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극장 '청자다방'에 갔더니...

[참가기] 심리극을 통한 '나 돌아보기'

등록 2009.11.30 09:37수정 2009.11.30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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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방은 대학 근처 골목의 편의점 지하에 있었다.
그 다방은 신발을 벗고 들어가 앉는 방으로 되어 있었다.
그 다방은 커피와 녹차 등등을 손수 타서 먹게 되어 있었다.
그 다방의 주인은 남자였다. 
그 다방의 이름은 '청자다방'이었다.
그런데 그 다방의 이름 앞에는 '심리극장'이라는 말이 붙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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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극을 통한 '나 돌아보기'를 시작하며 잠시 설명을 듣는 시간. 다들 약간 긴장한 모습들이다... ⓒ 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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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돌아보기'에 대한 설명 사진 왼쪽이 최대헌 심리극 수련감독 전문가, 오른쪽은 전문 스텝 ⓒ 유경


지난 11월 26일 저녁, '심리극장 청자다방'에서 23명의 '어르신사랑연구모임(어사연)' 회원들은 <심리극을 통한 '나 돌아보기'>라는 프로그램에 함께 참여했다. 한 달에 한 번 가지는 정기모임 '어사연 공부방' 날이었다.


직접 몸으로 체험을 하게 되니 편안한 바지를 입고 오라는 공지사항 때문이었을까. 혹시라도 불편하고 민망한 몸놀림을 해야 되는 것은 아닌지, 다들 약간은 걱정스럽고 긴장한 표정들이었다.

첫 순서는 짝을 이루어 자기 소개하기. 단, 직업과 가족관계와 출신 학교 이야기 빼고. 그거야 뭐, 하고 시작했지만 막상 하고 있는 일, 식구들 이야기를 빼니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조금 당황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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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인사 나누기 1 두 사람씩 짝을 지어 인사를 나누는 시간 ⓒ 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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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인사 나누기 2 두 사람은 직업, 가족 관계, 출신 학교를 빼고 무슨 소개를 하고 있을까... ⓒ 유경


소개가 끝나자 간단한 짝체조에 이어서 흥겨운 노래에 맞춰 몸을 움직이는 시간. '나 처럼 해봐요, 이렇게...' 한 사람씩 돌아가며 몸짓을 하면 모두가 따라한다. 간단한 몸 동작마저 떠오르지 않아 난감하다. 그래도 어찌 어찌 내 순서를 감당하고는 옆사람에게로 넘긴다. 서로의 몸짓을 따라하다보니 자연히 웃음이 터지고 몸에 땀이 나기 시작한다. 몸치라 해도 신나는 건 신나는 거니까, 재미있었다.

잠시 휴식 후에는 조용히 자리에 앉아 내 몸의 감각을 느껴보는 시간을 갖는다. 언제 한 번이라도 내 몸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느껴보려 한 적이 있는지 모르겠다. 비록 생각으로 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내 몸의 겉을 거쳐 안으로 들어가 여행을 한다. 천천히...

'내 몸 가운데 마음에 들지 않는 곳'에 가만히 손을 대고 내가 그렇게 싫어하고 미워했지만, 나를 떠나지 않고 그대로 있어준 그 몸을 생각해본다...'내 몸 가운데 아픈 곳'에 손을 대고 왜 아프니, 묻는 게 아니라 얼마나 아팠니, 위로를 한다...  


이번에는 두 사람씩 짝을 맺는다. 혹시라도 불편할까 걱정해 동성끼리 짝을 하도록 조정한다. 한쪽은 산들바람, 한쪽은 뭉게구름이다. 나는 뭉게구름이 되었다. 내 앞에 선 산들바람은 내가 싫어하는 나, 버리고 싶은 나, 마음에 들지 않는 나다. 산들바람에게는 내가 그런 존재이다.

어두운 가운데 눈을 감고 서로의 손바닥을 마주대고는 두 팔이 새의 날개가 된 듯 하늘을 날기 시작한다. 상대방을 의식하는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호흡을 맞춰가니 어느 덧 내가 한 마리 새가 되어 하늘을 날고있다. 위로, 아래로, 오른쪽으로, 왼쪽으로...정말 세상이 저 아래로 작은 점이 되어 멀어지기는 같기도 하고, 바람에 몸을 맡기고 유유하게 날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이제는 두 사람이 등을 대고 선다. 내가 기대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즉, 내가 싫어하는 나, 버리고 싶은 나, 마음에 들지 않는 나)이 내게 기대도록 해주는 것이다. 산들바람의 몸이 내 등에 편하게 기댈 수 있도록 등을 내주며 가만히 서있으려니 순간 눈물이 흐른다.

주책이라 생각하고 얼른 닦아내는데, 여기저기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린다. 아, 나만 우는 게 아니었구나...그리고는 그냥 내 마음이 시키는대로 놔두기로 한다. 그렇지 않아도 시작하면서 선생님이 이 시간에는 생각은 멈추고 그냥 느낌에 집중하라고 했다.

그런데 내가 나를 기대게 해주는 건데 왜 이렇게 눈물이 나는 걸까.

