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리스>는 <대장금>이 되지 못했다

[주장] 방대한 스케일만으로 한류드라마 미래 될 수 없다

등록 2009.12.16 14:51수정 2009.12.16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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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스 200억의 제작비가 투입된 한국드라마산업의 야심작. 한류열풍 재점화를 노린 기획물. 그래서 오히려 그 성공과 실패에 대한 면밀한 평가와 분석이 중요하다. ⓒ 태원엔터테인먼트


20%대로 출발한 <아이리스>의 시청률이 극의 전개가 절정을 지나면서 40%에 육박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드라마 OST에 포함된 곡들이 줄줄이 인기차트 높직한 곳에 이름을 올리고 있고, PPL(간접광고) 상품들의 매출까지 '대박'을 터뜨리고 있다.

워낙 투자금의 규모가 컸던 터라 제작사가 얼마나 이익을 남길지는 두고 봐야 하겠지만, 전반적으로 성공이라고 할 만한 성적이 분명하다. 분명히 많은 이들의 노력이 느껴지는 작품이기도 했고, 그들이 보람을 느낄 만큼의 사랑도 받고 있다. 남북의 분단과 군사적 대치상황을 소재로 하는 만큼 아슬아슬한 선을 넘나드는 면도 있지만, 그리 심각한 우려를 사지 않았다는 것도 높이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아이리스>를 향한 문화산업계 안팎의 시선이 단지 <아이리스> 한 작품의 성공과 실패 여부만을 주목하고 있던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생각해봐야 할 것들이 있다. 200억이라는 제작비는 애초에 국내방송만으로는 뽑아낼 수 없는 규모이고, 따라서 당연히 아시아 각국으로의 수출을 염두에 두고 기획된 작품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대장금>과 <겨울연가> 이후 이렇다 할 '빅히트작'들을 내놓지 못하면서 한류열풍이 잦아드는 것이 아니냐는 조바심이 밀려오던 시점이라는 점이다.

그 사이 <로비스트>와 <태양을 삼켜라>가 각각 100억을 훌쩍 뛰어넘는 제작비를 투입하고도 국내외 시장에서 참패하는 시련이 있었고, 김종학과 배용준이라는 최고의 흥행사들이 400억대 제작비를 쏟아 부은 <태왕사신기> 역시 별 재미를 보지 못했다. <아이리스>는 앞으로 한국 드라마 제작산업이 아시아 시장에서 거두어온 성과를 지켜내고 확장하기 위해 어떤 방식으로 움직일 것인가를 보여줄 시금석의 임무 역시 띠고 있었던 셈이다. 그렇다면 시청률를 비롯해 안팎으로 고무적인 성적표를 받아든 아이리스는 한류드라마가 나아가야 할 길을 보여주고 있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니라고 하는 것이 옳을 것 같다. <아이리스>는 앞서 아시아 시장에서 성공을 거둬온 '한류드라마'들의 미덕을 본받는 데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미국과 일본을 비롯한 '경쟁국'들과 차별화할 수 있는 개성을 만들어내는 데도 실패한 것으로 생각된다. 더구나 엄청난 규모의 제작비에도 불구하고 '그 정도 제작비로 만든 영상 치고는', 혹은 '우리나라의 드라마 치고는'이라고 이해해줄 리 없는, 해외의 시청자들에게 자랑스럽게 내놓기 민망할 흠결 역시 '옥에 티'라기에는 너무 많다는 점도 걸린다.

한류 드라마의 미래 못 보여준 <아이리스>

<겨울연가>(2002)와 <대장금>(2003)은 한국 드라마 역사의 기념비적인 작품들이다. 그동안 그 이상의 작품성과 완성도를 가진 드라마가 없었던 것은 아니겠지만, 그만큼 나라 안팎에서 폭넓게 사랑받으면서 커다란 경제적-문화적 파급 효과를 만들어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각각 20억 원 안팎의 제작비를 들인 두 드라마는 일본과 중국에서의 대흥행에 힘입어 요식업과 관광업으로, 혹은 뮤지컬을 비롯한 또 다른 형태의 문화상품으로 재생산되며 수천억원대 이상의 경제효과를 파급시켰으며, 이후 국내에서 방송된 드라마의 80% 이상이 해외로 수출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올인>과 <주몽> <파리의 연인> <내 이름은 김삼순> 등이 아시아 시장에서 거둔 크고 작은 성공들 역시 그 두 편의 드라마에 빚진 바가 없지 않았다.

