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373)

'안성맞춤의 장소', '신분의 고하' 다듬기

등록 2010.01.02 14:36수정 2010.01.02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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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안성맞춤의 장소

 

.. 다시 한 번 테이블에 서류를 펴고 북한행 귀국을 형성한 여러 힘에 대해 잠정적인 결론을 내리기에 여기는 안성맞춤의 장소일 것이다 .. <북한행 엑서더스>(테사 모리스-스즈키/한철호 옮김, 책과함께, 2008) 306쪽

 

 '테이블(table)'은 '책상'으로 다듬습니다. "북한행(-行) 귀국(歸國)을 형성(形成)한"은 "북한으로 가는 길을 이룬"으로 손보고, "여러 힘에 대(對)해"는 "여러 힘이 무엇인가를"이나 "여러 힘이 무엇이었는지를 밝히는"으로 손봅니다. "잠정적(暫定的)인 결론(結論)을 내리기에"는 "내 나름대로 마무리를 짓기에는"이나 "어줍잖으나마 마무리를 짓기에는"으로 손질해 주고, '장소(場所)'는 '곳'이나 '자리'로 손질합니다.

 

 ┌ 안성맞춤의 장소

 │

 │→ 안성맞춤인 곳

 │→ 안성맞춤이라 할 만한 곳

 └ …

 

 일본사람들이야 워낙 'の'를 즐겨쓰니, 일본글에서는 이 자리에서 틀림없이 'の'가 적혀 있으리라 봅니다. 데즈카 오사무 님 만화를 보니, 이이는 '불새'를 '火鳥'가 아닌 '火の鳥'로 적습니다. 우리는 그저 '불새'라고 말하고 글을 적습니다만, 일본사람으로서는 '불의 새'라고 하는 셈입니다.

 

 영어에서는 'of'가 이런 구실을 할 텐데, 우리한테는 '-의'가 이런 구실을 맡는다고 잘못 생각하곤 합니다. 우리 말은 "이 책은 아버지 책인데"라 하거나 "오늘은 김기덕 영화를 봤어"처럼 토씨 '-의' 없이 단출하게 주고받습니다.

 

 보기글에서는 '-의'를 붙이지 않습니다. 붙이려 한다면 '-인'을 붙입니다. 또는 '-이라 할'을 붙이거나 '-이 될'을 붙입니다.

 

 ┌ 알맞는 곳

 ├ 걸맞는 곳

 ├ 딱 좋은 곳

 ├ 괜찮은 곳

 └ …

 

 낱말을 달리해서 '알맞다-걸맞다-좋다-괜찮다'를 넣어 보면 금세 알아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알맞음의 곳"이나 "좋음의 자리"나 "괜찮음의 터"처럼 쓰는 일이 있겠습니까. 어쩌면, 앞으로는 이처럼 토씨 '-의'를 붙여서 말을 하고 글을 쓰는 문화가 퍼질는지 모르는데, 앞으로는 더 얄딱구리하게 달라지고 만다 할지라도,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로서는 올바른 매무새를 추스르거나 가다듬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뒤를 이을 사람들한테도 우리 깜냥껏 가장 올바르게 추스르고 가다듬은 말과 글을 물려주도록 힘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여기는 잘 어울리는 곳이리라

 ├ 여기는 잘 어울리리라

 ├ 여기는 가장 나은 곳이리라

 ├ 여기는 가장 낫다고 느낀다

 └ …

 

 올바르게 살며 올바르게 생각하고 올바르게 말하는 매무새를 남겨 놓을 노릇이라고 느낍니다. 알맞춤하게 살고 알맞춤하게 생각하며 알맞춤하게 말하는 몸가짐을 물려줄 일이라고 느낍니다. 겉멋이 아닌 속멋으로, 겉삶이 아닌 속삶으로, 겉말이 아닌 속말로 우리 넋과 얼을 알차고 다부지게 갈고닦으면서, 어제와 오늘과 앞날이 고이 이어지게끔 애쓸 노릇이라고 느낍니다.

