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적불명 오리엔탈리즘, 그 실제와 허구의 섬세함

찬바람 불때 다시 보는 영화(5) - <게이샤의 추억>

등록 2009.12.03 19:01수정 2009.12.03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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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이 다가오는 이 즈음, 한 해를 되새겨보는 여유가 필요하다. 한 해 두 해가 모여서 인생이 되는 것처럼, 자신의 삶속에서 추억을 음미 하고 앞으로 나아갈 바를 짚어보는 것은 무엇보다 의미가 있을 것이다. 이에 어느 한 사람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영화를 하나 소개한다. 타인의 인생을 통해서 인간의 삶이란 무엇인지를 재정립 해보는 기회를 가지고,12월이 다가기 전에 일년간의 삶을 반추하며 다가올 한 해도 기약해 보는 것은 어떨까?●

<게이샤의 추억 (藝伎回憶錄: Memoirs Of A Geisha) >
2005년
롭 마샬 감독
장쯔이 주연/공리,오고 스즈카,와타나베 켄,양자경 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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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샤의 추억 미국판 포스터 영화 속에서 주인공 치요는 청회색빛 눈을 가진 신비한 매력의 소녀로 나온다.미국판 포스터에는 이를 잘 반영하여 과감한 색채 대비로 표현하고 있다 ⓒ 게이샤의 추억


공상과학 영화를 주로 만들던 스티븐 스필버그가 오레엔탈리즘을 21세기 화두로 잡고 눈독을 들이던 작품이 바로 <게이샤의 추억(Memoirs Of A Geisha)>이다. 일본에서 요정이나 연회에서 술을 따르고 전통춤이나 노래로 여흥을 돋우는 직업인 게이샤(Geisha,藝者(예자)] )를 소재로 하여 나온 이 책이 출간 될 당시부터 스필버그는 큰 관심을 가졌다. 그리고 흥행성을 예감하고 판권을 사들였지만 바쁜 일정 탓에 자신이 메가폰을 잡지 못하고, 영화<시카고 (Chicago, 2002)> 를 만든 헐리웃의 유망 감독  롭 마샬(RobMarshall.1960~)에게 일임하게 된다. 이로서 영화 <게이샤의 추억>은  '롭 먀샬 표 영화'라는 이름으로서 전례 없는 영상미와 세계 각국에서 모여든 배우들을 갖추고, 일본 현지 촬영 장소가 적합하지 않자 미국의 광활한 목장 한쪽에 세트를 짓고서 분주히 작업을 시작하게 된다.


주인공 치요 역할로서 아역 배우 외에 성인 연기자 오디션 당시, 일반적으로 동양권에서 인지도가 있는 배우를 섭외하느라 한,중,일을 통틀어서 배우 물색에 나서던 중에 한국 배우 김희선이 거론되기도 했고, <화양연화花樣年華: In The Mood For Love, 2000) 를 찍고 있던 홍콩배우 장만옥(張曼玉) 에게 시선이 가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최종 낙점된 중국 배우 장쯔이(章子怡)가 극을 이끌어가며 세계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공상 속의 어느 한 도시의 게이샤의 슬픈 인생을 그려내게 되었다.

영화 초반에 의상과 미술, 안무에서 많은 스탭들과 의견 충돌이 있었던 롭 마샬 감독은 고증에 의해 그려지는 무용이나 무대 설치가 아닌, 이상적이고 드라마틱한 방식의 영화를  원했다. 그래서 실제로 게이샤들이 신지도 않는 8센티미터 높이의 사보(sabot;나막신, 게이샤들이 신고 다니는 두줄 슬리퍼)를 신고서 격앙되고 도전적인 음악에 맞추어서 격정적인 춤을 추게도 한다. 더구나 파리 프레타 포르테(prêt--porter; 세계적인 기성복 박람회) 무대 위에서나 어울릴 법한 현대화된 기모노를 만들어 달라는 주문으로 의상 담당자를 곤혹에 빠뜨리기도 한다. 그 결과, 복잡하고 디테일한 전통 기모노 대신, 몸의 실루엣을 충분히  살린 하늘하늘한 기모노가  배우들에게 만들어 입혀지고, 이는 수 많은 볼 거리 중 하나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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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인으로서의 공연을 펼치는 치요 장쯔이는 혹독한 무대 연습을 통해서 벚꽃과 눈의 나라, 신비한 일본에 대한 호기심을 세계인들에게 심어줄 안무를 선보였다 ⓒ 게이샤의 추억