그 <겨울연가>와 <대장금>이 공유하는 매력이 있었다면 바로 가장 원초적이기에 보편적인 인간의 감정에 대한 집중이었고, 그것을 통해 국경을 넘어 시청자들의 감정선 깊숙한 곳에서 소통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대장금>은 이병훈 PD의 전작 <허준>, <상도>로부터 이어진 '진실과 성실로 이루어가는 성공스토리'라는 뼈대 위에 궁중수랏간을 배경으로 하는 화려하고 신선한 볼거리로 승부를 던졌지만 장금모(김혜선 분)와 한상궁(양미경 분), 장금(이영애 분)과 연생(박은혜 분)이 평생을 두고 나누는 '사랑보다 진한 여자들의 우정' 또한 그 못지 않게 시청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지점이었다. 그리고 <겨울연가>는 남자와 여자가 공통적으로, 하지만 조금씩 다른 방식으로 평생 가슴 속에 묻어두고 살아가는 '첫사랑'에 대한 그리움을 끌어내고 폭발시키기도 했다.

인물들이 왜 기뻐하고 왜 분노하고 왜 슬퍼하고 왜 즐거워하는지의 과정을 그리는 데 조금의 허점도 남기지 않았고, 또한 진한 공감과 동경의 마음으로 그런 감정들의 표현을 함께할 수 있게 하는 수완을 발휘했었다는 점. 그것은 두 초대형 흥행작들의 공통적인 미덕이고 성과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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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금 장금의 성공도 자신의 '진실과 성실' 만으로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왕(임호 분)과 종사관(지진희 분) 같은 남성들 못지 않게 한상궁(어머니의 친구)과 연생(장금의 친구)의 힘에 도움을 받는다는 점은 독특하다. 연생은 후궁이 된 뒤로도 왕의 사랑이나 왕자 생산이 아니라 친구 장금의 행운을 빌며 치성을 올린다. ⓒ MBC


하지만 그 점에서 <아이리스>는 길을 달리 한다. 아마도 드라마의 스케일과 볼거리를 위해 '사소한' 감정의 움직임은 성큼성큼 건너 뛰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드라마 전체의 처절하고 애절한 색채에 대한 공감의 열쇠를 쥔 김현준(이병헌 분)과 최승희(김태희 분)의 사랑에 대한 설명은 고작 일본 아키타로 다녀온 밀월여행 한 번의 근사한 그림으로 때우고 넘어가는 것은 조금 심했다 싶다. 그리고 목숨을 줄 수도 있을 만큼 절대적이었던 친구 김현준의 등에 비수를 꽂는 진사우(정준호 분)의 울분을 고작 어설픈 짝사랑을 짓밟힌 민망함 몇 장면으로, 또한 서로 총을 겨누던 적국의 킬러를 짝사랑해야 하는 선화(김소연 분)의 슬픈 운명 역시 제압당해 결박당한 채 얻어 먹어야 했던 몇 그릇의 개밥 정도로 둘러대는 것 역시 그렇다.

슬픈 전설 따위 믿거나 말거나야 현준의 자유겠지만, 시청자를 '구경꾼'의 자리에서 조금 더 끌어당겨 몰입하고 공감하도록 하려면 조금 더 세심한 설정과 설명들이 필요했다는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대장금>의 매력도 '미드'의 전문성도 따라잡지 못 하다

물론 길이 한 가지만 있는 건 아니다. 기왕에 <아이리스>가 섬세한 감정선보다는 굵직굵직한 볼거리를 잡고 가기로 했다면, 최근 몇 년간 우리나라에서도 숱한 '폐인'들을 양산하고 있는 '미드'들을 참고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리스>는 '미드'들을 따라가겠다는 의욕을 읽어낼 수 있을 만큼 과감하고 세련된 볼거리들을 만들어내고도 '미드 부럽지 않다'는 탄성을 자아내는 데는 실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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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드오브브라더스 미국문화산업의 힘과 더불어 제작자의 '뚝심'이 돋보이는 작품. 그런 뚝심이 있어야 얄팍해보이지 않는다. ⓒ 워너 브라더스


