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천원짜리 생태매운탕에 상다리 부러지겄소

한겨울 추위 잊게 하는 생태매운탕

등록 2009.12.07 10:49수정 2009.12.07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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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매운탕이 부글부글 끓고 있다. ⓒ 조정숙


아랫녘에 볼 일이 있어 전라북도 정읍시 옹동면 산성리를 지나가게 되었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얼큰하고 뜨끈뜨끈한 국물이 생각난다. 지방을 다니다 보면 먹을거리가 가장 걱정이 되는 게 사실이다. 언젠가 지인으로부터 들은바, 할머니들의 음식 솜씨가 대단하다는 곳이 여기 어디쯤이라는 말이 떠올라 물어물어 말로만 들었던 소문난 집을 찾아갔다. 시골 외딴곳에 자리한 음식점인지라 과연 손님들이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예상을 뒤엎고 방방마다 손님들이 가득하다.


무뚝뚝한 주인 할머니들, 음식 맛은 달랐다

입구에 들어서자 듬직해 보이는 할머니 두 분이 무뚝뚝하게 손님을 맞는다. 특별한 대접을 원하지는 않지만 손님은 왕이라는데……. '왕 대접은 아니더라도 이건 너무하잖아 손님이 많기로서니 이렇게 푸대접해도 되나? 타지에서 왔다는 걸 눈치 채셨나?' 물론 동네 사람이 아니라는 것쯤이야 알고 있으려니 했지만 조금은 섭섭하다. 욕쟁이할머니는 들어봤지만 무뚝뚝한 할머니들은 처음인지라 맛만 있으면 되겠지 하는 생각으로 추위도 녹일 겸 생태매운탕을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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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짐하게 한상 차려진 생태매운탕이 1인분에 6천원이다. ⓒ 조정숙


주방으로 들어가신 할머니들이 으레 해왔던 것처럼 대화를 하며 음식 준비를 한다. 무표정하게 얘기를 나누지만 한마디 한마디가 정겹다. 퉁명스런 대화 속에서도 두 분이 손발이 척척 맞는 모습을 보면 연륜이 묻어난다. 할머니들의 손끝에서 우러나오는 국물 맛을 상상을 하니 벌써 입안에 군침이 돈다.

먹음직스럽게 부글부글 끓는 생태매운탕과 함께 나오는 반찬이 쟁반에 그득하다. 이제는 끝났으려니 했는데 계속해서 나오는 반찬이 가지 수만 해도 14가지다. 대부분 음식점에 가면 고가의 00정식이니 하는 메뉴를 빼고는 대부분 반찬이 5~6가지였다. 그에 비하면 평범한 매운탕을 주문했는데 상다리가 휘어지게 차려지는 반찬을 보는 순간 그냥 배가 부를 지경이었다. 반찬도 푸짐하고 넉넉한 시골 인심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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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를 도톰하게 썰어 고등어를 넣고 푹 익힌 고등어무조림 ⓒ 조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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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짐한 계란찜,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돈다. ⓒ 조정숙


"큰 욕심 없어 새끼 밥 먹고 살면 되지"


"생태매운탕 1인분에 6천 원 하는데 매운탕이 양도 많고 이렇게 푸짐하게 반찬을 만들어 손님들에게 나가도 타산이 맞나요?"
"어쩔 것이여 시골인심이 다 그렇지 뭐, 늙은이가 손이 커서 그랴. 반찬이라도 푸짐혀야지, 그렇지 않으면 이런 촌구석에 누가 오간디. 우리 식당을 찾아와 맛있게 먹고 가면 그만이여. 근디 이곳에 사는 것 같지는 않고, 이곳은 어떻게 알고 왔당가?"

"언젠가 이곳을 찾았던 지인으로부터 할머니들의 맛깔스런 음식솜씨와 넉넉함에 반해 입버릇처럼 얘기하기에 물어물어 찾아왔지요. 연세는 어떻게 되셨나요?"
"그랴? 노인네들이 하는 것이 그렇지 뭐, 누군지는 몰라도 이곳에서 밥을 묵고 가서 그런 얘기를 했다니 보람을 느끼는구먼, 고맙지 뭐여 나이는 알아서 뭐한댜? 일흔넷이여."


"할머니, 제가 사진을 찍는 사람인데 사진 한 장 찍어 드릴까요?"
"오메 실혀! 남사스럽게로 쭈구렁 늙은이 찍어서 뭐하게? 워디 신문에라도 낼랑겨?

한사코 손사래를 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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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콤달콤하게 무친 홍어회무침이 입맛을 돋군다. ⓒ 조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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쌉싸래한 고들빼기김치가 입맛을 돋아준다. ⓒ 조정숙


주재료인 싱싱한 생태와 갖은 해물 야채 등을 듬뿍 넣어 함께 끓인 얼큰하고 푸짐한 생태매운탕 한 수저를 입안에 넣자 꽁꽁 얼었던 온몸이 사르르 녹는다. 역시 생태매운탕은 겨울에 먹어야 제맛이다. 김장이 끝나고 나면 밥상에 함께 오르는 메뉴 중 하나였다. 김장김치와 함께 늘 생태매운탕을 끓여 주셨던 어머니표 손 맛 바로 그 맛이다. 다양한 반찬 중 평소 즐겨먹던 계란찜에 제일 먼저 젓가락이 고속 질주한다. 큼직하고 도톰하게 썰어져 담긴 접시가 순식간에 바닥난다.

고등어와 무를 큼직하게 썰어 넣고 지져 나온 고등어무조림은 삼삼하면서 입안에 착착 감기는 맛이 환상적이다. 이렇게 맛있게 하려면 어떻게 하는지 여쭤보자 며느리에게도 안 가르쳐 주신다며 호탕하게 웃으신다. 맛있다고 애교를 부리며 할머니에게 "한 접시만 더 주세요"하자 푸짐하게 한가득 담아 주신다. 역시 넉넉한 시골 인심이다. 쌉싸래한 음식을 싫어하는 나는 웬만해선 고들빼기김치를 먹지 않는데 신기하게도 할머니께서 담으신 고들빼기김치는 쌉싸래한 맛이 덜하고 알맞게 익어 입맛을 돋아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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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어와 함께 졸인 무를 한입 가득 넣자 떨어졌던 입맛이 살아난다. ⓒ 조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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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섯에 들깨가루를 넣어 끓인 버섯들깨탕이 고소하다. ⓒ 조정숙


전라북도에서 많이 만들어 먹는 들깨가루를 넣어 요리한 버섯들깨탕은 버섯의 부드러움과 들깨의 고소한맛이 어우러져 영양만점인 동시에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 것이 묘한 즐거움을 준다. 새콤달콤한 홍어회 무침이 입안에 들어가는 순간 오감을 자극하면서 특별한 맛에 반해 얼굴에는 행복한 미소가 번진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했지 않던가 뭐니 뭐니 해도 먹는 즐거움이 최고인 것 같다. 배도 부르고 추위에 떨었던 온 몸이 녹고 나니 스르르 잠이 온다. 뜨끈뜨끈한 온돌방에서 한숨 자고 싶지만 다음 목적지를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생태매운탕 #고등어무조림 #계란찜 #홍어회무침 #고들빼기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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