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들 사이에서 김태희(최승희 역)가 테러범들과 총격전을 벌이고 있다.
권우성
'따다당!' '따다당!' 귀청을 때리는 총소리가 이어진다. 총에서는 불꽃이 튄다. 지금 청와대가 훤히 보이는 광화문 미 대사관 앞에서는 핵 테러를 막기 위한 비밀요원들의 총격전이 한창이다. 쫓고 쫓기는 사람이 있고, 부서진 차량도 도로에 널부러져 있다.
실제 상황은 아니다. 드라마 <아이리스>의 촬영을 위한 연출 상황이다. 하지만 서울의 중심 광화문에서 듣는 총성은 섬뜩한 느낌을 준다. 광화문을 지나는 사람은 물론이고, 드라마 촬영 모습을 보기 위해 일부러 찾은 이들, 그리고 빌딩 실내에 있는 사람들도 깜짝깜짝 놀랄 정도다.
배우 이병헌 등은 차량을 뛰어 넘고, 도로를 달리는 등 액션 연기를 펼치고 있다. 생생한 총격 소리와 함께 보면 실세 상황처럼 박진감이 넘친다. 하지만 겨울비 속에서도 현장을 찾은 시민들에게는 이 모든 상황은 '그림의 떡'이다. 총격 소리는 실감 나지만, 시각적 효과가 뒤를 받쳐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가장 관심을 끄는 <아이리스> 총격 신은 현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촬영되고 있다. 출입 통제선은 저 멀리 한참 떨어진 곳에서 설치돼 있다. 사람들은 제각각 뒤꿈치를 들거나, 나름대로 높은 곳을 찾아 톱스타의 모습을 보려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보통의 인간 눈으로는 엑스트라와 톱스타 이병헌을 분간하기 어렵다.
상황이 이러니, 미리 망원경을 준비해 온 사람들의 '센스'가 빛을 발한다. 이들은 망원경을 눈에 갖다 대며 "보인다, 보인다"를 연발하며 사람들의 부러운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여기에 재빠르게 망원경을 상품으로 내건 길거리 상인들도 등장했다. 우비를 입은 상인들은 노란색, 하늘색의 망원경을 4000원에 팔고 있다. 길거리 상인 경력 5년인 박모(56)씨는 "수 만 명은 모일 줄 알고 왔는데, 예상보다 사람들이 많지 않다"며 "2시간 동안 망원경 8개를 팔았다"고 말했다.
또 드라마 촬영을 알면서도 무단 횡단을 시도한 두 중년 여성이 촬영팀에 붙잡히는 사고도 발생했다. 현재 광화문광장에서는 길을 건너려면 교보빌딩 앞까지 와야만 한다. 이런 수고로움 때문에 두 사람은 과감하게 무단 횡단을 시도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오후가 되면서 광화문 주변 교통은 혼잡스러워졌다. 미 대사관 쪽 편도 5차로는 차량으로 가득해 정체현상을 보이고 있다.
▲미리 망원경을 준비해와 <아이리스> 촬영 모습을 보는 사람들.
박상규
▲발빠르게 망원경을 상품으로 들고 나온 길거리 상인
박상규
[2신 : 29일 낮 12시 30분]비는 내리고, 이병헌·김태희는 안 보이고
▲<아이리스> 촬영이 한창인 세종문화회관앞 도로와 광화문 광장은 배우와 촬영팀으로 분주한 가운데, 우산을 든 일반 시민들은 도로 주변과 맞은편 인도에서 촬영장면을 지켜보고 있다.
권우성
▲몇몇 시민들이 우산을 가림막에 걸쳐 놓은 채 <아이리스> 촬영장면을 지켜보고 있다.
권우성
드라마 <아이리스>에 포위된 광화문광장에 겨울비가 내리고 있다. 하지만 이병헌·김태희 등 톱스타의 촬영 모습을 보기 위한 시민들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29일 낮 12시 현재 광화문 미 대사관과 세종문화회관 주변에는 비옷과 우산으로 무장한 시민 약 1000여 명이 몰렸다.
시민들의 다수는 여성들이며, 중년의 일본 여성들도 자주 눈에 띈다. 이들은 한 손에 디지털카메라를 들고 이병헌·김태희·김소연 등의 배우가 등장하길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출입통제선에 늘어선 시민들의 눈에 배우들의 모습은 잘 보이지 않는다.
광화문광장 통제, 처음 아니다 |
드라마나 영화 촬영을 위해 광화문 일대가 통제된 적은 이번이 처음일까? 정답은 "처음이 아니다".
우선, 지난 2005년 2월 21일 새벽, 탱크와 장갑차 등 무장 병력이 광화문 일대로 진격한 적이 있다. MBC 드라마 <제5공화국>의 12·12쿠데타 장면 촬영을 위해서다. 또 2006년 개봉한 영화 <한반도> 역시 광화문에서 촬영한 장면이 있다. 하지만 두 작품 모두 교통이 덜 혼잡한 심야시간대에 촬영했다.
특히 <제5공화국> 광화문 촬영 현장을 보도한 <동아일보> 2005년 2월 21일자를 보면 겨우 10여 분 동안 교통이 통제된 것으로 나온다. 당시 <동아>는 "이날 촬영을 위해 광화문 일대 도로를 10여분 간 통제하자, 통행하던 차량들이 경적을 울리며 항의하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고 보도했다.
어쨌든 드라마 촬영을 위해 휴일 낮 시간에, 그것도 12시간 동안 광화문 일대가 통제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물론 작년 6월 10일 촛불집회를 막기 위해 경찰이 세종로사거리에 대형 컨테이너로 이른바 '명박산성'을 쌓은 적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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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헌·김소연 등은 광화문 촬영 현장에 나타났지만, 워낙 거리가 멀어 시민들의 눈에는 잘 보이지 않는다. 배우 김태희는 아직 촬영 현장 나타나지 않았다. 배우들의 동선을 비교적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이들은 망원렌즈를 갖고 있는 사진기자들. 이들은 광화문 광장 주변의 높은 빌딩에서 망원렌즈를 이용해 배우들의 얼굴을 잡아내고 있다.
하지만 일반 시민들이 사용하는 '똑딱이 디카'로는 아무리 줌을 당겨도 배우들의 그림자도 잡아내기 어렵다. 그럼에도 일본인 관광객 등 촬영현장의 시민들은 배우들이 가까이 나타나기를 바라며 우직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시민들이 몰리니 거리에서 비옷과 커피 등을 파는 상인들도 등장했다. 또 세종문화회관 외교통상부 방향에는 어묵 등을 파는 포장마차도 문을 열었다. 길거리 상인들도 <아이리스> '특수'를 누리고 있는 셈이다.
한편 광화문에서 세종로사거리까지 5차로가 통제됐지만 아직 큰 교통혼잡은 없다. 서울시와 경찰은 미 대사관 쪽 도로 다섯 개 차선을 나눠 양방향 모두 차량 통행이 가능하게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