...그동안 힘들었구나, 기대고 싶었구나, 아무한테도 그 어디에도 마음 내려놓지 못했구나, 쉴 곳이 없었구나. 이렇게 마음 놓고 한 번 기대보고 싶었구나...

이제 돌아서서 산들바람과 뭉게구름이 마주보고 서로 끌어안는다. 내가 나를 안는 것이다. 그리고는 내가 나의 이름을 부르며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한다. 그 순간 내가 안고 있는 나는 이미 싫어하고, 버리고 싶고, 마음에 들지 않는 나가 아니었다. 따뜻하게 안아주고, 쓰다듬어 주고, 등 쓸어주고, 다독거려주고 싶은 나였다.

...유  경! 힘들었지. 정말 많이 힘들었지. 그런데도 끊임없이 앞으로 걸어가라고 등 떠밀고 재촉했지. 잘 하고 있다고 격려하는 척하면서 말이야. 정말 미안하다, 미안해...얼마나 힘들었니. 그래서 병이 났고 수술까지 한 거지. 그렇게 되기까지 혼자 속으로 참고 누르고 아닌 척하고 살았지. 나까지 모른 척해서 미안해...사는 게 그런 거라고 그냥 넘긴 거 미안해. 너는 이렇게 아프다고 소리치고 있는 데도 못들은 척 괜찮은 척 하고 있었어. 미안해...

내가 안고 있는 짝(산들바람) 역시 자신의 이름을 부르고 이야기를 하면서 내 등을 쓰다듬는다. 그는 자기 자신을 쓰다듬는 것이지만, 그것은 동시에 나를 쓰다듬으며 위로해 주고 있는 것이었다.

옆에서 들려오는 훌쩍거림은 흐느낌으로, 엉엉 우는 소리로 바뀌어 갔다. 나도 눈물을 쏟아냈다. 그래도 내가 안고 있는 짝꿍의 몸이 따뜻해 한 없는 위로가 되었다. 짝꿍은 짝꿍이기도 하지만 바로 나였으니, 그 위로 또한 내 안에서 오는 것이기도 했다.

서서히 감정이 차분해졌고, 음악이 꺼졌으며, 불이 밝아졌다. 퉁퉁 부는 눈도, 빨개진 코끝도 서로 부끄럽지 않았다. 둥그렇게 둘러앉아 서로의 얼굴을 보며 소감을 나눈다.

...저는 냉혈한인가봅니다. 몰입이 잘 안 됐어요...저는 이전의 나보다 지금의 내가 훨씬 더 사랑스러운데, 오늘 왜 눈물이 났는지 모르겠어요. 눈물이 짭짤하지 않은 걸 보니 분명 행복한 눈물인 것 같습니다...짧은 시간에 새가 되어 나는 것 같았고, 모두가 푹 빠지는 걸 느끼면서 신비하기까지 했어요, 환상적이었어요...얼마 전에 라식 수술을 했는데, 눈이 얼마나 놀라고 아팠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어요. 한 번도 그런 생각 못했는데...다른 사람에게는 감사를 잘 표현했는데, 이제부터는 나 자신에게 감사를 표현하며 살아야겠어요...솔직히 나 자신에게 아무 이야기도 못했습니다. 내가 너무 감정을 표현하지 않고 살아서 이렇게 굳어버렸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다른 사람들은 참 마음들이 착하고 잘 표현하고 살아온 것 같아서 부러웠습니다...정말 내 몸에 이렇게 온 마음으로 집중한 적이 있었나 싶어요, 제 마음을 읽고 느낀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2시간 30분, '나 돌아보기'는 곧 '내 안으로의 여행'이었으며 '나 돌보기'였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울림은 컸다. 모두들 참 어렵고 힘들게 살고 있고 그걸 어디에도 내려놓지 못하하고 살아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우선 들었다. 물론 나 자신도 포함해서.

그리고 또 하나는 바깥으로만 뻗어있는 나의 감각을 안으로 돌리는 시간을 가져야겠다는 것이었다. 내가 나를 제대로 바라보고 다정하게 쓰다듬고 사랑하는 게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위로와 배려를 바깥에서만 구할 것은 아니다.

이제부터는 잘한다고 대단하다고 장하다고 칭찬하면서, 그러니까 좀 더 빨리 높이 날으라고 할 게 아니라, 힘들고 지치고 외로운 내 마음을 읽고 다독여주고 안아주리라. 내 안에 여전히 남아 외로워하고 아파하고 슬퍼하고 힘들어하는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따뜻하게 손 잡아 주리라. 내가 그렇게 하지 않으면 누가 하랴...

프로그램에 푹 빠져서 시작할 때 몇 장을 빼고는 사진이 남아있지 않은 게 처음에는 서운했지만, 마음 속으로의 여행은 마음에 그대로 찍혀 영원히 남아있을 것이기에 아쉬울 것 없었다.

덧붙이는 글 | 심리극장 청자다방 www.kmcri.com 02-701-2094


덧붙이는 글 심리극장 청자다방 www.kmcri.com 02-701-2094
#심리극장 청자다방 #청자다방 #심리극 #어사연 #나 돌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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