷 안겨 주고 싶소.

 

나는 오늘 새벽도 낙엽을 밟으며

산길을 오르고 있다오.

당신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하느님께 기도하는

일밖에 없소이다.

2009.11.25 17:28ⓒ 2009 OhmyNews
#아내를 위한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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