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의 집이 예술 표현의 장소인 까닭

[뉴욕 예술의 뒷담화 4편] 뉴욕의 그래피티(Graffiti)

등록 2009.12.30 17:38수정 2009.12.30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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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 3박 4일간 하루 300불짜리 호텔에 머물면서 엠파이어 빌딩 옥상에 올라가 쌍안경으로 63빌딩만한 건물이 늘어선 맨해튼의 빌딩숲을 보고 뿌듯한 기분으로 돌아가 친구들에게 자랑하는 것과 여기서 실제로 생활하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집 이야기를 잠깐 하자면 여긴 전세나 보증금 딸린 월세의 개념이 없습니다. 집값이 비싸니 당연히 월세도 비쌉니다. 디파짓(Deposit)이란 이름으로 한달 치 월세를 보증금처럼 내고 나중에 나갈 때 돌려받습니다.


텍사스에 여행 가서 집구경을 다닌 적이 있었습니다. 집을 팔려고 내놓은 오픈하우스는 들어가서 구경할 수 있습니다. 축구장만한 정원이 딸린 2층짜리 대저택에 개인 영화관과 수영장까지 있었는데 그 집이 30만불(3억)이었습니다. 50만불짜리 집은 미니 골프장까지 있더군요. 뉴욕에서 30만불짜리 집은 방 몇 개 있는 아파트나 겨우 얻을 수 있습니다.

뉴욕의 보통 서민들은 대개 한 집에 여럿이 룸메이트를 이뤄 살고 있는데 싼 방이 한 달 50만원 정도 합니다. 한국의 원룸처럼 방안에 화장실과 부엌까지 있는 집을 스튜디오라고 부르는데 싼 스튜디오가 한달 120만원 정도 냅니다. 또한 이곳에선 룸메이트에 남녀의 구분이 없습니다. 대학 기숙사도 남녀구분이 없습니다.

저는 현재 브룩클린에서 방을 렌트해서 살고 있고 한 달에 세금까지 70만원 정도 냅니다.칼로 두부를 자르듯 백인과 흑인 지역이 뚜렷이 나뉘는데 브룩클린은 상대적으로 흑인 지역이 많아서 방 값이 쌉니다.

제가 사는 집은 40년 된 집이고 이 정도면 신축건물 축에 듭니다. 어찌나 더럽던지 처음에 들어와서 2박 3일간 청소를 했습니다. 백인 주인이 걸레질하는 모습을 처음 본다며 한참을 구경하더군요. 이 집에서 1년 동안 제가 잡은 쥐만 5마리입니다. 바퀴벌레는 풍뎅이만해서 쌀 떨어지면 그놈 잡아먹어도 연명할 거 같습니다.

방음이 안 되니 윗층에 사시는 할머니 코 후비는 소리까지 들립니다. 뉴욕 온 지 얼마 안 된 한국 여학생이 새벽에 침대 밑으로 쥐가 지나는 걸 보고 무서워서 3일 동안 침대 밑으로 못 내려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한참을 웃었습니다.


미국인과 함께 사는 것에 환상을 가질 필요는 없습니다. 함께 살아보니, 어찌보면 우리 기준에선 이 친구들은 참 개념없고 무책임해 보입니다. 미국 영화에 보면 방세 안 내고 버티는 세입자들의 모습이 간혹 나오는데 실제로 그런 '배째라족'이 많습니다. 법적으로 주인이 쫒아낼 수가 없습니다.

어느 날엔가 전기세가 갑자기 이유없이 30만원이 나와 전기회사(개인회사, 지역마다 전기회사들이 다름)에 전화해서 따졌더니 결국 계량기를 확인 안 하고 고지서를 보낸 거 였습니다. 근데 고지된 건 어쩔 수 없으니 돈을 다 내랍니다. 다시 한참을 따져서 겨우 반을 깎았습니다. 상상할 수 없이 거대한 하드웨어에 생각보다 빈약한 소프트웨어가 뉴욕입니다.

