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호랑이는 뭐하는겨... 저 망할 놈 안 잡아가고"

이빨 제대로 드러내는 호랑이해가 되길

등록 2009.12.30 11:51수정 2009.12.30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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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만에 돌아온다는 백호랑이해가 밝아옵니다. ⓒ 임윤수


멀미를 하다 설든 잠결에 바라본 차창 밖 풍경이 메슥거리는 속만큼이나 빠르게 지나가고 있던 걸 경험한 적이 있을 겁니다. 타고 있는 차가 움직일 뿐 차창 밖 세상은 움직이는 게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가끔은 속이 울렁거릴 만큼 착각하고, 때로는 앉았던 자리에서 벌떡 일어설 만큼 당황하기도 합니다.


선잠 결에 아슴푸레하게 보았던 차창 밖 풍경처럼 일 년이라는 세월이 훌쩍 지났습니다. 세월이 흐른 것인지, 인생이 흐른 것인지 아니면 세월과 인생이 함께 흐른 것인지를 구분 할 수가 없습니다. 억겁의 세월에 견주어 보면 보잘 것 없는 인생이 종종걸음을 쳤을 뿐이지만 뒤돌아보는 1년은 정말로 다사다난 했습니다.

소처럼 어슬렁어슬렁 걸으며 지금껏 살아온 50년 인생을 되새김질해 보리라 마음먹었건만 습관이 되어버린 조바심에 하루 한 날을 토끼 뜀박질하듯 헐떡거리며 살다보니 어느새 연말연시가 되었습니다.

지인들의 부고가 들려올 때는 '생자필멸'로 위안을 삼고, 현재진행형인 용산참사가 떠오를 때는 온몸을 부르르 떨 만큼 분노하기도 하지만 잡을 수 없는 세월이기에 권불십년도 피해가지 못할 '제행무상'에 기댈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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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신 탄생지가 있는 진천 만뢰산에서 맞이한 2009년 1월 1일 일출 ⓒ 임윤수


소띠 해를 뒤로하며 60년 만에 돌아온다는 백호랑이 해가 시작됩니다. 호랑이 해라고 하니 어렸을 때부터 들어왔던 동화속의 호랑이도 생각나지만 악동시절 들었던 어머니의 푸념, '아이구~ 요즘 호랑이는 뭐 먹고 사는겨. 저 망할 놈의 자식 안 잡아 가고'하며 지르던 어머니의 푸념이 먼저 떠오릅니다. 

발악을 하듯 질러대는 어머니의 고함에 등골이 오싹해질 만큼 살벌한 악담으로 연상될지 모르지만 어렸을 때 고향마을에서 이따금 듣던 어머니들의 애증 어린 야단이며 한탄의 소리입니다.


하지 말라는 불장난을 하다 남의 집 산소를 홀랑 태워 먹었을 때, 가지 끝에 매달린 살구를 떨어트린다며 던진 돌에 옆집 장독이 와장창 깨지며 간장 한독이 통째 쏟아졌을 때, 지레 겁먹고 멀찌감치 도망가 있는 악동의 자식들에게 퍼붓던 어머니들의 푸념어린 한탄이며 야단이었습니다.

믿을 수 없어 더 힘들어진 세상

많이들 어렵다고 합니다. 각박해진 일자리에 마음 졸이고, 옹색해진 살림살이에 행동거지조차 쪼그라들었습니다. 얄팍해진 주머니 사정 때문에 어렵기도 하지만 보고 있으면서도 믿을 수 없는 현실, 왠지 속는 것 같은 불신, 감시당하고 강요받는 듯한 압박감 때문에 많이들 힘들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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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러낸 호랑이의 이빨처럼 주권 한 번 제대로 행사하는 새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임윤수


일국의 대통령이 몇 번씩이나 '아니다'라고 해도 믿지 못할 만큼 불신을 키워온 위정자들이 혐오스럽고, 2, 3년 전까지만 해도 고위공직자를 임명하려면 시퍼런 칼날처럼 들이대던 도덕적 기준이 어느새 '양파'라는 수식어가 붙여질 만큼 의혹투성이인 인사가 1인지하만인지상의 자리에 오를 만큼 흐물흐물 허물어지고 흐트러진 기준에 도덕성이 상처를 입었습니다.

도곡동 땅이라는 실체가 그동안의 불신을 확인해 주려는 듯이 어른거리고, 대운하라는 괴물이 4대강 살리기라는 국책사업에 두더지처럼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이 말끔하게 가시지 않는 게 현실이기에 더 힘듭니다.

