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득이>로 베스트셀러 작가 대열에 올랐던 김려령이 새로운 청소년 소설을 선보였다. 열네 살 소녀의 자살을 다룬 <우아한 거짓말>(창비 펴냄)이 바로 그것.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 <완득이>가 고난으로 점철된 고된 인생에 시원한 어퍼컷을 날리는 소설이라면 <우아한 거짓말>은 가슴을 아프게 하는 슬픔으로 점철돼 있다.
<우아한 거짓말>은 평범해 보이던 소녀 천지가 자살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아침에 엄마에게 최신형 mp3를 사달라고 조르던 천지였다. 그런 모습이 평소와 다르기는 했지만 엄마나 언니는 누구도 천지가 목을 맬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그랬던 것일까. 천지의 죽음을 이해하지 못했던 만지는 천지의 흔적을 따라간다. 그리하여 차마 믿을 수 없던 사실을 알게 된다. 동생이 따돌림을 당했다는 것이다.
따돌림을 시켰던 아이들의 대장은 천지와 가장 친한 것처럼 보이던 화연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천지가 전학 온 이후부터 중학교에 진학한 때에도 화연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천지를 괴롭혔다. 물리적인 폭행은 아니었다. 언어폭력이었다. 아주 교묘하게, 말로써 천지를 이상한 아이로 만들었다. 화연만 그랬을까. 화연의 행동을 알면서도 도와주지 않았던 다른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말들도, 상대방을 위하는 척 하는 '우아한' 말들도 천지의 가슴에 대못을 박기는 매한가지였다.
천지는 가족들에게 그런 것에 대해 말한 적이 있다. 하지만 가족들은 진심으로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아이들 또래에서 흔히 벌어지는 그런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상황에서 천지는 얼마나 외로웠을까. 누군가의 따뜻한, 진심 어린 말을 갈망했던 천지였지만 누구도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열네 살 소녀 천지, 이제 그녀가 선택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떠나는 것이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우아한 거짓말>은 가슴을 울리는 소설이다. 청소년의 왕따 문제와 자살에 관한 소재가 그렇기도 하거니와 책이 그것의 심각성을 적나라하게 그려냈기에 가슴을 울린다. 한 소녀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까지 견뎌야 했던 그 모진 시간과 슬픔을 마주 보아야 하는 것은, 그것이 익히 들어왔던 것이라 할지라도 가슴을 울리게 하는 것임에 분명하다. 더군다나 그것이 현실에서도 자주 나타나는 일이라는 걸 감안한다면, <우아한 거짓말>이 지니는 슬픔은 짐작하기 어려울 만큼 크고 깊은 것이 된다.
하지만 <우아한 거짓말>이 가슴을 울리는 건, 역설적으로 치유의 가능성을 열어놓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떠나야 했던 천지가 만들었다. 천지는 사람들에게 편지를 쓰고 떠난다. 엄마와 언니, 화연 등에게 보내는 편지로 긴 내용이 있는 건 아니다. 아주 짧다. 그럼에도 그 편지들은 용서와 사랑을 담고 있다.
남은 사람들이 죄책감을 느낄 것이 아니라, 잘 살기는 바라는 마음으로 쓴 것인데 그것에 적힌 글자들 하나하나가 가슴을 파고든다. 어른들도, 또래의 그 많은 아이들도 하지 못했던 것을, 떠나려고 준비하던 아이가 남몰래 준비했으니 그런 것이다. 그 마음을 상상하면, 가슴이 울컥하는는 건 어찌할 수 없다.
<우아한 거짓말>의 끝자락에서, 책의 의미를 떠올려본다. 책은 '화제'가 될지언정, '세상'을 바꾸지는 못한다. 당연한 것이겠지만 <우아한 거짓말>의 격렬한 슬픔도 왕따 문제로 얼룩진 이 세상을 바꿀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던지는 메시지가 무색해질까.
책이 세상을 바꿀 수는 없을지언정, 사람을 바꿀 수는 있다. <우아한 거짓말>은 그것을 가능케 하는 책이다. 슬픔에 빠진 아이들을 구원하는데 필요한 것은 사람들의 진심 어린 말, 그것에서 시작하는 것이고 <우아한 거짓말>은 그것의 중요성을 가장 극적으로 역설하는 책인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이 책의 값어치는 충분하다.
우아한 거짓말
김려령 지음,
창비,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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