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기에 더 고운 골목꽃

[인천 골목길마실 70] 고운 꽃기운을 조용히 나누는 골목삶

등록 2009.12.12 13:01수정 2009.12.12 13:01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확대 ( 1 / 20 )
ⓒ 최종규

 

인천 동구 금곡동 골목길을 걷습니다. 짚이불을 덮은 골목밭을 바라보면서 이 텃밭은 바야흐로 겨울잠에 드는구나 생각합니다. 골목집 담벼락을 따라 가지런히 놓인 꽃그릇에 노란 꽃이 한창입니다. 이 겨울에 무슨 꽃이 한창이겠느냐만, 참말로 노란 꽃이 싱싱하게 피어 있습니다. 골목길 거니는 사람한테 맑은 웃음 한 자락을 선사합니다. 이 꽃그릇을 가꾸는 골목이웃은 왜 집 안쪽이 아닌 집 바깥에 이 꽃그릇을 마련해 놓았는지 모를 노릇이지만, 이 골목을 드나들 동네이웃한테 노란 웃음 한 송이 나누어 주고픈 마음이 아니었을까 헤아려 봅니다.

 

a

겨울로 접어든 지 여러 날이 지났어도 골목집 꽃그릇은 겨울 꽃송이를 피워올립니다. ⓒ 최종규

겨울로 접어든 지 여러 날이 지났어도 골목집 꽃그릇은 겨울 꽃송이를 피워올립니다. ⓒ 최종규

 

 금곡동과 창영동을 가르는 언덕을 넘고 전철길을 지나 경동으로 접어듭니다. 가으내 짙푸르던 골목꽃은 모두 지고 앙상한 잎과 꽃그릇뿐인데, 이 모습으로도 얼마든지 곱다고 느낍니다. 그리고, 율목동과 경동을 가르는 샛골목 한켠에 자리한 피아노집 옆으로 몇 놓인 꽃그릇에서 다시금 새삼스레 겨울골목을 밝히는 꽃송이를 만납니다. 겨울철 찬비를 맞으면서 외려 더 싱싱한 기운을 뽐내는 겨울 골목꽃을 들여다봅니다. 한참을 서성이며 들여다봅니다. 피아노집에서 배우는 어린이가 우산을 받고 지나갑니다. 샛골목을 따라 거닐며 피아노집을 드나드는 이 어린이는 이 샛골목이 그냥 샛골목이 아닌 꽃골목임을 얼마나 느끼고 있을까 궁금합니다. 깊이 생각해 보지 않더라도, 이 꽃골목 느낌과 내음이 피아노집 드나드는 모든 어린이 가슴에 사뿐히 내려앉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a

비오는 날, 피아노집 깃든 샛골목을 지나가는 어린이. ⓒ 최종규

비오는 날, 피아노집 깃든 샛골목을 지나가는 어린이. ⓒ 최종규

아니, 피아노집 어린이뿐 아니라 피아노집을 꾸리는 어른 가슴에도, 피아노집을 드나드는 어린이 동무들 가슴에도, 피아노집에 어린이를 보내는 어른들 가슴에도 한결같이 맑고 고운 겨울 골목꽃 내음과 빛깔과 느낌이 살며시 스며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a

먼 데서 바라볼 때하고 가까이 다가서서 바라볼 때에는 사뭇 다른 골목꽃입니다. ⓒ 최종규

먼 데서 바라볼 때하고 가까이 다가서서 바라볼 때에는 사뭇 다른 골목꽃입니다. ⓒ 최종규

또한, 골목동네에 이웃한 빌라나 아파트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가슴에도 이 기운이 솔솔 퍼져 가면 좋겠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옹기종기 어깨 맞대며 조용하게 오래오래 꾸려 온 골목동네 삶자락이 고이 스민 겨울 골목꽃 송이송이를 다문 사진 몇 장으로나마 나눌 수 있으면 더없이 좋겠다고 꿈을 꿉니다.

 

a

더 가까이 다가서서 들여다보면 골목꽃은 한결 곱고 싱그러운 느낌을 베풀어 줍니다. ⓒ 최종규

더 가까이 다가서서 들여다보면 골목꽃은 한결 곱고 싱그러운 느낌을 베풀어 줍니다. ⓒ 최종규

겨울 골목꽃을 부지런히 찍으며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집 잃은 개를 찾는 손글씨 쪽지와 소화전이 나란히 어울린 모습을 물끄러미 들여다봅니다. 부디 집 잃은 개는 집을 찾고, 개를 찾는 분 또한 당신 귀염둥이를 기쁘게 만날 수 있기를 빕니다. 우리 세 식구 살고 있는 붉은벽돌집을 가꾸는 집임자 할매와 할배도 우리 살림집 깃든 골목을 밝히는 겨울꽃을 예쁘장하게 돌보고 있습니다. 늘 고맙게 여깁니다. 우리 집은 꽃그릇 하나 마련해 놓고 있지 않은데 언제나 고운 꽃선물을 받고 있습니다.

 

a

잃은 개를 찾는 쪽지와 소화전. 그리고 우리 식구 깃든 살림집 집임자 할배가 가꾸는 우리 집 골목꽃. ⓒ 최종규

잃은 개를 찾는 쪽지와 소화전. 그리고 우리 식구 깃든 살림집 집임자 할배가 가꾸는 우리 집 골목꽃. ⓒ 최종규

a

철거바람이 불어도 가을 가랑잎이 철거되어 빈 집자리에 소복하게 깔리며 가을빛을 베풀어 줍니다. ⓒ 최종규

철거바람이 불어도 가을 가랑잎이 철거되어 빈 집자리에 소복하게 깔리며 가을빛을 베풀어 줍니다. ⓒ 최종규

a

여느 골목 밥집이라 할지라도 꽃그릇을 가득 마련해 놓고 있는 데가 바로 인천골목길입니다. ⓒ 최종규

여느 골목 밥집이라 할지라도 꽃그릇을 가득 마련해 놓고 있는 데가 바로 인천골목길입니다. ⓒ 최종규

a

가을 끝물까지 온갖 꽃과 푸성귀가 가득했던 '꽃그릇 골목밭'도 겨울잠에 듭니다. ⓒ 최종규

가을 끝물까지 온갖 꽃과 푸성귀가 가득했던 '꽃그릇 골목밭'도 겨울잠에 듭니다. ⓒ 최종규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2009.12.12 13:01 ⓒ 2009 OhmyNews
덧붙이는 글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골목길 #인천골목길 #골목꽃 #골목마실 #사진찍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이사 3년 만에 발견한 이 나무... 이게 웬 떡입니까
  2. 2 장미란, 그리 띄울 때는 언제고
  3. 3 '삼성-엔비디아 보도'에 속지 마세요... 외신은 다릅니다
  4. 4 "삼성반도체 위기 누구 책임? 이재용이 오너라면 이럴순 없다"
  5. 5 [단독] 신응석 남부지검장, '대통령 장모' 의혹 저축은행과 혼맥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