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보다 감동적이었던 반효정과 고 여운계

연기대상에서 날 훈훈하게 한 공로상 수상자들

등록 2010.01.01 15:59수정 2010.01.02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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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방송 3사의 연기 대상. 작년 한 해, 온갖 드라마에 환장했던(?) 필자는 각 방송사의 대상 수상자가 누가 될지 흥미진진한 마음으로 지켜봤다.

 

수상자들의 가슴 벅찬 소감을 기대하며 TV 앞에서 졸린 눈을 비비면서 결과를 기다린 끝에, 31일과 1일 새벽. 드디어 영예의 연기 대상 수상자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2009년의 연기대상은 KBS 이병헌, MBC 고현정, SBS 장서희씨의 몫이었다. 예상대로였다.

 

이병헌은 대작 <아이리스>에서 현준 역을 훌륭하게 소화했고, 고현정은 <선덕여왕>에서 뜨거운 열연으로 우리 사회에 미실 신드롬을 퍼뜨리지 않았는가. 장서희 역시 <아내의 유혹>에서 구은재 역을 완벽하게 소화해 냈다. 이들의 열연한 드라마는 높은 시청률까지 기록했으니 이들의 대상 수상은 적격이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말처럼, 잔뜩 기대했던 방송 3사의 연기 대상은 기대 이하였다. 감동이 없었다. 화려한 드레스와 정장을 입은 스타들로 인해 눈을 즐거웠고, 화려한 퍼포먼스로 인해 볼거리는 많았지만 그에 비해 속은 알차지 못했다. 연기자들의 굳은 표정은 시청자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사장님, 국장님, 주변 사람 챙기기에 바쁜 수상 연기자의 소감은 고리타분했다. 게다가 연기대상이 시작되기 전부터, 여러 차례 보도된 수상 후보 연기자간의 미묘한 신경전은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시상식 참여를 무기로, 수상을 요구한다는 일부 연기자들의 소문은 연기 대상에 대한 권위를 스스로 떨어지게 하는 것 같아 아쉬움이 남았다.

 

연기 대상이, 상을 받는 연기자들의 기쁨이 되는 것이 아니라 상을 받지 못하는 연기자들의 불만이 되고 있는 것 같았다. 권위가 사라진 대상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어 안타까운 마음이었다.

 

연기 대상보다, 더 대상 같았던 공로상 수상자들

 

그렇지만 연기대상의 모든 순간이 다 그랬던 것만은 아니다. 시상식이 뭐 저러냐, 는 탄식 속에서도 어느 한 순간은 '아, 진짜 연기대상 답다'라는 감탄사를 내뿜게 되었으니 말이다. 정말 그랬다. 이번 연기 대상에서는 대상보다 더 깊은 감동과 울림을 줬던 순간이 있다. 공로상을 수상한 연기자들을 대면한 순간이었다.

 

KBS는 고 여운계씨에게 특별 공로상을, SBS는 반효정씨에게 공로상을 수여했다. 채널을 돌려가며 본 연기대상에서 공로상 수상자로 두 사람의 이름이 호명된 순간, 괜히 마음이 따뜻해졌다. 반평생을 연기에 매진했던 노 연기자들의 수상이 아름다워 보였기 때문이다.

 

KBS 특별 공로상을 수상한 고 여운계씨는 48년이란 길고 긴 세월을 연기에만 매진했던 배우였다. 시상식에서 지난 5월, 폐암으로 타계한 그의 생전 활동 모습이 담긴 영상이 방영되었을때, 눈시울이 붉어지던 배우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시청하던 필자마저 마음이 울컥해진 것은 왜일까. 반평생을 연기에 매진했던 노배우의 진정성의 힘일 것이다.

 

SBS 연기대상에서 공로상을 수상한 반효정씨도 수상 소감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깊은 울림을 줬다. 최근 <천추태후>, <찬란한 유산> 등 왕성한 활동을 비롯해 47년이란 긴 세월을 연기에 매진했던 그는 기립한 연기자들을 향해 수상 소감을 밝혔는데, 그 내용은 듣는 이의 마음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문득 백범 김구 선생께서 애송하셨던 글귀가 생각납니다. 눈 내린 들길을 걸어갈 때 모름지기 그 발걸음을 어지럽히지 말라. 오늘 걷는 나의 발자국은 뒷사람의 이정표가 될 것이다. 배우 인생 마지막까지 깨끗한 눈길 함부로 발자국 내지 않게 걸어가겠습니다."

 

배우의 진정성을 담은 그 말은, 시청자뿐 만이 아니라 장내에 모인 많은 연기자들을 숙연하게 만들었다. 무던히 자신의 길을 걸어온 연기의 장인을 향해 시상식에 참여한 모든 연기자들은 일어나 기립 박수를 쳤다. 그리고 뜨거운 환호를 보냈다. 그 모습은 감동적이었다. 요즘 연기대상에서는 찾아보기 힘들었던 시상식의 권위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지나치게 인기와 시청률 위주로 된 방송 3사의 연기 대상에서 깊은 울림을 주는 노 배우들을 볼 수 있었던 것은 행복한 일이었다. 그렇기에 고 여운계, 반효정. 이들의 공로상 수상은 또 다른 연기 대상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이들은 재미없고, 고리타분하던 연기대상에서 청량제 역할을 톡톡히 해준 천생 연기자들이었다. 일침이 되는 한마디를 전해 준 노 연기자의 수상은 대상의 감동 그 이상을 시청자들에게 선물했다.

2010.01.01 15:59 ⓒ 2010 OhmyNews
#故 여운계 #반효정 #연기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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