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 뷔페가 부럽지 않은 송년회

포틀럭 파티로 하는 송년 모임을 소개합니다

등록 2009.12.29 14:01수정 2009.12.29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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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이 되니 이런 저런 송년회 모임으로 그렇지 않아도 후딱 가버린 것 같은 한 해가 더욱 정신없이 지나가고 있다. 사람들은 한 해를 마무리 하려는 마음으로 매우 분주하게 보낸다. 평소 만나지 않던 사람들도 '한번 봐야지?'로 약속을 잡는다. 그래서 송년모임들은 제각각 색깔이 있다.


올 해는 두 건의 '포틀럭(potluck party) 형식의 모임을 가졌다. '포틀럭'이란 한 가지씩 음식을 해가지고 와서 나누어 먹는 것을 말한다고 한다. 올 여름 한 모임에서 음식 한 가지씩을 가져와 먹었다. 그런 모임을 '포틀럭'이라 한다나. 그런 용어가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영어와 조금 떨어져 있는 세대이다 보니 그런 정보에 조금 어둡다. 사전적 의미로는 '수중에 있는 재료만으로 만든 요리', '혹은 각자 음식을 조금씩 마련해 가지고 오는 것' 등으로 표현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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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밭교회 미가엘 성가대 송년모임, 각자 만들어온 요리를 뷔페로 차렸다. 음식을 가져온 사람의 이름도 붙여서 재미를 더했다. ⓒ 박금옥


내가 속해 있는 한 모임에서는 벌써 십여 년 전부터 '포틀럭'이라는 용어는 몰랐어도 해마다 그렇게 해 온 곳이 있다. 이제는 아예 전통으로 굳어졌다. 내가 다니고 있는 새밭교회 성가대 송년모임이다.

10여 년 전에 2부 성가대가 처음 결성되고 그 해 성탄절이 되었을 때, 성탄 칸타타 음악예배를 끝내고 마무리하는 의미에서 교회 근처 조그만 카페에서  스무여 명 남짓한 사람들이 평가회를 했었다. 그런데 음식도 마땅찮고 시간도 많이 할애할 수가 없어서 엉성하게 한 해를 정리하고 끝냈었다. 아쉬운 송년회였다.

그 다음에 나온 대책이 누가 자신의 집을 모임 장소로 내주면, 대원들은 음식을 한 가지씩 해 가지고 오면 어떻겠냐는 것이었다. 그러면 편안하게 주위 눈치 보지 않고 평가회도 하고 놀이도 맘껏 할 수 있다는 의견이었다. 그 의견을 낸 사람은 독일에서 살다 오신 분이었다.

독일에서 살 때 매 주 교회를 가서 한국 사람들을 만났는데 만나면 그냥 헤어지기가 너무 아쉬워서 집에 있는 것들을 간단하게 싸가지고 와서 서로 나누어 먹으며 한국을 생각했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우리 교회 성가대 '포틀럭 파티'는 한 해를 마무리하는 좋은 자리가 되었다.


십여 년을 성탄 칸타타 음악예배가 있는 25일에 늘 해오던 일이라서 이제는 노하우가 생겨 일일이 설명하지 않아도 척척 음식들이 나온다. '포틀럭' 형식의 모임에서 가장 큰 관건은 장소다. 이것이 해결되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장소 사용료가 들지 않으면서 마음껏 편안한 자세로 음식을 나누고,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즐겁게 보내자는 의미이기에 무슨 카페 같은 곳을 빌려 음식을 해가는 것은 의미가 없었다. 반드시 집이어야 했다. 다행히 몇 몇 분이 매 해 돌아가면서 집을 제공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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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주인은 책상서랍과 식탁을 연결시켜서 뷔페 상을 만들어 놓았다. 장소를 제공한 집주인은 모임이 끝난 후에도 정리 할일이 남아있다. ⓒ 박금옥


요즘 사람들은 집에서 모임을 잘 갖지 않는다. 그래서 집을 선뜻 내 주는 사람이 가장 큰 일을 한 셈이 된다. 일단 총무는 가장 기본적인 음식을 적어서 회람을 돌린다. 그러면 회원들은 자기가 해올 음식이 있으면 그곳에 이름을 적으면 되고, 새롭게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메뉴를 첨가해 적으면 된다.

