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인표 씨 '시티즌 오블리주'가 있습니다

사회적 책임은 귀족 아닌 모든 시민의 몫

등록 2009.12.30 19:26수정 2009.12.30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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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탤런트 차인표씨가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며 "노블레스만이 오블리주를 실천할 수 있느냐?"고 말해 화제입니다. <관련기사> 그는 경주 최 부잣집을 소재로 노블레스 오블리주에 대해 이야기하는 KBS 드라마 <명가>의 주인공을 맡았는데, 이 드라마 제작 발표회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차인표씨는 부인 신애라씨와 함께 기부와 선행, 봉사 활동에 적극 나서며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연예인'으로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과 존경을 받고 있습니다. 그런 그가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말을 비판한 것입니다.

 

아마 어떤 분은 '고귀한 신분을 가진 사람의 사회적 책임을 뜻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좋은 의미인데 왜 그랬을까' 하며 의아해할 것입니다. 반면 그의 말에 공감하는 분들도 많을 것입니다. 차인표씨와 그에게 공감하는 분들의 생각은 이런 것입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말은 사회를 가진 사람과 못 가진 사람, 힘센 사람과 약한 사람으로 나눕니다. 그리고 많이 가진 힘센 사람들에게만 사회적 책임을 강요하고, 이를 따르지 않으면 비난하는 공격적인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또 기부와 선행, 봉사가 평범한 사람들은 할 수 없는 특정 계층의 전유물인 것처럼 오해를 불러일으킵니다.

 

물론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말에는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지도층에 대한 존경심도 들어 있습니다. 여기에 담긴 헌신과 나눔의 정신은 더욱 확대돼야 할 소중한 가치입니다. 하지만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부정적인 뜻도 함께 내포돼 있습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가진 두 가지 얼굴입니다.

 

사실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용어는, 태어날 때부터 신분이 나뉘는 계급 사회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오늘날에는 맞지 않는 면이 많습니다. 이를 행하는 사람이나 요구하는 사람들 사이를 불편하게 만들고, 또 평범한 사람들의 나눔과 선행을 담기에는 너무 좁습니다.

 

언제부턴가 신문과 방송에 평범한 시민들이 어려운 이웃들을 돌보는 뉴스가 자주 전해집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유명인이나 사회 지도층 인사들뿐만 아니라 평범한 시민들이 기부와 선행, 봉사의 주인공이 된 것입니다.

 

전주시 노송동 주민센터에는 10년 째 연말이면 남몰래 수천 만 원씩 놓고 가는 '얼굴 없는 천사'가 있습니다. 점심시간에 폐지를 모아 가난한 어린이들을 후원하는 직장인과 자신들이 좋아하는 연예인이 사회로부터 받은 사랑을 돌려주겠다며 나눔을 실천하는 팬클럽 회원들도 있습니다. 자신의 전 재산인 단칸방 보증금을 '행복한 유산'으로 내놓은 할머니와 기부하기 위해 펀드를 만든 젊은 투자자들의 이야기는 큰 감동을 줍니다.

 

이처럼 기부와 선행, 봉사는 이미 모든 시민들의 몫이 됐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사회 구석구석에서 소외된 이웃들에게 온정을 베풀며 인류애를 실천하고 있습니다.

 

이미 현대 사회는 보통 사람들이 나눔의 주인공인 시대가 됐고, 소외된 이웃과 어려움에 처한 인류를 돕는 것은 모든 시민의 사회적 책임이 됐습니다. 그런데 이런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마땅한 말이 없습니다.

 

평범한 우리 이웃들의 나눔을 노블레스 오블리주라고 부르는 것은 어딘가 어색합니다. 당사자들도 "당신의 선행은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것입니다"라는 말을 들으면 손사래를 칠 것입니다. "나 같은 사람이 무슨 노블레스냐"는 것입니다. 차인표씨도 이런 생각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비판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시티즌 오블리주(Citizen Oblige)'라는 새로운 개념이 나왔습니다. 이 말은 '귀족(노블레스)'의 자리에 '시민(시티즌)'을 넣어 새로 만든 것입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에 담긴 선한 정신을 오늘날에 맞게 계승하고, 사회적 책임을 실천할 주체를 시민주권시대에 맞게 모든 시민으로 확대한 것입니다.

 

시티즌 오블리주는 사회를 가진 사람과 못 가진 사람으로 나누지 않습니다. 또 공동체를 위한 사회적 책임을 지도층뿐만 아니라 모든 시민이 나눠 갖자는 것입니다. 노블레스만이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게 아니라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시민 모두가 고귀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차인표씨는 "대체 얼마 이상의 돈을 가져야 노블레스인가? 물질이 없는 사람들도 마음으로 나눌 수 있다. 그런 마음은 한 단어로 표현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차인표씨 시티즌 오블리주가 있습니다."

 

아마 그가 이글을 읽는다면 앞으로 "물질이 없는 사람들도 마음을 나눌 수 있고, 그런 마음을 한 단어로 표현하면 시티즌 오블리주라고 할 수 있다"고 말하게 될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 양순필(사회적 기업 '세상을 살리는 컴퓨터' 설립 발기인)

2009.12.30 19:26 ⓒ 2009 OhmyNews
덧붙이는 글 양순필(사회적 기업 '세상을 살리는 컴퓨터' 설립 발기인)
#차인표 #노블레스 오블리주 #시티즌 오블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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