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보다 더 좋은 친구는 없다?

등록 2009.12.30 17:58수정 2009.12.30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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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이 그린 술 마시는 아빠의 모습. ⓒ 오창균


2년 전, 불혹을 앞둔 나이에 종합건강검진을 받았다. 위내시경을 포함해서 몸 구석구석을 검사 한 결과, 고지혈과 만성위염, 특히 지방간이 위험수위라고 했다. 술을 끊어야 한다면서 의사는 다시 한번 초음파로 나의 간을 보여주었다. 흑백 영상이라서 그 위험 수위가 가늠되지는 않았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검사를 받은 후로 술을 한 번에 끊기는 어려우니 조금씩 줄이면서 끊어보겠다고 다짐을 했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가깝게 지내는 사람들마저 주당들이 많다 보니 내 의지는 술에 물 탄듯 희석되었고, 예전처럼 뽕을 뽑을 때까지 마시는 음주가 될 때가 많았다. 하지만, 이것보다 더 큰 문제는 집에서 나 홀로 마시는 술을 더 즐긴다는 것이다.

밖에서 술자리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올 때에도 반드시 맥주 한두 병으로 입가심을 한다. 저녁이면 밥 대신 술을 한두 병 하는 습관은 결혼하고 나서다. 맞벌이를 하다 보니 저녁 시간에 밥을 짓기보다는 배달 음식이나 불판에 삼겹살을 굽는 일이 많아지고 술은 기본으로 곁들여졌다.

집 앞 정육점에서는 일주일에 두 번씩 고기 들어오는데, 그날 밖에서 굽는 시식용 고기 굽는 냄새의 유혹을 떨치기란 어려웠다. 삼겹살에 소주는 건강을 해치는 최악의 궁합. 그렇게 몇 년간을 고기를 탐하고 술을 마시다 보니 체중이 10kg 정도 늘어난 90kg를 넘나들었다. 이때의 건강상태는 나 자신도 느낄 만큼 안 좋았다. 약식으로 받는 건강검진에서 과체중과 고지혈, 지방간에 주의하라는 결과가 나왔다.

굳은 결심을 하고, 육식을 줄이기 시작하면서 10여 년 만에 등산을 시작했다. 관악산을 중턱쯤 올랐을 떄, 현기증과 호흡곤란에 주저앉으며 하산을 해야만 했다. 여러 차례 지리산을 종주했던 내가 아니었다. 이후로 몇 년간 다시 산을 오르며 체중은 82kg(키 180cm)대를 유지했다. 육식을 즐겼던 입맛은 채식을 곁들이는 식단으로 바뀌었지만 홀로 술을 즐기는 습관은 여전했다. 산에 오를 때에도 막걸리가 밥이었고, 내려와서도 막걸리로 목을 축였다.

매주 산을 오를 수 있었 던 것은 장모님과 함께 살면서부터 아이들을 봐주는 것이 계기가 되었다. 2년 전부터, 장모님이 집으로 돌아가고, 아이들을 내가 돌봐야 해서 주말 산행은 중단되었다. 운동부족 탓인지, 체중은 조금씩 늘더니 최근에는 87kg까지 불어났다. 그러나 여전히 집에서 나 홀로 술을 즐긴다는 것이다. 한두 병 마시던 술은 어느 때부터는 서너 병씩 늘어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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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 들렀다가 바로 예약을 해버렸다. ⓒ 오창균

어느 날, 홀로 술을 마시다 그 자리에 앉은 채로 잠이 들었다가 아들이 흔들어 깨우는 소리를  정신이 혼미한 상태에서 들었다.

'아빠, 들어가서 주무세요.'

다음날, 아내의 말을 들어보니 술에 취한 상태에서 더 마시겠다고 술병을 가져오자 아들이 훈계를 했으며, 묵묵히 앉아서 듣고 있던 내가 술병을 치웠다는 것이다.

아내는 자신의 말은 듣지도 않으면서 아들 말은 잘 듣는다며 인제 그만 술을 멀리하라고 했다. 순간,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을 만큼 부끄러웠다.

다시는 집에서 술을 마시지 않겠다고 아들에게 다짐했다. 그 후로, 집에서 술을 안 먹는 것은 아니지만 마시는 횟수와 양이 줄었다. 막걸리 한 병이 기준이다. 딸은 한 병 이상 마시면 죽는다는 시늉으로 손을 목에 갖다 대는 시늉을 한다.

'우리한테 불량 식품 먹지 말라고 하면서 왜 아빠는 술을 먹는 거야. 술도 불량 식품이지.'
'불량식품이기는 한데 적당히 먹으면 좋은 거야. 막걸리는 쌀로 만든 거니까 밥이야 밥.'

참으로 구차한 변명이지만, 이제는 술에 대해서 정리를 할 때가 왔다는 생각이 들면서 습관처럼 마시던 술을 의식적으로 줄이기 시작했다. 신종플루 광풍이 한창이던 때, 두 번씩이나 검사를 받았던 아이들의 진료기록을 보험사에 제출할 일이 생겨서 검사를 받은 대학병원을 찾았다.

서류를 받으러 가는 중에 '간센터'라는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이번에는 확실하게'라는 다짐하며 바로 예약을 했다. 간센터 진료실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을 찬찬히 훑어보니 한눈에 봐도 술 때문에 온 것을 알 수 있을 만큼 얼굴에 그 징후가 보인다. 의사는 배 여기저기를 눌러보는 진료를 한 후에 겉으로 드러나는 특별한 징후는 없지만 간 초음파와 혈액검사를 해보자고 했다. 보름 후에 검사를 하기로 예약하고 병원을 나왔다.

16살에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술과 담배를 시작했었다. 담배는 다행히도 일찍 끊었지만, 술은 지금까지 25년을 함께 했다. 친구들과 우스개 소리로 지금까지 마신 술값이면 아파트를 몇 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농담을 던진다. 기쁘거나 슬플 때, 술보다 더 좋은 친구는 없다는 생각으로 항상 술을 받아들였지만 그 정도가 지나치면 망조의 길로 나 자신도 모르게 유인되고 있는 것을 느낀다.

쉽게 뿌리칠 수 없겠지만 지금까지 살아온 삶과 앞으로의 삶을 그리고, 내 가족의 행복을 술 때문에 무너뜨리고 싶지는 않다. 이틀을 못 넘기고 술을 마시던 오래된 습관이 열흘 정도 술을 멀리하고 있다. 물론 반주 삼아 입술을 적시는 정도는 한두 번 있었다. 그동안 내가 술에 얼마나 의존하고 살아왔는지가 느껴질 만큼 갑자기 술을 끊게 되니 육체와 정신적으로 그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그러나 내 의지가 더 강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술을 멀리 한 후로는 독서에 푹 빠졌다. 아내는 학교에 다니느냐며 즐거운 투정이다.
# 술 #지방간 #간 #알콜 #고지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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