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8위' 금호 워크아웃 신청, '승자의 저주' 현실화

[분석] 날개꺾인 금호 어디로 가나

등록 2009.12.30 19:24수정 2009.12.30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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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가 워크아웃을 신청함에 따라 금호아시아나 그룹 전체에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사진은 서울 신문로 금호아시아나 그룹 본사. ⓒ 선대식


결국 날개가 꺾였다. 재계 순위 8위인 금호아시아나그룹이 30일 그룹의 총체적 유동성 위기를 견디지 못하고, 주력 계열사들이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에 들어가게 됐다.

지난 2006년 대우건설 인수를 시작으로 대한통운 등 대형 인수합병을 통해 그룹 몸집을 불리면서 승승장구하던 금호는 박씨 오너일가의 형제간 경영권분쟁까지 불러오면서, '승자의 저주'에 빠지게 됐다. '승자의 저주'는 기업이 높은 값으로 다른 기업을 인수합병했다가, 차입금 반환에 대한 부담으로 결국 부실의 길로 들어서는 것을 말한다.

또 금호그룹의 주력 계열사인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가 워크아웃에 들어가면서, 금융채권단 중심의 사업조정 등 강력한 구조조정이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그룹의 지주회사격인 금호석유화학과 아시아나항공의 경우에는 경영권이 보장되면서, 자율적인 구조조정이 추진된다. 또 박삼구 금호그룹 명예회장 등 오너일가는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보유주식을 내놓는 등 부실경영에 대해 일부 책임을 지게 된다.

하지만 일부에선 오너 일가가 사재를 출연한다고 하지만, 경영권을 유지하는 등 경영실패로 인한 그룹의 총체적인 위기에 대한 책임이 미흡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또 그룹의 지주회사 등에 대해 자율구조조정을 추진하는 것 역시 정부와 채권단에서 사실상 금호그룹에 특혜를 준 것이며, 이는 금호의 부실이 채권은행과 국민의 부담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승자의 저주' 현실화된 금호...직원들 "경영실패에 사과 한마디라도 해야"

30일 오후 서울 신문로 금호아시아나그룹 본사 주변. 이미 전날인 29일 금호그룹의 주요 계열사들이 워크아웃에 들어가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온터라, 회사 직원들 표정은 결코 밝지 않았다.

금호그룹 금융계열사 직원이라고 밝힌 김아무개씨는 "올해 내내 대우건설 매각을 비롯해 회사 전체 분위기가 뒤숭숭하게 지내왔다"면서 "결국엔 이렇게(워크아웃으로) 가게 될 것을 짐작했지만, 착잡할 뿐"이라고 토로하기도 했다.


또 다른 직원인 이아무개씨(과장)는 "올해 다른 기업들도 마찬가지였지만 임금동결 등 힘들게 버텨왔지만, 내년에 본격적으로 구조조정이 시작될 것 같다"면서 "그동안 열심히 일해 온 직원들만 다시 희생양이 될수도 있어서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이름을 밝히길 꺼린 40대 직원은 "경영진의 무리한 기업인수합병으로 회사가 이렇게 됐는데, 그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라며 "아무리 금융위기라고 했다고 하지만 형제들끼리 경영권 다툼을 벌이고, 이렇게까지 온 것에 대해 최소한 직원들에게 정중한 사과한마디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대부분의 금호 직원들은 이날 오후 산업은행에서 발표된 그룹 워크아웃과 함께 향후 이어질 강도높은 구조조정의 방향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이미 일부 계열사의 간부급 직원들은 정리해고에 앞서 명예퇴직 여부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30일 오후 워크아웃을 신청한 금호산업의 이사회가 열리는 서울 신문로 금호아시아나 그룹 본사에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 선대식


금호 워크아웃은 왜?...

금호가 결국 워크아웃의 길로 접어들게 된 이유는 무리한 기업인수합병에 따른 유동성 위기를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미 시장에 재매각을 위해 내놓은 대우건설이 위기의 씨앗이 됐다.

지난 2006년 금호가 대우건설을 인수하면서 들어간 돈만 무려 6조4255억원. 대가로 자산관리공사로부터 지분 72.1%를 넘겨받았다. 당시 국내 1위 건설사에 대한 치열한 인수경쟁으로 매각 가격은 치솟았고, '실탄'이 넉넉치 않았던 금호는 이 돈을 마련하느라 국내외 금융기관에 손을 벌렸다. 대우건설 주식 39.6%를 담보로 내놓고, 이들에게 3조5000억원을 빌렸다. 인수자금의 절반이 '빚'이었던 셈이다.

문제는 이들에게 돈을 빌리면서 올해 말까지 대우건설 주가가 일정 가격(3만1500원)에 밑지지 못할 경우 차액을 보전해주는 이면계약(풋백옵션)을 맺은 것이 화근이 됐다. 결국 4조원에 달하는 이면계약의 상환부담을 감당하지 못하고, 올해 대우건설을 다시 시장에 내놓게 됐다.