금수강산을 꿰차고 있던 강들은 어느새 불신의 늪이 되어 있고, 그런 불신의 늪에서 가라앉지 않으려 두 다리를 허둥거리고 있는 호수의 백조처럼 위정과 위민을 주창하고 있는 그들의 행태와 과거가 가증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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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효하는 호랑이처럼 불의의 항거하는 소리들을 기대해 봅니다. ⓒ 임윤수


'진정한 민주주의는 심리적 공포와 구속으로부터의 자유'라고 했고, 10여 년 동안 쾌청한 마음으로 그러한 자유를 만끽하였던 세상에서 어느새 음습한 세월이 되었습니다. 어떤 사이트에 댓글이라도 올리려 자판을 두드리다 보면 어느새 자기검열로 스스로를 구속하는 비겁한 모습을 발견하며 흠칫 놀라게 되니 심리적 자유마저 간섭당하거나 박탈당하는 살벌한 세상이 되었습니다.

등 따시고, 배부른 세상이 올 거라고 기대했지만 등 따시고 배부른 세상이 오기는커녕 도리어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점점 더 팍팍해지니 몸도 영혼도 고단한 일 년이 아니었던가 생각됩니다. 악몽 같은 일 년이 다 저물었으니 다시금 개꿈이 될지언정 다가오는 새해는 조금이라도 살맛을 맛볼 수 있는 그런 1년이 되길 기원할 뿐입니다.

보신각 제야의 종, 불신의 정치인들을 채찍질하는 도리와 덕목의 울림

올해도 보신각에서 제야의 종을 울린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들이 보신각에서 제야의 종을 울리게 되는 행운의 주인공이 될지는 모르지만 보신각에서 울리는 제야의 종소리는 여느 곳에서 울리는 제야의 종소리와 의미가 많이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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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세우는 것만으로도 질서가 잡힐 듯합니다. ⓒ 임윤수


묵은해에서 새해로 건너가는 세월에 울림의 징검다리를 놓듯 '뎅~뎅~' 거리는 소리로 울려대는 건 비슷할지 모르지만 보신각이 갖는 의미가 있기에 남다를 수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목화토금수'로 표시하고 있는 음양오행은 동양사상의 골격이며 문화와 가치의 덧살입니다. 동양의 모든 것들은 음양으로 구분되었고, 음양오행으로 설명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유·무형으로 존재하거나 전해는 우리 주변의 대부분도 음양오행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동서남북 방위도 음양오향으로 나타내고, 사람으로서 반드시 지켜야 할 다섯 가지 도리, '인의예지신'도 음양오행으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서울에는 4대문이 있고 그 중앙에 보신각이 있습니다.

'인의예지신'을 음양오행으로 표시하면 '인(仁)'은 동쪽으로 '목(木)'이 되고, '의(義)'는 서쪽으로 금(金)이 되며, 예(禮)는 남쪽으로 화(火)가 되고, 지(智)는 북쪽으로 수(水)가 되며, 신(信)은 정중앙으로 토(土)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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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도 눈을 맞추며 소통을 합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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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도 새끼는 귀여워 하고, 귀 기울여 들을 줄 압니다. ⓒ 임윤수


이러한 사실은 서울 4대문 이름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동대문이라고도 하던 흥인지문(興仁之門), 서대문이라고 하던 돈의문(敦義門), 남대문이라고도 부르던 숭례문(崇禮門)과 북대문인 소지문(炤智門, 숙정문으로 부르고 있음)이 동서남북 사방에 있는 문이며 이 4대문 안에 '신(信)'인 보신각이 자리한 것입니다.

사람으로서 반드시 지켜야 할 다섯 가지 도리, '인의예지신'이 다 소중하지만 그 중에서도 '믿음'이야 말로 사람으로서 반드시 지켜야 할 다섯 가지 도리 중에서도 으뜸이기에 으뜸의 자리, 중앙에 '신(信)'을 상징하는 보신각을 두게 되었을 거라 생각됩니다. 

믿음 없는 인(仁)은 위선이며, 믿음 없는 의(義)는 패거리들이 내세우는 이합집산의 명분일 뿐이고, 믿음이 전제되지 않은 예(禮)는 허례와 가식일 뿐일 겁니다. 뿐만이 아니라 믿음이 없는 지(智)는 권모술수와 계략의 밑바탕이 되는 간교일 뿐이니 신(信)이야말로 인간 도리의 토양이며 골격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듯싶습니다.