<C.S.I>와 <N.C.I.S>를 비롯한 수사물들과 <그레이 아나토미>를 비롯한 의료물들이 한국을 비롯한 전세계의 시청자들에게 준 충격은 근본적으로 '정말 실제 같은 묘사'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 드라마 한 편 만 보더라도 수사기법과 의료분야에 대해 제법 전문지식을 접한 듯한 착각이 들 정도의 치밀한 접근 때문이기도 했다. 그 영역에 대해 시청자들이 미리 가지고 있는 선입관들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상상해본 적도 없지만, 드라마로 보니 정말 현장에서도 그럴 것 같은' 장면을 보여주는 화면이 시청자들을 빨아들일 수 있었던 것이다. 예컨대 2차 세계대전 당시 전투의 양상과 소부대 전술뿐만 아니라 무기, 전투복, 비상 식량까지 '역사교재'로 삼을 수 있을 만큼 집요하고 뚝심있게 재현해낸 <밴드 오브 브라더스>가 앞으로 다시 수십 년이 흐른다고 해도 세계 곳곳의 안방에서 끊임없이 '재생'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는 것 역시 그런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신입요원들의 프로필을 정리하는 것 외에는 '프로파일러'라는 전문성을 보여주지 못하는 데다가 북한에 두고 온 가족들에 대해 이미 알고 있다는 식의 일방적인 몇 마디로 망명요청자에 대한 심문을 마치고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최승희에 대한 <아이리스>의 묘사는 아쉽다. 그리고 단지 '수상하다'는 이유로 묶어놓고 채찍질을 하는 고문을 일삼으며 일일이 촬영까지 해놓고, 뒤늦게 신원을 파악하겠다며 그 끔찍한 동영상을 이웃나라(아마도 피의자의 조국일) 정보기관에 보내는 일본 정보기관의 행태는 시청자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기도 했다. 

그뿐이 아니다. 현준은 여러 차례 저격과 암살을 성공시킨 후 '독 안에 갇힌' 신세에 몰리지만 한 번도 잡히지 않고 탈출하는 데 성공한다. 물론 주인공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몰리면서도 빠져나오는 것은 모든 액션물의 공식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이리스>의 특별함은 그 위기를 빠져나오는 과정에 대한 설명을 아예 건너 뛰어버린다는 점이다. 그러다보니 추격하는 적들, 막다른 골목, 절망하는 표정, 몇 번의 심호흡 끝에 마지막 현준이 숨어있는 곳으로 쇄도하는 적들. 하지만 다음 순간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찰과상이 난 팔뚝을 움켜쥔 채 피곤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은신처로 돌아와 쓰러지는 현준. 이런 장면들이 회마다 거듭되며 본방인지 재방인지를 확인하게 만드는 것이다. 

물론 방영 초기, 주인공이 어차피 안 죽고 안 잡힐 걸 모르는 이는 아무도 없다. 구구절절 설명하느라 질질 늘어뜨리느니 산뜻하고 속도감 있는 액션으로 승부하겠다는 말도 일리가 없지는 않다. 하지만 숱한 액션물에서 주인공들이 환기통과 하수도를 기어 다니고 세탁물 배출구나 지나가던 쓰레기수거차를 향해 몸을 날리는 것도 다 이유가 있어서다. 대개의 드라마나 영화의 시청자들은 뮤직비디오나 컴퓨터게임 엔딩화면에 나오는 화려한 액션장면과는 조금 다른 것을 원하기 때문이며, 그 다른 점이란 '앞뒤 맥락이 이어지는 이야기로서의 액션'이라는 점이다.

단명한 '홍콩 느와르 시대'에 교훈 있다

1980년대 중반으로부터 후반까지, '홍콩 느와르'라고 분류되던 영화들이 아시아 시장을 주름잡던 시절이 있었다. <영웅본색>(1986)으로 시작해 <지존무상>(1989)을 거쳐 <첩혈쌍웅>(1989)으로 이어지는 계보는 당대 시네마키드들의 가슴에 동시대 개봉했던 <미션>이나 <플래툰> 같은 국제영화 수상작들보다도 훨씬 깊숙한 추억을 새겨놓은 이름들이다. 앞 세대에게 알랭 들롱, 숀 코네리, 로버트 미첨 같은 이름이 가지는 것과 비슷한 위치에 주윤발, 유덕화, 알란탐, 장국영, 왕조현 같은 이름들을 새겨넣은 것 역시 그 시대였다.

