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보고 출퇴근, 그렇게 딴 미용장인

시흥시 창조미용학원, 시흥시 미용기능장 제1호 서은희씨

등록 2009.12.30 12:17수정 2009.12.30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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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스케치를 하고 있는 서 원장 .. ⓒ 정현순


2009년을 며칠 남겨놓지 않은 12월 하순경, 맹추위가 전국을 꽁꽁 얼려놓고 있다. 세찬 바람을 맞으면서 미리 약속을 한 창조미용학원 원장 서은희씨를 만났다. 서 원장은 시흥시에서는 단 1명 뿐인 미용기능장이다. 생소했다. 미용에도 기능장이 있다는 것이. 그리고 궁금했다. 어떻게 기능장 자리까지 올랐을까? 

약속시간보다 조금 일찍 문을 열고 학원 안으로 들어섰다. 구부리고 무엇인가 열심히 하느라 그는 누가 들어와도 모른다. 가까이 가보니 머리스케치를 하고 있었다.


"이런 것도 할 줄 알아야 하나 봐요?"
"아니요 꼭 할 줄 알아야 하는 법은 없어요. 하지만 할 줄 알면 미용에 많은 도움을 주겠지요. 그리고 제가 요즘 이 강의를 하고 있어서 틈만 나면 연습하곤 해요."

그는 봉사활동도 많이 한다고 소문이 자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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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용강의실, 강의가 끝난 시간이라 한가하다 .. ⓒ 정현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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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를 만져주고 있는 서 원장 .. ⓒ 정현순


봉사활동은 나의 에너지, 행복의 원천

우선 그에게 "많이 바쁘신 것 같은데 언제부터  봉사활동을 시작하게 되었어요?"학고 물었다.

"8년 전, 군부대를 시작으로 현재는 정신보건센터, 새터민, 일자리센터, 아동보호센터 등에서 봉사를 하고 있고 앞으로도 우리 손이 필요한 곳이라면 더 나가야지요. 작은 어려움 따위는 문제가 되지 않아요. 그런 곳이 오히려 더 애착이 가고, 그분들이 만족해하는 모습을 보면 오히려 제가 더 기쁘고 행복해져요. 앞으로도 계속 할 것이고 은퇴 후에도 그분들과 벗 삼아 더불어 살아갈 생각입니다." 


봉사는 그에게 에너지와 행복감을 준다고 했다. 자신이 가진 것을 남에게 주면서 기쁨을 충분히 느끼는 듯했다. 매서운 날씨에 얼어붙었던 마음이 그에게서 나오는 따뜻한 훈기로 인해 사르르 녹는 듯했다. 봉사활동에 학원생들 수업, 주부, 두 아이의 엄마, 아내 그렇게 바쁜 그가 미용기능장이 된 과정이 궁금증을 더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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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은희씨가 받은 감사장, 임명장 등 .. ⓒ 정현순


작가가 꿈이었던 문학소녀, 내 삶의 주인이 되고싶어 미용을 시작하다

"제가 미용을 배우기 전에는 책읽기를 좋아해서 작가나 문학평론가가 되고 싶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대학을 포기하고 22살에 미용기술을 배우게 되었어요."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다고 모두가 그러지는 않았을 것이다.

"책 속 기구한 여자들의 일생을 보면 대부분 자기 삶을 자신이 마음먹은 대로 못하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그때 내 인생은 내가 책임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당시 등공예 박공예 등 손으로 만드는 것을 좋아했는데 그것은 경제성이 없잖아요. 그래서 기술을 배워 빨리 독립을 하고 싶었어요. 1988년 미용자격증을 따고 취업을 했어요."