또 하나 할 일은 몇 몇 집에 있는 상하고 접시와 수저들을 모으는 일이다. 수저는 손님용 수저를 마련해 두고 있던 집에서 늘 가져 왔는데 '이제 자신의 집 수저는 공동의 수저가 되었다면서 집나간 수저를 찾는다'고 농담을 한다.

한 사람씩 음식보따리들을 들고 집으로 찾아들면 그것을 뷔페 형식으로 차려낸다. 그 중에 또 재밌는 사람들이 있어서 이름표도 붙이는 센스도 발휘한다. 뷔페 음식점의 무미건조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사람들은 상 주변에 쭉 둘러서서는 접시에 담겨지는 갖가지 팔도 음식에 대한 평가로 웃음이 더해진다. 지방특색음식, 다국적(?)요리, 자신만의 노하우를 자랑하는 음식 등으로 눈이 먼저 즐겁다.

올해는 경상도 지방의 사람들이 잘 해 먹는다는 배추부침개가 인기를 끌었다. 밍밍하고 물컹할 것 같은 배추전이 의외로 고소하고 담백한 맛에 사람들의 젓가락질이 끊이질 않는다. 성가대원은 거의 부부이기에 부모를 따라온 어린 아이들도 10여명 된다.

아이까지 합친 40여명이 각각의 접시에 음식을 담아서 방방마다 몇 명씩 모여앉아 얘기꽃을 피우면서 편안히 발 뻗고 먹는다. 음식을 다 먹고 난 후에 갖는 평가모임, 퀴즈게임, 윷놀이, 큰소리로 웃고 떠들기 같은 것을 마음 편하게 늦게까지 할 수 있는 것은 집이라서 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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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사랑역사랑' 문화재 답사 동호회 모임, 한가지씩만 가져왔는데도 상다리 부러지게 생겼다. ⓒ 박금옥


또 하나의 '포틀럭' 모임은 북부여성발전센터의 문화재 답사팀으로 만나 '여(女)사랑역사랑'이라는 카페 동호회로 발전한 답사 모임 팀이었다.

회원 한 분이 올 한 해를 함께한 시간들을 돌아보자면서 자신의 집을 제공할 테니 음식한가지씩 만들어 오라고 한다. 열 댓 명 되는 아줌마들이 주위에 피해를 주지 않고 마음껏 떠들 수 있는 곳은 집 밖에 없다는 것이다. 아이들도 데려오지 말고 온전히 우리들의 수다시간을 가져보자는 것이었다. 회원 모두 고마운 마음이 들어서 흔쾌히 좋다고 했다.

이 모임은 '포틀럭'이 처음이라서 준비 단계부터 수다스럽고 재미있었다. 메뉴가 겹치면 안 되니 누가 무엇을 해 오겠다는 것에서부터, 이걸 할까 저걸 할까 메뉴를 정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서로서로 조언도 해주고, 집주인은 될수록 완성품의 음식을 가져와서 주방을 사용하지 않고도 음식상에 곧바로 차려지도록 해달라는 주문까지.

그냥 음식점 정해서 돈만 들고 가서 먹는 그런 모임하고는 질적으로 다른, 음식을 만들어 나누어 먹는 것은 준비모임부터가 송년회 시작이었다. 모임 날 한 사람씩 들고 들어오는 음식 때문에 사람들은 설렜다. 솜씨자랑으로 평소에 잘 하지 않던 요리를 해 온 사람들은 평소 실력보다 못하게 되었다고 미리 엄살을 부려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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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 동안 문화재 답사를 다니느라 발품 판 회원들이 모처럼 편안한 식사자리를 마련해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 박금옥


사람이 음식을 나누어 먹으면서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그만큼 더 마음을 열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포틀럭'으로 모이는 또 하나의 좋은 점은 남겨진 음식은 서로 나누어 가져갈 수가 있다. 두 다리 뻗고 불린 배를 두드리며 찬찬히 내년의 할 일도 점검했다. 남은 음식들을 나누어 모두 손에 들고 그 집을 나오는데 '오늘 저녁 반찬 걱정 덜었다'는 주부들의 마음도 함께 나누어 가진 듯했다. 이렇게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모아진 의견은 '2010년도 우짜든지 행복합시다'였다.
#새밭교회 #미가엘성가대 #여사랑역사랑 #포틀럭송년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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