또 대우건설에 이어 대한통운 인수전까지 뛰어들었던 금호는 인수에 성공했지만 글로벌 금융위기와 함께 극심한 자금난을 겪으면서, 그룹 전체가 유동성 위기에 빠지게 됐다.

여기에 박삼구 금호 명예회장과 동생인 박찬구 전 금호석유화학 회장간의 경영권 분쟁까지 겹치면서 금호를 둘러싼 시장과 투자자의 반응은 더욱 싸늘해져갔다.

금호산업과 타이어만 우선 '워크아웃', 그룹 경영권은 유지

재계 서열 8위인 금호의 주력계열사가 워크아웃에 들어가면서, 시장의 관심은 과연 향후 구조조정이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로 쏠리게 됐다. 특히 정부와 채권단에선 이번 금호사태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을 하겠다는 방침이지만, 금융권을 비롯해 어떤식으로든 영향을 미치게될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채권단쪽에서 금호 구조조정을 진행하면서, 그룹의 지주회사격인 금호석유화학과 주력기업인 아시아나항공에 대해선 자율구조조정 방침을 세우면서 특혜시비 논란까지 일고 있다.

이날 금호그룹과 산업은행 등 채권단에서 밝힌 구조조정의 큰틀은 두가지 방식으로 진행된다는 것이다. 하나는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에 대해서 채권단 동의를 받아 워크아웃에 들어가는 것이다. 채권단은 이들 회사의 재무와 자산 등에 대한 실사를 거쳐 3개월안에 경영정상화를 위한 약정을 체결하게 된다. 이 약정에는 출자전환과 자산매각 등 기업 구조조정 방안이 담긴다.

약 3조5000억원 규모의 이들 회사 부채에 대해 채권단이 출자전환방식으로 지원을 하게 되면, 이들 회사가 발행한 주식에 대해 감자가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이럴 경우 기존 주주들 지분은 줄어들게 되고, 채권단 지분은 늘어나게 돼 경영권이 채권단으로 넘어가게 된다.

채권단은 이후 이들 회사에 대한 비 업무용 부동산 매각을 포함해 비 주력회사에 대한 매각과 인력, 비용 감축 등의 구조조정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채권단쪽 관계자는 "아직 구체적인 방안은 나오지 않았지만, 그룹 계열사 재편 등을 포함해 강도높게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신문로 금호아시아나 그룹 본사의 모습. ⓒ 선대식


박씨일가의 경영실패 책임 미비와 구조조정 특혜 시비도

문제는 채권단이 금호의 지주회사격인 금호석유화학과 주력계열사인 아시아나항공에 대해선 자율협약을 통해 구조조정을 추진한다는 것이다.

금호그룹은 이번 워크아웃을 진행하면서, 정부와 채권단을 상대로 금호석화를 지키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금호석화까지 워크아웃으로 넘어갈 경우, 박씨 오너 일가의 경영권은 물론이고, 그룹 전체가 공중분해될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룹의 한 고위임원은 "그룹 전체가 완전히 흔들리는 것은 일단 막은 것 같다"면서 "어찌보면 최악의 시나리오는 면했지만, 그렇다고 구조조정을 피하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또 이번 금호사태의 책임을 져야할 박씨 오너 일가에 대한 시선도 여전히 따갑다. 물론 금호쪽에선 이번 워크아웃 신청에 대해 총수일가도 책임을 지는 차원에서 보유주식을 내놓는 등 사재를 출연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들 오너일가의 재산 대부분이 계열사 주식으로 가지고 있는데다, 상당부분 채권단에 담보로 걸려있고, 이번 사태로 주가마저 큰폭으로 떨어져 실제 사재출연의 금액은 그리 크지 않다는 의견이 많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소장(한성대 교수)은 "정부와 채권단에서 금호석화 등에 대해 자율협약을 체결하겠다는 것은 사실상 금호에게 엄청난 특혜를 주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김 교수는 이어 금호와 같은 재벌기업에 대해 워크아웃을 진행하면서, 주력 회사에 대해 일반 중소기업에게나 적용해온 자율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것을 이해하기 어렵다"면서 "게다가 무리한 기업인수합병 등 이번 사태의 막중한 책임이 있는 총수일가에 대한 경영권을 보장해주면서, 어떻게 제대로 된 구조조정이 이뤄지겠는가"라고 지적했다.

그는 "경영실패에 대해 총수일가에 대해 적극적인 책임을 묻지도 않고, 금호의 부실이 자칫 채권단의 비용부담으로 이어지면서 이는 결국 국민의 부담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크다"고 강조했다.
#금호아시아나 #워크아웃 #승자의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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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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