집이 주거의 개념이라면 뉴욕의 집은 거기에 한 가지가 더 있습니다. 예술표현의 장소이기도 합니다. 그 정도로 벽화가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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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 벽화 ⓒ riotsoun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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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 벽화 ⓒ riotsound.com


유명한 그래피티(graffiti) 화가들과 그룹들은 GANO, NOAH, LASE, MERES, POIS, ELIK, YMI CREW, CERN, SEC 3, SMITH, ZEPHYR 등등 수없이 많습니다. 때로는 벽화의 광고 상품성을 보고 기업체나 갤러리에서 홍보의 수단으로 이 양반들에게 그래피티를 의뢰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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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 벽화 ⓒ riotsoun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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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 벽화 ⓒ riotsoun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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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 벽화 ⓒ riotsound.com


붓에 물감을 묻혀 벽에 칠하게 되면 물감이 굳으면서 막이 형성이 되는데 벽에 습기가 차면 막이 떨어져 그림이 손상이 됩니다. 그래서 제대로 벽화를 제작하기 위해선 벽의 때를 완전히 제거하고 물감으로 그린 후 마르면 투명물감으로 코팅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뿌리는 재료로 뿌리게 되면 벽의 작은 틈새에 물감이 들어가 관리없이도 오랫동안 보존이 가능합니다. 또한 비싼 물감 살 필요없이 스프레이 서너 개면 근사한 벽화를 만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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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 벽화 ⓒ riotsound.com


뉴욕의 벽화들은 제도권에서 소외된 가난한 흑인들의 열망과 절망감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발달이 되다보니 아무래도 흑인들이 많이 사는 브룩클린과 맨해튼의 할렘가에 많습니다. 예전엔 이러한 그래피티 작업이 정말 심했다고 합니다. 공간만 있으면 어디든지 뿌려댔다 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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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 벽화 ⓒ riotsoun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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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 벽화 ⓒ riotsound.com


그러나 호시절은 다 간 듯합니다. 몇 달 전 브룩클린 거리에서 벽화작업을 한참 준비하고 있는 팀을 본 적이 있습니다. 호기심에 건너편에서 구경을 하고 있던 차, 갑자기 경찰들이 들이닥쳐 거칠게 그들을 쫒아내는 걸 봤습니다. 누군가 신고한 모양인데 그걸 보니 이제 뉴욕의 명물, 벽화그리기도 예전같지 않다는 걸 알았습니다. 실제로 뉴욕에서 벽화들이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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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 벽화 ⓒ riotsoun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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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 벽화 ⓒ riotsoun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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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 벽화 ⓒ riotsoun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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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 벽화 ⓒ riotsoun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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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 벽화 ⓒ riotsound.com


개인적인 소견으론 볼 만한 벽화도 많지만 대부분은 보시는 바와 같이 비전문가들에 의해 꼬부라진 글씨들로 채워진 의미없는 그림들이 대부분 입니다. 어떤 곳은 동네 전체가 옥상과 벽에 저러한 글씨그림으로 온통 채워진 동네도 있습니다. 안 하니만 못한 공해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벽화를 오늘 연재의 주제로 정한 이유는 벽화의 힘을 알기 때문입니다.황량하기 이를데 없는 벽덩어리에 약간의 예술적 감각을 더한다면 대한민국의 도시는 좀 더 따끈따끈한 도시가 될 거라 확신합니다.

뉴욕같은 중구난방 의미없는 꼬부랑 글씨 그림을 그리자는 게 아닙니다. 그림이 아니어도 얼마든지 약간의 예술적인 장치로 아름답고 멋진 효과를 낼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도시들이여, 벽그림을 만듭시다~~!!

덧붙이는 글 | gagagallery.com에 동시연재합니다.


덧붙이는 글 gagagallery.com에 동시연재합니다.
#뉴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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