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얼짱 만드는 데 세월 다 보낸 아줌마들. 중년에 접어들면 '폭삭' 늙은 자신의 얼굴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사진은 영화 <시간>의 한 장면.
김기덕필름
"얼굴이 왜 그래? 혹시 건강이 안 좋은 거 아냐? 병원에는 가 봤니?"
이런 식의 질문이 여자에게는 충격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가끔은 여과 없이 불쑥 입 밖으로 나와 버리는 경우가 있다. 그만큼 여자의 얼굴은 그녀의 삶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친구 정화(가명)의 경우도 그랬다. 마치 삼재에 아홉수라도 겹친 듯 퇴직과 동시에 사업을 시작한 남편이 집 한 채 값을 홀랑 말아 먹더니, 그해 수능을 치른 작은 아들마저 대학에 떨어졌다. 거기에다 쌈짓돈이라도 굴려 볼까 하고 빌려 주었던 돈을 떼어먹히는 등 악재에 악재가 겹치는 한 해를 보냈다.
그렇게 힘겹게 일 년을 보낸 정화를 다시 만난 것은 올봄, 벚꽃이 만발하던 어느 날이었다. 겨우내 충격을 잠재우고 어느 정도 자신감을 회복한 그녀가 다시 모임에 얼굴을 내밀었을 때 다른 친구는 잠시 할 말을 잊었다. 그런데 입이 방정인 나는 그만 '톡'하니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해버리고 만 것이다.
타고난 '절대 동안'도 세상살이엔 어쩔 수 없네사실 정화는 힘든 일을 겪기 전까지 우리 모임 친구들 중 가장 '동안'을 자랑하던 여인이었다. 타고난 작은 얼굴에 또렷한 이목구비, 고운 피부까지... 오십이 가까웠지만 서른 후반이나 마흔 초반으로밖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출중한 미모를 가지고 있어 친구들 사이에서 은근한 질투의 대상이 되곤 했다. 하지만 그날의 정화는 마치 여고시절 학교를 찾아오셨던 그녀의 나이 든 엄마를 보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갑작스럽게 늙어 보였다.
상심하는 정화를 위로한답시고 친구들은 저마다 나름대로의 미용비법을 내놓았다.
"마음을 편하게 가져. 아들도 마음 먹고 재수하고 있고, 남편도 다시 일을 찾았다며…. 기미엔 녹두팩이 최고더라. 녹두를 갈아서 플레인 요쿠르트에 섞어 발라봐."
"주름엔 콜라겐 팩이 좋아. 내가 쓰는 에센스, 너도 한번 써봐. 난 그거 쓰고 효과 봤거든.""화장품이 아무리 좋아도 병원만 하겠니? 넌 원래 좋은 피부였으니까 재생도 금방 될 거야. 내가 잘 아는 병원 있는데 한번 가볼래? IPL 좀 하고 보톡스로 볼살만 좀 빵빵하게 하면 열 살은 어려 보일 걸." 열 살은 어려 보일 거라는 친구에 말에 혹한 건 비단 정화뿐만이 아니었다. 실제로 그 모임이 있고 난 후 몇몇 친구들은 정말 성형외과를 찾았다. 그 모임에 참석했던 친구의 사촌이 강남에 성형외과를 오픈하면서 50% 할인 쿠폰을 돌렸던 것이다.
"보톡스 안 맞을래? 한 병 따면 100(만 원)인데 그걸로 셋은 맞을 수 있다잖아. 셋이 모여서 가면 30(만 원)에 맞을 수 있데. 이번에 가면 점은 공짜로 빼준데. 같이 하자." "우리 딸 코 해 주려고 하는데 니네 애들 안 시켜 줄래? 요즘 면접 보려면 쌍꺼풀이랑 코 정도는 해줘야 된대. 이번에 몇 명 데려오면 더 싸게 해준다는데 애들 몇 명 모아서 같이 해주자."아줌마들 수다에는 일정한 순서가 있다. 엄마들의 공통 주제인 아이들 교육 이야기로 시작해서 요즘 뜨고 있는 재테크 방법에 대한 깨알 같은 노하우를 공유하고, 시어머니와 남편 흉을 적당히 보고 나면 확인되지 않은 연애인들의 떠도는 소문으로 화제가 넘어간다. 카더라 통신에 유비통신까지 마치 연예부 기자라도 된 듯 진지하게 소문과 진실에 대해 토론을 하다보면 자연히 마지막엔 성형 이야기로 넘어간다.
"탤런트 아무개는 요즘 보톡스 또 맞았나 보더라. 얼굴이 완전 호빵이잖아. 표정이 굳어서 잘 웃지도 못하고 성형 중독인가봐.""아무개는 코도 다시 하고 앞트임도 했나본데 아직 자리를 잡지 않아서 그런지 영 자연스럽지가 못해.""아무개 눈은 어디서 했는데 그렇게 자연스러운 거야? 잘 나왔더라.""아무개는 턱 깍고 코 높이고 볼살 넣고... 다 한 거 같은데 절대 아니라더라. 시청자들을 바보로 아는 모양이야. 딱 봐도 티나더구만."아줌마 수다모임의 파장을 알리는 신호탄인 성형 이야기. 하지만 나이에 따라 성형 이야기의 양상도 조금씩 다르다.
아이들 얼굴 걱정 끝내니 폭삭 늙은 아줌마가 됐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