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곰의 눈물>에서 MBC는 공영방송으로서의 역량을 보여주었다. 빙하가 녹아 죽음의 벼랑 끝으로 몰리는 북극곰이나, 생존을 위해 탈진상태로 도시로 내려오는 멧돼지나, 모두 인간에 의해 파괴된 생태계가 흘리는 아픈 눈물이 아닌가? 공대위가 MBC 항의 기자회견을 준비하는 가운데, '지구의 눈물' 시리즈 2탄 <아마존의 눈물> 광고판이 MBC 건물 위쪽에 걸려 있다.
장창훈
김영희 PD를 비롯한 헌터스 제작진들이 공대위의 지적 및 방송에 대한 시민들의 비판을 의식한 듯 몇몇 컨셉을 급히 바꾸고 철저히 인간중심적이었던 시선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한 흔적은 보인다. 예를 들어 멧돼지 '포획'에서 '축출'로 바꾸고 '사냥개'를 '도우미견'으로, 5명의 엽사들이 들고 있는 총기를 '돌발 상황 대비용'이라고 친절히 소개하거나 결코 동물이 미워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는 멘트를 삽입하고 이금희 아나운서의 감성적 내레이션으로 설득력을 더하려는 방식 등이다. 그러나 본질을 벗어난 이런 장식들이 프로그램의 취지를 명확하게 이해시키는 데는 별 도움이 되지 못하였다.
방송 처음부터 끝까지 헌터스는 '문화재 훼손, 인간생명 위협', '사람들이 먹는 것은 다 먹어치운다'는 자막과 뉴스방송 편집화면, 그리고 멧돼지로 인해 피해를 본 농민들의 절규를 '농민들의 한'이라는 표현까지 써 가며 들려주었다. 또한 분묘가 파헤쳐진 장면을 강조함으로써 시청자들의 공분을 유도하거나 농민들에게 "얼마나 멧돼지가 싫으세요?"라며 이 방송의 당위성에 대한 뻔한 유도질문을 하기도 하였다.
일밤은 애초의 말을 바꿔, 첫 회에서 멧돼지의 '포획'과 살생은 없고 마을 뒷산으로 '축출'한다고 하였다. 멧돼지들이 촬영팀이 철수한 이후에 마을로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다는 가정은 초등학생도 쉽게 할 수 있지 않는가? 첫 회 방송에서 선보인 포획틀로 멧돼지를 한 마리 잡은들 그것이 농가의 고민을 현실적으로 해결해 줄 수가 있겠는가 말이다.
헌터스에서 포획하여 119에 인계한다는 멧돼지는 어떻게 처리 될 것인가에 대한 자세한 설명도 없다. 공대위의 확인 결과 멧돼지의 경우 119에서 한국야생동물보호협회로 보내지긴 하지만 환경부에서 멧돼지 개체수를 조절하라고 공문이 내려왔기 때문에 구조 후 방사 개념이란 없으며, 결국 죽일 수밖에 없다고 한다. 결국 살생의 수고와 책임을 다른 곳에 떠넘기는 정직하지 못한 행위인 것이므로, 일밤 측에서 말하는, 사살이 아닌 '축출'과 '119 인계'라는 얄팍한 단어 뒤에 숨긴 진실을 우리는 똑바로 직시해야만 한다.
공존을 목적으로 한다면, '헌터스'란 이름부터 바꿔라!헌터스 제작진은 갈팡질팡, 진퇴양난의 고민을 방송 말미에 드러냈다. 멧돼지와 인간이 공존할 수 있는 지혜를 달라고 시청자들에게 물었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이다.
일단 헌터스의 기획의도가 각종 어려움에 처한 농촌 어르신을 돕는데 있다면, 그들을 돕기 위한 따뜻한 컨셉의 방송 소재는 얼마든지 있다. 일회적이며 반생명적인 멧돼지 쫓기보다 농민들에게 보다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농촌 살리기' 프로그램을 기획해 보기 바란다. 열 명에 이르는 유명 MC와 헬기까지 동원할 수 있는 물량이면, 농촌 어르신들을 위한 획기적이고 훈훈한 방송이 얼마든지 가능할 것이다. 우리는 그런 방송을 기대한다.