 

ㄴ.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 이 기록들을 보면 의암별제는 단순한 제사라기보다는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함께 즐길 수 있었던 진주 지방 백성의 축제였던 것 같다 .. <그녀들에 대한 오래된 농담 혹은 거짓말>(김현아, 호미, 2009) 120쪽

 

 '단순(單純)한'은 '흔한'이나 '한낱'이나 '어디에서나 올리는'으로 다듬어 봅니다. '고하(高下)'는 '높고 낮음'이나 '있고 없음'으로 손질하고, "진주 지방(地方) 백성(百姓)의 축제(祝祭)였던 것 같다"는 "진주사람들 잔치마당이었던 듯하다"나 "진주 둘레 사람들 잔치마당이었구나 싶다"로 손질해 줍니다.

 

 ┌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

 │→ 신분이 높고 낮음을 떠나서

 │→ 신분이 있고 없음을 따지지 않고

 │→ 신분이 어떠한가를 가리지 않고

 └ …

 

 이 보기글은 토씨 '-의'만 덜어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처럼 적어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적는 분을 곧잘 보곤 합니다. 적어도 토씨 '-의'는 달아 놓지 않으니 반갑습니다. 다만, 토씨 '-의'를 덜어낸 이와 같은 매무새를 조금 살려서 다른 대목까지 찬찬히 헤아린다면 훨씬 나으리라 생각합니다.

 

 먼저, "신분 고하를 따지지 않고"로 다듬을 수 있고, 다음으로 "신분이 높고 낮음을 따지지 않고"로 다듬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고하를 막론하고"를 "높고 낮음을 따지지 않고"로 다듬으면서 "신분의 높고 낮음을 따지지 않고"처럼 적는 분이 어김없이 있습니다. 잘 가다듬어 놓은 낱말을 알맞고 싱그럽게 엮어 놓지 못하는 셈입니다.

 

 곰곰이 따져 보면, 낱말 하나이든 말투 하나이든 어느 한 군데만 알맞게 추스르는 일이란 없습니다. 이곳저곳 두루 살피면서 슬기롭게 추슬러 내야 합니다. 모든 곳을 알맞게 다독여 내기는 어렵거나 벅차다 하더라도 한 군데씩 차근차근 추슬러야 합니다. 그래, 이래저래 다듬어 보면서 이곳은 잘 다듬었으나 저곳은 잘못 다듬곤 합니다. 이곳은 잘 알아채며 손질했으나 저곳은 미처 알아채지 못하며 건너뛰곤 합니다.

 

 ┌ 신분이 어떠하든

 ├ 신분이 무엇이라도

 ├ 신분을 살피지 않고

 ├ 신분을 내려놓고

 ├ 신분을 떠나

 └ …

 

 공 하나로 벌이는 운동경기를 보면, 어느 쪽이든 공격과 수비를 함께 합니다. 공격만 잘하거나 수비만 잘할 수 없고, 공격만 못하거나 수비만 못할 수 없습니다. 두 가지 모두 마음을 기울여야 합니다. 조금 더 잘하는 쪽이 있어 공격이 빼어나거나 수비가 빼어날 수 있는데, 공격이 빼어나더라도 수비가 뒷받침되어야 하고, 수비가 배어나더라도 공격이 앞받침되어야 합니다.

 

 낱말 추스르기와 말투 추스르기는 운동경기에서 공격과 수비와 매한가지가 아닌가 헤아려 봅니다. 자전거 타기를 놓고 본다면, 잘 달릴 줄 알아야 하면서 잘 멈출 줄도 알아야 하는데, 타기와 멈추기를 올바르게 맞출 줄 알지 않고서는 자전거를 탄다고 말할 수 없어요. 그러니까, 글월이나 말마디 모든 곳을 샅샅이 다루거나 다듬지는 못한다 하여도, 되도록 힘자라는 데까지는 다루거나 다듬으려는 매무새여야 한다고 느낍니다. 좀더 알맞게끔, 한결 싱그럽게끔, 더욱 살갑고 손쉽게끔, 생각을 추스르고 말결과 글결을 북돋우어야지 싶습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2010.01.02 14:36 ⓒ 2010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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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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