인간의 도리가 이러하거늘 위정자들이 갖추어야 할 최후의 덕목이 두말할 나위 없이 믿음이라는 걸 잘 나타내는 공자의 말씀이 있습니다. "치자(정치인)가 갖추어야 할 세 가지 덕목이 무엇이냐"고 공자에게 물으니 공자는 "3족"을 말하였다고 합니다. 즉, 족식(足食)과 족병(足兵) 그리고 족신(足信)을 말한 것입니다. 현대적 용어로 말하면 경제적 풍요와 국력(방위) 그리고 믿음의 정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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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달로 작성된 호랑이해 달력 ⓒ 임윤수


이 중에서 꼭 한 가지를 버려야 한다면 어떤 것을 버려야 하느냐고 물으니 공자는 힘(족병)을 버리라고 하였고, 또 하나를 버려야 한다면 무엇을 버려야 하느냐는 두 번째 질문에는 경제(족식)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결국 정치인이 끝까지 갖추어야 할 최고의 덕목은 믿음(족신)이라고 한 것으로 동서고금을 통해 변하지 않는 진리입니다.  

이쯤이면 보신각에서 울리는 제야의 종소리가 전국 방방곡곡에서 울리는 여타의 종소리보다 왜 의미가 더 있는지를 짐작 할 수 있을 겁니다.

매년 초, 간혹은 커다란 일이 있을 때마다 위정자들이 득실거리고 있는 서울하늘에 대고 뎅뎅 거리며 울리고 있는 33번의 보신각 종소리는 믿음을 강조하는 하늘의 소리며, 정치인이 끝까지 갖추어야 할 꼭 하나의 덕목이 믿음이라는 것을 잊지 말라는 세시의 채찍이며 국민들을 향한 자기 약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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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슬렁거리기만 해도 조심스러워 집니다. ⓒ 임윤수


제야의 종을 33번 울리는 것은 33천, 동서남북 사방에 각 8계층의 하늘이 있고, 그 가운데 이 모두를 지휘하는 선견성(善見成)이라고 하는 하늘이 있는데, 우리나라를 세우신 국조단군이 바로 이 선견성의 성주인 환인천제의 아들이므로 단군의 개국이념인 홍익인간(弘益人間), 광명이세(光明以世)의 이념이 널리 선양되기를 바라는 염원에서 33번을 울리는 것이라고 합니다.

보신각에서의 33번 타종은, 우리민족, 우리국가는 무력이 아닌 홍익인간, 광명이세를 근간으로 인, 의, 예, 지로서 백성을 다스리고 교화 할 것임을 33천, 즉 우주 전체에 믿음으로 맹세한다는 의미이며 이러한 통치이념이 종이 울릴 때 마다 상징적으로 표현된다고 하겠습니다.

호랑이해에 국민들이 드러낼 수 있는 이빨은 믿을 수 있는 자치단체장 선출

인간이 살아가는 도리의 바탕이 되고, 정치인들이 갖추어야 할 세 가지 덕목 중 최후의 보루가 되어야 할 '믿음'이 대통령의 말에서부터 흔들리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고 답답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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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법계사 산신각에 그려진 호랑이 입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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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 봉정암 산신각에 모셔진 호랑이 입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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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산 정암사 산신각에 모셔진 호랑이 입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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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한라산 존자암에 모셔진 호랑이상 입니다 ⓒ 임윤수


경제를 살리겠다고 했지만 이런 사정 저런 이유로 늦어지거나 변경되는 것은 용서할 수 있지만, 어떠한 이유로도 더 이상 불신을 야기시키는 언변이나 행태는 그것이 정치가 되었던 개인적 행실이 되었던 역사적으로도 용서 받을 수 없는 원죄가 될 것입니다.   

새해에도 서울에서는 보신각종이 새해덕담을 하듯 '뎅~뎅~' 거리는 33번의 울림으로 믿음을 강조하겠지만 서울에 가지 않을 필자는 야트막한 산에라도 올라 '요즘 호랑이는 뭐 먹고 사는 겨. 저 망할 놈의 자식들 안 잡아 가고'하고 소리 한 번 지르렵니다.

호랑이해에 국민들이 드러낼 수 있는 호랑이 이빨은 다가오는 6월에 있을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에서의 투표입니다. 죽어서 가죽을 남기는 호랑이는 되지 못할지언정 더 이상 불신의 악몽에서 시달리지 않아도 될 믿을 수 있는 단체장을 선출하는 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뒷구멍에서 욕하고, 마음으로 이빨을 갈고, 곁눈질로 째려보고 있지만 그날까지는 함께 더불어 갈 수밖에 없는 애물단지가 된 현실이기에 애증어린 푸념으로 그놈들, 믿음을 이간질 시키고 마음고생에 부채질을 하고 있는 그놈들을 한입에 덥석 물어가는 호랑이 새해가 되길 간절히 기원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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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윤수
#호랑이해 #경인년 #백호랑이 #봉정암 #보신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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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이 좋아하는 거 다 좋아하는 두 딸 아빠. 살아 가는 날 만큼 살아 갈 날이 줄어든다는 것 정도는 자각하고 있는 사람. '生也一片浮雲起 死也一片浮雲滅 浮雲自體本無實 生死去來亦如是'란 말을 자주 중얼 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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