멧돼지와의 공존을 의도하는 방송이라면 우선 헌터스라는 제목부터 바꿔라. 두 번째, 마치 쥐라기 시대의 최상위 육식포식자 '티라노사우루스'를 연상시키는 포악스런 컨셉의 '멧돼지 사진'부터 갈아치워라. 첫방이 보여준 헌터스의 컨셉으로는 멧돼지와 인간의 공존모색이라는 이금희 아나운서의 목소리와 '티라노사우르스'의 괴상이 겹쳐 들리기 때문이다. 사람이 움직이지 않으면 멧돼지는 공격하지 않는다는 멧돼지의 생태습성을 첫 방에서 알려주지 않았는가?
헌터스에는 멧돼지가 인간의 마을로 내려오지 않고 산에서 살 수 있는 환경에 대해서, 혹은 멧돼지의 생명을 빼앗지 않고 그들의 접근을 차단할 수 있는 방법이나 농민의 멧돼지 피해를 보상해줄 수 있는 현실적인 방법 등에 대한 심도 깊은 논의와 준비가 빠져 있다. 그러기에 제작진이 주장하는 공익의 알맹이가 빠진 것이다. 게다가 농민의 시름과 멧돼지의 생명을 재료삼아 펼치는 연예인들의 입담이나 농담은 상당히 불편하게 느껴지므로, 예능의 본질에서도 벗어난다.
공익과 예능 그 어느 쪽에도 적합하지 못하다면 이 프로그램의 존재이유가 없다고 본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다. 일밤의 제작진은 헌터스가 신중하게 기획되고 준비되지 못한 프로그램이라는 점을 시인하고 자진 폐지하기를 바란다.
폐기가 어렵다면, 더 이상 무리한 시도를 하지 말고 멧돼지와의 공존이란 화두를 던지며 조기 마무리를 해야 할 것이다. 그래도 할 거라면 '헌터스'란 이름부터 바꾸고, 농촌 생태나 농촌의 어려움이라는 큰 틀에서 멧돼지는 그 한 단면으로 정리하고 넘어가고 현재의 소농 죽이기 정책과 개발 위주 정책이 가져오는 폐해와 애환을 조명해줄 수도 있다. 그리고 굳이 동물과의 공존을 얘기하는 프로를 만들고 싶다면, 우리는 얼마든지 재미와 공익을 담보할 수 있는 소재를 제시할 수 있다.
인간의 생명과 생태계 파괴의 또 다른 결과인 물 부족생명파괴와 생태계 파괴가 가져다주는 재앙을 헌터스의 앞꼭지에 방영된 '단비'에서도 우리는 여실히 볼 수 있었다. 오염된 식수를 먹어야만 하는 잠비아의 모습은 바로 인간과 생명이 깃들어 살아야 할 지구적 규모의 생태계가 파괴되었을 때 우리의 삶이 어떻게 황폐화되는지 보여주는 명확한 사례인 것이다.
(물 오염으로 매년 220만 명이 숨지고 있으며,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 25개국 인구의 절반이 2025년까지 식수로 사용이 가능한 물을 접할 수 없을 것이라고 추정되고 있다. 가장 넓은 범위의 사막화를 가져오고 있는 것이 목축이다. 또한 사막화의 또 다른 원인인 가뭄현상도 지구 온난화의 중대한 영향중의 하나인데, 저명한 월드워치 연구소 2009년 11/12월호 매거진에 실린 논문에 의하면 축산업이 전체 온실가스의 51% 이상을 배출한다고 한다. 오랜 기간 자연을 파괴하고 생명을 이용대상으로만 여겨온 결과는 이렇게 우리 모두의 삶을 위협하고 있다.)
MBC는 일밤 헌터스를 당장 자진 폐기하기 바란다.환경운동단체 : 녹색교통, 환경운동연합, 환경정의동물보호단체 : 고양이보호협회,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 동물사랑실천협회, 동물보호연합, 생명체학대방지포럼생명운동단체 : 두레생태기행, 인드라망생명공동체, 풀꽃세상을위한모임, 한살림모심과살림연구소불교운동단체 : 불교생협연합회, 불교환경연대여성단체 : 한국여성민우회언론단체 : 사단법인 보리방송모니터회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초록당사람들 덧붙이는 글 | 서소라 기자는 동물보호시민단체 KARA에서 간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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