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 도울 돈 있으면 너나 잘 살아"

죽어가는 생명을 살리며 한 해를 떠나 보내다

등록 2009.12.26 12:12수정 2009.12.26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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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JTS 빈곤퇴치 캠페인

JTS 빈곤퇴치 캠페인 ⓒ 권영숙


저는 봉사 중에서 빈곤 퇴치 거리캠페인을 제일 싫어합니다. 누군가에게 모금통을 내미는 것이 무척 자존심 상합니다. 아니 내미는 것은 괜찮은데 외면하고 돌아서는 사람들을 시비하고 분별하고 미워하는 제 꼬라지를 보는 것이 무척 싫습니다.


그래서 북한동포 돕기를 할 때도 차라리 내가 돈을 더내고 말지 모금이나 서명은 안하겠다 다짐했지만 현실은 매일 같이 서명지를 들고 거리로 나가야 했습니다. 이번에는 정토회에서 2009년을 뜻깊게 떠나 보내기 위해 자기가 사는 동네에서 송년 캠페인을 하자고 합니다. 저는 어떻게 하면 캠페인을 안하고 빠져 나갈까 궁리를 했지만 소용없는 일이었습니다.

지난번 생명탁발 순례 중에 정토회에 머무셨던 도법 스님께서 정토회 사람들은 특공대들만 모였다고 하셔서 많이 웃었는데 맞는 말 같습니다. 아무리 하기 싫은 일도, 사람들이 비난하는 일이라도, 세상에 보탬이 되는 일이거나 생명을 살리는 일이면 욕을 먹어도 하는 곳이 정토회입니다.

그 한 예가 1996년부터 꾸준히 하고 있는 북한동포 돕기입니다. 정토회 좋은 벗들은 작년 북한에 고난의 행군 시절 만큼의 극심한 식량난이 온 것을 알고 정부와 민간에 인도적 지원을 하자고 설득하고 호소했습니다.

그러나 남북관계의 경색으로 북한동포 돕기가 매우 어려워졌고, 또 그 과정에서 일어난 남북간의 몇몇 사건들로 인해 북한을 돕는 정토회는 오히려 욕을 많이 먹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토회가 꾸준히 북한동포 돕기를 하는 이유는 단 한가지입니다. 정치, 사상, 이념을 떠나서 사람이 굶어죽는 것은 막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세상이 아무리 칭찬을 해도 옳지 않은 일이면 하지 말아야 하고, 세상이 아무리 비난을 하더라도 옳은 일이면 해야 한다는 원칙이 있기에 북한동포 살리는 일을 계속하는 것입니다.


양재역에서 진행한  빈곤퇴치 거리캠페인 

a  빈곤퇴치 캠페인에 참여한 간디학교 학생

빈곤퇴치 캠페인에 참여한 간디학교 학생 ⓒ 권영숙


그렇게 생명을 살리는 일은 민족, 종교, 사상, 이념을 뛰어넘기에 한해를 마감하는 빈곤퇴치 캠페인을 지난 12월 23일, 양재역에서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장소를 잡고서도 많이 망설여졌습니다. 작년 북한동포 돕기 서명운동을 양재역에서 해봤는데 너무 많은 사람들이 외면했었기에 장소를 잘못 잡은 건 아닌지 걱정이 되었습니다.


캠페인 시간을 오후 5시로 잡아서 직장인들은 참여가 어렵고, 정토회 낮반 봉사자 분들도 가정으로 퇴근하는 시간이어서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참여하기 힘들었습니다. 캠페인 참여자가 적을 것이라는 걱정에 방학한 두 딸을 꼬셨습니다.

"어쩌면 엄마 혼자 거리모금 할지도 몰라. 흑흑."

저도 제 딸들이 얼마나 효녀인지 이번에 알았습니다. 큰딸은 모금통 들고 나가는 일은 창피해서 힘들고, 마이크 잡는 일을 하겠답니다. 둘째 딸은 쇼콜라까지 만들어서 캠페인 끝나고 나누기 하면서 먹을 수 있게 준비해 주었습니다. 또 큰 딸이 다니는 간디학교 후배도 나왔고, 다른 분도 두 남매를 데리고 오셔서 아이들이 많은 캠페인이었습니다.

생명이 죽어가는데 그보다 바쁜 일이 뭐가 있을까

"1000원이면 어린아이 한 명을 일주일간 살릴 수 있습니다. 도와주세요."
"나 지금 바빠요." 
"아이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럼 죽으라고 하세요." 

'나 지금 바빠요', '그럼 죽으라고 하세요'라는 말이 탁 걸렸습니다. '생명이 죽어가는데 그보다 더 바쁠 일이 뭐가 있으며 그냥 죽으라니?' 분별심이 세게 올라옵니다. 그 분별심을 가라앉히기 위해 잠시 뒤돌아 심호흡을 하며 생각했습니다.

'그래 저 사람도 모르니까 그렇겠지. 정말 생명이 죽는 걸 본다면 바쁘다고 그냥 가겠나. 모르니까 죽으라고 하겠지, 나도 모를 때는 저랬겠다.'