▲영화 속으로

1930년대, 일본의 어촌 마을에 사는 어린 소녀 치요(오고 스즈카扮)는 가난한 아버지와 병든 어머니, 언니와 함께 살고 있다. 어느 흐린 날, 집에 낯선 사람이 찾아와서 언니와 치요는 그를 따라 먼 곳으로 간다. 그리고 힘든 가정을 꾸리기가 어려워진 아버지가 눈물을 머금으며 언니와 자신을 팔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각각 떨어져서 팔려간 치요와 언니는 해가 질 무렵 다리 난간에서 만나기로 약속한다. 도망갈 준비를 하던 치요는 높은 곳에서 떨어져서 다리를 다치게 되고, 결국 언니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된다. 언니는 혼자 도망가고 자신은 남아서 힘든 하녀 생활을 이어가던 중, 부모님이 두분 다 돌아가셨다는 우울한 소식마저 날아든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어느 봄날, 다리 난간에 앉아서 울고 있던 그녀에게 지나가던 한 남자가 '왜 울고 있니?'라고 다정스레 말을 건넨다. 그는 자두 시럽이 얹어진 빙수를 사주며 '이젠 넘어져도 울지 않기로 약속하자'고 한다. 그리고 자신의 손수건에 얹어진 잔돈까지 주며 나중에 또 사먹으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진다. 친절한 신사가 벚꽃 그늘로 사라지는 모습을 보며 치요는 생각한다. '나도 저 아저씨 옆에 있는 게이샤들처럼 되면 항상 그의 곁에 있을 수 있어.'


치요는 팔려온 후 처음으로 남에게 받아본 배려에 감동 받고, 이로 인해서 살아갈 희망이 생긴다. 그리고 힘껏 달려서 절에다가 돈을 모두 바치고 기도한다.그리고 그가 준 손수건을 소중히 간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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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을 사모하게 된 회장님과의 첫 만남 아무런 희망도 없이 살아가던 어린 치요에게 다가온 '키다리 아저씨'회장님. ⓒ 게이샤의 추억


세월이 흐를수록 아름다워지는 치요(장쯔이扮)는 낯선 제안을 받게 된다. 늘상 치요를 괴롭히던 하치모모(공리扮)의 앙숙인 마메하(양자경扮)가 그녀를 게이샤로 키워주겠노라고 한다.그때부터 그녀는 게이샤가 될 준비를 하며  빚을 갚을 뿐 아니라 오키야 주인의 양녀(후계자)가 되어 사유리라는 또다른 이름으로 불리게 된다.

그러나 전쟁으로 인하여 예술인으로서의 긍지와 옛 영화는 사라진 채, 치요는 화려했던 옛시절을 잊고 산골에서 직공으로 일하며 '밥먹고 일하는 나날들의 연속'으로 몇년을 보낸다. 어느 날, 회장의 친구가 찾아와 자신의 사업 투자자인 미국인과의 협상 자리에 와달라고 부탁한다. 그는 치요에게 사랑을 고백하지만, 그녀는 어린시절 부터 품어온 회장에 대한 연모의 감정을 잊지 못한다.

그 후, 다시 게이샤가 되어 자부심을 다지기 시작하는 치요에게 회장이 다가와서 그 봄날,자두맛 빙수를 먹던 소녀에 대해 말한다. 그러자 치요는 하녀였던 자신이 게이샤로서의 삶을 살 수 있도록 뒤에서 손을 써준 사람이 그였음을 알게 된다.하지만 게이샤는 다만 애인이 될 수 있을 뿐, 결혼을 하거나 사랑을 할 수가 없음도 더불어서 깨닫게 된다.

▲감상 포인트

이 영화의 백미는 화려한 영상미이다. 첫 장면부터 수묵 담채화를 보는 듯한 착각이 드는 안개 낀 산을 비롯한 장엄한 자연의 모습은 동양 문화만이 누릴 수 있는 우아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하지만 전통적인 일본의 문화를 그대로 보려는 의욕은 일치감치 포기하는 것이 좋겠다. 배우부터가 중국,일본, 베트남 등으로 동양인들이 섞인 상태이며, 각종 고증을 통해서 취할 것과 버릴 것을 구분한 뒤에, 눈길을 사로잡을 만한 것들로만 모아놓은 퓨전이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서 감독과 스탭 간의 마찰이 잇따랐고, 원작과 다르게 변질 된 내용을 관객이 공감할 수 있을 것인가의 우려도 낳았다.

일본 사학자였던 아서 골든(Arthur Golden.1956~ )이 1997년 발표한 원작은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서구인의 시각으로 작품을 그려나갔으며, 흥미도나 정확성에는 만전을 기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더구나 로맨스를 강조하지는 않았기에 금방 읽히는 글도 아니다. 전공자답게 깊이 있는 일본 문화 특이성에 주된 관점을 견지한다. 9년이란 긴 작업 기간 동안 주인공으로 설정될 실제 게이샤를 만나서 그녀의 일생을 듣고, 이에 허구와 실제를 융합시키는 과정은 지난하고 험난한 여정이었으리라.