하지만 해마다 수십 편씩 수입되며 영원할 것 같던 '홍콩 느와르'의 시대는 불과 서너 해만에 서둘러 막을 내렸고, 1990년대 이후 그런 영화들을 볼 수 있는 곳은 비디오방 뿐이게 되었다.

흔히 '총싸움 하는 홍콩 갱영화'라고도 풀이되던 그 영화들의 시대가 단명한 것은, 역설적이게도 '총싸움 하는 홍콩 갱들'에 관한 영화만을 쏟아냈기 때문이었다. 해가 갈수록 영화 속에서 총격전의 빈도는 늘어났고 악당들은 점점 더 처참한 몰골로 쓰러져갔지만, 관객들은 자꾸만 한산해져가는 역설이 나타났던 것이다.

사실 <영웅본색>의 매력은 주윤발의 쌍권총 액션 만큼이나 공중전화 박스에서 죽어가며 마지막 남은 힘을 짜내 막 아기를 낳은 아내에게 밝은 목소리를 남기려던 장국영의 애절함에 있었다는 것을, 그리고 <첩혈쌍웅>의 매력은 전설적인 성당 총격전 신의 어질어질한 괴성 만큼이나 서로 총을 겨눈 채 눈 먼 여인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려고 허풍을 떨어대던 킬러와 형사 간의 역설적이고도 아슬아슬한 우정에 있었다는 것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문제와 한계는 <영웅본색>에 내재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은 기왕에 이루어놓은 성과들의 의미에 대한 천착과 전진에 대한 한 치의 고민도 없이 더 싸고 더 쉽게, '영웅'과 '지존'과 '첩혈'이라는 단어로 이루어진 숱한 총격전 영화들만을 대량생산해낸 홍콩 문화산업의 아둔함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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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본색 저 장면에서 눈물을 흘리지 않고도 이어지는 주윤발의 '분노의 쌍권총 총격전' 장면에 몰입할 수 있을까? ⓒ 시네마시티


아이리스가 길을 열었다고 하지 말자

<아이리스>는 단점도 많지만 장점도 많은 드라마다. 다만 그 장점의 대부분이 '막대한 제작비'와 연관되는 것들이며, '우리 현실에서'라는 전제 조건과 만나야만 설득력을 발휘한다는 아쉬움이 남긴 하지만 말이다.

어쨌든 '막장'이라는 꼬리표 정도는 별로 불명예로 생각하지도 않는 듯한 요즘의 드라마 판에서 유독 <아이리스>가 비난을 받을 이유는 전혀 없다. 기대 수준을 그렇게 이 시대의 '평균'으로 놓고 보자면 <아이리스>는 누가 뭐래도 우수한 완성도를 보여주고 있으며 훌륭한 볼거리를 제공해주고 있다. 제작비 많이 들였다고 해서 시청료 더 받는 것도 아닌 마당에, 그저 리모콘 버튼만 누르면 되는 시청자 입장에서야 그저 고마운 일이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아이리스>가 충분한 성공을 거두었다고 보지는 말자. 그리고 그것이 성공이라고 하더라도, 그 성공을 통해 앞으로 한국 드라마가 나갈 길을 찾았다고는 하지 말자. 나쁘지 않은 데다가 충분히 좋은 면들을 많이 보여주었음에도 <아이리스>는 모범이 될 만 한 드라마가 아니며, 오히려 현실화되지 않은 위험성들(그 위험성들이 현실화되지 않은 이유는, <히어로>를 비롯한 동시간대 경쟁작들의 졸전에도 상당부분 있지 않을까?)을 더 많이 내포한 드라마이기 때문이다.
#아이리스 #한류 드라마 #대장금 #영웅본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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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 관한 여러가지 글을 쓰고 있다. 오마이뉴스에 연재했던 '맛있는 추억'을 책으로 엮은 <맛있는 추억>(자인)을 비롯해서 청소년용 전기인 <장기려, 우리 곁에 살다 간 성자>, 80,90년대 프로야구 스타들의 이야기 <야구의 추억>등의 책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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