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추 한 포기 500원은 받아야 하는디...

전남 해남 연당마을 주민들이 절임배추를 만드는 이유

등록 2009.12.06 10:58수정 2009.12.06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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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임배추. 일손이 많이 가 번거롭지만 농가소득을 높여주는 '효자'다.
절임배추. 일손이 많이 가 번거롭지만 농가소득을 높여주는 '효자'다.이돈삼

김장철이다. 하지만 김장을 하려면 고민이 앞서는 게 사실이다. 재료 구입에서부터 양념을 만들고 버무리는 일에서 숙성까지 어느 것 하나 손이 가지 않는 게 없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배추 고르는 일. 배추만 잘 골라도 김장의 반은 성공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배추가 그만큼 중요하다.

남도에서는 '해남배추'를 알아준다. 지리적표시등록 품목으로 지정된 해남배추는 맛과 품질에서 탁월하다. 친환경 농법으로 재배되는데다 황토밭에서 자란 탓에 질감이 좋고 육질이 부드럽다. 따뜻한 기후와 해풍은 배추 속(결구)을 얼지 않게 해준다. 신선한 맛이 그만이다.

해남배추의 주산지 가운데 한 곳인 전라남도 해남군 황산면 연당마을. 야트막한 구릉지에 연초록 융단을 깔아 놓은 듯 배추밭이 펼쳐진다. 짙푸른 들판에서 힘겨운 허리 채를 부둥켜안고 겨울바람 속에 배추를 다듬는 할머니의 손길이 분주하다.

 김장용 배추는 아담한 게 좋다. 속이 90% 정도 찬 게 좋다고.
김장용 배추는 아담한 게 좋다. 속이 90% 정도 찬 게 좋다고.이돈삼

 연당마을 주민들이 김장용 배추를 수확하고 있다.
연당마을 주민들이 김장용 배추를 수확하고 있다.이돈삼

"이거 한번 먹어 보쑈. 달고 맛 있어라! 농약도 안치고 지은 것이어서 그냥 먹어도 돼라."

할머니의 권유에 한입 베어 물었더니 아삭아삭 씹히는 맛이 좋다. 부드러우면서도 달콤함이 입 안 가득 전해온다.

할머니의 말처럼 연당마을에선 모든 농가가 농약을 치지 않고 배추를 재배했다. 병해충은 32가지 생약을 주원료로 만든 고농축 한방 생약제로 막았다. 올해는 병해충이 유난히 적어 그것도 한번 밖에 치지 않았다. 이렇게 주민들은 올 한해 3400톤이 넘는 배추를 생산한다.

"올해로 3년째입니다. 그간 어려움이 수없이 많았어요. 농약에 의지해 농사를 지어온 주민들이 하루아침에 친환경 재배를 한다는 게 쉽지만은 않지요. 몇몇 농가에서 몰래 농약을 치는 바람에 친환경 인증이 취소되고, 위약금을 1500만 원씩이나 물어준 적도 있어요."


박연수 마을이장의 말이다.

 박연수 이장이 무농약 재배한 해남배추를 자랑하고 있다.
박연수 이장이 무농약 재배한 해남배추를 자랑하고 있다.이돈삼

방법은 교육밖에 없었다. 틈나는 대로 주민들을 모아 교육했다. 마을주민 한용찬씨는 "친환경 농사는 교육에서 시작해 교육으로 끝난다더니 그 말을 실감할 정도였다"고 혀를 내두른다.


농약을 끊자 마을이 몰라보게 달라졌다. 한동안 자취를 감추었던 미꾸라지와 새우가 되살아났다. 주민 소득도 높아졌다. 단지 아쉬운 게 하나 있다면 판로걱정이다. 친환경 재배를 했다고 중간 상인들이 알아주는 것도 아니었다.

"상인들은 친환경 재배에 관심이 없어요. 오직 배추가 좋냐 나쁘냐만 가지고 판단합니다. 일 년 내내 뼈 빠지게 병해충과 싸우며 농사지은 보람이 없습니다."

박연수 이장 말에 원망이 가득 담겨있다.

이나마 헐값에라도 팔리기만 하면 다행이었다. 생산비조차 건질 수 없는 처지에 놓인 주민들이 아예 배추밭을 통째로 갈아엎기도 했다. 고민 끝에 방법을 찾은 게 절임배추였다. 소비자들에게 봉사(?)한다는 심정이었다. 무농약으로 정성껏 키운 배추를 갈아엎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천일염으로 간을 한 해남배추. 아삭아삭 씹히는 맛이 좋다.
천일염으로 간을 한 해남배추. 아삭아삭 씹히는 맛이 좋다.이돈삼

마을주민들은 먼저 가까운 친척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타지에 나가 사는 향우들한테도 소식을 띄웠다. 이왕 김장을 하는 거라면 고향에서 재배된 배추를 사달라고 간청했다. 무농약 절임배추를 싼 값에 판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주문량이 밀려들었다.

마을 주민들이 판매하는 절임배추의 가격은 10포기(28㎏)에 2만5000원. 배추 한 포기가 400원 안팎에 팔리고 있는 점을 감안한다면 소득이 높은 편이다. 이렇게 판매되는 절임배추는 마을 전체 배추 생산량의 10%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울며 겨자 먹기'로 중간 상인에게 팔 수밖에 없다.

박연수 이장은 "배추 한 포기당 최소 500원은 받아야 수지가 맞다"면서 "마을 공동의 절임시설을 만들어 앞으로 절임배추 생산량을 늘리고 공동 판매도 해 주민소득을 높여나갈 계획이다"고 말했다.

 해남배추는 황토밭에서 자란다. 그래서 질감이 더 좋고 부드럽다.
해남배추는 황토밭에서 자란다. 그래서 질감이 더 좋고 부드럽다. 이돈삼
#해남배추 #연당마을 #절임배추 #박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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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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