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참 순대 같은 사람이군요"

[서평] 도종환 외 여러 작가들이 쓴 <참 아름다운 당신>

등록 2009.12.01 10:24수정 2009.12.01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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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겉그림 도종환 외 〈참 아름다운 당신〉 ⓒ 우리교육

예전 우리 사회에서 귀하게 대접받던 사람들은 높은 지위와 권한을 쥔 사람들이었다. 그들에 의해 세상이 한 발 더 앞서 나간다고 여긴 까닭에서다. 하지만 그들에 의해 세상이 따뜻하거나 아름답게 된 것은 별로 많지 않다. 오히려 더 거칠고 더 삭막해지지 않았나 싶다. 인간미 넘치는 풋풋한 사람 냄새가 더 그리운 시절이 되었다.

 

이제 우리 사회에서 귀하게 여김 받아야 할 사람들은 제 소신껏 묵직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다. 누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주어진 자리에서 세상을 따뜻하게 하는 사람들이다. 외길 같지만 그 한 길에서 묵묵히 더불어 숲을 이루며 사는 사람들이다. 세상 높은 곳이 아닌 음지에서 인간미 넘치는 살가움을 자아내는 사람들이다.

 

도종환 외 여러 작가들이 쓴 <참 아름다운 당신>(우리교육 펴냄)은 그런 사람들을 만나게 해 준다. 이들은 우리 사회에서 높은 지위나 권한을 지닌 사람들이 아니다. 세상이 몰라줘도 그저 자신들이 사는 지역과 동네와 고향 땅에 따뜻한 볕이 들게 해 주는 사람들이다. 왜 그들이 귀한 존재들인지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자연스레 머리를 끄덕일 것이다.

 

"그녀의 말을 들으며 나는 그녀야말로 순대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남들이 보기에는 버려진 돼지 창자처럼 보잘것없어 보이는 그녀의 삶. 그러나 그녀는 그 보잘것없는 돼지 창자 속에 기쁨과 희망과 온기를 집어넣어 그녀의 삶뿐만 아니라 타인의 삶도 풍성하게 해 주고 있다." (33쪽)

 

이는 소설가 이명랑이 사는 아파트 단지 내에서 떡볶이와 순대와 오뎅을 파는 한 아주머니의 이야기이다. 물론 그 아주머니는 돈만 받고 그것들을 팔아넘기는 단순한 장사치가 아니다. 때론 굶주려 있는 아이들이 있거나 비통한 일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큰언니처럼 대가없이 퍼주기도 한단다.

 

물론 그것은 그녀가 가진 게 많거나 넉넉해서가 아니란다. 남모르는 아픔을 겪었기에 위로 차원에서 그것들을 나눠 준다는 것이다. 평범한 회사원이던 그녀의 남편은 회식이 끝나고 술 취한 상관을 위해 택시를 잡아 주려다 그만 차에 치여 죽었고, 그녀의 아들도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단다. 그녀가 몰고 다니는 차에는 언제나 그 아들이 따라다닌다고 한다.

 

그 아픔이 있기에 시험에 낙방한 아들 같은 젊은이에게는 내일의 희망을 불어넣어 주기도 하고, 공무원 시험 준비로 두 눈이 충혈된 총각에게 아무 대가 없이 어묵 국물 한 모금을 들이키길 권하기도 하고, 시골에서 수술 받으러 온 시아버지의 병원비를 걱정하는 새댁에게는 그래도 먹어야 이겨낼 수 있다며 공짜로 어묵 꼬치도 내민다고 한다. 그러니 그 주민들은 그녀가 그 아파트로 차를 몰고 들어오는 날만을 손꼽아 기다린다고 한다.

 

"한곳에 오래오래 정착하며 사는 사람들은 세월을 살기 때문에 그슬음, 혹은 세월의 때가 아름답다. 떠도는 사람들은 결코 이룰 수 없는 아름다움을 그들은 살면서 이루어 낸다." (41쪽)

 

이는 소설가 공선옥의 고향 큰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다. 이미 고향 밭에 묻힌 고인이라지만 큰아버지의 존재는 지금껏 그녀 가슴에 큰 울림을 안겨 주고 있다. 농촌에서 자식들 대학까지 뒷바라지하기에는 예나 지금이나 벅찬 일인데, 그분은 자식들 뒷바라지를 위해 코피까지 쏟아가며 논과 밭일을, 그리고 전봇대 일까지 밤낮을 가리지 않고 감내했다고 한다.

 

그분은 한밤중에 번개가 치고 천둥이 울더라도 물꼬를 보기 위해 논으로 내달렸고, 그 발걸음으로 밭으로 나가 도랑을 쳤고, 그러고서도 비가 그칠 때까지 잠들지 않고서 뽕밭에 나가 뽕을 따서 누에를 먹이고 오디를 따서 자식을 먹였다고 한다. 때론 도시락 하나 싸 들고 밤을 지새우고 집으로 돌아와서도 붉게 충혈된 눈으로 또 논갈이하러 나가는 그분의 모습을 볼 때면 정말로 '아버지'는 그런 분이구나 하는 것을 절절히 느꼈다고 한다.

 

그 밖에도 이 책에는 시인 도종환이 만난 동네 심마니 집배원 길만영 씨의 이야기, 소설가 이기호가 만난 영화 연출부 막내 김민지 씨 이야기, 소설가 복효근이 만난 당당하고 인간미 넘치는 춤꾼 미선 씨 이야기, 그리고 한상준 교장이 만난 이남오 선장의 바다 인생 이야기까지 정말로 음지 구석구석에 따뜻한 볕을 들게 하는 여러 사람들의 살가운 이야기들이 잔뜩 들어 있다.

2009.12.01 10:24 ⓒ 2009 OhmyNews

참 아름다운 당신 - 우리 시대 작가들이 들려주는 평범한 사람들의 소박한 행복 이야기

도종환 외 지음,
우리교육, 2009


#따뜻한 볕이 들게 하는 사람들 #소설가 이명랑이 만난 아주머니 #공선옥의 고향 큰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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