하지만 영화속에서 보여 준 '청회색빛 눈을 가진 아이', '신비한 눈', '물기 많은 눈' 등으로 등장 인물들이 주인공에게 일관된 평가를 내리는 부분에서는 서구인의 시각으로 점철된 스토리 라인과 후반부로 갈수록 긴장감이 처지는 단점이 비춰진다. 또한 게이샤로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여자의 슬픈 심정을 다 그리지 못한 채로 '시간이 없으니 이만 줄입니다.'하는 느낌으로 끝을 맺고 있다는 느낌을 지워버릴 수가 없다. 절절한 동양인의 정서를 다 표현하지 못한 이유는 서양작가의 원작을 서양인의 시각으로 재구성하고 만들어놓은 이유도 한 몫 더해진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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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샤의 추억 일본판 포스터 일본에서 개봉 될 때는 '사유리' 라는 제목으로 상영되었다(영화의 주인공 치요가 게이샤가 되었을 때 불린 이름이 '사유리' 이다) ⓒ 게이샤의 추억


일반적으로 그 문화를 겪어보지 않으면 이해 할 수 없는 감정들이 있게 마련이다. 그 부분을 관객이 잘 해소 하도록 도와주어야 하는 것이 영화의 빈 공백이 해야 할 몫인데 <게이샤의 추억>은 아쉽게도 그 소임을 다 하지 못했다. 하지만 방대한 영상미와 장쯔이가 혹독한 훈련 과정을 통해서 배운 국적불명의 일본 춤에서 보이는 서사미는 일본 문화에 대한 동경과 우수를 전해주기에 충분하다.밋밋하고 답답한 기모노나 바가지 탈을 쓴 듯한 게이샤의 화장에서는 현대 관객의 마음을 울릴 예술과 사랑의 감흥을 전달 할 수 없음을 배려한 장치임을 이해하고 본다면 좋은 풍광과 그 속에 자리잡은 애틋한 정서를  만날 수가 있을 것이다.

▲뒷이야기들

【하늘을 뒤덮은 실크 천의 물결】
감독은 14주 동안 야외세트를 제작하며 일본의 건축미를 살려서 마을을  만들고 연못을 팠다.그리고 석등,다 리,일 본의 정취를 그대로 보여줄 수 있는 벚꽃나무도 몇 십 그루를 현지에서 파 와서 식재했다고 한다. 또한 이런 무대 배치 외에 진실로 일본스러운 풍광 속의 따뜻하고 아늑한 일본 특유의 햇살을 화면으로 보여주고자, 세트장 위의 하늘을  실크 천으로 감싸는 대단위 퍼포먼스를 취하기도 했다. 이렇게 실크 천 위에 한번 투과된 햇살은 좀 더 차분하고 온유한 빛을 관객에게 선물하며 영화의 남다른 매력을 한층 빛내주기도 했다.

【캘리포니아 롤 같은 영화】
<워싱턴 포스트紙>는 이 영화<게이샤의 추억>을 '캘리포니아 롤 같은 영화'라고 하였다. '캘리포니아롤'은 일본의 스시가 미국으로 건너가서 그들의 입맛에 맞춰서 재탄생된  음식이다. 이 음식은 전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다가 마침내는 일본내로 역침투하여 현지인들까지 매료시켜 버렸다는 점에서 영화<게이샤의 추억>도 같은 맥락임을 알 수가 있다는 것이다.  일본의 전통주의자들은 허황된 영화로서 잘못된 문화를 퍼뜨리지 말라고 힐난 할 수도 있으나, 다국적 프로젝트가 추구해야할 미래성이 무엇인가에 대한 답변을 조심스럽게 내놓고 있다는 점에서 고찰할 바가 크다.<워싱턴 포스트紙>가 지적한대로 '맛'있는 음식에 많은 손님이 달려들 듯이, 눈과 귀가 즐겁고 마음을 울리는 감성 마케팅 까지 곁들여진 맛깔난 음식이라면  제2, 제3의 무국적 요리는 요란한 치장을 하고서 또다시 손님상에 놓여질 것이다.

●'물은 바위도 깰수 있는 힘을 가졌고,흐름이 막히면 새로운 길을 찾을 수 있는 노련함도 있다'고 이 영화는 말한다. 자신의 운명이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더라도 길을 잃지 않고 노력하는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서 그 흐름을 트게 되고 불가능한 힘도 가능으로 만들게 될 것이다.지금 이순간, 새 삶을 꿈꾸는 이들이여!눈을 뜨고 머리를 들어 자신을 차분히 되짚어보라!●
#게이샤의 추억 #장쯔이 #아서골든 #게이샤 #기모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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