그의 집은 경기도 고양시 삼송동. 직장은 영등포, 왕복 4시간이 걸리는 먼 거리, 하루 12시간 일하고 한 달에 두 번 휴일, 월급은 6만원. 새벽 6시30분에 나와 직장에서 일하고 집에 돌아가면 밤 11시. 그런 생활을 3년을 했다. 그야말로 별보고 나오고 별보고 들어가는, 집에서는 잠만 자고 나오는 그런 생활이었다. 하지만 그는 지각 한 번, 결근 한 번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대로 쓰러져서 죽어도 좋다'라는 각오로 미용기술을 배운다. 그것은 그에게 꿈과 희망이 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오죽하면 주인이 보약을 다 지어주었을까.

결혼 3년 만에 다시 시작하게 된 미용, 또 다시 그만두게 된 미용

그렇게 꿈 많던 여인에게 어느 날 나타난 한 남성이 끈질기게 구혼한다. 그는 그 남성에게 나와 결혼하고 싶으면 1년 안에 대기업에 취직하라 했고 그 남성은 진짜 1년 후에 대기업에 취업했다. 서 원장은 약속대로 결혼한다. 고등학교 졸업장이 전부인 남편을 위해 그는 결혼 후 3년 만에 다시 미용 일을 시작했다. 4살 된 아이는 걷게 하고 백일 된 아기는 등에 업고, 집은 사글세로 돌렸다. 나머지 돈으로 시흥시에 자리를 잡고 미용실을 개업한다.

남편은 주경야독에 돌입하였고, 서 원장은 가정을 책임지는 가장으로 나섰다. 두 부부의 그런 노력 덕에 남편은 무사히 대학을 졸업하고 안정된 직장으로 자리를 옮긴다. 서 원장의 머리 만지는 솜씨가 좋다는 소문이 나면서 미용실은 문전성시를 이룬다. 보통 2시간은 기다려야 차례가 올 정도로. 주말이면 더 바빠진 그. 남편은 그런 서 원장 대신 집안살림이며 육아, 집안 대소사 등 모든 일을 도맡아야 했다. 또 아내와도 시간을 가질 수가 없게 되자, 남편은 서 원장에게 미용실을 그만두기를 바랐고, 서 원장은 많은 갈등 끝에 미용실 문을 닫는다.

그렇게 바쁘고 돈을 잘 벌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집에 들어앉으니 우울증이 생기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일 것이다. 좋아하는 독서도 하루 이틀. 그는 미용학원강사로 방향을 바꾸어 다시 미용일을 시작한다. 자기 꿈이 생각났고, 이루고 싶어졌고, 새삼 성공이란 것도 하고 싶은 욕구가 솟구친 것이다. 잠시 쉬면서 그런 것들이 얼마나 소중하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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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은 희씨의 헤어스케치 .. ⓒ 정현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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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원자의 네일아트 솜씨 .. ⓒ 정현순


학원 강사 경험을 바탕으로 2003년에 지금의 창조미용학원 원장이 된다. 원장이 된 후로도 그의 새로운 도전을 멈추지 않는다. 학원을 운영하려면 공부가 필요하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밑천이 든든해야 하니 말이다. 그가 상당한 노력파라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는 2006년 경락마사지 자격증 취득을 시작으로 네일기술 2급자격증, 헤어스케치 교사자격증, 메이크업3급, 드디어 2008년 미용기능장까지. 미용기능장은 해마다 4천여 명이 응시하지만 40~50명 정도가 합격하는 고난도 과정이라고 한다. 전국에 500여명이고 시흥시에서는 서 원장 단 한명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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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용기능장 보유학원 .. ⓒ 정현순


두 번째 기능장 시험에서 당당하게 합격

"첫 번째 기능장 시험에서 떨어진 후 두 번째 시험은 내 사생활을 전부 반납하다시피 하면서 준비했어요. 봄을 좋아하고 가을을 좋아해도 느낄 여유가 없었어요. 오는 전화도 겁났어요. 꼭 받아야 할 전화만 받았고 그 외는 받지 않았어요. 밥 먹는 시간 잠자는 시간도 아까웠어요. 그런 것을 일일이 챙기다 보면 맥이 끊겨 공부에 지장이 있으니까요. 다행히도 2번째 미용기능장시험에 합격했어요. 어찌나 좋은지 두 달 동안은 구름 위를 걸어 다니는 것 같았어요. 밥을 안 먹어도 배고픈지 모르고 잠을 자다가도 혼자 웃음이 나올 정도였으니까요."

