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 들렀다가 바로 예약을 해버렸다.
오창균
어느 날, 홀로 술을 마시다 그 자리에 앉은 채로 잠이 들었다가 아들이 흔들어 깨우는 소리를 정신이 혼미한 상태에서 들었다.
'아빠, 들어가서 주무세요.'
다음날, 아내의 말을 들어보니 술에 취한 상태에서 더 마시겠다고 술병을 가져오자 아들이 훈계를 했으며, 묵묵히 앉아서 듣고 있던 내가 술병을 치웠다는 것이다.
아내는 자신의 말은 듣지도 않으면서 아들 말은 잘 듣는다며 인제 그만 술을 멀리하라고 했다. 순간,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을 만큼 부끄러웠다.
다시는 집에서 술을 마시지 않겠다고 아들에게 다짐했다. 그 후로, 집에서 술을 안 먹는 것은 아니지만 마시는 횟수와 양이 줄었다. 막걸리 한 병이 기준이다. 딸은 한 병 이상 마시면 죽는다는 시늉으로 손을 목에 갖다 대는 시늉을 한다.
'우리한테 불량 식품 먹지 말라고 하면서 왜 아빠는 술을 먹는 거야. 술도 불량 식품이지.''불량식품이기는 한데 적당히 먹으면 좋은 거야. 막걸리는 쌀로 만든 거니까 밥이야 밥.'참으로 구차한 변명이지만, 이제는 술에 대해서 정리를 할 때가 왔다는 생각이 들면서 습관처럼 마시던 술을 의식적으로 줄이기 시작했다. 신종플루 광풍이 한창이던 때, 두 번씩이나 검사를 받았던 아이들의 진료기록을 보험사에 제출할 일이 생겨서 검사를 받은 대학병원을 찾았다.
서류를 받으러 가는 중에 '간센터'라는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이번에는 확실하게'라는 다짐하며 바로 예약을 했다. 간센터 진료실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을 찬찬히 훑어보니 한눈에 봐도 술 때문에 온 것을 알 수 있을 만큼 얼굴에 그 징후가 보인다. 의사는 배 여기저기를 눌러보는 진료를 한 후에 겉으로 드러나는 특별한 징후는 없지만 간 초음파와 혈액검사를 해보자고 했다. 보름 후에 검사를 하기로 예약하고 병원을 나왔다.
16살에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술과 담배를 시작했었다. 담배는 다행히도 일찍 끊었지만, 술은 지금까지 25년을 함께 했다. 친구들과 우스개 소리로 지금까지 마신 술값이면 아파트를 몇 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농담을 던진다. 기쁘거나 슬플 때, 술보다 더 좋은 친구는 없다는 생각으로 항상 술을 받아들였지만 그 정도가 지나치면 망조의 길로 나 자신도 모르게 유인되고 있는 것을 느낀다.
쉽게 뿌리칠 수 없겠지만 지금까지 살아온 삶과 앞으로의 삶을 그리고, 내 가족의 행복을 술 때문에 무너뜨리고 싶지는 않다. 이틀을 못 넘기고 술을 마시던 오래된 습관이 열흘 정도 술을 멀리하고 있다. 물론 반주 삼아 입술을 적시는 정도는 한두 번 있었다. 그동안 내가 술에 얼마나 의존하고 살아왔는지가 느껴질 만큼 갑자기 술을 끊게 되니 육체와 정신적으로 그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그러나 내 의지가 더 강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술을 멀리 한 후로는 독서에 푹 빠졌다. 아내는 학교에 다니느냐며 즐거운 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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