외면하며 바삐 가버리고, 손을 내치고 도망치듯 가는 사람들을 보며 지난 날의 저를 만났습니다. 마치 나는 안 그랬던 것처럼 생각하지만 저도 그 사람들과 다르지 않았었기에 한편으로 그들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마음을 다시 가라앉히고 모금통과
JTS(국제기아·질병·문맹퇴치기구 Join Together Society) 홍보지를 나눠주는데 누가 제 손을 탁 잡습니다.

a  엄마 따라 빈곤퇴치 거리모금 나왔어요~

엄마 따라 빈곤퇴치 거리모금 나왔어요~ ⓒ 권영숙


"아니. 여기서 뭐해?"
"아. 네. 저 굶주리는 아이들 돕기 거리모금 하고 있어요." 

"뭐? 이 시간에 장사는 안하고? 지금 누가 누굴 도와? 도움받아야 할 처지에 남 돕겠다고 나왔어? 쯧쯧."
"에이. 저는 굶지는 않잖아요. 좋은 일 좀 하고 가세요." 

하필하고 만나고 싶지 않은 제 가게 손님을 만났습니다. 그 분은 북한동포 돕기할 때도 제 가게 모금통을 보면서 혀를 찼습니다. 저더러 '남 도울 돈 있으면 너나 잘 살아라'고 하시는 분이십니다. '남 도울 돈이 별로 없으니 몸으로라도 도우면서 잘 살고 있는데…', 이 말은 꿀꺽 삼켰습니다. 한 대 맞을까봐요.

거리모금을 하면서 모금함에 천원이든 백원이든 넣어주시는 분들에게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아니 JTS 홍보지를 받아만 줘도 90도로 인사를 꾸벅합니다. 이렇게 한 분 한 분의 정성이 모여서 한 생명이라도 더 살릴 수 있다는 것이 감동입니다.

캠페인에 나와 봉사해주신 분들은 대체로 50대와 60대가 많으셨습니다. 젊은 사람들에게 외면을 당하면서도 정성스럽게 인사를 하시는 봉사자들을 보면서 저는 겸손을 배웁니다. 이렇게 한 분 한 분의 정성이 모여서 30만9000원을 한 시간 동안 모금했습니다.

"거절당해도 웃는 엄마, 잡초 같아"

a  JTS 빈곤퇴치 캠페인에 참여한 두 딸.

JTS 빈곤퇴치 캠페인에 참여한 두 딸. ⓒ 권영숙


거리모금에 두번째 나온 큰딸은 처음 했을 때보다 해볼 만했다고 합니다. 작년에 처음으로 인사동 캠페인에 참여한 큰딸은 두번 다시 캠페인에 안 올 거라고 했습니다. 거절하는 사람들에게 다시 웃으며 다가서는 저를 보면서 '잡초 같다'고 했습니다. 아니 엄마만 잡초같은 것이 아니라 거리모금에 나온 정토회 사람들은 다 '잡초 정신'이 있다고 했습니다. 어떻게 수없이 거절을 당하면서도 웃으며 다시 하는지 존경스럽다고 말입니다.

거절당하는 것이 싫고 창피해서 다시는 캠페인을 안한다고 했던 딸이 두번째 캠페인은 할 만했다고 하니 다음 캠페인을 기대해도 좋을 듯 합니다. 봉사점수 따는 것도 아닌데 아무 대가없이 캠페인에 나와 준 아이들이 참 대견하고 고맙습니다.

아이들을 어떻게 하면 잘 키울까 고민할 필요가 없음을 캠페인을 하면서 느낍니다. 아이들의 특징은 법륜 스님의 말씀대로 '따라 배우기'가 맞습니다. 부모가 사는 모습 그대로 따라삽니다. 

고등학생 딸이 3만원 받는 한달 용돈에서 매월 2500원씩 JTS에 기부하고, 초등학생 딸도 용돈을 모아 기부하는 걸 보면 가끔 제 속을 뒤집는 딸의 행동은 너그럽게 바라봐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

2009년. 소중한 인연을 떠나보낸 가슴 아픈 해.그 인연을 생각하며 죽어가는 생명을 살리면서 한 해를 떠나보냅니다. 혹시 2009년 한 해를 생명 살리는 일로 마무리 하고 싶으신 분은 JTS(국제기아ㆍ질병ㆍ문맹퇴치기구 Join Together Society) 를 꾹 눌러보세요.

1,000원이면 어린아이 한 명을 일주일간 살릴 수 있고,
5,000원이면 어린아이 한명을 한달간 살릴 수 있고,
150원이면 어린아이에게 한끼의 식사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내게 천원은 담배 한 갑, 커피 한 잔 값도 안되는 돈이지만 지구 저 편에서는 생명을 살릴 수 있는 소중한 천원입니다. 돈이 많다고 기부하는 것은 아닙니다. 없는 가운데서도 나누고자 하는 마음, 사랑의 기부의 첫 시작입니다.

나는 행복을 전하는 보살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정토회 #JTS #빈곤퇴치 #거리모금캠페인 #법륜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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