미용기능장시험은 일단 1차 시험 이론에 합격해야 2차 시험 자격을 얻는다. 2차 시험은 오전 10시에 시작해서 오후 5시까지 실기시험을 진행한다. 제한 시간이 35분인 실기시험은 그림과 지문(문제)만 보고 해독한 후, 모든 조건에 만족시킬 시술을 해야 한다. 그 중에서도 가장 잘한 사람만이 합격할 수 있는 고난이도 시험이라고 한다. 실기시험은 커트, 파마, 업스타일 등이고 평소에는 듣도 보도 못한 기술을 요한다.

그렇게 열정이 대단한 사람인데 첫 번 시험에서 떨어진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는 아마도 그 전날 부부싸움 탓이 컸을 거라며 환하게 웃는다. 부부싸움을 해서 시험을 망친 것 같다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니 평범한 주부란 사실도 살짝 엿보이는 듯했다. 미용기능장시험을 준비하면서 머리는 반백이 되었다며 속내를 드러내기도 했다. 그렇게 어려운 미용기능장시험에 도전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왕 미용업에 종사하니 한번쯤은 도전해볼만 하지 않느냐고 단호하게 말을 하기도 했다.

제2의 고향인 시흥에 미용대학을 세우고 싶어요

현재 그는 월간 <뷰티라이프> 스케치강사로 활동 중이기도 하다. 또 지역장학회이사, 초록세상지역어린이센터 운영위원으로 후원도 하고, 창조미용봉사단 단장이기도 하다. 지역을 위해서 많은 일을 하는 그에게 앞으로의 포부에 대해서도 물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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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원장의 작품들 .. ⓒ 정현순


"지금 고등학교 1학년 딸아이한테 제가 하는 미용을 익히게 해서 제 뒤를 잇게 하는 거예요. 작가가 꿈인 딸아이한테 제가 직접 제안을 했어요. 그 길은 너무 힘들고 어려운 길이잖아요. 딸아이가 일주일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하더니 그런다고 하더군요. 작년(중학교 3학년)에 미용자격증을 땄고 상도 탔어요. 상을 탄 것을 보면 소질이 있는 것 같기도 해요. 요즘도 시간이 날 적마다 이곳에 와서 연습을 해요. 본인도 아주 재미있어 해요. 그리고 시흥시에 미용직업학교, 미용고등학교를 세우는 것이 꿈입니다. 또 허락한다면 제가 60살~70살이 될 무렵 시흥시에 미용대학교도 세우고 싶어요."

앞으로도 그는 시흥시에서 지역 활동도 꾸준히 하고 싶고, 아이들도 잘 자라주었고, 꿈이 이루어진 곳이라 무척 애착이 간다고 했다. 미용에 종사하는 사람들 중에는 돈을 잘 버는 사람들이 꽤 많다고 한다. 그럼에도 그동안 인식되었던 고정관념이 바뀌지 않은 것이 안타까운 일이라고 했다. 하여 우리들 스스로가 달라져서 사회적 인식을 바꾸어놓아야 할 책임이 있다고 전한다.

요즘 불경기로 힘든 가정이 많아 주부들도 사회활동을 하고 싶어 하는데 꿈과 희망을 가지고 무엇이든지 시작하라고 용기를 주는 말도 잊지 않았다. 허락이 된다면 대학원에 진학하고 싶고, 대학 강단에도 서고 싶다는 그의 꿈이 꼭 이루어지기를 기대해본다. 꿈이 많아서인지 활력이 넘쳐 보이는 그가 무척 행복해보였다. 그는 봉사약속이 있는 날이라며 주섬주섬 준비해서 학원을 나설 차비를 하기 시작했다.
#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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